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0년 10월 28일 (수요일) 이건희삼성전자회장이1985년설립 한 삼성SDS ( 옛 삼성데이타시스템 ) 는 ‘정보기술 ( IT ) 사관학교’ ‘벤처사관학 교’로 불린다. 삼성SDS 출신들이현재 한국 IT 업계를이끄는 주축이돼있기 때문이다.국내인터넷업계의‘기둥’인이 해진네이버글로벌투자책임자 ( GIO ) 와 김범수카카오의장도삼성SDS를거쳐 갔다. 생전에‘인재양성’의중요성을누 구보다강조해왔던이회장의결실이기 도하다. 27일 IT 업계에따르면고객사의‘디 지털트랜스포메이션 ( 전환 ) ’을지원하 는 IT 솔루션기업인삼성SDS는애초 삼성그룹사의IT를 지원하던 부서들 이모여만들어진회사로,일종의통합 전산실과 같았다. 인터넷이태동하던 시절, 삼성SDS는 컴퓨터와 인터넷에 빠진 ‘괴짜’들에게 ‘인터넷 실험실’ 역 할을 했다. 이들은 삼성의 막강한 지 원아래컴퓨터와 인터넷 신기술을 접 하며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이들 가운데 이해진 GIO와 김범 수 의장이 있었다. 서울대 공대 동기 인 이들은 졸업 후 한국과학기술원 ( KAIST ) 전산학석사를마치고, 1992 년삼성SDS 공채로 함께입사했다.이 GIO는 삼성SDS 검색엔진팀에서유니 텔 신문기사 통합 검색엔진개발을 담 당했고, 이팀은 1997년 삼성그룹 최 초의 사내 벤처 ‘네이버’로 공식 출범 했다. 네이버는 1999년주식회사 ( 네이 버컴 ) 로 독립했는데, 당시삼성SDS는 네이버의 창업 비용 ( 지분율 29.9%, 1 억4,950만원 ) 을 지원하기도 했다. 삼 성SDS와 네이버의지분 관계는 지난 2002년 NHN의주식시장 상장과 함 께완전히정리됐다. 김 의장은 1996년 삼성SDS에서 PC통신 ‘유니텔’을 기획·개발했다. 유 니텔은 출시 3년 만에 가입자 100만 명을 모아 업계 1위였던 천리안을 바 짝 추격할 정도로 성장했다. 이후 인 터넷 시장의 가능성을 본 김 의장은 삼성SDS를 그만두고 보드게임중심 의 온라인 게임포털 ‘한게임커뮤니케 이션’을 설립하며 국내 IT 업계의 큰 축으로거듭났다. 이밖에도지난 9월증시를뜨겁게달 군카카오게임즈의남궁훈대 표 와장 화 진마이 크 로 소프 트 APAC 전 략 사장, 고 순 동한국마이 크 로 소프 트회장,이상 혁옐 로모바일대 표 등 도 삼성SDS 출 신으로 활약 하고있다.‘ 엑 스구글 러 ’ ( 구 글 출신창업자 ) , ‘ 페 이 팔 마 피 아’ ( 페 이 팔 출신 창업자 ) 처 럼 삼성SDS 출신 의 창업자 모임인 ‘에스디에스포유 닷 컴’ ( SDS4 U .CO M ) 이결성 되 기도했다. 이처 럼 삼성SDS 출신이IT 업계에서 활약 하게 된배경 으로이회장의실 력 위 주인재채용·양성 방 식이 꼽힌 다.이회 장은1995년학 력제 한을 폐 지한대기업 공채를국내처음으로시 행 하기도했다. 그는 “ 삼성의입사기 준 은 학 력 이아니 고실 력” 이라고강조해왔다.IT업계한 관계자는 “ 삼성SDS창업자인이회장이 없 었다면오 늘날 네이버 나 카카오도 없 었을지모 른 다 ” 며 “ 삼성SDS 야말 로국 내인터넷업계의모태가 된 회사 ” 라고 말 했다. 김기중기자 고 ( 故 ) 이건희삼성전자 회장의장 례 셋째날 인 27일 빈소 가 마 련된 서울강 남구 삼성서울 병 원 장 례 식장은 오전 부터정·재계인사들의조문 행렬 이이 어 졌 다. 