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1년 10월 27일 (수요일) D3 노태우 1932-2021 2021년10월27일수요일 노태우 전대통령의 89년삶은영광 과 오욕이 교차한 ‘롤러코스터’와 같 았다. 현대사의한복판을 가로지르며 12·12 군사반란 주역으로 권력의정점 까지올랐지만, 전두환 전대통령의벽 을 넘지못해늘 ‘2인자’ 꼬리표가 따라 다녔다. 재임기간 북방외교 등 나름의 치적도 남겼다. 그러나 군사쿠데타와 비자금 사건에연루돼구속됐고, 각종 병마에시달리는등노년은불우했다. 노 전대통령은 1932년 12월 4일경 북달성군공산면신용리에서면서기를 지낸아버지노병수씨와어머니김태향 씨사이에장남으로태어났다.밑으로는 동생노재우씨가있다. 어머니가노전대통령을임신했을때 구렁이가 몸을 휘감는 태몽을 꿨다고 한다. 할아버지 ( 노영수 ) 는이구렁이를 용 ( 龍 ) 이라여겨태아이름을태룡 ( 泰龍 ) 으로지으려했지만,일제강점기시선을 끌까두려워‘어리석을우 ( 遇 ) ’자를넣어 ‘태우’라고작명했다. 1939년아버지가동생의중학교졸업 식에가던중 교통사고로일찍사망한 탓에노전대통령의유년은 궁핍했다. 그해대구 공산소학교에입학했으나, 가정형편이넉넉지않아맨발로등교한 적도많았다. 그는1946년2월숙부의도움으로대 구공립공업학교전기과에입학했다. 대 구공업학교 출신인전전대통령과 같 은 시기에학교를 다녔지만, 재학 당시 엔서로모르고지냈다. 나중에육군사 관학교 동기로재회한 두 사람은 그제 야 동문이라는 사실을알고 사이가 더 돈독해졌다고한다. 그는1950년6·25전쟁이발발하자학 도병으로징집돼대구에있던헌병학교 에들어갔고, 이등병신분으로 참전했 다.헌병학교 9기를우등으로졸업해교 수부로발령받았는데, 그곳에서5세위 김용희소령 ( 교수부장 ) 을 만나 우정을 쌓았다.노전대통령은 1951년10월김 소령의추천으로인생의전환점이될육 사에입학한다. 1955년육사11기로임관한노전대통 령은이듬해육군5사단소대장 ( 소위 ) 발 령을받아사단장이었던박정희전대통 령과처음대면했다.그시절친구김복동 중위의대구집에자주들락거리다그의 누이김옥숙을보고반해청혼했고,1959 년5월부부의연을맺었다. 같은해노전대통령은먼저진급한전 전대통령과미 국 유학 길 에올라 6 개 월 간 함께 생 활 하면서급 격히 친해졌다. 귀 국후 에는군 최 대 파벌 ‘하나회’의출발 점이 된 육사11기생친 목 모임북 극 성회 를 조직 했다.1961년5·16 군사정 변 이발 생하자육군대위신분으로전전대통령 과 함께후배 장교들을이끌고쿠데타를 지지하는‘ 카퍼레 이 드 ’를 벌 이기도했다. 그는 이 후 승승 장구했다. 중령으로 진급한 196 7 년 베트 남전쟁에 맹호 사 단대대장으로참전했을때‘ 퀴논 전 투 ’ 에서북 베트 남 군대를 전 멸 시 킨 공로 로을지 무 공 훈 장을받았다.19 7 4년1월 마 침내준 장으로진급해 별 을 달았고, 19 7 6년대통령경 호 실 행 정차장보로임 명 되 며청와대에도입성했다. 소장으로 진급한19 7 8년에는사단장으로전출 된 전전대통령을대신해경 호 실작전차장 보로발 탁 됐다. 19 7 9년10·26 사태가터지자노태우·전 두환을주 축 으로한신 ( 新 ) 군부는차 근 차 근 군을장 악 해갔다. 