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0년 1월 16일 (목요일) A8 오피니언 여러분의 의견을 기다립니다 ▲이메일: ekoreatimes@gmail.com *모든칼럼은 애틀랜타 한국일보의편집방향과 다를 수있습니다 이민 오기 전 TV 탤런트 생활 을 할 때엔 드라마 연습이 끝나 면 다방이나 사우나를 드나들 고 드라마 녹화가 끝나고 나면 출 연진들과 뒤풀이를 하다가 발동 이 걸리면 1차, 2차, 3차까지 술 집을 누비며 힘든 일을 전혀 모르 고 살다가 미국 가구공장에서 노 동을 하게 되니 너무나 힘이 들었 다. 무엇보다 우리 동양인들에게 는너무무겁고잘맞지않게제작 된 STAPLE AIR GUN을하루종 일들고소파커버를힘껏잡아당 기며 STAPLE GUN을 쏘다가 퇴 근한후잠을잘때는손에쥐가나 고저려서뜨거운물과찬물에번 갈아 손을 담그며 풀어야 할 정도 로고된일이었다. 그래도 주어진 직장과 일에 최 선을 다하려고 일찍 출근을 하다 가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문을 잘못 닫아 엄지손가락이 문에 끼 어 손톱이 갈라지고 피가 쏜아졌 다. 주유소직원에게반창고가있 냐고물으니기다리라면서한국에 서 왔냐고 물어 그렇다고 하니 자 기도 한국에서 근무했다며 한국 을 좋아한다면서 동두천을 아냐 고물었다. 반창고가급한나에게 한가하게 수다를 떠는 그가 답답 했지만 참고 기다릴 수 밖에 없었 다. 시간도없고갈길이바쁜나는 손가락을 싸매고 회사에 도착해 일을 시작하는데 참으로 죽을 맛 이었다. 동료들에게 다친 것을 설명하니 집으로 가지 왜 왔느냐고 하면서 그거 무지하게 아프다고 했고 다 른 동료는 자기도 그런 경험이 있 는데 며칠동안 아파서 아무일도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처음 입사한 미국 직장이라 고통을 무 릅쓰고 최선을 다해 인정을 받으 려고노력했다. 그런데일을하다가다친손가락 을 실수로 잘못 건드리면 팔팔 뛸 정도로아팠다. 힘들게억지로일 을끝내고집에돌아가더운물찬 물로 찜질을 하고 다음날 결근을 한후어느정도회복이돼출근을 하게된 며칠 후 퇴근을 하던 나는 운전실력이부족해차선을바꾸다 가앞차가좌회전신호를켜고서 있는 것을 그대로 받았다. 당황한 나는 무슨 죽을 죄를 지은 것처럼 가슴이떨리고겁이났다. 상대방차는흑인여성이었고사 고 지역도 흑인 지역이라 흑인들 이몰려들었다. 이방인인 나는 겁부터 났고 또 운전을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하나 하고 불안에 떨고있는데 경찰이 왔다. 그런데경찰역시흑인이라 모든 것이 불리할 것같은 느낌이 었다. 경찰은피해운전자에게경 위를 묻고 나에게 사고에 대한 경 위를 물은 다음 보험카드를 기록 한 다음 운전 면허증을 돌려주며 가라고 했다. 사고에 대한 운전법 규위반티켓을안주고선처해준 것이다. 공연히 인종차별적인 오 판을 하고 불안해 하면서 편견을 갖고 있던 나의 잘못을 깨닫게 됐 다. 교통사고의 후유증이 컸지만 직 장에서는 열심히 일을 한 때문인 지 나를 우대했고 동료들도 친절 했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불러도 대 답없는, 안타까운이름이두개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한 맺힌 이름이될수도있을것이다. 대표적인 것이‘노벨’이다. 19 세기 스웨덴에서 다이너마이트 를 발명해 대부호가 되었던 알 프레드 노벨이 다. 