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0년 3월 9일 (월요일) A6 책과 세상 1617년 유럽 기록에 첫 등장 “귀한 약” 루이 14세에게도 진상 미국엔 경제적 독립 안긴 효자 품목 서구 의학, 사포닌 추출 실패하자 “신뢰할 수 없는 약초”낙인 찍고 서양사에서 인삼을 지워버려 “네발달린것중엔책상,하늘을나는것중엔비행기 빼고다먹는다.”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의매 개체야생동물,특히박쥐가지목되자중국의‘기괴 한’음식문화에또한번뭇매가쏟아졌다.한중국여 성여행블로거가‘박쥐수프’를시식하는동영상은 서구언론의입맛에딱맞는,맛난먹을거리였다.나중 에이영상은중국이아니라2016년남태평양팔라우 제도에서찍힌것으로밝혀졌지만,중국혐오는이미 널리퍼진뒤였다.발생원인,감염경로등아직명확히 규명된게없는바이러스지만이미서구세계는중국, 더나아가동양에대한일방적인멸시와비난을숨기 지않고있다. 이거, 이미오래된얘기다.“서양이중국에 대한두려움을갖게된뒤로중국문화, 특히 음식에대한편견과배제는늘있어왔죠. 대 표적으로 인삼은 동양에 대한 혐오를 드러 내주는메타포였어요.” 설혜심 연세대 사학과 교수의 설명이다. 그랜드투어, 온천, 관상학 등 기발한 주제 로매혹적인역사서를써온설교수가이번 엔 인삼을 파고들어‘인삼의 세계사’를 써 냈다. 인삼의 역사를 지구적 규모로 복원해내는 건처음이다보니, 미국의인삼주요재배지 등인삼자료가있는곳이라면다쫓아다녔 다. 그렇게 찾고 정리하는데 들인 시간만 7 년인노작이다. 왜하필인삼이었을까. 설 교수는 1995년 미국의 건강보조제 매 장에서‘아메리칸진생(American ginseng) ’을발견했던얘기를들려줬다. “인삼은 그저 한국 고유의 특산물인줄로 만알고있었는데, 원산지를보니까미국인 삼이더라고요. 서양 역사책에서 인삼에 관 한 이야기는 접해보질 못했는데 말이죠. 인 삼은 왜 서양 역사책에서 그간 사라졌을까, 의문을품게됐죠.” 서양기록에‘인삼’이처음등장한건1617 년 일본 주재 영국 동인도회사의 상관원이 보낸통신문이다. “가장 귀한 약으로 죽은 사람을 살려내기 에충분하다”는설명이달려있는인삼과유 럽은곧사랑에빠졌다. 영국의사상가존로 크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지식인들이 인삼 찬양에나섰고, 프랑스왕루이 14세에게도 진상됐다. 인삼은 미국에게‘경제적 독립’을 가져다 준일등공신이기도하다. 1776년영국에서정치적독립을선언한미 국에겐딱히경쟁력이있을만한, 색다른상 품이 없었다. 그 때 북아메리카에서 발견된 인삼을, 유럽을거치지않고중국과직접거 래했다. 유럽에서 아메리카로 세계 패권이 넘어가는 과정의 뿌리를 찾아보면, 미국 최 초의‘수출 효자상품’인삼이 있었다는 얘 기다. 하지만그뒤인삼은서구역사에서사라진 다. 유럽에서시작된‘약전(藥典) 개혁’이직 격탄이었다. 그당시서양의학계는, 지금은 각광받는인삼의핵심성분‘사포닌’을추출 해내는데실패했다. 그때부터인삼에게‘의 학적으로신뢰할수없는약초’란꼬리표가 붙는다. 이후서양은인삼을‘동양의전유물’로낙 인찍고융단폭격을가한다. ‘중국과 아시아가 인삼에 그렇게 목맨 건 약초에기댈수밖에없는낙후된의약시스 템때문’이라비꼬거나‘더많은인삼을채 취하기 위해 민초들을 혹사시키는 방탕한 지배계급의 잔혹함을 고발한다’고까지 했 다. 중국의 음식문화는 이 때도 도마에 올랐 다. ‘이상한 재료를 동원해 무한정한 식탐을 채우는사람들’, 심지어는‘자기아버지를 제외하고는 무엇이든 먹는 사람들’이라는 말까지돌았다. 서구의인삼배척은자신들내부에서도벌 어졌다. 미국내인삼재배지에서일하는백 인심마니들에게도‘반문명적야만인’이란 이미지가덧씌워졌다. 설 교수는 동양을 통제할 수 없다는 두려 움과공포,가공기술부족으로인한열등감, 동아시아를무대로한‘인삼의세계체제’를 부정하고팠던서구인들이결국서양사에서 인삼을지워버렸다고본다. “인삼을 서양사에서 사라지게 만든‘문화 적 구분짓기’의 생명력은 끈질기다. 객관적 인과학의영역에서도발생할뿐더러쉽게교 정되지않는다.” 설 교수의 이 말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만큼이나 강력한 동양 혐오 바이러스의 맨 얼굴을드러낸다. 강윤주기자 ■ 인삼의 세계사 설혜심 지음 휴머니스트 발행 ‘동양 혐오’ 바이러스 뿌리엔 인삼도 있다 다섯명의심마니를주인공으로내세운미국다큐멘터리‘애팔래치아의무법자들’. 미국의인삼역사를다뤘 으나이프로그램역시심마니들에게반문명적이란이미지를덧씌운다. <출처히스토리채널ㆍ제공휴머니스트> 유럽예수회선교사가인삼을사람에비유해그린삽 화. 서양사람들은중국인이인삼에부여한초자연성, 신성한믿음, 영생에대한헛된갈망을이렇게비꼬는 방식으로‘중국의전근대성’을부각시켰다. <보스턴칼리지도서관소장ㆍ휴머니스트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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