상 관정 승화 육군참 모 총 장을제거하기위해당시 최규 하대통 령권한대 행 의명령도 없 이그는병력을출 동시 켰 다.수도경비사령관으로있으면서 군사반란모의와실 행 에적 극 참여했다. 1980년5월신군부가 국 가권력을 완 전 히손 아 귀 에 쥐 면서노전대통령은전 전대통령에이어사실 상 2인자로 군 림 했다. 불과 1년남 짓 한기간 중장, 대장 으로 연거 푸 진급했고 1981년 7 월 군 복을 벗 었다. 다만이 즈 음부터 굳 건했 던노태우·전두환의관 계 는 조 금 씩 금이 가기시작했다. 정치인으로 변 신한노전대통령은당 ( 민 주정의당 ) 과정부 요직 을두루거 쳤 다. 1982년 체 육부· 내무 부장관을 잇 따 라 맡 았다. 서 울 올 림픽 유치에도 깊 이 관여해1984년대한 체 육회회장에선출 되 는등스 포츠 외교에 앞 장 섰 다. 그는 1985년2월제12대 국 회의 원 선 거에서 민 정당 전 국 구 ( 비 례 대표 ) 로 당 선 된후 전전대통령에의해대표 최 고위 원 에임명 되 면서사실 상후계 자로 낙 점 받았다. 우여 곡 절 끝 에노 전대통령은 198 7 년6월10일 민 정당제13대대통령 후 보 로선출됐다.전전대통령의 호 헌 조 치 에 맞 서 직 선제 개 헌을 골 자로한6·29선 언 을관 철 시 켰 다. 대선과정에서는 “ 나, 이사람 보통사람입니다. 믿 어주세 요” 라는표어를통해‘보통사람’이라는유 행 어를 만들어 내 기도 했다. 그는야권 단일 화 실 패 를 발판 삼 아 36 % 의 낮 은 득 표 율 에도대통령에당선 된 다. 1993년2월권 좌 에서 내 려 온 그에 게 는 혹 독한시 련 이기다리고있었다.정치권 을중 심 으로 흘 러나 온 비자금 설 에 검찰 이수사에 착 수하자, 노전대통령은 결 국 대 국민담화 를자청해 “ 재임중기업 체 로부터5,000 억원 가 량 을받아사용하고 1, 7 00 억원 이남았다 ” 고실 토 했다.그는 1995년 포괄 적 뇌물죄 로전 격 구속됐다. 때 맞춰 12·12 군사반란 및 5·18 민 주 화운 동재수사여 론 에도불이 붙 어징역1 7 년 에 2,628 억원 의추징금을선고받았다. 사면은김영 삼 정부 말 기인199 7 년12월 이 뤄 졌다.그는전전대통령과달리추징 금을 꾸준히납 부해2013년 완납 했다. 사면 후 에는 건강이 계 속 악화 해 숨 질 때까지가급적외부 노출을 피 했다. 2002년전립선 암 투 병사실이공 개 됐 고, 소 뇌 위 축증 까지 앓 아 말 년을대부 분 병 상 에서보 내 야 했다. 2003년 2월 노 무 현전대통령 취 임식참석이그의마 지 막 공식 행 보 였 다. 거동은 힘 들었지만노전대통령은아 들노재헌씨를통해자신이주도한과거 국 가 폭 력에사 죄 했다.노씨는 2019년부 터광주를 찾 아부친을대신해5·18 민 주 화운 동 피 해자들에 게 사과하고있다.신 군부 직계 가 족 중처음이다.그는지 난 해 5월에도 5·18 민 주 묘 지를방문해 “ 13대 대통령노태우5·18 민 주영령을추모 합 니 다 ” 라는문구가적 힌조화 를헌 화 했다. 김현빈기자 12^12 쿠데타 주역^첫 직선대통령$ 수감^투병 ‘혹독한 말년’ 파란만장한 89년인생 구렁이태몽에‘태룡’으로지으려다 일제시선우려‘어리석을우’로작명 전두환과육사동기로인생전환점 신군부권력쥐면서‘2인자’로군림 ‘6^29선언’후 36%득표율로대권 뇌물죄로구속$사면후에도투병 노태우전대통령이1987년12월23일서울강남구종합무역전시장에서열린제13대대통령당선축하연 에서선거포스터에등장했던어린이모델을안고있다. 