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0년 5월 29일 (금요일) D7 기획 반칙^특권세습하는세상$노무현의시대왔지만‘노무현’은없다 살아남은 자의슬픔 이시의낭송은늘인터내셔널가합창으 로이어지곤했다.속물의심장도여전히왼 쪽에서뛰는지,아직도이노래는내가슴을 뭉클하게만든다.스파이더맨영화를본어 린이들이극장밖으로나와서도벽에달라 붙듯이,한때사회주의이상에취했던‘어른 이’는냉정한현실에살면서도그시절의혁 명적순수성을잊지못한다.하긴자크데리 다와같은철학의대가도인터내셔널을들 으면가슴이뭉클해진다고했다. 이시를쓴브레히트는나치시절박해를 피해해외에서망명생활을했다.고국에남 아투쟁하다가처형당하는동지들을두고 혼자 빠져나온 게죄스러웠던 모양이다. ‘살아남은자의슬픔’ ( 1942 ) 에그심경을담 았다.“물론나도안다. 그저행운이었다는 것을. 내가친구들보다 오래살아남은 것 이.근데지난밤꿈속에그친구들이내얘기 를하더군.‘강한자가살아남는법’이라고. 그러자나는자신이미워졌다.” 아직순수했던시절우리에게도그런죄 책감이있었다.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목 숨을잃은학우들,광주에서도청을지키다 스러진동지들,노동현장에서분신한수많 은노동형제들.그죽음앞에서살아남았다 는것자체를죄스럽게여기던시절이있었 다.하지만그렇게살아남은우리는이제더 이상슬프지않다.죄스러움따위는잊은지 오래.우리는그들의희생을팔아어느새이 사회의‘강한자’로군림하게되었다. 지금도하루에두명씩비정규직노동자 들이죽어나간다.하지만이들을지켜주는 일은어느보수문인에게맡겨놓고,이진보 의노멘클라투라들은사회곳곳에기득권 의망을 구축해놓고 서로 부패할 권리를 지켜주느라여념이없다. 한때노동해방을 외치던노동자들이지금은자본가와나란 히비정규직노동자의피와땀을빤다.우리 가 ‘열사’로시성 ( 諡聖 ) 해모란공원에모신 무덤중일부는관리비마저밀려있다. 배반당한 혁명 소련의예가 보여주듯이혁명은 성공하 는순간반혁명이된다.권력을잡은혁명은 그 권력으로 먼저혁명가들부터제거하기 때문이다.브레히트도이를모르지않았다. ‘의심을찬양함’ ( 1939 ) 에서그는이렇게경 고한다.“이제지도자가된당신은잊지말 아라,/ 당신이옛날에지도자들에게의심을 품었기에, 당신이지금지도자가되었다는 것을!/ 고로당신을따르는이들에게/ 의심 하는것을허용하라!” 촛불혁명도혁명의이일반적운명을 따 라가려는가.벌써지도자에의심을품는일 은허용되지않는다.선동가의말한마디에 방송사의취재팀이날아가고, 비판적기자 들은 ‘기레기’로몰려대중에게조리돌림을 당한다.터부가된재단에관련된정권실세 의비리를다룬기사는완성됐다는데아직 도나오지못하고있다.‘K’자붙은국뽕과 노골적인지도자찬양이난무하는가운데, 어용언론들은비판의목소리를잠재우느 라여념이없다. 1953년동베를린에서민중봉기가일어 났을때브레히트는이렇게썼다.“6월17일 인민봉기가일어난뒤/ 작가연맹서기장은 스탈린가 ( 街 ) 에서/ 전단을 나누어주도록 했다./ 그전단에는,인민들이어리석게도/ 정권의신뢰를잃어버렸으니/이는오직두 배의노동을 통해서만/ 되갚을 수있다고 씌어있었다.그렇다면차라리/정권이인민 을 해산해버리고/ 인민을 새로 선출하는 것이/더욱간단하지않을까?” 어디서본듯하지않은가.이용수할머니 가 폭로를 하자, 정권의지지자들이그를 공격하고나섰다.그해여름동베를린거리 의작가연맹처럼여성단체와 운동권글쟁 이들이여기저기에글질을 해댄다. 그들의 글에는할머니들이어리석게도토착왜구의 꾐에빠져운동권의신뢰를잃었다고적혀 있었다. 그렇다면정의연이여, 민주당이여, 차라리할머니들을 해산하고 할머니들을 새로뽑는게더간단하지않겠는가. 강한 자는 역사를 고쳐쓴다 하긴, 그것이혁명의일반적법칙이긴하 다. 원래혁명은인민을 위한 것이었으나, 그후에는인민이혁명을위해존재하게되 는법. 북한을보라.대체무엇을위한혁명 인가.운동은원래할머니들을위한것이었 으나,어느새할머니들이운동을위해존재 하게되었다. 대체무엇을 위한 운동인가. 윤미향에게공천장을줌으로써그들은위 안부운동을‘총선은한일전’이라는민주당 의총선구호로만들어버렸다. 그구호에사로잡힌문팬덤이운동의‘배 신자’에게늘어놓은악담은차마옮겨적을 수없을정도다. 