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1년 10월 9일 (토요일) 오피니언 A8 김정자 (시인·수필가) 행복한 아침 더낮은곳으로 ‘오징어게임’이주는메시지들 한국일보 www.HiGoodDay.com 조미정 이효숙 박요셉 이인기 백운섭 최성봉 대 표 · 발 행 인 총 괄 국 장 편 집 국 장 미디어총괄/상 무 I T 총 괄 광고총괄/부사장 320 Maltbie Industrial DR. Lawrenceville, GA 30046 (770)622-9600 (770)622-9605 대표 전화 팩 스 주 소 edit.ekoreatimes@gmail.com ad.ekoreatimes@gmail.com ekoreatimes@gmail.com 이메일 : 편집국 광고국 대 표 지인몇분과식사를나누고차 도마시면서세상살아가는이야 기, 한국 대선을 지켜보는 입장 차이, 영감님들 신상털기, 건강 먹거리며운동이야기까지질펀 하게대화를나누고헤어졌다. 화기로운 분위기에서 돌아오 는 길인데 왠지 모를 허전함이 밀려든다.알지못할무언가가누 락된것같은, 정의할수없는적 적한 흐름이 고여있는 것 같다. 막막한상태의거북스럽고구체 적이지않은, 특정자극이나사건에연연할만 큼쉽게촉발될것같지도않은애틋한감정찌 꺼기가이빨에끼인이물질처럼찜찜하게마음 귀퉁이에 도사리고 있다. 코로나 블루가 아닐 까할 만큼. 뾰족한 도리가 없다싶은, 꺼림칙한 언짢은느낌을접어둘수밖에없었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자 먼저 마음읽 기부터 시작했다. 아직 개운하지 않다싶어 차 타후치 강줄기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오랜만 에만난물안개자욱한강풍경이낯선듯경이 롭다. 하얀겹을이루며격랑으로뒤척이며흐 른다. 산책로가열려있고강기슭을따라물질 을 하고 있는 오리떼들의 자맥질이 한가롭다. 햇살이 퍼진 후에야 강태공들도 물살이 급해 보이는 강줄기 한가운데로 들어가기 시작한 다. 물가에서면물의불변성이보인다.물의본질 은 맑고 깨끗하다. 인간이 더럽혀서 오염된 물 도 시간이 지나면 깨끗함으로 돌아가는 것이 물의 속성이다. 자체만의 깨끗함을 간직해온 것이아니라만상을깨끗하게정화시켜주며아 래로 아래로 겸양의 미덕으로 유유히 흐른다. 수량이불어나도다투지않으며경사가급하면 급한대로흐르고완만한물길이면넉넉한흐름 세로 흐른다. 흐르다 고이면 저수지든 호수든 넘치도록채워주고는다시흘러간다.개울이시 내로 흘러들어 강을 이루고 강은 다시 바다로 흘러든다. 물길 따라 만물을 포용하고 생명을 키워낸다. 대기 순환으로 구름이 생성되고 구 름은비가되어땅을적시고다시금흐르고흘 러바다로모여든다. 물의본성은삶에시달려 숨가빠하는 이들을 보듬어 주기도 하고 꿈을 안고 세상으로 나갈 수 있도록 인과율로 작용 하기도한다. 강가풍경은언제나겹겹이이야기를품고흐 른다.인류역사도강을바라보며꿈을꾸고,강 곁에서 문명 발상의 시초가 꿈틀거렸고 강 유 역에서 인류의 꿈이 꽃을 피워온 것이다. 강가 로 밀려드는 물결을 보며 시간을 읽어내고 바 람소리는 먼 이야기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강 기슭에선고운모래톱이포슬포슬물결닮은무 늬를연신만들어내고있다. 쌓여가는모래무 덤을잔물결이밀어내고다시 금결을만들고물결은모랫결 이만든시간의결을지우며흐 르고맴돌기를거듭한다. 모랫 결을밀어내는물결흐름이곰 살맞다. 강바람 소리는 악기 없이도 악보를 그려내고 강물 흐느낌 은애상을작곡하고있다.가을 정취가살포시깃드는강변운 치가발라드풍의악곡이연주 되고있는듯하다.