한때는 위대한 발명가로찬사를 받았지만다이너 마이트가전쟁에 서 대량파괴 무 기로사용되면서 그는 사람들을 떼로 죽게 만드 는 악마의 화신 같은 존재로 평 가받았다. 평생 독 신으 로 살았던 그는 1896년 63세로 사망하면서 전 재산을 과학의 진보와 세계 평 화를 위해 사용되게 하고 싶다 는 유언을 남겼다. 그렇게 만들 어진것이노벨상이다. 1901년 노벨상 시상이 시작된 후 수십년 지나도록‘노벨’은 한국의 관심대상이 될 수 없었 다. 하지만 한국이 다방면으로 자신감을 갖게 된 20세기 말부 터 매년 가을이면 한국민들은 가슴앓이를했다. 그해의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 되는 10월즈음이면“올해는혹 시~”하는 기대가 부풀어 오르 다가 실망으로 끝나기를 수십 번반복했다.‘우리는왜노벨상 을못타는가’류의기사나칼럼 도연례행사처럼등장했다사라 지곤했다. ‘노벨’정도의 염원은 아니지 만역시안타까운이름이‘오스 카’이다. 한국영화가 이만하면 세계무대에내놓아도손색이없 다는 자부심이 강하면 강해질 수록 오스카는 야속하기만한 이름이었다. 2000년 이후 베를 린, 베니스, 칸 등 국제영화제에 서 심심찮게 수상을 하고 인정 을 받았지만 오스카는 좀처럼 한국영화에 곁을 내주지 않았 다. 그러던 오스카가 이번에 활짝 문을열었다. 봉준호감독의‘기 생충’이 작품상, 감독상, 각본 상, 편집상, 미술상, 국제영화상 등무려6개부문후보작으로선 정되었다. 국제영화상(과거 외 국어영화상) 부문에 이름을 올 릴것이란‘소박한’기대를기분 좋게,통쾌하게허물었다. 오스카상의 공식명칭은 영화 예술과학 아카데미(AMPAS)상 이다. 줄여서 아카데미상 혹은 오스카상으로불 린다. ‘오스카’는 본 래 아카데미상 트로피에붙여진 애칭이었다. 아카데미상 사 서였다가 훗날 AMPAS 디렉터 가 된 마가렛 헤 릭이 1931년 트 로피를 처음 본 순간“우리 아저 씨 오스카를 닮 았다”고 말한 것 이발단이었다고전해진다. 마침 당시 현장에 있던 한 칼 럼니스트가이말을듣고몇년 후뉴욕데일리뉴스에관련기 사를 쓰면서 이를 인용한 것이 계기가 되어 널리 퍼졌다고 한 다. 이어 1939년 AMPAS가 트로 피의 공식 애칭을 오스카로 정 하면서‘하느님의목자’라는뜻 의‘오스카’는영화인들에게꿈 의 이름이 되었다. 봉준호 감독 도예외는아니었을것이다. 봉준호 감독의‘기생충’은 지 난해부터 상 복이 터졌다. 지난 해 5월칸국제영화제에서최고 상인 황금종려상을 탄 이후 일 일이 손에 꼽기도 어려울 정도 로 많은 국제적 상들을 차지했 다. 그리고는 지난 5일 한국영화 100년역사상처음으로골든글 로브외국어영화상을수상하자 바로 다음 목표로 떠오른 것이 오스카였다. 실제로 오스카는 ‘기생충’에 6개의 문을 열어주 었다. 과연‘기생충’은‘한국영화사 상 최초의 오스카’라는 기록을 만들어 낼 것인가. 백인남성들 의 클럽인 아카데미 회원들이 ‘자막이라는1인치짜리장벽’, 그심리적장벽을기꺼이넘어설 것인가. 오스카 시상식은 다음달 9일, 4주를기다리면알수있을것이 다. 권정희논설위원 오스카 뉴스칼럼 시사만평 비행기는 추락해도, CEO 돈방석 미국직장과 이민 생활 코리언 아메리칸 아리랑 제2부 -미국 이민 정착기(7) 지천(支泉) 권명오 (수필가 · 칼럼니스트) 데이브그랜런드작 케이글USA 본사특약 “누가 낙하산을 탔는지 맞춰봐!” 보잉 737맥스 8,000만달러받고떠나는 전최고경영자뮐렌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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