음모론 교주는 할머니가 누군가의사주를 받았다고 우긴다. 어느 신문은 ‘물에빠진할머니를구해줬더니보 따리 ( 의원직 ) 내놓으라 한다’는만평을실 었다.그렇지보따리는원래민중의것이아 니라운동가의것이지. 그래야혁명이지.할 머니밥은 못 사드려도, 활동가가 쓸집을 두 배의가격으로 사주는것. 그게촛불의 혁명이다. 승리한혁명은역사부터고쳐쓰려한다. 촛불의혁명가들도압승후에바로역사의 날조에착수했다.‘친노대모’의복권을위 해이들은대법원에서확정된‘사실’을뒤집 기로 했다. 친노일족을 신성가족으로 기 술하는 혁명서사의편찬에는어용매체들 이총대를멨다.그들이대중의눈을가리려 아무리먹물을뿌려도절대로감출수없는 물음이있다.‘한만호의1억원짜리수표가왜 대모님동생의전세금으로사용됐는가?’ 출발은대통령이다. 그는한명숙전총리 가억울한 누명을 썼다고 믿는다. 실제로 그는별건수사의희생양이었고, 노무현대 통령에대한수사역시명백한정치적보복 이었다.하지만그렇다고친노의대모가돈 을 받은 사실이사라지는것은아니다. 대 부의가족에게명품시계가 건네진사실이 사라지는것도아니다.대부와대모의억울 함을 풀어주는 게중요해도, 있었던일을 없었던것으로할수는없는일이다. 마지막 숨결 어떻게해야할까? 그해법은브레히트의 시에담겨있는지도모른다.1949년의어느 날그는이렇게썼다.“벌어진일은이미벌 어진것. 물을 / 와인에부어넣은이상 / 다 시떼어낼수는없는일.하지만 / 모든것은 변화한다. 새로운출발은/ 오직마지막숨 으로만할수있다.” 시간은비가역적이다. 이미벌어진일을되돌릴수는없다.그렇다 고상황을바꿀수없는것은아니다.새출 발은얼마든지가능하다.어떻게? 브레히트에따르면그일은 ‘오직마지막 숨으로’만 가능하다. 노무현전대통령도 그렇게생각했을것이다.벌어진일을되돌 릴수는없다.설사그것이진보와보수모 두가공유했던공공연한관행이었다할지 라도, 그것이옳은일은아니다. 상황은변 해야하는데,새출발은오직‘마지막숨’으 로만가능하다.그래서과거를부정하거나 변명하지않고 우리가 새출발을 하도록 자신의‘마지막숨’을선택했던것이다. 하지만 그의이름을 파는 자들 중 그의 뜻을이해한이는아무도없다. 그의‘마지 막 숨’에서그들은 고작 ‘우리끼리지켜줘 야한다’는교훈을배웠다. 그래서서로비 리를덮어주고변명해주고,이를위해이미 벌어진일까지지우려하는것이다. 노무현 전대통령은“누구도원망하지말라”고했 으나, 그의후예들은 그원망을아예원한 으로 발전시켜자신들의정치적자산으로 요긴하게써먹고있다. 그러니상황은변하지않고,새출발도이 루어지지않았다. 아니, 상황은 더나빠졌 고, 새출발은영영불가능할것이다. 노무 현전대통령은“반칙과특권없는세상”을 외쳤지만,그의후예들은반칙과특권을세 습하는 세상을 만들었다. 노무현전대통 령은두번죽었다. 한번은그의정적의손 에. 또한번은후예들의손에. 그들은그의 ‘마지막숨’을끊어놓고는 ‘포스트 - 노무현 의시대’를선언했다.과연노무현의시대는 왔지만,하지만거기에노무현은없다. 미학자,전동양대교수 진중권의 트 <Truth: 진실> 루스 오디세이 <20> 브레히트를다시읽다 한명숙전국무총리가23일오전경남김해봉하마을에서열린고( 佦 )노무현전대통령서거11주기추도식에서헌화하고있다. 김해=노무현재단제공 일본군위안부피해자이용수할머니가 25일대구수성구만촌동인터불고호텔에서기자회견을하고있 다. 대구=왕태석선임기자 이용수할머니,정의연의혹폭로에 정권지지자들악담^음모론맞서 운동가를위한운동으로전락 ‘친노대모’한명숙복권시도 대법원확정된‘사실’뒤집기 혁명승리후역사고쳐쓰려해 노무현‘누구도원망말라’했지만 후예들아예원한으로발전시켜 이제는부르주아속물이됐지만우리도한때는 순수했었다.그시절우리는술자리에서 종종브레히트의시를낭송했다. “16세의봉제공엠마리이스가/ 체르노비치에서예심판사 앞에섰을때/ 그녀는요구받았다 / 왜혁명을호소하는삐라를 뿌렸는지/이유를대라고 /이에답한후 그녀는일어서부르기시작했다 /인터내셔널을 / 예심판사가손을내저으며제지하자 / 그녀는 매섭게외쳤다 / 기립하시오!당신도 / 이것은인터내셔널이오!”
Made with FlippingBook
RkJQdWJsaXNoZXIy NjIxMj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