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1년 11월 24일 (수요일) 군사 반란, 유혈진압, 인권유린$ 군홧발로 짓밟은민주주의 정정한모습의전두환전대통령이7월5일뒷짐을진채서울연희동자택앞골목을거닐고있다. 건강 상의이유를들어사자명예훼손혐의에대한재판에여러차례불응하던전씨는이날도광주지법에서열 린항소심공판에출석하지않았다. 홍인기기자 ‘5공 2인자’장세동, 부고듣자마자달려와 12·12 군사반란과 5공화국탄생의주 역이었던전두환,노태우전대통령이잇 따라 세상을 떠나면서이들을 떠받친 군내사조직‘하나회’ 멤버들을 비롯한 제5공화국 실세들의근황에도 관심이 모이고있다. 5공을지탱한 ‘2인자’장세 동전국가안전기획부장과이른바‘쓰리 허’ 가운데허화평·허삼수등은모두하 나회일원이었다. 전씨의‘심기경호원’을자처한장세동 씨는 1979년수도경비사령부 30경비단 장으로 군사반란에가담했고, 전두환 정권에서대통령경호실장과안기부장 을지내며승승장구했다. 1987년박종 철고문치사사건으로안기부장에서물 러났지만전씨에대한충성심은변하지 않았다. 5공비리국회청문회장에서그 는 전씨혐의에대해일절입을 다물었 다. 전씨부고가전해진뒤전씨의서울 연희동 자택에두 번째로 나타난 것이 그다. 2002년무소속으로대선에도전 했고, 2004년 17대총선에출마했지만 뜻대로되지않았다. ‘5공설계자’인허화평씨는전두환정 권의최고실세로, 허삼수, 허문도와함 께‘쓰리허’로불렸다.전씨비서실장으 로 12·12 군사반란에가담했고, 5공출 범후 청와대정무1수석비서관으로전 씨를보좌했다. 군사반란의또다른주 역인허삼수씨도 청와대사정수석비서 관등을지냈다. 육사동기인허화평씨와허삼수씨둘 은전씨의눈 밖에나서나란히청와대 를떠났다. 1982년‘장영자·이철희금융 사기사건’에이순자씨의친척이연루되 자 ‘대통령친·인척의공직사퇴’를건의 한것이죄목이었다.둘은이후국회의원 에당선되며정계로진출했다.허화평씨 는지난달 노태우전대통령빈소를찾 았지만, 장례위원에이름을 올렸던 허 삼수씨는 모습을 드러내지않았다. 허 화평씨는 빈소에서 5·18광주민주화운 동때전씨가발표지시를했는지에대해 “물어보지말라.대답하고싶지않다”고 말했다. 언론인 출신인 허문도씨는 ‘쓰리허’ 가운데유일하게 ‘전두환의청와대’를 끝까지지켰다. 1980년신군부에발탁 돼문화공보부 차관, 청와대정무비서 관을 지내며당시언론 통폐합을 주도 했다.2016년세상을등졌다. 1공수여단장과 3공수여단장, 50보병 사단장으로 군사반란에가담한 박희 도,최세창,정호용씨는 2019년12월12 일전씨와 함께서울강남의고급식당 에서샥스핀 ( 상어지느러미수프 ) 을 곁 들인오찬을 즐겨여론의뭇매를 맞았 다.마침쿠데타발발 40년째가되는날 이라 ‘반란 40주년자축연을벌인게아 니 냐 ’는비 판 이 거셌 다. 정승임기자 ‘쓰리허’ 등하나회멤버들은 ‘단짝’노태우한달먼저떠나 허화평, 盧빈소에모습드러내 12^12공범2년전샥스핀오찬도 장세동 전 안기부장이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망 소식이전해진 23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씨자택으로들어서고있다. 연합뉴스 전두환전대통령은한국 현 대사에영 원히아물지않을상처를남 겼 다. 1979 년12·12 군사반란을통한권 력 찬 탈 에 이어1980년5·18 광주민주화운동유 혈 진 압 등으로 군 홧 발로 민주주의를 무 참 히 짓밟 은것은그의공과 ( 功過 ) 를따 질 때 첫손 에 꼽힌 다. 총 칼 을 앞 세 워 대 통령에올 랐 지만 재임 기 간 인권과언론 자유 탄 압 ,정경유 착 과비자금 조성등 의역사 적 과오는이어졌다. 믇캏뫊옪헞 쇪믆픦슿핳 그가한국정치사에등장하는과정은 유례 없 는하 극 상과무고한시민들의 피 로 얼룩 졌다. 1979년 11월 6일 박정희 대통령이총탄에쓰러진 10·26 사태합 동수사 본 부장이되면서권 력 에대한 야 욕 을 드러냈다. 육사 11기동기생이 중 심인사조직‘하나회’ 출신장 교 들과함 께최 규 하 대통령의 재 가도 받지않은 채 정승화 계 엄 사령관을 내란 방 조 혐 의로강제연 행 하고,전 방 의육군병 력 을 서울로 집결 시 켜 군을장 악 했다. 12·12 군사반란으로군부를 재편 한전 씨는국민들의 저항 이시 작 되자,이 듬 해 인1980년5월17일최 규 하대통령을 겁 박해비상계 엄 령을전국에 확 대시켰다. 바로다 음 날광주를 피 로물들인그는 넉 달뒤에 간 선제를통해제11대대통령 에오른다.그러면서 야 당정치인 뿐 아니 라 재야 인사탄 압 과삼청 교 육대창설등 으로 독재 정치의기반을구축한다. 12·12 퐎 5·18 옪줂콚쭖퓒 ‘ 뭚 ’ 전씨에대한 징 벌은문민정부때인 김 영삼정부이후 본격 시 작됐 다.