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0년 5월 16일 (토요일) D6 기획 시카고 엘름허스트 윈필드 폭스강 엘크그로브빌리지 알링턴하이츠 미시간호 1 2 3 7 5 4 6 메리켈러맨 1 메리맥팔랜드 5 폴라프린스 6 메리라이너 7 애덤야누스 2 스탠리야누스 3 테레사야누스 4 타이레놀독극물살인발생장소및피해자들 플라스틱약품통을개봉하며애를 먹은경험이한번쯤있을것이다. 뚜껑에둘린띠를제거하다손톱이 깨지기도하고,누른뒤돌려야하는 안전마개가구비된약통역시열기가 꽤까다롭다.약한번먹는데이렇게 공을들여야하나의문이들법도 하지만, 38년전미국일리노이주 ( 䊜 ) 시카고일대에서일어난사건을 들여다보면이런수고가결코헛되지 않다는사실을새삼깨닫게된다. 며칠새지근거리에사는7명이같은 약을먹고숨졌다.누가봐도 제약사의과실이예상되는집단 의료사고였다.하지만어찌된 일인지문제의약을만든제약업체는 사고발생후더욱승승장구한다. 여태껏범인이잡히지않았는데도 말이다.그래서1982년10월미 전역을공포로몰아넣은 ‘타이레놀 독극물연쇄살인’은 ‘특별한’ 장기미제사건으로평가받는다. 이사건이주는교훈은정작따로 있다.인체의고통을덜어주는작은 캡슐하나가치명적인살인무기로 돌변할수있음을대중에게각인시킨 것이다.미일간뉴욕타임스는 “타이레놀은지금도통증 완화 (reliever) 와두려움 (fear) 이 동의어로쓰이던시절을떠올리게 한다”고했다.작심하고 의약품을범죄도구로 삼았을때 무시무시한살상 가능성을 경고하는의미다. 독살 무기로 둔갑한 진통제 사건개요는간단하다.‘아무런접점이없 는평범한시민들이일주일도안돼젤라틴 재질의‘초강력 ( extra - strength ) 타이레 놀’ 캡슐을복용하고사망했다.’ 1982년 9 월 30일새벽, 시카고교외엘크그로브빌 리지에사는열두살소녀메리켈러맨은목 이아프고콧물이멈추지않아부모의방문 을 두드렸다. 그러자엄마는 딸에게캡슐 하나를건넸고,약을삼킨소녀는몇시간 후욕실에서싸늘한시체로발견됐다. 같은날켈러맨집에서10.6㎞떨어진알 링턴하이츠의우편배달부애덤야누스 ( 당 시27 ) 는약을먹고호흡이가빠져응급실 로 실려갔다. 의료진의신속한 조 치에도그의심장은곧멈췄 다. 슬픔에잠긴동생스탠 리 ( 25 ) ·테레사 ( 19 ) 부부 도두통이밀려와무심코애 덤의약을 복용했고이들 역시숨을 거뒀다. 이후 엘름허스트의 전화업 체직원 메리맥팔랜드 ( 35 ) , 시카고의승무원 폴라 프린스 ( 35 ) , 넷째아이를 막 출산한 윈필드의메리라이너 ( 27 ) 등앞선4명의거 주지와 멀지않은지역에서도사인이불분 명한사망3건이추가로보고됐다. 직업도,연령대도제각각인7인의죽음에 공통분모는없을 듯 보였다. 그러나 수사 에착수한 경찰은얼마지나지않아 두가 지연결고리를 찾아냈다. 사망자 모두 숨 지기직전타이레놀을섭취했다는것, 그리 고독성물질인‘시안화물’이시신에서검출 된것이다. 우리가 흔히‘청산가리’로 부르 는그독극물이다. 그것도치사량의1만배 에달하는65㎎이캡슐에들어있었다. 수사 결과는 놀라웠다. 미연방수사국 ( FBI ) 등이희생자들이구매한타이레놀의 공급경로를역추적해봤더니약품제조공 장과 포장용기를 만든 업체, 소매점이다 달랐다.적어도제조공정에선문제가없었 다는뜻으로받아들여져제약사인존슨앤 존슨은용의선상에서빠졌다.시카고인근 에서만피해자가나온점도생산단계에서 의변조가능성을배제하는근거가됐다. 경찰은결국 범인이여러가게에서플라 스틱병에담긴타이레놀제품을구매해일 부캡슐을오염시킨뒤상점매대에다시진 열한 것으로결론 내렸다. 미공영PBS방 송은“타이레놀은처방전이필요없는데다 말랑말랑한연질캡슐로 매끈하고 삼키기 가쉬워특히인기가높았다”며“거꾸로독 극물을주입하기도간편했을것”이라고분 석했다. 폭탄테러범까지수사했지만… ‘약물 변조 ( tampering ) ’라는, 전대미 문범죄의여파는엄청났다.인터넷도없던 1980년대경찰은거리를누비며확성기로 타이레놀의위험성을전파했다. 미시사주간타임은당시기사 에서“전국민이말 그대로타 이레놀병을처리하기위해집으 로 달려갔다”며공황 상태에 빠진미국 사회의분위기를 전했다. ‘모방범죄’도활개를쳤 다. 단적으로타이레놀사 건후한달간미식품의약 국 ( FDA ) 에신고된약물 관련범행은무려270건이 넘었다. 쥐약부터염산을 동원한 공 격까지, 범죄자 들은 새로 운폭력수법에열광했 다. 