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1년 8월 25일 (수요일) D10 기획 “혜린아미안해” 엄마의시간은 11개월전에멈췄다 아 파트현관에들어선뒤오른쪽에 보이는 16.52㎡(다섯평)남짓되 는공간이열여섯살혜린이(가명)의방 이었다. 그날 이후에도 혜린이방문은 늘열려있다. 둘도없는친구였던고양 이가오늘은혜린이가돌아왔는지확인 하기위해,가족들이혜린이와매일인사 하기위해문은열려있어야했다. 쌆픦짷펞컪솚줂섢믾 탡쁢쭎졶 동물인형,수국, 빨대가꽂혀있는버 블티,구운아스파라거스,‘솔의눈’음료 수,‘수미칩’과자,그리고초콜릿까지.방 에는생전혜린이가좋아하는것들이가 득하다.특히침대머리맡에놓인토끼인 형은혜린이엄마에겐특별한기억으로 남아있다. 초등학교때학교에서‘어머 니’라는 호칭을 배워온뒤더이상 딸에 게서‘엄마’라는말을듣지못했던혜린 이엄마. 마지막어린이날이될줄은 상 상도못했던지난해5월 5일“엄마라고 부르면 토끼인형을 사주겠다”고약속 한 것도 딸과 멀어지고 싶지않았던엄 마의바람때문이었다. 혜린이부모는퇴근후귀가할때마다 혜린이방화장대에딸이좋아했던것들 을 놓아둔다. 엄마 품에원숭이처럼매 달리던딸은이제없어졌고 ‘까르르’ 웃 던딸의목소리도 들리지않는휑한 방 이지만,이것이지금혜린이부모의유일 한낙이다. 그것은세상을떠난딸이돌 아오길 기도하며돌무더기탑을 쌓는 것과다르지않았다. 혜린이방옷걸이밑에는‘혜린이의꿈’ 도함께잠들어있다.혜린이는2019년7 월일기장에‘메이크업학원다니기’를적 으며‘메이크업아티스트’가될꿈을키 웠다. 메이크업박스는 혜린이가 떠난 순간부터빛을잃은채주인이돌아오기 만을기다리고있었다. 지난해9월 27일.아빠가평소눈여겨 봤던아크메드라비후드티를 사 주자 뛸 듯이기뻐했고, 외출하기전엄마와 김장을하면서수다를떨던딸. 그러나 저녁에귀가한뒤현관앞에서엄마품에 안겨울다가딸은방에들어가문을잠 가버렸다. ‘많이속 썩이고 그랬는데너무 죄송 해요. 다음에엄마 딸로 태어나면이기 억간직하고 속안 썩이고 같이 백 화 점 도가고같이 놀 러도가고엄마가하고 싶어했던것들다할게요.눈 뜨 고 죽 는 건 무서 우 니까이 불좀챙 겨 갈 게요.’ 죽 음을앞 두 고도 두 려 움 을떨 치 지못했던 혜린이는그 렇 게유서를남기고방에서 사라졌다. 성폭행피 해에도이 름 과 휴 대 폰번 호 까지바 꾸 며 삶 에의지를드러 냈 지만 또 래 학생들의2 차 가해로 극단 적선 택 을 한 혜린이. 그 런 데도 법 원은 선고 직전 가해자들을소년부로송 치 해이들은형 사처 벌 을면하게 됐 다. 혜린이가 죽 고 11 개 월이지 났 지만세 상은 바 뀌 지않았다. 혜린이부모의 시 간도여전히그날에 멈춰 있다. 쌆핂펔쁢켆캏좉짩팒슲핂쁢펒잖 ‘ 삐삐삐삐… ’현관도어 록 소리가들리 면혜린이엄마는 자기도 모르게“혜린 이들어왔니 ? ”라고말한다.혜린이가들 어 올 리없다는걸 알 면서도엄마는 매 번 눈물을 쏟 아 내 기일 쑤 다. 가족들도 막 내 딸이없는현 실 을 쉽 게 받 아들이기 힘 들지만,엄마의 슬픔 이너무크다보니 억 누 르며살아가려고 노력 한다. 엄마에겐 주 변 의 모 든 풍경 에 딸의 그 림 자가 남아있다. 딸이세상을 떠난 지 3 9일 째 인지난해 11월 5일 퇴근 후 집 을 향 해 발 걸음을 옮 기던 중 공원의 정 자가 눈에들어왔다. 혜린이와 엄마 가 저녁에함께줄 넘 기를 하던 곳 이다. 엄마는 정 자에 앉 아 휴 대 폰 으로 혜린 이 언 니가줄 넘 기하는동 영 상을 재 생했 다. 줄 넘 기하는 언 니뒤에서 숫 자를 세 는 혜린이모 습 을 보고엄마는 한 참 을 흐느꼈 다. 퉁퉁 부은 눈으로 고 개 를 들어주 변 을돌아보니혜린이를마 중 하기위해기 다렸던 벤치 가 보였다. 늦 은 시 간 함께 달리기를했던 시냇 물공원과 떡볶 이를 사 먹 었던 상가도 그대로였다. 주 변 은 여전히딸과함께있었던그대로인데,혜 린이만이세상에없었다.그 래 서일까.엄 마는혜린이가 잠 든 납골당 을 자주 찾 는다. 딸이없는 세상에서유일하게딸 을만날수있는공간이기때문이다. 많핞솒힎팘쁢푷컪묺쁢펒잖 예 고없이 접 한딸의 죽 음이후엄마는 끊임 없이후 회 하고 자 책 했다. ‘가해자 들이있는공간에서딸을구해 올 걸’‘그 날문앞에서울고있는딸을 좀 더안아 줄걸’‘딸이방문을 닫 지못하도 록 할걸’ ‘구 급차 에함께 타 서너가돌아 올 수있 도 록 외 칠 걸’ … .