구 광 모 L G그룹회장은이 날 오전10 시39분 쯤 장 례 식장에도 착 해20분가량 조문을마치고 나 왔다. 구회장은고인 에대해 “우 리 나 라 첨단 산업을 크 게발 전시 키 신위대한 기업인이라고 생 각 한 다 ” 며 “ 재계큰어르신이라조문을오게 됐다 ” 고 말 했다. 범 L G가 ( 家 ) 인구자 열 L S 회장,구자용 E 1 회장,구자 균L S일 렉 트 릭 회장도이 날 조문했다. 황각규 전 롯 데지주부회장도 빈소 를 찾 아애도의 뜻 을 표 했다. 황 전부회장 은조문을마 친 후 “ 위대한업 적 을남기 신분 ” 이라며 “많 은 나 라에다니시며여 러 가지 경 험을하고, 또 그 런 과정에서대한 민 국 경제 를어 떻 게하면 잘 일 굴것 인가 에대해 좋 은지 표 도 많 이 말씀 해주 셨 고 몸소 실천해주 셨 다 ” 고회상했다. 김 택 진엔 씨소프 트대 표 도이 날 오후 빈소 를 방 문했다.김대 표 는 “ 오 늘날우 리 나 라가있기 까 지삼성의역할을다들 알 것” 이라며 “ 고인의명 복 을 빈 다 ” 고 애도했다.이 외 에도정태 영 현대카드사 장, 박 용성전두산그룹회장 등 도오전 에 빈소 를다 녀 갔다. 정계인사들의조문도이어 졌 다.이 틀 연속빈소 를 찾 은심재 철 전의원은 “ 어 제워낙 사 람 이 많 이 밀려 서문상을 못 했다 ” 며 “우 리 나 라 경제 의 핵 심이 쓰러 지니 참 안타 깝 다. 우 리 경제 일으 켜 주 셔 서고 맙 다고 말씀 드 렸 다 ” 고 말 했다.고 김대중전대통 령 의아들인김 홍 업김대 중 평화센 터이사장도이 날 오전조문하 면서 “ ( 이건희회장이 ) 생전에 저 희부 친 조문도해주 셨 고, ( 이재용 ) 부회장께서 어 머 니 ( 이희 호 여사 ) 상에조문해주 셨 다 ” 며 “ 당 연 히 제 가와서조문하는 것 이 도리 ” 라고 말 했다. 생전이부회장이 예 술· 체육 분 야 에도 많 은 후원과 관심을 보인만 큼 빈소 에 는 예 술인과 체육 인들의발 길 도이어 졌 다.이 날빈소 에는 세 계 적 인바이 올 리니 스트 정 경화 와 피 아니스트 백 건 우 , 조 성진이 방 문했다. 백 건 우 ·정 경화씨 는 각 각 2000년, 2011년이회장이부 친호암 이 병철 창업주를기리며만 든호암 상 예 술상을수상한인 연 이있다. 백 건 우씨 는 심 경 을 묻 는 말 에 “ 아버 님 을 잃 은 것 같 다. 다 른말 할 것 도 없 다 ” 며 눈물 을 흘 렸 다. 체육 계에서는이기 흥 대한 체육 회 회장이장 례 식장을 찾 았다. 응우옌 부 뚱 신임주한 베 트남대사 와초 머 모 세 주한 헝 가리대사, 미 하 엘 라이 펜슈툴 주한 독일대사, 후안이그 나 시오모로주한 스 페 인대사, 요안 느 돌느왈 드 주한 네 덜란 드대사 등외 국 대사들도자국을대 표 해이회장의 빈소 를 찾 았다. 안하늘기자 ☞1면 ‘이건희식인재경영’에서계속 1987년삼성전자회장으로 취 임한이 회장이지역전문가 육 성의중요성을강 조했을때만해도주위에 선 그의의도를 이해하지 못 했다.이회장의거듭 된 지시 에1989년사장 단 회의에서마지 못 해‘5년 간 500명을양성하 겠 다’는보고가 올 라 오자 “ 21 세 기환 경 을 감 안한 숫 자입니 까? 2,000명을양성하 세 요 ” 라고임원들을다 그 친 일 화 는유명하다.이 렇 게해 외 에다 녀 온삼성임 직 원만 5,000명이 훌쩍넘 는 다.