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0년 8월 29일 (토요일) D10 기획 30년장인은쫓겨나고 3년차청년만남았다 무엇이든 뚝딱뚝딱 나오는 ‘요지경’, 그곳은 을지로 “디자인을 배울 때부터을지로 일대를 누볐어요. 상상 속 이미지를 물성을 가진 ‘실물 제품’으로 구현한다는 건언제나 어려운 문제였는데, 여기선 답을 찾을 수 있었죠.” 서른 넷, 조 대표(이하 ‘조’)에을지로는 ‘친정’이다. 그는 대학 졸업후에도 시제품이필요할 때마다이곳을 찾았다. 창업을 결심하면서는아예을지로 한 가운데에있는 세운상가(세운메이커스큐브)에둥지를 틀었다. “사장님들의 조언이더간절했거든요. 사업을 시작하니 ‘무조건이가격을 넘기면안 된다’는 팍팍한 기준이생겼어요. 학생때보다 더 어려웠죠.” 고민이생기면언제든 달려갈 수있는아버지뻘 사장님들이비빌언덕이되어준셈이다. 2 - 3년전부터조 대표 또래청년들이세운상가로 몰려든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1978년부터금속 가공(시보리) 기술을 배우기시작해, 1984년 을지로에입성했으니벌써 40년이훌쩍넘었습니다. 일하다 손가락도 하날 잃었지요.” 예순 하나, 박춘삼 사장(이하 ‘박’)에게을지로는 ‘고향’이다. 시보리기술자로 입정동에들어온 이후 40년이흐르는 동안 이곳을 떠나본 적이없다. 제조업부흥기였던 1990년대는 그야말로 전성기였다. 전국적으로 노래방과 나이트클럽이 우후죽순 생겨나며특수 조명을 만들던 박 사장에게도 주문이 빗발쳤다. 얼마 지나지않아 터무니없이싼 중국산이물밀 듯 들어왔고, 사업은 기울기시작했다. 시제품을 만드는 대학생, 청년들과 본격적으로 가까워진 것도 그때부터였다. “실은, 자식같은 친구들이라 가격을 높여부르지도 못해요. 일 받아 봤자 커피값, 밥값 정도 나올 뿐인데, 여기사장들 중에젊은 친구들 찾아오는 걸 마다하는 사람은 없어요.” 오래도록 갈고 닦은 장인의기술이청년의상상력과 만나 발휘하는 ‘시너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때문이다. 어느 날 이웃 공장의사장이 “재미있는 일거리가 있다”며그를 불렀다. 거기에조 대표가 있었다. 청년의디자인과 장인의손길이만나는 ‘기회의공간’ “거래처사장님에게 ‘구리로 된전통주잔을 만들고 싶은데, 어디로 가야 할까요?’하고 여쭸더니, 대뜸 어디론가 전화를 거시더라고요. 그게박춘삼 사장님이었죠. 여기선, 이런일이 흔해요. ‘어느 공장에누가 잘한다’는 걸 다들 서로 알아요. 수십년을 함께해온 형제같은 사이니까” (조) 을지로의도심제조업지대는 전세계어디에서도 보기 힘 든 독 특한 공간이다. 지도조 차 무 용 지물이되고 마는 골목길 은, 실 핏줄 처 럼 어지럽게 얽힌 가운데서도 견 고한 질 서를 이 루 고 있다. 주물공장은 목 형업 체 , 도장업 체와 연 결 돼 있고, 시보리 공장은 정밀가공업 체와 긴 밀하게 엮 여있다. 비 슷 한 업 종 내 에서다 양 한 생산공정을 담당 하는 기술자들이 ‘유기적 생 태 계’를 이 루 고 있는 것이다. 조 대표가 원 하는 제품은 까다로웠다. 형 태 의아 름 다 움 을 살 리면서도, 인 체 에무해한 금속 술잔을 만드는 것이 목 표였다. 협 업과정에서수십년간 다 양 한 고 객 들의주문을 소 화하며 연 마한 박사장의노하우가 곳곳에서 빛 을 발했다. 최소 만 개 단위 로 대 량 생산을 하는 공장에서는 새 로운 제품을 꿈꾸 는 청년들이 ‘ 끼 어들 틈 ’이없다. 고 객 의의 뢰와 주문에 따 라 그때 그때 물건을 만드는 을지로에서만 가 능 한 일이다. “그 러 니 저희 처 럼 다 양 한 시도를 하는 창업가들에 겐 이 분 들의 노하우만 큼 소 중한 게없어요. 이게 점점소멸돼 가고 있다고 생 각 하면 그 저 안 타 까울 뿐이죠.”(조) ‘재생’이란빛 좋은 허울 쓴 재개발 박 사장의삼성시보리공장에서불과 5 00 m남짓 떨 어진 세운3 - 1, 4, 5 구 역 에선 지금 초 고 층 도심형오피스 텔 ‘세운 힐 스 테 이트’ 공사가 한창이다. 