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19년 12월 9일 (월요일) A6 책과 세상 세습도능력? 미국명문사립고의삐뚤어진 ‘능력주의’ 벌레로 변한 건 가장인가, 가족인가 ■ 변신 프란츠 카프카 지음 문학동네 발행 모든첫문장은글의뿌리이자시작점이다. 나머지문장은첫문장에머리채가잡힌채‘ 매달리어’간다.첫문장에글의운명이걸려 있다고할까. 부실한첫문장은나머지문장 들을꼬치처럼꿰지못하고, 흩어지게둔다. 프란츠 카프카(1883-1924)의‘변신’은 한 번들으면잊히지않는, 강렬한첫문장으로 시작한다. “어느날아침그레고르잠자가불안한꿈 에서깨어났을때그는침대속에서한마리 의흉측한갑충으로변해있는자신의모습 을발견했다.”(7쪽) 집안을총책임지던가장이어느날커다란 벌레로변신한다면.당신이그의가족이라면 어떤반응을보이겠는가. 이소설은읽는데 두가지재미요소가있다. 하나는그레고르 잠자가완전히‘벌레화(化)’되는과정을지 켜보는것, 다른하나는그레고르잠자못지 않게변신하는가족들의심리와행동을따라 가며 읽는 것이다. 가족들은 사랑과 걱정의 마음을내비치다, 벌레가된그의모습을마 주하고는경악한다. 공포와한숨, 미래에대 한 두려움이 그들을 사로잡는다. 이후 실망 과원망, 짜증, 분노를거쳐가족들은드디어 ‘살의’를느낀다.“저는저런괴물앞에서오 빠의이름을입밖에내고싶지않아요.그러 니까제가말씀드리고싶은건오직한가지, 우리가 저것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거예요. 우리는그동안저것을돌보고참아내기위 해인간으로서할수있는일은다해봤어요. 우리를 조금이라도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없을거예요.”(111쪽) 늙은부모와무력한여동생대신가족의생 활비를벌기위해‘일벌레’로살아온그레고 르잠자. 그가쓸모없는벌레로변하자가족 들은싸늘한태도를보이고, 현실적이된다. 밖에나가일을구하고, 하숙을치고, 삯바느 질을하며살궁리를한다. 나약했던여동생 은“괴물”에게서벗어나야한다고선동하는, 가족의새리더로변모한다. 그레고르잠자는가족안에서왜‘괴물’로 전락했을까.표면적으로는그가자신들과다 른형질을띠는거북한종(種)이되었기때문 이다. 인간은본래자신과다른것을두려워 한다. 때로견디지못하고, 공격한다. 파시즘, 민족주의, 가족 이기주의, 주류집단의 결속, 소수자에 대한 혐오세력 등을 떠올려 보면 알수있다. 그레고르잠자가갑충이아니라 병아리나고양이로변했다면, 이야기는전혀 다른방향으로흘렀을지모른다. 한편 이야기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레고 르잠자는하루아침에무력한존재가되었기 때문에 괴물과 다름없어졌다. 가족 구성원 사이에서해오던역할과임무, 희생, 성과, 기 대치에서벗어난그는아무것도아닌존재이 자처치대상이된것이다. 가족들의혐오가 그레고르 잠자의 외형과 존재의 형식(역할) 에기인한다는점이입맛을쓰게한다. 카프카는인간의본성,이기적인습성과배 타적 태도, 불안 과 공포, 부조리 로 점철된 삶을 면밀하게 관찰한 작가다. 그가 그 리는 인물들은 대체로 부조리한 상황에 빠져 옴 짝달싹못한다. 그가 보여주는 불합리한무대는 우리가사는현실과다르지않다. 인간을무 력하게만드는것은주어진‘상황(시스템)’, 개인의힘으로움직일수없는견고한벽, 보 이지않는억압과지배다.그 것은 100년전과조금도달라지지않았다. 카프카는이런상황에서인간이어떻게고립 되는지,우스워지고몰락하는지집요하고담 담하게보여준다. 이짧은소설을앞에두고질문해본다. 가 족을탄생하게하는것이사랑이라면, 가족 을유지하게하는것은무엇인가. 가족은사 랑해서 필요한 것인가, 필요해서 사랑하는 것인가.