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2년 1월 13일 (목요일) A6 특집 ■그해 여름 강에서 시신이 떠올 랐다 1955년8월어느뜨겁던여름날, 일리노이주시카고에살던열네살 소년에밋틸은미시시피주머니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사촌 형제들을 만나러 가는 첫 여행길. 엄마메이미틸은만류했지만,에밋 은마냥들떠있었다. 남부의인종 차별이얼마나심한지알기엔아직 어렸다. 24일에밋은사촌들과어울려면 화를 딴 뒤 머니 시내 식료품점에 들렀다. 20대백인부부로이브라 이언트와캐럴린브라이언트가운 영하던곳이었다.풍선껌을고른에 밋은 무심코 돈을 계산대가 아닌 캐럴린손에건넸다.장난스럽게휘 파람도 흥얼거렸다.“흑인 주제에 감히…”당시 남부 백인들로선 상 상도못할모욕이었다. 28일새벽잠을자고있던에밋은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캐럴린의 남 편로이와의붓형제마일럼에게납 치돼끌려갔다. 그리고사흘뒤인31일인근강가 에서참혹하게훼손된시신으로발 견됐다. 머리는 총에 맞아 뼈가 완 전히 부서졌고, 얼굴은 한쪽 눈이 뽑힌 채 으깨져 있었다. 조면기(면 화에서 솜과 씨를 분리하는 기계) 에 묶여 있던 몸도 고문으로 만신 창이가 돼 알아보기 힘들었다. 손 가락에끼어있던반지로겨우신원 을확인할수있었다. 시신은 고향 시카고로 운구됐다. 엄마메이미는울부짖으며결심했 다.“무슨일이있었는지세상이알 아야한다.”장례기간관뚜껑을열 어 놓고 아들의 얼굴을 공개했다. 시신을촬영한사진이잡지에실리 면서사건은미국전역에알려졌다. 나흘간 10만 명이 조문했고, 어린 소년이겪었을끔찍한공포에몸서 리쳤다. 로이와 마일럼은 체포돼 재판 에 넘겨졌으나 끝까지 살인 혐의 를 부인했다. 캐럴린은 법정에서 에밋에게서 성추행을 당했다고 진 술했다. 변호인은“에밋이 시카고 어딘가에 숨어 있으며 흑인 인권 단체인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 (NAACP)가 다른 시신을 강물에 던져 놓고 사건을 조작한 것”이라 는 억지 주장을 펼쳤다. 에밋의 사 촌들을 비롯해 흑인 목격자들이 위험을무릅쓰고증언에나섰지만 귀담아듣는사람은없었다. 법은결코정의롭지않았다. 전원 백인으로 꾸려진 배심원은 두 용 의자에게‘무죄’를평결했다. 심지 어납치사실을순순히자백했음에 도, 대배심은 이들을 납치 혐의로 도 기소하지 않았다. 그렇게 죄를 벗은 두 사람은 이듬해 돈을 받고 응한 잡지사 인터뷰에서 태연하게 범행을시인했다.살인행각을마치 무용담처럼묘사하기까지했다. ■“흑인생명도소중하다” 흑인사회가들끓었다. 똑같은인 간으로서인종차별을더는참을수 없었다.남부흑인들이처한현실에 눈을 뜬 북부 도시계층 흑인들도 연대했다. 흑인 인권ㆍ시민권 운동 이꿈틀대기시작했다. ‘현대 시민권 운동의 어머니’로 불리는 로자 파크스의 삶에도 에 밋이있었다.에밋이살해당한그해 12월앨라배마주몽고메리에살고 있던 파크스는 버스 좌석을 백인 승객에게양보하고뒤편흑인전용 석으로옮기라는운전사의지시를 거부했다가경찰에끌려갔다. 그는 훗날“에밋이 떠올라 몸을 움직일 수없었다”고고백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버스 보이콧 운동’이불붙었다. 곧이어마틴루 서 킹 목사가 동참했고, 보이콧 운 동은앨래배마주다른도시와플로 리다주 등 남부 곳곳으로 번져 나 갔다. 결국 1956년 연방 대법원은 몽고메리의 흑백 분리 버스 탑승 제도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작지만소 중한승리였다. 흑인 시민권 운동 이조직화된것도이 즈음이다. 1957년 아칸소주 리틀록센트럴고등 학교에서 흑백 통합 교육을 거부한 학교 당국에 저항한 흑 인 학생들의 투쟁, 1965년 흑인 참정 권을 요구한 앨라배 마주‘셀마 행진’등 대규모 투쟁 이잇따랐다.그래서1950~60년대 에성장기를보낸흑인들은스스로 ‘에밋틸세대’라고정의한다.흑인 시민권 운동가이기도 한‘전설의 복서’무하마드 알리도 이렇게 말 했다.“에밋틸사건이나자신또는 내형제의이야기가될수도있다는 걸깨달았다.”아들을잃은엄마메 이미도인권운동에투신, 2003년 세상을떠나기전까지‘또다른에 밋’을위해평생토록싸웠다. 에밋이 숨지고 9년 뒤인 1964년 미국연방민권법이제정돼마침내 인종차별이법적으로철폐됐다. 