흐르다구비 치고, 맴돌며 인생을 노래하는 강변이라서 자 유로운 악상이 날개를 단듯 강변 노래가 흐르 듯익숙한듯들려오는것같다. 강물흐름새를 지켜보며쉼표를얻어낸기분이다. 어디로부터 흘러들었는지, 흘러오는 동안 낯선 지경을 스 쳐오면서담아낸이야기들, 알수없는곳으로 흘러가야 하는 미지의 호기심을 담고 가야할 끝 없는 이야기들이 물결을 일구면서 흐르고 흘러간다. ‘모닥불피워놓고마주앉아서우리들의이야 기는끝이없어라. 인생은연기속에재를남기 고말없이사라지는모닥불같은것. 타다가꺼 지는그순간까지우리들의이야기는끝이없어 라’ 별빛아래피어오른감미로운로망이온통낭 만으로 푸르기만 했던 시간들이 뽀얗게 떠오 른다. 강가에 서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기쁨 에 겨운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절망과 고뇌를 강물에 풀어버리기도 하고, 생의 허무함을 강 물에 가만히 띄워 보내기도 했는데 강물 따라 흘러 보낸 노랫말이 어찌된 셈인지 강 상류로 부터위로와격려를싣고오는것같다. 하지만 강물이라해서 마냥 부드럽고 유순한 모습만지녀온것은아닐터. 강물의노래에는 얼룩으로자리잡고있는멍울도상처도있었을 것이라서 마치 치유 받고 싶은 노랫말들을 거 두어줄것만같은위로를붙들고강가에서노 래를만들고불러온것것이리라. 나를지탱해온사유의흐름이영원으로흐르 는마음의강물이되어노구를숨쉬게하는원 동력이되어주어줄것이다. 남은 날의 내 삶도 사유의 강물이 되어 시간 의 늪을 향해 고요하게 저물어 가기를 염원해 본다. 흐르는 강은 인류의 젖줄이었고 생사고 락마디에서매듭을풀어주고푯대를바라보라 고, 멈추지않고흐르는강물이야기를귀담아 들으라한다. 거북스럽고 맥빠졌던 무기력의 여울을 낮은 곳으로 흐르라는 강물의 위안과 격려로 하여 마음껏흘러보낼수있었다.아래로아래로,낮 은 곳으로 더 낮은 곳으로 흘러가기로 다짐하 면서. 지난주말웨스트LA의어느집뒷마 당에서열린모임에참석했다. 격식없 이 편안하게 어울리는 자리였다. 집주 인이 오랜 친구라며 50대 백인여성을 소개하기에 인사를 하며 이름을 말했 더니 그가 반색을 했다.“정희? 코리안 이로구나!”-반짝이는눈동자에반가 움이가득했다. 대학에서사진학을가르치는그는지 난 1년 반 팬데믹이 몰고 온 답답함을 코리안 드라마 보는 재미로 버텼다고 했다. 한국드라마를하도봐서이제는 맥주에 소주를 섞지 않으면 싱거워서 마실수가없다며하하웃었다. 대화는 여러 드라마를 거쳐‘오징어 게임’에 이르고, 장장 9편의 시리즈를 그는 이 틀만에다봤다고했다. 에피소드마다 너무흥미진진해서멈출수가없더라는 것이다. 요즘어느모임에서든빠지지않는화 제가‘오징어 게임(Squid Game)’이 다.“너무폭력적이다” “너무잔인하다 ”는 것이 중론이지만, 사람들이 파리 떼처럼 죽어나가는 선혈 낭자한 이 드 라마의 인기가 실로 폭발적이다. 지난 달 17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의 이 드라마는 방영된 80여개국에서 최 다 시청 콘텐츠 1위를 차지했고, 모바 일 동영상 플랫폼인 틱톡의 해시태그 (#SquidGame) 조회가 228억번을넘 어섰다. 드라마 속 의상이며 게임들은 소셜 미디어에 패러디로 이어지고, 파 리에는드라마체험관도등장했다. 넷플릭스프랑스가지난3일마련한‘ 오징어 게임’체험관에는 수천명의 인 파가 몰려들어 장사진을 이루었다. 관 람객들이 몇 시간씩 줄서서 기다린 후 ‘체험’한 것은 드라마 소품들 구경 그 리고 달고나 뽑기와 구슬치기, 딱지치 기등. 