우리는결국무엇으로‘변신’할것인 가. <박연준시인> 프란츠카프카. ■ 특권 셰이머스 라만 칸 지음 후마니타스 발행 파키스탄과아일랜드출신부모아래태어 나미국뉴욕에서성장한셰이머스라만칸 은 1993년 9월놀라운광경을목격한다. 엘 리트 중에서도 엘리트인 미국 부유층의 자 녀만이모여있다는세인트폴고등학교기숙 사에도 자신과 같은 이민자 가정 아이들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 아 그는 세인트폴이 인종적 다양성과는 거 리가멀었다는사실을알게된다.‘소수학생 기숙사’가학내따로마련됐기때문에가능 했던일이란것이다. 칸은외과의사로성공해부를거머쥔아버 지의바람에따라이곳에진학했지만그시 간이 행복하지만은 않았다고 돌이킨다. 엘 리트 친구들 사이에서 결코 행복하지 않았 던 탓이다. 아이비리그를 택하는 친구들을 피해작은리버럴아츠칼리지(하버포트칼 리지)를선택한이유이기도하다. 칸은계급 문제를 연구했고, 교사이자 연구자로 다시 세인트폴로돌아왔다. 9년만이었다. ‘특권’은미국사회의불평등구조를세인 트폴 고등학교라는 집단을 중심으로 분석 한칸의체험적연구서다. 왜엘리트학교교 육은 어떤 이들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당연 히 주어지는 한편 어떤 이들에게는 초인적 힘을발휘해성취해야하는일이됐는가, 이 곳학생들은계속해서최고중의최고란이 야길듣는데그최고중대다수는왜부유층 출신인가같은질문에답해가는것이칸연 구의핵심이다. 칸은무엇보다‘능력주의’를주창하는사 회의 분위기에 비판적이다. 경제적 여건이 어려운학생들은이른바능력이라일컬어지 는 특성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접근할 기 회가 엄격히 제한돼 있는 탓이다. 세인트폴 고내부엔거의무한에가까운선택지가있 다. 단 500명의학생들을위해수백개의동 아리가생성되고중국어, 라틴어, 희랍어등 다양한교과목에각교과를심화할세미나 가만들어진다.모든교사들이하루종일캠 퍼스에살면서항상학생들을위해대기중 이다. 칸은2004년세인트폴고로돌아간직 후변화를목격한다.‘신(新)엘리트’들의등 장이다. 백인명문가부유층이여전히지배 적일거라는예상과달리되레이들이적응 하지 못해 고립된 기숙사에서 지내는 일이 빈번할 정도로 인종적·계급적 다양성이 커 졌다. 오페라와 랩음악을 동시에 즐기면서, 어디 내놔도 평범한 미국 시민 같은 외양을 가졌으며,고급레스토랑과패스트푸드점에 서 똑같이 편안히 식사하는, 이전의 폐쇄적 인 엘리트들과 다른 형태의 엘리트들이 등 장한것이다. 이러한신엘리트들은자신의열린태도를 강조하며사회를향해‘내위치는기울어진 운동장때문이아니라’는서사를구축한다. 기회의 불공정은 고려하지 않은 채 말이다. 입말로표현하자면이렇다.“나는이렇게개 방적이고 민주적이야! 너희들이 그런 위치 에있는건바로네자신의편협함,이개방된 새세상을이용하지않기로한네자신의선 택, 네자신의관심부족때문이지, 지속적인 불평등때문이아니라고.” 칸은신엘리트들의사회엔다른해법이필 요하다고본다. 학교의질도낮고방과후프 로그램도 거의 없으며 난관에 봉착했을 때 도움을줄수있는이도곁에없는학생들의 처지에눈감는대학입시제도와사회기반 에 대한 고찰 등이 대표적이다. 자율형사립 고, 외국어고, 학생부종합전형같은교육이 슈를두고수년째갈등이고조되고있는한 국의 현실을 고려한다면 더욱 주목해야 할 목소리다. 신지후기자 1890년세인트폴고의모습. <홈페이지캡처> ■ 다시본다,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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