엄마는 2020년 9월 27 일로 시 간을되돌 릴 수있다면 분 명딸 을살렸을것이다. 후 회 와 자 책 은 곧 장 딸에대한 미안 함으로이어 진 다. 엄마가 그날이후 펜 으로 꾹꾹눌 러 쓴 일기장에는 ‘혜린아, 엄마가 미안해’라는 말이수없이적혀 있다. 세상에 언 제나 네편 이있다는 말 을더많이해주지못했던것. 딸이그토 록 좋아했던고양이를 한 마리더 입 양 하지못했던것.여 행 가자는혜린이에게 ‘ 코 로나 끝 나면’이라며 연 기했던것. 노 래 방한 번 같이가지못했던것까지.혜 린이가그토 록두 려 움 에떨면서세상을 등 진 것도엄마는 자 신 의 탓 으로 돌렸 다. 정작 혜린이를 극단 적선 택 으로 내 몬 가해자들은 사과 한마 디 없는데,엄 마는딸에게 용 서를구하고있었다. 극단 적선 택 을하기직전‘엄마아빠의 딸로, 언 니의동생으로 살아서 행복 했 다’는메 시 지를남길 정 도로가족을 사 랑 했던열여섯살 혜린이. 그 런 딸의모 습 을 떠 올릴 때마다 좀 더 챙 기지못했 다는 자 책감 은엄마를 더 욱 힘 들게했 다. 가해자들이 합당 한처 벌 을 받 게되 면비 틀 어 진삶 의 궤 도가 조 금이나마제 자리로돌아 올 수있겠지만, 그것은 욕 심 인것같았다. 많킂펞줉픒쿦쁢펔펂 ‘ 강 간인줄 몰랐 다. 두번 다 시협 박도 하지않겠다.’ 2019년11월혜린이엄마 가다 락 방에서 우연 히 본 딸의 페 이스 북 메 시 지였다. 충격 이 컸 지만그 즈 음딸에 대한 성폭행 사 건 이터지면서엄마는고 민끝 에이사 건 을 묻 어 두 기로했다. 혜 린이도 2019년자 신 의일기장에‘가족들 에게말안한비 밀 ’‘ 내 가평생말못하고 가 져 가야할비 밀 ’‘말하고싶지만듣고 난다음의 반응 이 감당 이안될것같은 비 밀 ’이라고적으며, 해 당 사 건 을 부모 에게말하지않았다. 혜린이부모는 딸과 재회 하게되 면 떳떳 하고싶었다. 딸을위해 최 선 을 다한 부모로인 정받 고싶었다. 그 래 서그간 묻 어 뒀 던이사 건 을 경찰 에 알 리기로했다. 혜린이엄마아빠는이 것이 최 선의선 택 이라고 결론내 렸다. 지난 2월한국일보를 통 해‘혜린이의 비 극 ’을 접 한 친구들이해 당 사 건 에 대해 증언 하겠다고나 섰 다. 경찰 역시 6월 수사에 착 수해가 해자로지목 된 남학생과 참 고인들 을 불 러 조 사했다. 경찰 에고소장 을제출하기에앞서혜린이엄마는 “나 중 에 죽 어서혜린이를 만날 때 ‘엄마,나그때너무 힘 들었는데 왜 안도 와 줬 어’라는말을듣고싶지않다. 딸을 위해할수있는모 두 것을할 계획 ”이라 고 밝혔 다. 산 이저문다 /노 을이잠 긴 다 / 저녁 밥 상에 애 기가없다 / 애 기 앉 은방 석 에한 쌍 의은수저 / 은수저 끝 에눈물이고인 다. ( 김 광균 ‘은수저’ ( 19 4 6 ) 일부 ) 딸의 죽 음을 가 슴 에 묻 지않고 끝 까 지 진실 을 밝 히려는엄마의마음이 란 무 엇 일까. 혜린이엄마는 시 의한 구 절 과 비 슷 한말을했다.“지금도 집 안모 든 것 이혜린이가있었던그대로 예 요.아이가 썼 던수저도, 아이가 썼 던머그 컵 과 칫 솔도 그 자리에있어요. 그게고스 란 히 남아있는데,어 떻 게혜린이를가 슴 에 묻 을수있겠어요.”엄마는오늘도혜린이 방을 찾 아가딸에게인사한다.“엄마가 너무미안해.” 김영훈기자 <1>사이버불링피해자외면한재판부 <2>후회와자책가득한엄마의일기장 <3>말로만개선…죽어가는아이들 ● 글싣는순서 ● 끔찍한 2차가해현장서못구해$ 문앞에서울때더안아줄걸$ “미안해”매일용서구하며자책 하늘나라서재회땐후회없게 혜린이죽음의진실끝까지밝혀 딸위해할수있는모든것할것 <2>후회와자책가득한 엄마의일기장 성폭행피해에도삶에의지를드러냈지만가해자선고직전또래학생들의 2차가해로극단적선택을한혜린이(가명·16)의방.혜린이부모는퇴근후귀가 할때마다혜린이방화장대와침대에생전딸이좋아했던것들을놓아둔다. 김영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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