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1년 2월 16일 (화요일) D3 백기완 별세 } 1933 북한황해도은율출생 } 1946 아버지와함께월남 } 1954-1960 농민,빈민,녹화운동에매진 } 1964 한일협정반대운동참가 } 1967 백범사상연구소소장 } 1974 유신반대를위한1백만인 서명운동주도,긴급조치제1호 위반으로투옥 } 1979 ‘명동 YMCA위장결혼사건’ 주도혐의로투옥 } 1983 민족통일민중운동연합부의장 } 1985 통일문제연구소소장 } 1986 ‘권인숙양성고문폭로대회’ 주도혐의로투옥 } 1987 제13대대통령선거입후보 } 1990 전국노동조합협의회고문 } 1992 제14대대통령선거입후보 } 1997 민족문화대학설립위원회 위원장 } 2000 계간지 ‘노나메기’ 발행인 한양대겸임교수 } 2010 노나메기재단고문 } 2021.2. 15 향년89세로별세 민주화, 통일운동의 ‘큰어른’ 백기완선생주요연보 현대사 민중운동 앞장선거리의투사$ ‘노나메기’ 숙제남기다 평생을 반독재민주화와 노동운동, 통일운동에앞장서온 ‘거리의투사’ 백 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15일 오 전4시영면했다.향년89세.통일문제연 구소 측은 “한국 민중·민족·민주 운동 의큰어르신이신백기완선생님께서오 늘 새벽노나메기세상을위한 큰 뜻을 품고먼길을떠나셨기에비통한소식을 삼가알린다”고전했다.백발의사자갈 기머리,두루마기자락을휘날리며이름 없는약자들의투쟁현장 맨앞을지켰 던그는 한국재야운동의산 증인이자, 순우리말로시와소설을쓰며민족의영 혼을지키려했던뛰어난예술가였다. 백소장은 1932년황해도은율군구 월산 밑에서4남 2녀중 넷째로 태어났 다. 일제시대때독립군에군자금을 대 주며독립운동에동참했던조부는백범 김구선생을집에피신시켰고,그때의경 험으로백소장도김구선생을스승처럼 따랐다고 한다. 그인연이이어져백소 장은1967년서울충무로에백범사상연 구소를열기도했다. 해방 이후 한반도가 분단되면서, 백 소장은아버지를따라황해도에서서울 로내려왔고어머니와나머지형제들은 북한에남으면서가족들과헤어졌다.백 소장은정규교육은초등학교밖에다니 지못했지만, 유년시절 시와 소설등에 심취하면서사회부조리에도눈을뜨기 시작했다.청년시절인1954년부터야학 을 운영하며나무 심기운동, 도시빈민 운동, 농민운동에몸담았고, 1957년엔 평생동지였던김정숙여사와부부의연 을맺었다. 1960년4·19 혁명운동에뛰어든백소 장은 1964년 ‘한일협정반대운동’의선 봉에서면서민주화운동에본격투신한 다. 반복된투옥과 모진고문이점철된 파란만장한 삶의시작이었다. 1974년 유신반대를위한 100만인서명운동을 주도하다긴급조치1호위반혐의로옥 고를치렀다. 1979년에는‘YWCA위장결혼사건’을 주도했다가보안사서빙고분 실 에 끌 려 가 손톱 이 뽑히 는 혹 독한고문을 당 한 뒤 구 속됐 다. 당 시고문으로정신을 잃 었다 가 깨 어난후‘이 렇게죽 으면안되 겠 다’는 생 각 에안 간힘 을다해 쓴 장 편 시가‘ 묏 비 나리’ ( 1980 ) 다. 각종 집회현장에 빠 지지 않 는민중가 요 ‘ 임 을위한 행 진 곡 ’노 랫 말 의모태가된 원 작이다. 1987년대선에선민중운동진영의 요 구를 받 아 독자 민중후보로 대통 령 선 거에 출 마했다. 김영삼·김대중 ‘ 양 김’의 단일화를호소하려는정치 적압박수 단 이었지만, 끝 내단일화는 성 사되지못했 고백소장은선거이 틀 전후보 직 을사 퇴 했다. 당 시 포효 하는 듯 한 그의유세 연설에10만명이상의군중이 몰 려들기 도했다. 1992년대선에서다시민중후 보로 출 마했지만 낙 선했다. 이후 백 소장은 정치일선에서 물러 났다. 하지만약자를위한집회와 부 당 한 권력 에 맞 서는 투쟁현장엔늘 그가 있 었다. 2009년 용 산 참사 투쟁, 2014 년세월호진상규명집회, 2015년백남 기농민사 망 투쟁에서그는 맨앞자리 를 지켰고, 2018년 4월심장 병 으로 수 술을 받 은 이후에도 거리의연단에 올 라 목 소리를 높 였다. 