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1년 10월 25일 (월요일) D3 기획 증명서제출 조건도 생겼다. 이를 위해 투르크메니스탄에다녀오려면경비80 달러가추가로든다. 한국정부가 홍범도 장군 유해봉환 을위해중앙아시아국가와의외교에공 을들이면서고려인무국적자문제는해 결의전기를맞았다.우즈베키스탄정부 가 2019년문재인대통령의국빈방문 을계기로무국적고려인에게국적취득 을 허용한 것. 우크라이나로이주했다 가 소련붕괴후 우즈베키스탄으로 돌 아온 뒤줄곧 무국적자 신세였던김기 나지 ( 61 ) 씨등 600여명의고려인이기회 를얻었다. 하지만 장씨는 이기회조차 붙잡을 수없었다. 우즈베키스탄의경우 아프 가니스탄등과국경이닿아있어무국적 자자신이테러리스트가아님을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무국적자로 지 낸기간에거주지등록을 하지못해그 간의이동경로를증명할수없다. 거주 지등록을하려면벌금도내야한다.장 씨는자신에게부과될벌금이우즈베키 스탄정부가정한벌금기본값 ( BRV ) 약 20달러에거주지비등록기간 20여년을 분기별로곱한금액으로알고있다. 신분 증명을 할 수없어그림자 노동 을 해야 하는 장씨에겐 감당하기힘든 돈이다. 한국정부가 벌금을 대신내줄 거란기대는애초없었다.인테리어기술 이있는장씨는 “같은마을고려인들로 부터가끔일감을 받아 버는일당 ( 3달 러 ) 으로생활하는데, 그마저도최근한 달간은일이없었다”며“돈을모아야거 주지등록을하고국적을얻을수있는 데,국적이없으니돈도벌수없는굴레 에빠졌다”고토로했다. 장씨는무국적자신분을자녀들에게 대물림해야 하는 현실이더가슴 아프 다.거주지등록을못한탓에장씨자녀 들도 사실상 무국적상태를앞두고있 다.장씨는“아이들이만 16세가되면국 적을 받아야 하는데그전에벌금을 낼 수있을지모르겠다”고말했다. 현지한국대사관에따르면,2019년우 즈베키스탄정부는고려인집성촌을직 접방문해무국적자 실태를 파악했다. 당시집계된 고려인 무국적자 수는 총 843명이었다. 한국정부는공식집계를 1971년생^카레이스키$ 사라진나라 여권에만 존재감 남아 있지만없는사람들 <1>나라없이지낸 150년, 고려인 장비탈리씨가 구 소련시절발급받은 여권을보여주고있다. 이정원기자 출생신고도사망신고도할수없는 이들이있다.분명존재하지만없는 사람으로취급받는이들, 무국적자다.전세계무국적자는 300만명, 그중3분의1은 아이들로추산된다.국가에 소속되지못해학교를갈수도 일자리를구할수도없는이들의 삶은깜깜한절망그자체다. 무국적문제는보편인권에 바탕해야할인간사회의심각한 허점이자명백한인재 ( ➂拄 ) 다. 이제는바로잡아야할때다. 과거에갇힌국적없는고려인 강제이주때발급한여권효력끝나 검문탓에마을벗어나기도어려워 “지금도스탈린시대를살고있는셈” 머나먼국적취득의길 文대통령우즈벡국빈방문계기로 고려인들국적취득기회생겼지만 신분 증명^쌓인벌금에‘언감생심’ 경제적형편나아져도이방인인생 프로축구선수됐지만외국인분류 ‘회색여권’인정못받아이동제약 차량번호판색깔도달라‘소외감’ 1. 1910년대증조부모세대의러시아연해주이동,조부모세대출생 2. 1937년우즈베키스탄으로강제이주 3. 1950년장씨어머니우즈베키스탄출생,투르크메니스탄오가며생활 4. 1971년장씨투르크메니스탄출생,우즈베키스탄오가며생활 5. 1975년장씨,부모이혼으로어머니따라타지키스탄이동 6. 구소련해체후타지키스탄내전발발,1997년장씨우즈베키스탄으로피란 1 3 4 5 6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연해주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무국적고려인장비탈리생애여정 Ԃ 1 졂 ‘ 묻헏펔쁢몮엲핆 5 잚졓 ’ 펞컪몒콛 장씨는다섯살이던1975년이혼한어 머니를따라 출생지인투르크메니스탄 에서타지키스탄집단농장으로옮겨가 살았다.소련붕괴이후타지키스탄에서 터진내전이길어지면서1997년가까스 로우즈베키스탄으로피란왔지만,그를 기다린건지금까지장장 24년째이어지 고있는무국적자의삶이었다. 당연히우즈베키스탄국적일거라믿 었던장씨는역사적격변속에잃어버린 신분을여태되찾지못했다. 자신이무 국적자라는 사실을 처음안 1997년국 적을취득하려했지만거주지등록제도 에 발목 이잡 혔 다.“우즈베키스탄이 독 립 한 1991년이후 거주지등록을 하지 않 은기간을따 져 3 개월 마다 20달러 씩 지 불 해야 한다”는 담 당경 찰 의 요구 를 들어줄 형편 이못 됐 다. 