한국일보자료사진 아버지대신 5^18 사과한재헌씨 이한열묘소참배한김옥숙여사 “쿠데타 주역”부각한與, 공과두루짚은국민의힘 노태우 전대통령가 족 은 전두환 전 대통령 가 족 과 달리 12·12 군사반란 과 5·18 광주 민 주 화운 동강제진 압 등 과오를 사과하고 반성하는 모 습 을 보 여 왔 다. 김옥숙 ( 86 ) 여사는 1959년노 전대 통령과부부의연을맺은 후 ‘그 림 자 내 조 ’를해 왔 다. 유일하 게 어 록 이 없 는영 부인으로 기 억 될 만 큼 말 수가 적은 편 이다. 퇴 임 후 에는 연희동 자 택 에서 투 병생 활 을 해 온 노전대통령간 호 에전 념 했다. 그나마김여사가 언론 에공식적으로 모 습 을 드 러낸 것 은 “ 사돈과친 척 에 게 맡긴 비자금으로 미 납 추징금을 납 부 하 겠 다 ” 면서2013년6월대 검찰 청에 탄 원 서를제출했을때 였 다.김여사는 “ 추 징금 완납 은 노 전대통령 개 인의의미 를넘어전 직 대통령으로서 국 가와역사 에대한 빚 을 청산하는 소중한 의미를 지 닌 다 ” 고강 조 했다. 돌 려받을수 없 는 차명재산을 국 고로환수해추징금미 납 족쇄 를 풀 려는 계 산이라는 비판도 있 었지만, 노전대통령은그해 말 추징금 2,39 7억원 을 완납 했다. 아들재헌 ( 56 ) 씨는 최근 부친의과오 를사과하기위해자주광주를 찾 았다. 2019년 8월 23일희생자들이 안 치 된 광 주 5·18 민 주 묘 지를 찾 아참 배 한 뒤 사 죄 의 뜻 을 밝혔 다.같은해12월과지 난 해5월,올해4월등 총 4차 례 참 배 를위 해광주를방문했다. 투 병생 활 로거동 이어려 운 노전대통령이 “ 5·18 민 주 묘 지에참 배 하고 싶 다 ” 는 뜻 을 밝히 면서, 부친을 대신해 찾 는 것 으로 알려졌다. 그는 방명 록 에 ‘진 심 으로 희생자와 유 족 분들 께 사 죄드린 다’는 글 을 남겼다. 김여사도 1988년 2월 25일노전대통 령 취 임 직후 광주망월동5·18 민 주 묘 지 와이한 열열 사의 묘 를 찾 아참 배 한 사 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재헌씨는지 난 해 7 월한 언론 인터 뷰 에서 “민 주 화운 동으로 진 상 이 밝혀 지 는 과정을 지 켜 보면서한편으로 마음 이가 벼 워지기도 했지만 다 른 한편으 론 여전 히짐 을 벗 기어려 웠 다 ” 며 “ ( 피 해자와 유 족 들이 ) ‘이제 됐다’고 말씀 하실때까지 무릎 을 꿇 을 것” 이라고 말 했다. 1994년 민 주자유당 ( 국민 의 힘 전 신 ) 대구 동구을지구당위 원 장으로정 치인을 꿈 꿨으나이듬해노 전 대통령 이비자금 사건으로 구속 되 면서 탈 당 했다. 미 국뉴 욕주 변호 사자 격증 을 취 득 한 뒤 현재 동아시아문 화센 터이사 장을 맡 고있다. 딸 소영 ( 60 ) 씨는 최 태 원SK 그 룹 회장 과 결 혼했으나 현재이혼 소 송 중이다. 소영씨는 아 트센 터나비관장을 맡 고 있다. 소영씨의차 녀 로 노전대통령외 손녀 인 최민 정 ( 30 ) 씨는 2014년해군사 관 후 보생으로임관해청해부대 근무 등 을 마친 뒤 201 7 년 예 비역중위로전역 했다. 