그가주도 한12·12 군사반란과5·18 광주유 혈 진 압 은1996년8월진 행된 1심 재판 과이후대 법 원 확 정 판결 을통해내란수 괴 ,내란목 적 의 살 인혐의가그대로인정 됐 다. 특 히1980년 5월 18일 새벽 2시전남 대와 조선대등 광주지역대 학 에대한 계 엄 군 투 입으로시 작된 5·18 광주유 혈 진 압 은 27일 새벽 4시55 분 계 엄 군이전 남도청을 접 수 할 때까지 열흘간 계속 됐 다.2005년5·18민주유공자유 족 회의통 계에따 르 면사 망 자는총 606 명 으로 집 계 됐 지만아직도 암 매장등 밝혀 지지않 은 죽음 이 많 다. 그가무고한시민들을 학살 한것은국가 폭력 이반 헌법적 ·불 법 적 으로자 행 한한국 현 대사의최대비 극 이었다.역설 적 으로전두환정권의반민 주 적 철권통치를종식하 려 는민주화운 동의원동 력 이되기도했다. 핆뭚퓮읾 , 펆옮짝짊훊풂솧 팣 군사정권연장을목 적 으로한전씨의 철권통치는철 저 한인권유 린 과민주화 운동 및 언론탄 압 을통해이 뤄 졌다. 사 회 질 서 저 해사범단속등을이유로설치 한삼청 교 육대는인권탄 압 의대표 적 사 례다.1980년7월 29일국가보위비상대 책 위원회가‘불 량배 소 탕 ’이란 명분 으로 계 엄 사령부지 휘 아 래 일반시민을 포 함 해6만여 명 을 검거 ,구금해불 법적 인 폭 행 등을자 행 해 악명 을 떨쳤 다. 재야 인사와 학 생운동세 력 에대한탄 압 도 서 슴 지않았다. 야 당정치인은 물 론대 학 생들에게친 북 용공혐의를 씌워 고문을 가했다. 1987년 1월 서 빙 고 대 공 분 실에연 행된 서울대생박종철의고 문치사사건이대표 적 이다.당시경 찰 이 ‘탁치니 억 하고 죽 었다’는말로 덮 으 려 하면서그해 6월 항쟁 의국민 적저항 의 불씨가 됐 다. 28 개 신문, 29 개방송 , 7 개 통신을 각 각 14 개 , 3 개 ,1 개 로 확줄 인언론통폐합 은 물론 ‘언론기 본법 ’을 제정해언론이 책임 을다하지 못할 경우정부가언론사 를정·폐 간할 수있게했다. 계 엄 사령부 의보도 검열 단기 능 을문화공보부 산 하 홍 보조정실로 옮 겨상시화하고‘보도지 침’을 매일언론사에통보해언론을 탄 압 했다. 밤 9시 뉴 스에전씨 뉴 스가 첫 뉴 스로나오는것을비 꼰 표 현 인 ‘ 땡 전 뉴 스’는정권내내지속 됐 다. 칺쩣쭎삶횒펞솒븫밚힎 ‘ 뫊폲쭎헣 ’ 12·12 군사반란과5·18 광주유 혈 진 압 에대한 책임 이사 법 부 판결 로 확 정 됐음 에도그는자서전등에서당시 행 위의정 당성을주장하면서공 분 을 샀 다.마지 막 순 간 까지대국민사과는 없 었다.5·18 당 시계 엄 군이전남도청 옆 전일 빌딩 에가해 진 헬 기사 격 은전씨를다시 법 정에세 웠 지 만끝내 참 회는 없 었다.오히 려헬 기사 격 을목 격 했다고 증 언한고조비오신부를 ‘ 파렴 치한 거짓 말 쟁 이’라고비난하면서사 자 명예훼손 혐의로불구속기소 됐 다. 몋헪컿핳 · 폺잊퓮 많펞솒퍟옮 수 많 은과오속에서도물가안정등을 바 탕 으로 한 경제성장과 1988년서울 올 림픽 유치등을 통한 국제 적 위상 제 고등을공 적 으로 꼽 기도한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않다. 경제성장은 1980 년대3 저 ( 저 달러· 저 유가· 저 금리 ) 현 상을 바 탕 으로 한 호황이었다는 지 적 이 많 다. 또수출대기 업 으로부 터 2,159 억 원 의 뇌 물을 받는 등 천 문 학적 인금 액 을 부정축 재 해정경유 착 이만연한 계기를 만들었다. 1995년 검찰 은전씨가 7,000 억 원의비자금을 조성했다고 밝혔 다. 이후 사 법 부로부 터추징 금 2,205 억 원 을선고받았지만, 현재 까지전씨가미 납 한 추징 금은956 억 원에이른다. 1986년서울아시안게 임 과 1988년서 울올 림픽 유치를통해한국의발전을세 계무대에 알 렸다. 올 림픽개 최를 위한 사회 간접 자 본투 자로내수 활 성화가이 뤄 졌고, 올 림픽 대로와 한강 정비, 강남 개 발이 본격 화했다는 게전씨 측 평가 다. 당시도입 된 프로 야 구를비롯한 스 포츠 와영화 분야 도 급성장했다. 이를 두고 ‘3 S ( 스 포츠 · 섹 스·스 크린 ) 정권’이란 꼬 리표가 붙 기도 했다. 당시국민들의 민주화에대한 열망 을 꺾 기위해스 포츠 와영화를 활 용한 우민화정 책 을 폈 다 는비 판 때문이다. 김현빈기자 과오로점철된비극의역사 사조직하나회출신들과軍장악 광주에계엄군투입해시민학살 집계사망자만 606명최대비극 정권연장위한재야인사탄압에 삼청교육대로 6만여명인권침해 올림픽유치^경제성장등평가도 D3 전두환 193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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