노 예해방99년만이었다.이듬해에는 흑인투표권법도만들어졌다. 에밋의 정신적 유산은 오늘날에 도살아있다. 2020년백인경찰관 의 과잉 진압으로 사망한 흑인 청 년 조지 플로이드를 기리는‘블랙 라이브스매터(Black Lives Matter ㆍ흑인 생명도 소중하다)’캠페인 당시, 시위대는플로이드와에밋의 이름을 함께 외쳤다. 이제 에밋은 차별 없는 세상을 향한 열망과 인 간 존엄을 위해 싸운 이들을 기리 는영광스러운이름으로거듭나고 있다. 2021년초에는미국의회에서‘에 밋 틸 린치 금지법’이 만들어지기 도했다. 이법은사적제재를증오 범죄로간주,최고종신형까지선고 할수있다. 사건당시아홉살이었 던바비러시하원의원이발의했다. 그는“어릴적잡지에서본에밋의 모습이흑인으로서내의식을형성 했다”며“그사건을알지못했다면 내 인생 행로는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라고말했다. ■수차례재수사에도결국영구미 제로 에밋의 죽음은 여전히 현재진행 형이다. 수차례 재조사에도 불구, 어느 누구도 법적 책임을 지지 않 았기 때문이다. 2004년 미국 연방 수사국(FBI)은 두 용의자 외에 다 른공범이있을가능성을확인하기 위해에밋의시신을발굴해부검했 다. 그러나시간이너무오래흐른 탓에 뚜렷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 다. 두용의자도수년전사망한터 라, 새로운 진술을 확보할 수도 없 었다. 이미 한참 지나버린 공소시 효도걸림돌이었다. 그렇게 허무하게 끝나는 듯했던 사건은 2017년‘에밋 틸의 피’라 는 책이 출간되면서 새 국면을 맞 았다. 에밋에게성추행을당했다고 주장한 캐럴린이“거짓 증언을 했 다”고 실토했다는 내용이 책에 실 린것이다.듀크대연구원이자역사 가인저자티머시타이슨은캐럴린 이2009년인터뷰에서“소년의행 동은그에게일어난일을결코정당 화할수없다”고고백했다고썼다. 여론이거세게들끓자2018년미 국 법무부는 재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허탕이었다. 작 가가 제출한 인터뷰 녹음 파일에 는 캐럴린의 진술 번복이 담겨 있 지 않았다. 캐럴린도 검찰 조사에 서“진술을 바꾼 적이 없다”고 완 강히부인했다. 법무부는“책의주 장을 입증하지 않고는 캐럴린에게 위증혐의를적용할수없다”고판 단했다. 3년여에걸친수사는결국 2021년 12월 6일 공식 종결됐다. 에밋틸린치사건은그렇게또다 시영구미제로남고말았다. 책과 다큐멘터리 등으로 수차례 다뤄진 에밋의 이야기는 할리우드 에서영화로제작돼관객을만날예 정이다. 2005년다큐멘터리’아무 도몰랐던에밋틸의이야기’를만 든 키스 뷰챔프 감독이 제작과 연 출을맡았다. <김표향기자> ■ 콜드케이스 / 에밋틸린치사건 흑인 민권운동의 불씨…14세 소년 살해 백인들 처벌 안받아 에밋틸(왼쪽)과어머니메이미틸. <스미스소니언박물관제공>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국 가수이자 시인인 밥 딜런은 1962년 발표 한 곡‘에밋 틸의 죽음’에서 7년 전 억울하게 살해당한 한 흑인 소년 의 이야기를 읊조렸다.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죽음조차 유희거리로 여겼던 잔인한 시대에 대한 폭로였다. 무거운 기타 선율도 비명인 듯 처절하다. 밥 딜런뿐 아니라 수많은 이들이 분노했다. 소년의 죽음은 1950~60년대흑인인권운동에도화선이됐고, 미국사회에큰반향 을일으켰다. 소년은여전히그불길속에살아있다. 끝내누구도처벌 받지않았기에, 그래서아직은매듭지을수없는미제아닌미제사건 으로남아,‘지체된 정의’에대해 질문을던진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 아이를 헛간으로 끌고 가 마구 두들겨팼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그들은 말했지만, 난 그게 뭐였는지 기억나지 않아. 그들은 아이를 고문했고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 짓을 아이에게 했어. 헛간에선 비명소리 들렸고 바깥 거리에선 사람들 키득대는 소리가 들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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