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2년 4월 16일 (토요일) D10 기획 1961년7월1일, 서울시청앞 광장에800명이넘는남성들이 도열했다.그들앞에는야트막한 단상이있었고,단상의왼쪽엔 공무원, 오른쪽엔경찰이앉았다. 서울시장윤태일은단상위에올라 격려사를시작했다. “자랑스런 일꾼으로서국가사회에 이바지하려고일어선제군들의 앞날을축하한다”며,이들을 범죄로부터보호하겠다고했다.이어 그자리에모인남성중한명이단상 앞에나가답했다. “폐품을재생해서 산업경제에이바지하는일꾼으로서 사회의밑바닥에서푸대접받았던 과거를청산하고훌륭한직업인이 되겠다”고말이다.단상앞에도열한 남성들,이들은넝마주이였다. 그리고 ‘폐품수집인취업식’으로 명명된이날행사는넝마주이들의 공식취업선서식이었다. 뻫잖훊핂픦 펓컮컪킫 이날행사는 5·16 군사정변당시군부 가내건혁명공약의일환이었다.넝마주 이들은이제경찰국에자신의신상을등 록해야했다. 넝마주이들의생존방식은전에비해 달라지게됐다. 취업선서식이끝나자마 자서울시경찰국은부랑아일제단속을 펼쳤고, 넝마주이는취업선서식에참여 했던취업등록자와그렇지않은미등록 자로 나뉘었다. 미등록 넝마주이는 단 속을피해숨어야 했고, 등록 넝마주이 의고발도피해야했다. 단속에걸린미등록넝마주이들은도 로공사나산지개간,매립사업등노역에 강제로투입됐다.강제노동에동원하기 어려운아이들은지금의소년원인감화 원이나아동보호소에수용됐다.넝마주 이들은등록여부에따라운명이바뀌었 고,노동력에따라행선지가결정됐다. ‘ 뻫잖훊핂 = 핮핺헏쩢횒핞 ’ 않쁢빧핆 어쩌다넝마주이들은이렇게‘정비’와 ‘단속’과‘격리’의대상이된것일까. 넝마란낡고해어져서입지못하게된 의류나 침구류를 말한다. 이런넝마를 줍는건지저분할지언정나쁜일이아니 다. 넝마주이의일은 넝마나 유리같은 폐품을주워고물상이나공장에가져다 파는 단순한 일이다. 군사정변 세력이 넝마주이들에게‘취업선서’를시킨이유 도이일이나빠서는아니었다. 문제는그들이부랑아였기때문이다. 넝마를 줍는이들 대다수가 ‘거리에흩 어진악의꽃들’이라 불렸고, 범죄를저 지를 우려가 크다고여겨졌다. 사회는 그들을일정거주지와직업없이거리를 배회하며범죄나사회문제를야기할존 재로여겼다. 그들은어린부랑아였다.작게는 6세, 많게는 24세정도였는데,사회변동에휘 말려불안정한처지가된이들이었다.가 장 큰 변동요인은 무엇보다도 한국전 쟁이었다. 전쟁을 통해보호자가 사망 했거나 보호자와이별한 채혼자 남아 자란아이들이었다. 또 가난 때문에가 족이뿔뿔이흩어져혼자 남거나, 농촌 서상경한 후생활고를겪는아이도있 었다. 이들은 대부분 고아원에수용됐 고,일부는해외로입양됐다. 그러나고 아원중엔운영자가부패하거나재정적 으로 불안정한 고아원이많았고, 결국 아이들은고아원을떠나부랑아가되고 말았다. 킪샎퐎칺많잚슮찒믇 , 쭎앟팒 부랑아들은냉담한도시에서살아남 기위해무리를이뤘다.그들은연령대에 따라각기다른일을했다.망태와꼬챙 이를들고다닐만한힘이있는큰아이 들은넝마와폐품을주웠고, 그만한힘 이없는아이들은 나무로 된구두통을 들고다니며구두를닦았다. 돈계산을 할 줄아는아이들은껌이나신문을 팔 았고, 이보다도 작은아이들은 구걸을 도맡았다.이들은범죄에휘말리기도했 다. 배고픔을 못이겨소매치기나 절도 를저질 렀 고,구역을두고 폭 력이일어나 기도했다. 이렇 듯 부랑아는 전쟁후 사회의 곤 궁함 과어려 움 의소산이었다.전쟁이끝 난지 얼 마안된때였고,정치적혼란과 재정부족으로인해국가는이들을 돌볼 능 력이없었다.국가는아이들의생존에 직결되는 보 육 시 설 의 확충 이나재정안 정보다아이들이부랑한다는이유로그 냥 사회에서배제하는 방식을 택 했다. 