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0년 4월 9일 (목요일) A8 오피니언 시사만평 사회적 거리두기 시대의 만남 Dublin 에서 만난 동포들 코리언 아메리칸 아리랑 제2부 -미국 이민 정착기(19) 지천(支泉) 권명오 (수필가·칼럼니스트) 여러분의 의견을 기다립니다 ▲이메일: ekoreatimes@gmail.com 장사를하고 있는데 며칠 전 Winn dixie에서 만났던 한국분 이부인과함께찾아왔다. 한국사 람이없는줄알았던소도시에서 만난동포들이라무척반가웠다.  그분의 이름은 정기석씨이고 직업은 의사이고 부인도 의사였 다. 닥터정은Dublin Ga 재향군 인 종합병원 병리실험실 책임자 였다. 그분은병원에서존경받는 모범적인 인사라 병원장이 특별 히병원내에있는사택을제공했 다.  닥터 정은 넓은 사택 부지에 갖 가지 한국 채소를 재배하고 산부 인과 의사인 부인은 어린 두 딸 의교육문제로휴직을한상태였 다.  두 분은 지식이 풍부하고 겸 손한지성인들이다.  우리 가족이 그분들의 초대를 받아처음방문했을때그집에는 국제결혼한부부와또인근소도 시병원에근무하는한국인간호 사 3명이와있어함께고국에대 한향수를달래며회포를풀고닥 터정은오랜만에만난한국남자 인나와신나게대화의꽃을펼쳤 다.  닥터 정 부부는 그동안 국제결 혼한 분들과 간호사들을 정성껏 도우면서한국음식을만들어놓 고자주초대했다. 말없이베푸는 닥터정은자신이가꾼채소를가 지고 우리를 찾아왔다.  나는 그 분덕분에외로움을달래면서미 국이민선배인그분을통해많은 것을배우고알게됐다.  국제결혼한 분들과 간호사들과 도정이두터워진어느날인근맥 레이스라는 소도시에 새로 간호 사부부가이민을왔는데먼저온 간호사들이 그들 부부를 데리고 우리를찾아왔다.  무모하게시작한가발장사는그 런대로잘됐다. 그당시흑인고객 들에게는 가발이 최고 인기상품 이었고그들은마음에들거나사 고싶은물건이있으면쉽게선택 했기때문에장사를하기가편하 고쉬웠다.  하지만 가발 장사를 하려면 미 용기술이나예술감각이가장중 요해큰도시에서가발상을크게 하는 사람들이나 한국에서 미용 사로 활약했던 사람들을 찾아가 열심히 배우며 고객들이 원하는 가발 스타일을 만들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그리고처음가발장사 를하면서손님들에게가발을거 꾸로 씌워주면서 잘 어울린다 멋 있다고 했던 어처구니 없던 실수 를끝내고어느정도가발에대해 익숙해졌다.  그런데미국에도물건을훔치는 사람들이있어감시를철저히해 야되는고약한실정이었다.  어느날 예쁜 20대 백인 여성들 이들어와당시뉴욕에서유행하 고있는아름다운꽃무늬가있는 인도산 커튼 원피스들을 고르기 시작하다가 입어볼 수 있냐고 물 어나는뒷창고로안내해주고그 곳에들어가입어보라고했다. 한 참 후 두 사람이 옷을 다시 들고 나와너무예쁘다면서다음에다 시 오겠다고 해 친절하게 잘가라 고인사를한후옷을정리하다보 니 옷 두 벌이 없어졌다. 미국을 모르고 백인들이라 무조건 믿었 던것이큰실수였다. 스티브 색 작 케이글 USA 본사 특약 나도 보고 싶어요, 할머니… 역병의 역설 1347년부터 6년간 유럽을 강타 한 흑사병은 유럽 역사상 최대의 재앙이었다. 이 기간 동안 유럽 인 구의 1/3에 달하는 2,500만 명이 죽은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지금 과비교하면의학지식이전무했다 해도과언이아닌당시유럽인들에 게 흑사병은 신의 징벌로 밖에 볼 수없었다. 절대 다수가 세상의 종말이 가까 웠다고 믿던 어느 날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유럽을 찾아온 이 병 은 또 그렇게 사라졌다. 전염병의 특징은 더 이상 전염시킬 사람이 없으면 소멸하는 것이다. 두 집 건 너 한 집이 비고 경제활동이 마비 되면서자연스럽게자가격리가이 뤄졌다. 또 질병에 취약한 노약자가 모두 사망하고저항력이있는강한체질 만 살아남으면서 쥐벼룩 몸 안에 살고있던병원체예르시니아페스 티스 박테리아가 더 이상 있을 곳 이없어진것이다. 