지난해말에는 병 마와 싸 우는 와중에도, 중대재해기 업 처 벌법 제정과 김진숙 민주노 총 부산 지 역 본부지도위 원 의한진중 공업 복 직 등을 대통 령 에 게 요 구하는 성 명을 발 표 했다. 백소장은‘장산 곶매 이야기’‘버선발이 야기’등순우리말로다 수 의시와소설을 창 작해 낸 뛰어난문 필 가이기도했다.‘민 중’은‘니나’로,‘사상’은‘든메’로,‘ 꿈 ’은‘ 바 랄 ’로고 쳐 쓰는등일상대화에서도순 우리말을 썼 던그의노 력 에 힘입 어‘ 달 동 네 ,새내기,동아리’등의순우리말이대중 들사이에서도자연스 레 스며들었다. 그는 생전에 ‘노나메기’ 운동을 제 창 했다.노나메기란“ 돈 이 있 든없든,사 람 이라고 하면머 슴 만일을 시 킬게 아니 라 너 도일하고나도일하고 그 래 서 너 도 잘 살 고 나도 잘 살 고, 올바 르 게잘 사는세상”을말한다.영 원 한거리의투 사백기완이 꿈꾸 던세상은이제우리의 숙제로남았다. 유족으로는부인김정숙 씨 와 딸원 담 ( 성공 회대중어중국학과 교 수 ) · 미 담·현 담,아들일 씨 가 있 다. 빈소는서울대 병 원 장 례 식장 1호 실 에 차 려졌다. 발인은 19일오전7시다. 강윤주기자 청년시절농민^도시빈민운동 4^19혁명계기통일^민주화투신 군부정권에혹독한고문^구속 대선두차례낙선후에도 용산^쌍용차^세월호$맨앞에 병상에서남긴마지막 말“김진숙힘내라” 고 ( 故 )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병 상에서도노동자 권 리회복등사회문 제에큰 관 심을보였다. 백소장이마지 막 으로 남긴말도 중대재해기 업 처 벌법 제정과한진중 공업 해고노동자김진숙 씨 의복 직 이다. 백소장 유족과 장 례 위 원 회는 15일 빈소가 차 려진 서울대 병원 장 례 식장 에서기자회 견 을 열고 “고인은 병 상에 서도 한국 사회의평화통일과 노동자 와 민중의 권 리가 회복되는 해방 세상 를위해한시도마 음 을 놓 지 않 았다”고 말했다. 고인측에따르면백소장은한진중 공 업 복 직 투쟁을 벌 이고 있 는김진숙전국민 주노동조 합총 연 맹 ( 민주노 총 ) 부산지 역 본부지도위 원 에 게응원 의말을전했다. 송 경동시인은“ ( 고인은 ) 마지 막까 지 중대재해기 업 처 벌법 제정을 위해 힘썼 고, 김진숙 씨 복 직 과 명예회복을 응원 하면서‘김진숙 힘 내라’라고하루에 걸쳐 글 을 적 은 게 마지 막 말”이라며“모두가 한마 음 으로 선생님뜻을 기 릴 수있 었 으면 좋겠 다”고말했다. 조화를 받 지 않 는 것 도백소장 뜻이 었다. 양 기 환 장 례 위 원 회대 변 인은 “선 생님은 마 음 만 전하되, 조화를 보내려 면우리사회에소 외 된사 람 과투쟁하는 사 람 들에 게 보내 달 라고했다”며“선생 님뜻에따라조화를 받 지 않 기로했다” 고 밝혔 다. 고인측은 백소장에대한 악성댓글 과 악 의 적 명예 훼손 등에대해 법적 조치 도예고했다. 조영선 변 호사는“민주주 의에대한 견 해가다르다는점은인정 할 수있 지만, 조 롱 이나 비난, 악 의 적 명예 훼손 은 망 인에대한예의가아니다”라며 “자문위 원 회를구 성 해 법적검토 를거 칠 것 ”이라고 강 조했다. 백소장장 례 는시민사회단 체 가주 축 이된 ‘노나메기세상 백기완 선생사회 장’으로 엄수 된다. 백소장의 딸 인백 원 담 성공 회대교 수 는 “아버님이평소에 지 켜 나가려한 노나메기큰 세상, 진 짜 해방세상을만들기위해 최 선을다하 겠 다”고말했다. 윤한슬^박재연기자 시민단체주축사회장치르기로 <모두가일하며,모두가올바로잘사는세상> 시민들이15일오후서울종로구서울대병원장례식장에마련된고백기완통일문제연구소장의빈소를찾아조문하고있다. 서재훈기자

RkJQdWJsaXNoZXIy NjIxMj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