최 씨는 현재 SK 하이 닉 스에서 근 무 하고있다. 김지현기자 노태우(뒷줄맨오른쪽)전대통령이육군사관생도시 절전두환(두번째) 등하나회회원들과함께기념촬영 을하고있다. 한국일보자료사진 육사생도시절 노태우(앞줄가운데) 전대통령이1979년 12·12쿠데타직후국군보안사령부에서전 두환(오른쪽두번째)등신군부세력과함께기념촬영을하고있다. 연합뉴스 12·12쿠데타신군부 노태우 전대통령이집권 2년차인 1989년 어린이날을맞아 청와대로 초청한어린이들 과인사를나누고있다. 한국일보자료사진 청와대로어린이초청 1988년9월부인김옥숙여사와함께서울올림 픽개회식에참석한 노태우전대통령이관중을 향해손을들어인사하고있다. 연합뉴스 88올림픽개회식 26일노태우전대통령이 별 세하자정 치권은일제 히애 도를 표했다. 다만 추 모 메 시지의 결 은 달랐다. 국민 의 힘 은 공과 ( 功過 ) 를두루 짚 었고, 더불어 민 주 당은과오를명 확히 지적했다.청와대는 말 을아 꼈 다. 이 날 오 후 노전대통령 별 세소식에 국 민 의 힘 은대선주자들부터 빠 르 게 움 직 였 다. 윤 석 열 전 검찰총 장은 취 재진과만 나 “국 방정 책 이라 든 가 냉 전이 끝 나 갈무 렵 우리나라외교의지 평 을 열 어주신 것 에대해참의미있는성과 였 다 ” 며고인을 추모했다. 홍준 표의 원 은 “ 노전대통령 이가장 잘 한정 책 은북방정 책 과‘ 범죄 와 의전쟁’이었다고생각한다 ” 고했다. 북 방정 책 을일 컬 어‘보수진영의코 페 르니쿠 스적전환’이라고 극찬 하기도했다. 이재명 민 주당대선 후 보는노전대통 령을향한혼재 된평 가를의식한 듯별 다 른언 급을하지않았다.기자들의 질 문에 도 “캠프 와 상 의를해야한다 ” 면서 즉답 을 피 했다.22일광주5·18 민 주 묘 지에서전두 환전대통령을망 설 임 없 이 “내 란 범죄 의 수 괴 이고집단학 살범” 이라고 규 정한 것 과 상 반됐다.다만이 후 보는2 7 일노전대통 령 빈 소를 찾 아 조 문하기로했다. 각 당 평 가에는 온 도차가 뚜렷 했다. 허 은아 국민 의 힘 수석대 변 인은구두 논 평 을통해외교적성과를 언 급하면서도, 군사쿠데타와 민 간인 학 살 개 입등의 과오도비판했다. 또“ 불 행 한역사가다 시는 되풀 이 되 지않도 록 하 겠 다 ” 면서미 래 에 초 점을 맞췄 다. 민 주당은 고인의치적보다는역사적 허물 을 좀 더부각했다.이용 빈 대 변 인 은노전대통령을 “ 군사쿠데타의주역 이자광주 민 주 화운 동강제진 압 에가 담 한역사의 죄 인 ” “결 과적으로군사독재 를연장했고, 부 족 한정통성을공 안 통 치와 3당야 합 으로 벗 어나고자했던독 재자 ” 등으로 묘 사했다. 그의 죽 음을 “ 영욕의삶을 내 려 놨 다 ” 고 총평 하기도 했다. 추징금 완납 과자 녀 를통한 사 죄 등은 긍 정적으로 봤 다. 송 영 길 대표는 2 7 일 빈 소를 찾 을 예 정이다. 신은별기자 26일노태우전대통령의빈소가마련될서울종로구서울대학교병원장례식장입구에서취재진이대기하고있다. 연합뉴스 정치권애도$여야메시지‘온도차’ 가족이대신한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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