문학음악패션할것없이프랑 스것이라면문화의최정상이라며떠받 들어모셨던것이과거의한국인데, 한 국의 아이들이 길바닥에서 하던 놀이 를해보겠다고프랑스인들이몰려들다 니,격세지감이든다. ‘오징어게임’은공개불과두어주만 에 인기드라마 차원을 넘어 하나의 문 화현상으로자리잡았다. 그것도‘세계 적 문화현상’이라는 표현이 따라붙는 다. 지난해 영화‘기생충’이 일으킨 세 계적돌풍의바통을올해드라마‘오징 어’가이어받았다. 미국에서는 지난 4일 방탄소년단 (BTS)의신곡이빌보드메인싱글차트 1위를차지하고,‘오징어게임’이미국 넷플릭스전체순위1위를고수했다.세 계 대중문화 시장에서 한국의 활약이 눈부시다. ‘오징어게임’은빚에몰려더이상갈 곳 없는 인생 낙오자 456명이 처절한 죽음의게임을하는내용이다. 1인당게임상금은1억원,게임에서패 하면목숨을잃고,죽은자들의몫은적 립된다. 많이죽어나갈수록남은자들 의 상금이 불어나는 구도이다. 최종승 자의상금456억원을바라보며참가자 들은죽을힘을다하고,그러다죽고,게 임현장으로부터 뚝 떨어진 높은 곳에 서는다른자들이샴페인을마시며, 낄 낄낄이들의게임을구경한다. 돈이너 무많아인생이지루한자들, 자극적인 오락거리가필요한자들이다. 한쪽에서는 돈이 너무 없어 파리처 럼죽어가고,다른쪽에서는돈이너무 많아주체를못하는경제적양극화,부 의 불평등, 그로 인해 천 길 낭떠러지 만큼이나 아득하게 벌어진 가진 계층 과 못 가진 계층의 거리, 그리고 성공 이라는 신기루를 향한 처참하도록 극 한경쟁구도…자본주의가깊어진지 금 우리 사회의 모습, 바로 우리들의 현실이다. 드라마는후기자본주의사회의피나 는 모순을 맛깔스런 장치들을 동원해 확대하고 극화해서 깔끔한 풍유로 내 어놓았고, 이나라와저나라의사정이 다르지않은글로벌시대에세계인들은 격렬한공감의신호들을보내고있다. 드라마를보고또보고, 달고나를만 들어 뽑기를 하고, 극중 경비원복장을 이번 할로윈 의상으로 줄줄이 예매하 고, 시즌 2가언제어떤내용으로나올 지예측이분분하고…세계는‘오징어 ’열기로한동안뜨거울전망이다. 드라마로서‘오징어’가 주는 메시지 가 신랄한 사회비판이라면 폭발적 인 기가주는메시지는‘문화가힘’이라는 사실이다. 정치가가, 외교관이 못 해내 는일을문화는할수가있다. 정부당국 이 예산 들여 기획한다고 해서 딱지치 기하러, 달고나뽑기하러파리시민들 이몰려들지는않는다. 문화의 힘은 마음을 열고, 마음을 사 로잡아 감동시키는 것. 감동은 행동을 하게한다. BTS 아미들이한국어를공 부하고, 세계각국의 K 드라마팬들에 게‘오빠’ ‘사랑해’정도는일상용어가 된지오래다. 최근옥스퍼드대출판부 가 영어사전을 개정하면서 K-드라마, 한류, 먹방, 만화, 동치미, 갈비, 누나, 오 빠,언니등26개단어를추가한것은한 국 대중문화가 갖는 세계적 영향력의 반증이다. 20세기가정치이데올로기와굴뚝산 업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정보와 문 화의 시대이다. 국경의 의미가 희미해 진글로벌시대에문화의기본은하이 브리드. 전 지구적으로 사고하면서 지 역적 특성을 살리는 것, 글로벌리즘과 로컬리즘의 융합이 공감대를 형성한 다.‘기생충’이 그랬고,‘오징어’가 그 랬다. 변방의 작은 나라, 한국이 세계 대중 문화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90년대부 터똑똑한젊은이들이영화분야로계 속 진출한 결과이다. 이제는 인재들이 정치쪽으로좀가야할것인지, 정치에 서한국은여전히변방이다. <LA미주본사논설위원> 권정희 의 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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