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0년 5월 18일 (월요일) D3 기획 5 · 18 “그날 새벽총소리가들렸지만무서워 나갈수가없었다.동이틀무렵이 돼서야카메라를숨겨도청으로향했다.계엄군이 금남로를활보하고YMCA앞에선총에맞은 청년의주검이누워있었다.도청에들어서니 계엄군이시민군들의목을군홧발로밟고 굴비엮듯등뒤로포승줄을묶고있다.비참한 현장이다.”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현장을 취재한 박태홍 ( 77 ) 전 한국일보 사진부 기자 ( 현 뉴시스 편집위원 ) 는 계엄군이전남도청 진압작전을 개시한 5월 27일 아침을 이렇게 회고했다. 5·18을 전후해한국일보는 4명의사진기자를 광주에 파견했다. 당시김해운, 한륭, 박태홍, 김용일 기자가 취재한 사진은 2,000여컷 남짓. 무자비한 진압과 처절한 저항의장면들 사이에서시민의일상은 심하게일그러진 채로 기록돼있다. 40년전 5월, 광주 시민들의삶을 미공개 사진으로 되돌아 보았다. 박 전 기자는 1980년 5월 21일 밤 광주에 도착했다. 신군부의비상계엄조치가 전국으로 확대된 지 3일 만이다. 열차는 종착역인 광주역까지들어가지못하고 송정리역에멈춰 섰다. 불과 몇 시간 전 금남로 일대에서 공수부대가 시위대에집단 사격을 가해 54명이 숨졌고, 시위대는 장갑차와 총기, 탄약을 탈취해 자체무장에나섰다. 이날 오후 5시 30분경공수부대가 시외곽으로 철수할 때까지 산발적인 시가전이이어졌다. 송정리역앞 여관에서뜬눈으로 밤을 새운 그는 아침일찍도청으로 향하기위해 몰려든 시위대를 촬영했다. 100여명의젊은 청년들 중엔 소총을 든 여성도 있었고, 교련복을 입은 어린 학생들도 앞다퉈버스와 트럭에올랐다. 신군부에의해자행된 무자비한 탄압이여리디 여린 손마다 총을 들게만들었다. 공수부대가 시외곽으로 물러난 21일이후 광주 도심은 일시적인 ‘해방구’가 됐다. 질서를 유지하기위해 순찰을 돌고 프락치로 의심되는 이들을 색출해 내던이들은 시민을 지키는 ‘시민군’이었으나 훗날 ‘폭도’의누명을 썼다. 방석모에방석복을 입고 비장한 눈빛으로 전선에 투입되던이들 역시마찬가지다. 모두 누군가의자식이고, 부모였다. 비극을 모르는 아이들 눈에 5·18은 전쟁놀이와 다름없었다. 24일 광주 시내의한 주택가 골목, 10세안팎의아이들이종이로 만든 헬멧과 방탄조끼를 걸친 채몽둥이를 들고 골목을 행진했다. 우렁찬 구호를 외치며 몽둥이를 휘두르던아이들이흉내낸 건 계엄군이었을까 시민군이었을까. 박 전 기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의천진한 웃음 소리에가슴이아려왔다”고 말했다. 이날 도청 뜰엔 관에넣지도 못한 시신이널브러졌고, 적십자병원에선 사망자 명단이한쪽 벽을 빼곡히뒤덮었다. 25일 전남 장성군으로 이동한 박 전 기자는 시외버스 편으로 필름을 송고한 후 다음날 다시광주 시내로 향했다. 당시시내중심부로 이동을 시작한 계엄군의검문을 받았는데, 계엄군 소위가 “위험하다”며보내주지않았다. 소위는 “오늘 밤 진압 작전이시작되는데, 만약 도청지하에쌓인엄청나게 많은 다이너마이트가 터지면 반경 500m 내는 쑥대밭이된다”고 전했다. 소위는 또 “내 여동생이시민군에합류했는데걱정”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우여곡절 끝에겨우 도청 인근 여관에투숙했지만 그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시민군 진영에서도 26일이같은 계엄군의 진압 작전을 예측하고 여성과 어린 학생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진압 작전이개시되면 도청 사수는커녕이들의생명또한 지켜내기어려울 것이라는 판단했기때문이다. 27일 계엄군이점령한 도청에선 차마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처참한 광경이펼쳐졌다. 초파일 ( 21일 ) 에벌어진 혈전으로 갈기갈기 찢긴 광장의봉축탑은 그로부터엿새후 또 다시계엄군의총탄에 쓰러져가는 시민들을 지켜봤다. 도청바닥에내동댕이쳐진 청년이 계엄군의군홧발에목이짓눌리는 동안 바로 옆에선이미숨을 거둔 주검들이말없이누워 있었다. 사진=김해운·한륭·박태홍·김용일 전한국일보 사진부 기자 박서강 기자 미공개 사진으로 본 1980년5월22일아침광주시외곽의송정리역광장에서시위대가도청으로출발하기위해버스와트럭에오르는가운데직장유니폼을입은여성이소총을들고버스로향하고있다. 1. 계엄군이광주금남로에서시위대를향해집단발포를한1980년5월21일주변골목에서소총을든젊은이와시민들이벽에몸을바짝 붙인채무언가를기다리고있다.이날집단발포후자체무장을시작한시위대는계엄군과산발적인시가전을벌였다. 2. 1980년5월27일아침계엄군의진압작전이마무리된직후전남도청사무실벽에치열한교전의흔적이뚜렷하게남아있다. 3. 1980년5월24일광주시내한주택가골목에서아이들이종이로만든헬멧과방탄조끼를입고종이몽둥이를휘두르며행진하고있다. 5·18의비극을전쟁놀이로받아들인천진난만한아이들의웃음이왠지서글프다. 4. 1980년5월23일전남도청앞에서시민군들이프락치로의심되는청년을체포해연행하고있다. 1. 2. 3. 4. 비극의한복판, 골목대장아이들의웃음소리가아렸다 Z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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