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The Korea Times 애틀랜타 2018 년 11월 6일 (화) C www.Koreatimes.com 전화 770-622-9600 www.higoodday.com 영화처럼 살다간 ‘맨발의 청춘’ 배우 신성일의 출세작‘맨발의 청춘’(1964ㆍ작은 사진은 포스터)의 한 장면. 싸움이나 일삼는 밀수꾼이자 무뢰배 서두수(가운데) 역을 잘생긴외모와불량스러운태도로잘소화해낸신성일은이후‘한국의알랭드롱’이자‘한국의제임스딘’이됐다. 한국일보자료사진 4일세상을떠난영화배우신성일씨는 한국 영화였고, 한국 영화가 신씨였다. 1960~70년대가특히나그랬다. 당시한 국영화는신씨가출연한영화,신씨가나 오지않는영화두종류였다. 고인은중·고교시절판검사를꿈꿨던 모범생이었다.지역명문인경북중·고에 서수학했다. 인생항로는고교 2학년시 절흔들렸다.책방등을하던어머니의계 가깨지면서집안은빚더미에앉았다.청 소년 강신영(본명)은 방황했다. 고교 졸 업후상경했다.대학입시에잇따라실패 한후돈을벌기위해청계천에서석달 동안호떡장사를하기도했다. 1959년신필름신인배우오디션을통 해충무로에발을디뎠다.오디션장에구 경갔다가당시충무로를호령하던신상 옥감독의동료이형표기술감독의눈에 띄어오디션을본후신감독에게바로발 탁됐다. 오디션경쟁률은5,098대1이었 다. 한국영화계를뒤흔들이름‘신성일’ 은이때생겼다.신감독은‘뉴스타넘버 원’이란뜻으로신성일(申星一)이란예명 을고인에게지어줬다. 배우로서탄탄대로를달렸다.정진우임 권택감독등당대유명감독영화에출연 해김지미윤정희문희남정임문정숙장미 희강수연등최고배우와호흡을맞췄다. 1996년 15대총선때강신성일로개명 하며 대구 지역구에 출사표를 던졌으나 여의도에입성하지못했다. 고인은2000 년16대총선에서금배지를달았다.2000 년대들어선곽경택감독의‘태풍’(2005) 에출연했을뿐활동이거의없었다. 영원한청춘의상징처럼그는매번관습 에도전하고,새로운영역에뛰어들었다. 고인은지난해6월폐암3기판정을받 은 후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나는 도전 정신이 충만하다”며“지금부터는 한번도 가보지 못했던‘암세포의 세계’ 에도전하는거”라고밝혔다.“2020년데 뷔60주년을맞는데내특별전은꼭참여 하고싶다”고도했다. 안타깝게도‘맨발 의청춘’의마지막꿈은‘별들의고향’에 서이뤄지게됐다. 김표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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