당시 유럽인들은 지금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겪기는 했 으나 세상은 끝나지 않았다. 오히 려 농지는 남아도는데 일손이 부 족하자살아남은사람들의몸값은 올랐다. 흑사병 이전 중세 유럽인구의 90% 이상은 땅에 묶여 평생을 태 어난 곳에 살다 죽어야 하는 농노 였다. 노예처럼 사고 팔리지는 않았지 만 거주 이전의 자유도, 직업 선택 의 자유도 없이 영주가 세금을 내 라면 내고 부역을 하라면 해야 하 는힘없는존재였다. 그러나 흑사병으로 노동력이 급 감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 는 영주들이 농부들을 끌어가기 위해 온갖 특혜를 주기 시작했다. 세금과 부역을 줄이고 타 지역에 사는 농부들을 스카우트 해왔다. 농노들은 더 이상 땅에 매인 존재 가 아니라 영주와 협상을 하는 계 약노동자로신분이바뀌었다. 1,000년간중세의경제기반이었 던농노제는이렇게무너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부족한 일손 을 메우기 위해 각종 노동절약 기 구가 개발됐다. 바람의 힘을 이용 해 방아를 찧는 풍차가 급속히 늘 어나고 말 멍에와 편자, 철제 쟁기 등이널리보급되면서농업생산성 이크게향상됐다. 또질병에대한인식도바뀌었다. 값비싼희생을치르고전염병의창 궐을막기위해서는무엇보다감염 자를격리수용해야한다는사실을 알아냈다. 영어로‘격리수용’을뜻 하는‘quarantine’은‘40’을뜻하 는이탈리아어‘quarantena’에서 왔다. 14세기후반베네치아가40일동 안 감염자들을 처음으로 격리 수 용한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40이 라는 숫자는 이집트를 탈출한 이 스라엘인들이 40년간 광야에서 방황하고 예수가 40일간 광야에 서 금식한데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유럽 각국 정부에 보건국이 라는 기관이 생긴 것도 이 때부터 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사물 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과거 전통과 권위, 신앙이 최고의 가치 였다면 이제는 실용과 실험, 이성 이 지도 원리로 떠올랐다. 과거의 권위와교회의신앙이흑사병앞에 무력하다는사실이드러났기때문 이다. 15세기의 르네상스와 16세 기의과학혁명과상업혁명모두이 런가치체계혁명의바탕위에이뤄 졌다. 이런사실을돌이켜보면흑사병 이 가져온 것은 세상의 종말이 아 니라중세라는한시대의끝이었을 뿐이다. 그 후 인류는 그때와 비교 도안되는지식과부를쌓으며훨 씬더풍요롭고자유로우며건강한 세계를건설했다. 지금 전 세계가 코로나바이러스 의공포에떨고있다. 이코로나사 태는언제끝날지알수없으며그 뒤에는대공황을능가하는불황이 찾아올뿐더러그불황은언제까지 나 회복되지 않을 것이란 괴담이 판을치고있다. 모두근거없는낭 설이다. 워싱턴대 보건수치 연구소는 미 국 내 코로나 사망자 수는 4월 15 일 정점을 기록한 후 계속 줄어 6 월 말 사실상 사라질 것이며 누적 총 사망자는 9만 4,000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미 전체 인구의 0.03%에달하는수치다. 중세유럽이전체인구의 33%를 잃고도 살아남아 더 나은 사회를 건설했는데미국이 0.03%의희생 을 딛고 일어서 재기하지 말란 법 이있는가. 세상 어떤 나쁜 일도, 좋은 일도 끝나지않는것은없다. 조심은하되과장된호들갑에겁 먹지 말고 꿋꿋이 이 어려운 시기 를이겨나가자. 논설위원 민경훈의 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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