지금은 내야 할 벌금이 산 더 미처럼쌓 였다.최근 엔 출생 한적이없기에,현재로서는이정 보 가고 려인무국적자 규 모와관련된유일한통 계다. 그러나 현지한인들은 현실과 동 떨 어진수 치 라고 평 가한다.한관계자는 “중앙아시아일대고려인의무국적자비 율 은10 % 에달한다”며“사 망 자등을감 안 해 보 수적으로따 져 도우즈베키스탄 내고려인가 운 데1만여명은 무국적일 것”이라고말했다. 학 계에서는중앙아시 아고려인무국적자가 5만여명으로추 산 되고,그중 많 은인 원 이우즈베키스탄 에살고있을것으로 보 고있다. “ 펂젆삖빦않 팦힎잚 … 삺않힒멂펔펖삲 ” 경제적 형편 이 낫 다고해도무국적자 의삶은크게다를게없다. 구 한말 러시아 연해주에 터를 잡았 다가 중앙아시아로 강 제이주한 외증 조부모로부터4대를내려왔건만, 우즈 베키스탄 고려인알 렌산 카쟈 란 ( 30 ) 씨 는 국적이없어프로 축구 선 수 생활을 마감해야 했다. 고려인어머니와 아르 메니아인아버지사이에서태어 난 카쟈 란씨는 아르메니아에서출생해 7세 때 우즈베키스탄으로 이주한 뒤줄곧 이 곳 에서 살았다. 어머니가 우즈베키스 탄 출신이라 자신도 당연히이나라 국 민 이라고생 각 했지만, 국적이부여되는 16세가 됐 을 때 그에겐 영 주 권 만 주어 졌다. 10년거주조건을 채 우지못했다 는이유였다. 1년만기다리면 10년거주기한이 채 워져 국적이나 올 거라믿었지만아니었 다. 네 차 례 신 청끝 에지 난 달국적을받 을 때 까지, 14년간 국가는 카쟈 란씨의 거 듭 된 요청 에 묵묵 부 답 으로일관했다. 자신이무국적자여야하는정 확 한이유 도알 수없었다. 담 당 경 찰 은 “대통령 사인이아직 떨 어지지 않 았다”는 말만 반복 할 뿐 이었다. 2019년고려인에대 한 국적부여가 허용 됐 을 때 도 카쟈 란 씨는아버지가아르메니아인이라는이 유로대상에서제외 됐 다. 영 주 권 이있으니그마저도 없는 무 국적고려인 보 다 형편 은 나았지만, 하 는 일마다 제약이따르 긴 매 한가지였 다. 가까스로 우즈베키스탄 프로 축구 리그 선 수가 됐 지만 신분은 번번 이 걸 림돌이 됐 다. 구 단들은 내국인지위가 없어외국인 급 여를 줘 야 하는 카쟈 란 의 영 입을 꺼렸 다. 해외 원 정경기라도 있으면더 난 감했다. 우즈베키스탄 정 부가무국적자에게 발급 하는여 행 문서 인 ‘ 회 색 여 권’ 을인정하는 나라가 많 지 않 기 때 문이다. 입국 때 마다 팀 동 료 들 을 먼 저 보 낸뒤환 승 게이트에 남 아 자 신의 존 재를 증명하는 번 잡한 서 류 절 차를거 쳐 야만했다. 고려인아내를만나세살, 한살 짜 리 두아이를 둔 카쟈 란씨는 축구선 수 생 활을접고 영업 사 원 으로 새 삶을시 작 했 다.하지만본인명의의집을살수도,마 음 대로거주지를 옮길수도없었다. 휴 대 폰 은다 른 사 람 명의를 빌 려서 개 통했 다. 더 구 나외국인으로간주 돼 살고있 는아파트에대한세금은내국인 보 다 2 배 가 량 더내야했다.“무국적자는차 량 번호판색깔 도 다 릅 니다. 더 많 은의무 를 지고 살면서도 스스로 ‘ 이방인 ’ 이라 고 느낄 수 밖 에없 습 니다.” 카쟈 란씨는 2018년증조부모의나라 를 찾기도 했다. 고려인지 원 단 체 주최 로 고려인무국적자 문제를 다 루 는 콘 퍼런 스에초 청 을받아서다.그는“ ( 콘퍼 런 스가 열 린 ) 경기 안산 시공무 원 들도 참석 한자리였고,사연을 얘 기해달라기 에말했더니다들 ‘ 그 렇구 나 ’ 고 개 만 끄 덕 였다”며“나를 불쌍 하다고만 할 뿐 달라지는건없었다”고 당시를 돌아 봤 다. 카쟈 란씨는“지 난 달경 찰 에한국 언 론 이무국적자인나를취재한다는사실 을알 렸 더니 느닷 없이국적이나왔다”며 한국사회의관 심 을 촉구 했다. 1 2 3 Ԯ 내전을피해우즈베키스탄으로돌아온이후20 년넘게장씨는자신의집을가져본적이없다.지난 해부터는취업비자를받아한국으로간이웃의빈 집을빌려살고있다. ԯ 장씨의아내와12세아들이집앞에서있다. 고려인4세알렉산카쟈란씨가이달7일우즈베 키스탄타슈켄트외곽에있는 자택에서한국일보 와인터뷰하던중세살짜리아들을바라보고있다. 아들은 엄마에게카쟈란씨의영주권을 보여주고 있다. 이정원기자 <구소련>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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