이곳에있던 가공 업 체 들 대부 분 이하 루 아 침 에 강 제 퇴 거를 당 했다. 2014년 을지로 일대재 개 발을 중 단 하고 ‘도시재생’ 지 역 으로 전 환 하 겠 다는 서울시의계 획 이흐지부지된 탓 이다. 한술 더떠, 세운 상가만 남 기고 나 머 지는 ‘전부 밀어 내겠 다’는 발표가 이어 졌 다. 상인들의거 센 반 발에 황급히철회 되 긴 했지만 구 체 적인 대안 없이시간만 흘 렀다. 그사이시 행 사의 압 박에시달리던 장인들은 ‘자 포 자기’하는 심정으로 가게를 정리했다. ‘한 꺼번 에밀어 내 면 재 개 발, 천천히 몰아 내 면 도시 재생’이라는 쓰 디 쓴 우스 갯소 리까지 등 장했다. ‘재생’이 란 허 울을 쓴 재 개 발이 착착 진 행 되면서이곳의산업생 태 계는 서서 히파괴 되고 있다. “주 변 사람들과 다 연 결 돼 있는 산업인데, 그 고리를 끊 어 놓 으면 무 슨 소용 이있어요.”(박) 당 장 내 년의상 황 도 캄캄 하다 보니, 늘 어가는 것은 한 숨 뿐이다. 세운상가 내 창업지 원센 터 ‘세운메이커스큐브’에 입주한 조 대표도 고심이 깊 다. 세운상가를 에워싼 세운3구 역 과 5 구 역 대부 분 이재 개 발 지 역 에속해있기 때문이다. “이곳의생 태 계가 무너지면, 사실 저희 는 여기있을 이유가 없어지는 거나 마 찬 가지예요. 주 변 장인들이사라지면 여 긴 그 냥 ‘사무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되는 거죠.” 이도시의 ‘진짜’ 주인은 누구인가? 을지로에서 ‘재생’은 이미사라 졌 다. 옹색 하게구 색 을 맞 춘 ‘ 철 거형도시재생’이라는 용 어까지 등 장했지만, 빈축 만 샀 을 뿐이다. “지 역 의 환경 을 개 선해서더나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 ‘재생’이 란 공공사업의 목 적이라면, 100명의 원 주민이 100 퍼센 트 돌 아 와 야 해요. 그런데실상은, 열 명중 단 한 명도 못 돌 아오죠. 그게어 떻 게공공사업이 겠 어요.” 청계 천 을지로 보 존연 대박은선 활 동가는 지적했다. 사람이 머 무는 공간이 오로지 ‘재산 증 식’을 위 한 수 단 으로 전락한 도시서울. 포크레 인은 이공간의 역 사 와 유구한 이야기를 오 늘 도 끊 어 내 고 있다. 세계에서유일한 도심제조업지대가, 어디서나 흔한 ‘빌 딩숲 ’으로 바뀌 는 사이, 서울은 지금 이순간에도 ‘ 근 본 없이’ 납 작한 도시가 되어가고 있다. 박지윤 기자 전윤재·서현희인턴기자 을지로 도심을가로지르는 4차선대로변을조금만벗어나면80년대 ‘제조업전성기’ 풍경이펼쳐진다.분주히쇠를내려치고금속을깎는이들은자타공인대한민국최고의 ‘베테랑’ 기술장인들이다.을지로는원래장인과청년의삶이교차하던지대다.특히미대생과공대생들이이곳을안방문턱처럼넘나들었다.장인들의노련한손맛,밀도높은 ‘연륜’에기대기위해서다.을지로에서30년째금속가공공장 ‘삼성시보리’를운영중인박춘삼 (61) 사장과이제막3년차창업가가되어세운상가에입주한조수아 (34) 아몬드스튜디오 대표도그렇게만났다.조대표의감각적디자인과박사장의손길이합작한전통주잔 ‘술라’는지난6월 ‘텀블벅’을통해시제품완판에성공했다.설렘도잠시,청년과장인의운명은엇갈렸다. 삼성시보리가있는세운3구역으로포크레인이들어온것이다.서서히멸종돼가고있는 ‘을지로장인’들의이야기를한국일보뷰엔 (view&) 팀이들어봤다. 재개발사업시행인가를앞둔세운5구역.가림막오른쪽은LH가매입한임대상가부 지지만,아직첫삽조차뜨지못했다. 30년차기술장인박춘삼(61·왼쪽)씨와 3년차청년창업가조수아(31)씨가각각자신의일터에서포즈를취했다.박씨의금속가공공장 ‘삼성시보리’는서울중구입정동세운3-2재개발구역내에,조씨의디자인연구소 ‘아몬드스튜디오’는인근산림동세운대림 상가내 ‘메이커스큐브’에있다.장인과청년은아름다운 ‘전통주술잔’을합작해냈지만 ‘도시재생’을가장한재개발사업에의해운명이엇갈리고있다.아래작은사진들은세운3구역과 5구역도심제조업지대에서만난기술장인들.못해도30~40년을같은자리 에서한가지기술만연마해온이들이점차밀려나면서을지로의산업생태계가파괴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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