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0년 1월 27일 (월요일) D10 플래시백 한국영화 100년 ‘춘 향전’(1961)의실패후 홍성기 감독과의결혼 생활에 파경을 맞은 김지미는 1962년 3월이혼에 합의하고 선민영화사를 떠나 한양영화공사의전속 배우가 된다. 이시기김지미는 ‘하늘과 땅 사이에’ ‘진시황제와 만리장성’ ‘골목 안 풍경’과 같은 한양영화공사의영화만이아니라 동보영화사의 ‘암행어사 박문수’, 세종영화사의 ‘평양기생계월향’, 극동흥업의 ‘한 많은 미아리고개’(이상 1962)에출연하는 등 전방위적인연기 활동으로 건재한 스타성을 과시했다. 바로 이때희대의스캔들이터졌다. 김수용 감독이한국 홍콩 합작으로 추진하던 ‘손오공’(1962)의홍콩 로케이션 촬영에서김지미는 같이출연한 최무룡과 급속히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당시최무룡씨와 현장에앉아 자기 속상한 얘기같은 거털어놓게되지않나. 그러다 정이들었는데이게 ‘빵’ 하고 터져버리더라. 수습해야 하니까 안 살 수가 없게된 거다.” 세간에두 사람 간의 염문설이떠돌았고, 1962년 11월 31일 밤, 김지미와 최무룡은 간통 혐의로 경찰에구속되어구치소에수감된다. 이른바 김지미-최무룡 간통 사건이었다. 최무룡을 아낌없이지원했던김지미 “앞서간통으로 파문을 일으킨인기 여배우 조미령의경우와는 달리그들이 남편을 가진, 그리고 아내를 가진 가정인”(경향신문 1962년 10월 31일) 이었다는 점에서사건의파장은 컸다. 수갑을 차고도 행복해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연일언론에실리며구설수에 오르내렸고, 영화인협회는 이들에게 1년간의영화 출연 정지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배우 인생의막을 내릴 뻔한 스캔들의여파는 그리오래가지못했다. 한국 영화의스타 배우에대한 의존도는 매우 높았고, 두 사람이미리출연 계약을 맺어제작 대기중인영화만 12편이었다. 한 해만 활동을 중지해도 충무로가 휘청거릴 만큼 김지미와 최무룡의지분은 엄청났던 것이다. 한국영화제작자협회는 두 사람의출연 정지에반발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이 사건은 김지미가 살던집을 처분해 최무룡이아내강효실에게지불해야 할 위자료 248만원과 채무 78만원을 대신 갚아 주면서마무리되었다. 이혼하면 남자 측이위자료를 부담하는 게 관행이었고, 여성혼자 경제력으로 자립하기어려웠던 당시시대상에서 정상급 스타로서김지미의위상이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아닐 수 없다. 배우보다 감독과 제작 일에더욱 관심을 기울이게된 최무룡을 김지미는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피어린 구월산’(1965)으로 감독에입봉한 최무룡은 이후 배우를 겸하는 틈틈이 ‘한 많은 석이엄마’(1966), ‘나운규의일생’ ‘애수’(1967), ‘제 3지대’(1968), ‘어느 하늘 아래서’(1969) 등을 연출하는가 하면 ‘선술집처녀’(1963), ‘국경아닌 국경선’(1964) 등의제작에나섰다. 대부분은 흥행에실패해 쓴잔을 들이켜야 했지만, 15편이나 만들 수 있었던 건전적으로 김지미의도움에 힘입은 덕분이었다. 1969년 6월 10일 두 사람은 “사랑하기때문에헤어진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며 6년간의결혼 생활을 정리하지만 그 뒤로도 ‘동창생’(1971), ‘결혼반지’(1972), ‘명동을 떠나면서’(1973) 등에서부부나 연인 역할로 합을 맞춘다. 훗날 김지미는 인터뷰에서 “남자는 다 어린애고, 부족하고, 불안한 존재다. 그렇지만 함께 자녀를 낳아 길렀던 최무룡이가장 기억에남는다”고 회고했다. 조연마다 않던연기열정 김수용의 ‘혈맥‘(1963)에출연하면서 김지미의배우 경력은 전환점을 맞는다. 김영수의희곡을 원작 삼은 이작품은 광복을 맞은 후 남산 기슭의해방촌에 옹기종기모여사는 실향민들의밑바닥 인생을 사실주의적으로 그린 군상극으로 김승호와 황정순, 엄앵란, 신영균, 신성일, 최무룡, 조미령등 당대의내로라하는 배우들을 한데모은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했다. 여기서 김지미는 꽁초를 주워다 재활용 담배를 만들어파는 밀조업자 원팔(신영균)의 동생으로 유학까지다녀왔지만 실업자 신세인 원칠(최무룡)을 사랑하는 ‘헬로우 걸’ 옥희역을 맡았다. ‘혈맥’을 기점으로 주연에대한 집착을 버리게된 김지미는 도도한 카리스마의스타에서 진지한 연기파 배우로의변신을 모색하게된다. 