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0년 1월 6일 (월요일) A6 책과 세상 조선판 자유부인 ‘어우동’이 극형에 처해진 이유는 ■ 시작은 모두 사랑이었다 권경률 지음 빨간소금 발행 조선성종때희대의성추문스캔들을일으 킨어우동(於于同)은기생이아니라명망있 는 양반 집안 출신이었다. 그는 지승문원사 박윤창의 딸로 왕실 종친인 태강수 이동과 혼인했다. 조선학자성현(1439~1504)이쓴 ‘용재총화’에는어우동이어느날집에온은 그릇장인에게반해내실로끌어들여음탕한 짓을하다가남편에게걸려친정으로쫓겨났 다는기록이남아있다. 이후자유부인이된어우동의연애행각은 더 대담해졌고, 왕실 종친과도 바람을 피웠 다. 장내에 소문이 퍼지자 급기야 당시 임금 이었던성종까지나서게됐다. 3년동안신분 을 따지지 않고 수십 명의 남자들과 간통한 사실이밝혀지면서성종은유교국가의풍속 을해친다는이유로신하들의만류에도불구 하고1480년어우동을극형에처했다. ‘풍기를문란케한희대의방탕한여성’으 로보이는어우동에대해역사학자권경률은 다른평가를한다. 아내였던폐비윤씨의권 력의지에두려움을느낀성종이여자들을구 속하는유교통치체제를위해처형시킨희생 양이었다는것이다. 책은 삼국시대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역사에어우동처럼시대상황에맞게삶이각 인돼버린여성들을재조명했다. 남성위주의 가부장적사회에서자신의삶을당당하게선 택했지만, 사회구조와시대상황에희생됐던 여성들이다. 이들의삶을남성과의관계,사랑을통해조 망한다는 점이 새롭다. 사랑을 통해 남녀구 도를더적나라하게보여준다. 저자는“사랑 은가장사소하고개인적인역사지만동시에 가장 사회적인 관심사이다”라며“한국사의 지배층은 남녀의 사랑을 다스리는 데 많은 공을들였고, 또사랑을이용해자신들의권 력욕을채우고자했다”고밝혔다. 조선숙종은사랑하는여인장옥정을왕비 로 삼기 위해 집권당을 갈아치우며 당쟁을 사생결단으로격화시켰다. 그과정에서장옥 정은‘정치적야망에불타오르는악독한요 부(妖婦)’가 됐다. 한국 최초로 외국에서 서 양화를배운신여성으로여성인권운동을했 던나혜석은불륜녀로낙인찍히면서그능력 을제대로발휘하지못하고비참하게생을마 감했다. 여성에대한평가가남성위주로이뤄져온 문제는 비단 과거에 국한되지 않는다. 여성 혐오가 기승을 부리고, 여전히 한 인간으로 서가아닌성적대상으로평가하는오늘날한 국사회의문제이기도하다.나혜석은1934년 공개적으로‘이혼고백서’를발표했다.“조선 의 남성들아, 나는 그대들의 노리개를 거부 하오,내몸이불꽃으로타올라한줌재가될 지언정언젠가먼훗날나의피와외침이이 땅에뿌려져우리후손여성들은좀더인간 다운 삶을 살면서 내 이름을 기억할 것이리 라, 소녀들이여깨어나내뒤를따라오라일 어나힘을발하라.” <강지원기자> 1985년 이 장호 감독 의 영화‘어 우동’의 한 장면. 망상, 몽상, 망각… 월리스가 그리는 ‘기묘한 세상’ 데이빗포스터월리스역시그런천재들중 하나일 것이다.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썼고 철학이 취미였다. 토머스 핀천의 후예로 불 리며미국현대문학의새로운장을열것으 로기대됐지만, 2008년46세의나이에생을 마감했다. 10대 때부터 불안장애와 우울증 을앓았고, 각종중독과공포증에시달렸고, 복용하던 우울증약이 더는 듣지 않자 끝내 자택에서극단적인선택을했다. 짧은 생애 동안 월리스는 3편의 장편소설 (마지막소설은미완성유작), 3권의소설집, 3권의 산문집을 남겼다. 특히 명성과 악명 을 동시에 안겨준 두 번째 소설‘무한의 재 미’는 1,0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에 각주 만 300개가넘는형식과잉의작품으로 20 세기말미국문학을논할때빼놓을수없는 문제작에이름을올렸다. ‘오블리비언’은 월리스 생전에 출간된 마 지막 소설집이다. 지난해 월리스의 에세이 선집‘재밌다고들하지만나는두번다시하 지않을일’이국내에출간되기는했지만그 의 소설이 국내에 소개되기는 처음으로, 총 8편의작품이실려있다. 제목이된‘오블리비언(Oblivion)’은의식 하지 못하는 상태, 망각, 간과 등을 뜻하는 영어 단어이자 소설집의 성격을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관찰 과묘사, 소설의오랜관습을타파하는플롯 과 형식, 결말에 이르러서도 해명되지 않는 진실까지,길을잃으면서도앞으로나아가도 록, 모호하면서도 강렬하게 독자를 사로잡 는다. 표제작인‘오블리비언’의 경우, 코골이를 한다고믿는부인과, 부인이환각에시달린 다고믿는남편의이야기를통해결혼 16년 차를맞는부부의갈등을그린이야기다. 부 부간의 갈등이라는 고전적 소재를 망상과 몽상으로 풀어내면서, 표면적 갈등과 이들 의기저에도사리고있는근원적문제를짚 는다. 어떤게결혼생활의진짜문제인지모 호한가운데부부는의학적진단을통해진 실을 규명하고자 하고, 소설은 꿈과 현실의 경계에대한질문을던진다. 이외에도정신착란에빠져한초등학교의 시민윤리 교실을 인질로 삼은 교사와, 무자 각적 인질이 된 학생들의 이야기나(영혼은 대장간이아니다), 뜨거운물에화상을입어 울부짖는 아이와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애 쓰지만멈출수없는비극(화상입은아이들 의현현), 평생을기만적으로살아왔다고고 백하는 주인공이 죽음 이후 시점에서 자신 이자살에이르게된이유와과정을들려주 는 내용 등(굿 올드 네온), 어딘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으면서도 매섭게 빨려 들어가는 독특한 이야기들이 작가 특유의 끊이지 않 는입말을타고이어진다. 한국의‘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라 부를 만한 정지돈 작가는 추천사에 이렇게 썼다. “한계와부딪치려고했을때만탄생하는것 이 있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소설이 그완벽한사례다” <한소범기자> ■ 오블리비언 데이빗 포스터 월리스 지음 알마 발행 소설가라고만 칭하기에는 난감한 작가들이 있다. 자신 안에 있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그것을 세상 에 토해낼 수단으로 소설을 택했을 뿐인 것 같은 작가들. 철학일수도, 미술일수도, 영화일 수도 있 었지만 단지 소설을 택했을 뿐인 천재들. 그러나 종종, 이천재들은그자신안에있는것들을이겨 내지못하고비극적인결말을맞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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