그들이남 긴 수 많 은보고서는삼성의 현지마케 팅 의 근간 이됐다.이를통해삼 성전자는전 체매 출의85%를해 외 에서벌 어들이는글로벌기업으로성장했다. 기업의정 점 에있는자리에서도현장을 강조하면서현실을 직 시하는자 세 역시 오 늘날경영 계에 귀감 으로 평 가 받 고있 다.이회장은 언론 기고 칼럼 에서1987년 회장 취 임당시를회상하며 “ 삼성내부는 긴 장 감 이 없 고‘내가 제 일이다’는 착각 에 서 벗 어 나 지 못 하고있었다.조 직 전 체 에 위기의식을불어 넣 는 것 이 필 요했다 ” 고 꼬집 었다.임 직 원들에게수 차례 위기의식 을강조해도조 직 은 쉽 게바 뀌 지 않 았다. 결국 1993년6월이회장은삼성의 핵 심 임원200여명에게독일 프랑크푸 르트에 집 결할 것 을명 령 했다.이들은68일 간 유 럽 , 미 국,일본 등 글로벌현장을 찾 아다 녔 다. 매 일 밤호 텔 방 에모여 새벽까 지 뼈 저 린 반 성을했다. 이회장의현장 경영 은중요한고비마 다 빛 을발했다.1993년초 16메가D 램 양산 과정에서8인치 웨 이 퍼 ( 반 도 체 원 판 ) 를투입한 것 도이회장의결 단 이었다. 당시모 든반 도 체 회사는6인치 웨 이 퍼 를 썼 다. 8인치 웨 이 퍼 는생산성을 높 여주 지만 새 로운시도인만 큼 위험부담도 컸 다.실 패 할 경우 1조원이상의 손 실이 예 상됐다.이회장은 “세 계1위로발 돋움 하 려 면그때가 적 기였다고생 각 했고,월 반 하지 않 으면 영 원히기술후진국신 세 를 면치 못 하리라고 판단 했다 ” 고회상했다. 결국삼성은일본 반 도 체 기업과의D 램 양산 경쟁 에서 앞섰 고,그해10월메모리 분 야세 계1위자리에 올랐 다. 반 면이회장이남 긴숙제 도있다.이 회장은창업자인이 병철 회장의‘ 눈 에 흙 이들어와도 노 조는안 된 다’는유훈을 지 키 며80여년 간무노 조 경영 을이어왔 다. 그 과정에서삼성은 직 원들의 노 조 활 동을 암암 리에 방 해했다. 아들인이 부회장에게회사를 승 계하기위해벌인 온 갖 탈 · 편법 도 우 리 경제 를 병 들게했 다.이를 무 마하기위해정치 권 에 뇌물 을 뿌 리며 권력 을관리한 것 도‘정 경 유 착 ’의 대 표 사 례 로 꼽힌 다. 그 럼 에도불구하고재계에 선 이회장 에대한 평 가에 긍 정 적 이다.재계관계자 는 “ 이회장이 없 었으면 세 계일 류 자리 에있는 삼성전자도 없 었을 것” 이라며 “ 그가남 긴 교훈은아 직 도 우 리 경영 계 에유 효 한자산 ” 이라고 말 했다. 네이버이해진·카카오 김범수$ ‘이건희가 키운’ 한국 IT 기둥들 李회장이설립한삼성SDS 출신들 한국 IT업계이끄는주축으로성장 대기업최초로학력제한없애는등 실력위주채용·인재양성방식결실 IT인재들에게역량펼칠기회제공 네이버·카카오굴지의기업토대로 “아버님을잃은것같다”$예술·체육인들도‘눈물’ 고비마다‘현장경영’으로위기돌파$‘정경유착’그림자도 장례셋째날에도빈소조문행렬 구광모·김택진등재계인사비롯 외국대사들도자국대표로방문 -피아니스트백건우- 구광모(왼쪽)LG그룹회장과피아니스트백건우씨가 27일서울강남구삼성서울병원장례식장에마련된 고이건희삼성전자회장의빈소를찾아조문을한뒤장례식장을나서고있다. 사진공동취재단 D4 이건희 회장 오늘 영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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