이성구의 ‘메밀 꽃 필 무렵’(1967)에선침착한 내면연기로 장돌뱅이허생원과의연분을 가슴 깊이 품고 기다리는 분이의성격을 잘 묘사해냈고, 외설 논란으로 이형표 감독이검찰에불려가는 촌극을 빚었던 ‘너의이름은 여자’(1969)에선 성불구자가 된 남편을 두고 대학생과 불륜을 벌이는 아내를 열연해제15회 아시아영화제여우주연상을 차지하게 된다. 1970년대한국영화 산업이극심한 불황과 침체의터널에들어서면서한 해 20~30편을 상회하던 김지미의작품 편수 또한 현격히줄어들게된다. 1971년에는 주인공 모화 역으로 내정되어있던 ‘무녀도’(1972)의주연이촬영직전 느닷없이윤정희로 교체되면서 태창영화사와 분쟁에 들어간 사건은 톱스타 김지미의입지에먹구름을 드리웠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연기의집중력과 밀도가 농밀해지며 배우로서완숙한 기량을 보이는 시기였다. 해방 정국과 한국전쟁의 파란을 겪으며비극적인 삶을 살다 간 여인 분례의일대기를 그리는 임권택의 ‘잡초’(1973)에서김지미는 10대 소녀에서 50대중년에이르는 연령대를 혼자서소화하는 기염을 토한다. 개화기를 배경으로 한 김수용의 ‘토지’(1974)에서는 어두운 과거사를 지닌 최참판네의며느리윤씨부인으로 분해 파나마국제영화제여우주연상과 제 13회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이만희의 ‘만추’(1966)를 리메이크한 김기영의 ‘육체의약속’(1975)에서는 원작에서문정숙이맡았던연상의 여주인공 역으로 분해깊이있는 내면 연기를 보여주었다. 나훈아와의결혼, 그리고 휴식 1976년 7월 9일, 가수 나훈아와의 약혼을 선언한 김지미는 활동을 접고 6년간의공백기에들어선다. TV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꾸준히인기를 관리하는 게그 무렵배우들의보편적인 경향이었지만 영화에대한 자부심이 강했던 김지미는 ‘TV라면질색하는 스타’였다. 이시기의출연작은 ‘을화’(1979) 단 한 편뿐이었고, 대전에서 초정이라는 이름의음식점을 운영하며 조용한 나날을 보냈다. “사람들은 대체로 영화에 많이출연하고 요란을 떨어야 좋은 배우로 알지만 1년에하나, 10년에하나라도 작품다운 것을 하는 게 옳은 일인 것 같다.” 나훈아와 결별한 후 ‘화녀 82’(1982)로 영화계에 복귀한 중년의김지미는 임권택감독과 손잡고 의욕적으로 ‘비구니’(1984)의촬영에 임한다. 제작자로서도 충무로에 ‘우뚝’ ‘만다라’(1981)에이어깨달음과 세속적구원의문제를 다룰 예정이었던 이작품은 전체시나리오의 5분의 1가량 촬영이진척되다가 불교계의거센 반발로 제작이중단되고 만다. 미국에서 귀국해삭발까지감행하며남다른 각오로 임한 김지미로서는 뼈아픈 경험이었고 나중에이영화를 ‘사산한 자식’에비유했다.(‘비구니’의미완성 필름은 2013년 태흥영화사의창고에서 발견되어부분 복원판으로 2017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공개된다) “그러다 임권택감독, 정일성(촬영)감독, 송길한 작가 그리고 나까지패잔병넷이더 좋은 영화를 만들자면서전국을 돌아다녔고 영화 ‘티켓’(1986)과 ‘길소뜸’(1985)이라는 작품이 탄생한 거죠.” 이산가족 상봉으로 전쟁통에헤어진 가족과 재회하지만 세월의간극을 넘지못하고 본래의 삶으로 돌아가는 ‘길소뜸’의화영, 항구의다방에서젊은 여성들을 고용해 매춘을 강요하는 ‘티켓’의민마담 역은 다져진연기내공에인생의경험이 녹아들면서원숙한 경지에이른 김지미 배우 인생에한 정점을 이룬다. 충무로는 새로운 세대의영화인들로 물갈이되었고 원로 영화인들이설 자리는 좁아져갔다. 그럼에도 김지미는 ‘명자 아끼꼬 쏘냐’(1992)를 마지막으로 은퇴하기까지오랫동안 현역으로 살아남았다. ‘티켓’를 창립작으로 한 지미필름을 설립, 기획과 제작에도 손을 댄 김지미는 ‘아메리카 아메리카’(1988), ‘추억의이름으로’(1989), ‘불의 나라’(1989)를 잇달아 성공시키는 한 편으론 영화인 특유의선구안으로 ‘마지막 황제’(1987)와 ‘로보캅’(1987)을 국내에수입, 배급하기도 했다. 영화인으로서의자존심을 고수하며 도전을 거듭한 김지미의영화 인생은 명멸하길 거듭하는 스타 한 사람을 넘어서, 한국 영화사의산 증인이자 빛나는 배우의초상으로 남았다. 조재휘영화평론가 최무룡과의간통, 구치소수감도 6년만에다시이별로마감 1976년엔나훈아와깜짝결혼 80년대엔완숙한연기로명성 주연→조연→제작자로변신 한국영화의산증인이자초상 <20> 배우로제작자로…김지미의은막인생 “사랑하기때문에헤어져요”스캔들넘어전설이되다 1984년설악산신흥사에서영화 ‘비구니’ 출연을위해배우김지미가진짜비구니들에의해삭발을 하고있다. ● 한국일보자료사진 영화촬영장에서함께 어깨동무를한배우 김지미 (왼쪽부터) 와 최무룡,엄앵란. ● 한국일보자료사진 미국하와이관광중에다정한한때를보내던 배우김지미와가수나훈아.두사람의연애와 결혼은당대대중의호기심을부르기충분했다. ● 한국일보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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