구 조 적이며불가피했던그들의불안정 성 을 완 화하 겠 다는 고 민 보다,‘우범 성 ’ 을 근 거로 단속했고, 강제노역과 강제 수용의대상으로 삼 았다. 넝마주이들은 낙 인 찍힌 존재로살아 야했다.넝마주이를두고사회는우 범자라는 낙 인을 찍 었고,그들은사 회에서돈이들지않는노동력이나 단속해야 할 위 험 한 존재로여겨졌 다. 예컨 대1 9 61년에‘취업’한넝마주이들 은이 듬 해‘ 근 로재건대’로재 편 됐고,이들 가운데일부는 김춘삼 이만 든 ‘대한자활 개 척 단’이나‘서산개 척 단’으로 잘알 려진 ‘대한 청 소년개 척 단’이라는 조 직을통해 각지의개 척 사업에보내졌다.개 척 단으로 서의 삶 은 열 악했고,비인간적이었다. 근 로재건대나개 척 단바 깥 에위치한넝마 주이들은단속을피하며폐품을주웠고, 일부는고물상일을시작하기도했다. 뻫잖훊핂쁢칺않혚쁢많 1 970 년대중 반 부 터심 해진부랑인단 속으로 인해미등록 넝마주이의수가 줄기시작했다.이들의 집 단거주지는무 허 가건 축 물로분류 돼 ,불 법점 유에대한 벌 금이부과되기도했다.그들이생존할 수있는 터 전은 점점좁 아졌다. 동시에 온갖쓰레 기가난지도매립지 로 모 여들자 미등록 넝마주이들은 대 거난지도로이주했다.등록된넝마주이 들도재건대의일이 희 미해지자 1 980 년 대중 반 에난지도나소수의 집 단주거지 로이주했다.이후1 993 년난지도매립지 의운영이 종료 됐고,넝마주이는자취를 감 췄 다. 넝마주이는한국전쟁과 빈곤 이만들 었고, 국가가 방치한 부랑아들이살아 남기위해 택 한 삶 의방식이었다.넝마를 줍는 일이란, 산업화 사회에서생산할 것이하나도없는사정의사 람 들이남이 쓰 고 버 린것을산업영역으로 돌 려보내 는일이다. 과거의넝마주이, 즉 부랑아로구 성 된 넝마주이는이제없다. 새 로운이들이그 자리를 차 지했다. 자신이넝마를 주우 리란생각을단한 번 도해 본 적없던이 들이그자리를 메 웠다.그들은바로‘가 난한 노인’이다.이들은 과거의넝마주 이와마 찬 가지로거리를거닐며폐품을 줍고,고물상에되 판 다.다만과거와같 은 조 직은따로없고,국가의단속도따 로없다. 그렇다 면더 나은상 황 일까 ? 아니다. 여전 히 이일을 하는이들에대한 보호 는없다. 각자도생이란 말처 럼 , 그들은 자신의생존을위해 늙 어가는 몸 의고통 을참으며외 롭 게 걷 고줍고파는일을 할 뿐 이다. 2 0 22년, 병 들고 늙 은넝마주이들이살고있다. <2>넝마주이라는문제적인간들 소준철 도시사회학연구자 60년대넝마주이들은사라졌지만$그자리를메운건‘폐지줍는노인’이었다 1. 2. 3. 4. 5. 1 . 1961년7월1일서울시청앞광장에서 800여명의남성이참석한 ‘폐품수집인 취업식’이진행되고있다. ●국가기록원제공 2. 1961년아동보호소로실려온남성들의 모습.아동뿐아니라성인도보인다. ●국가기록원제공 3. 1961년7월1일 ‘폐품수집인취업식’ 풍경. ●서울기록원제공 4. 아동보호소입소전아동들을삭발하는 모습. 공동생활에서의위생문제방지 목적이다. ● 국가기록원제공 5. 1969년등록된넝마주이조직인근로재건대의 관리자인시경찰유모씨가망태를진넝마 주이행색으로나선모습.근로재건대는 명목상시민사회에서운영했지만,시경찰이 적극적으로관리감독한조직이었다. ●한국일보자료사진 한국전쟁과빈곤이낳은넝마주이 잠재적범죄자로낙인찍혀‘푸대접’ 5^16군부,거리의부랑아단속위해 61년넝마주이를‘폐품수집인’등록 미등록넝마주이는노역강제투입 미등록자줄며삶의터전좁아졌고 1993년난지도운영종료때사라져 이젠가난한노인이넝마주이대신 폐품줍고고물상에되팔며살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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