가장 널리알려진유사 사건은 1986년 워싱턴주 오번에서일어난 ‘엑세드린살인’이다. 범인 스텔라 니켈 ( 42 ) 은 남편의사망보험금을 노리고캡슐모양의진통제엑세드린에시 안화물을첨가해두명을독살했다. 불특정다수를겨냥한범인을찾기란하 늘의별따기였다.원한범죄인지,제약사의 몰락을겨눈기업사냥인지범행동기조차 종잡을수없었기때문이다.뉴스위크기사 를보면처음엔타이레놀공급창고에서일 한 40대아마추어화학자가 수사망에포 착됐다. 순전히시안화물에접근하기쉽다 는배경이이유였지만뚜렷한증거는끝내 나오지않았다. 지지부진하던수사는한통의편지로급 반전을맞는다.“추가살인을막고싶으면 100만달러를보내라”는협박편지가존슨 앤존슨 본사에배달된것. 수사팀은지문 감식등을거쳐세무사출신제임스W.루이 스 ( 35 ) 를유력한용의자로특정했다. 그해 12월FBI가루이스를체포했을때“백악관 을 폭파시키겠다”는 문건도 발견됐다. 문 제는그에게사건발생기간아내와뉴욕에 살았다는확실한알리바이가있었다는점 이다.어쩔수없이수사당국은협박에따른 공갈및과거신용카드사기혐의만으로루 이스를기소했고,법원은 20년형을선고했 다. 그는 12년의수형생활을마치고 1995 년가석방됐다. 그렇게끝나는 듯했던 사건은 2009년 FBI가재수사에전격착수하면서사람들 의기억에서다시살아났다. 수사팀은루이 스에대한미련을버리지못했다.매사추세 츠주케임브리지에위치한 그의자택을압 수수색해사건 관련 물품을 몽땅 가져갔 다. FBI 측은 수사를재개하며“법의학기 술의발전을 감안해새로운 증거를 찾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불행히도 그 증거는아직등장하지않았다. FBI는심지어대학과항공사를목표삼 아 ‘유나바머 ( Unabomber ) ’란 별칭으로 유명한 폭탄테러범시어도어카진스키의 유전자샘플까지살펴봤다.카진스키가사 건즈음인1978~80년시카고교외에서최 소 4건의테러를 저질렀다는 정황증거가 제시됐다.물론그는혐의를전면부인했고 조사도별소득없이종료됐다. 수사당국은여전히루이스를 ‘타이레놀 맨’으로 의심하고있다. 피해자 폴라 프린 스가독극물약을구입하는장면이담긴폐 쇄회로(CC)TV 사진이뒤늦게공개됐는데, 프린스뒤편에찍힌덥수룩한수염의남성 이루이스의인상착의와 매우비슷하다는 것이다.이역시추정일뿐이라 2,000여명이 투입된수사는 40년가까이제자리를맴돌 고있다. 비극이낳은 긍정의효과 타이레놀 살인은 장기미해결사건치곤 이례적으로굵직한제도변화를이끌어냈 다.사건직후미진통·해열제시장에서점유 율 1위(35%)를 달리던타이레놀의비중은 7%로곤두박질쳤다.하지만결백이밝혀진 뒤에도존슨앤존슨은시장에출시된타이 레놀 3,300만병을전부회수했다.1억달러, 현재가치론 2억6,200만달러(약 3,206억원) 를포기한결단이었다. 그런데불과 7개월뒤타이레놀은 점유 율을가뿐히회복했다.기업의사회적책임 을 다한 승부수가 먹힌것이다. 요즘도이 사건은기업위기대처와 윤리경영의교과 서로 통한다. 타임은 “제품의안전기준을 제시한혁명”이라고단언했다.이듬해엔제 품 변조를미국의연방 범죄로 다루는, 속 칭‘타이레놀법’이제정됐고 2중·3중의약품 포장도이때부터자리잡았다. 수십년전에는 누구나 사 먹을 수있는 캡슐약이생명을위협하는흉기가될줄꿈 에도몰랐을것이다. 7명의희생덕분에오 늘날똑같은비극을겪지않아도되는보호 장치가생겨났다.그래도유가족의고통까 지보듬을수는없는노릇이다.피해자메리 라이너의딸인미셸로젠은 2018년언론인 터뷰에서“사건의진실을규명할때까지조 사를 중단하지않겠다”고강조했다.잊어 도,잊혀도될범죄는없다. 김이삭기자 진통제가독약으로$누가캡슐에치사량의 1만배독극물을넣었나 7명잇단의문사, 접점은타이레놀 시신에서독성‘시안화물’검출돼 “100만달러안주면추가범행” 협박범잡았지만알리바이확실 제조사존슨앤존슨,손해감수하고 3300만통회수하며사회적책임 이후약품포장강화조치등계기 2009년 2월미국 연방수사국 요원들이매사추세츠주케임브 리지에있는타이레놀살인사건 의유력용의자 제임스 W. 루이 스 자택을강제수색한 뒤압수 물을옮기고있다. AP자료사진 <5>타이레놀독극물연쇄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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