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2년 7월 13일 (수요일) 오피니언 A8 독자기고 조광동 /언론인 62세, 65세 혜택, School Tax 면제 최선호 보험전문인 - 보험, 그것이알고싶다 전문가 칼럼 이세철 계속걷고싶어라 쥬위시타워 보석줍기회원 한자로된사자성어로‘고진감 래’(苦盡甘來)라는 말이 있다. 글자 그대로의 뜻은 쓴맛이 없 어지고달콤한맛이찾아온다는 말이다. 순수한 우리말로는‘고 생끝에낙이온다’라는속담과 상통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인생이아름답다고느낄때가있 고, 즐겁다고 느낄 때도 있으며, 고생스럽다고느낄때도있다.이 런 행·불행의 느낌은 절대적인 기준에의해정해지는것이아니 라그때그때를서로비교하여상 대적으로 정해진다고 볼 수 있 다. 그리고 개인적인 주관에 의 해정해질수도있다. 즉, 어떤사 람은일하는것이즐겁다고느낄 수도있고, 다른어떤사람은일 하는것이고역이라고여길수도 있을것이다.일하는것이고역이 라고생각하는사람에게는은퇴 하는 시기가 고생 끝에 낙이 찾 아오는때가된것이라고말할수 도있겠다. 은퇴후에누리는자 유로운생활이외에도은퇴할때 쯤이면 몇 가지 다른 혜택이 덤 으로 따라오기도 한다. 그중의 하나가SchoolTax면제이다. 이제막 65세가되는‘은태인’ 씨는최근에소셜시큐리티사무 국에출두하여소셜시큐리티연 금 혜택도 신청하고 메디케어도 신청하였다. 소셜시큐리티 연금 혜택을 100% 받자면 66세까지 기다려야하지만65세에신청한 다고 해도 혜택이 그다지 많이 줄지않기때문에65세에메디케 어와함께신청하기로했다. 65세가되면소유하고있는주 택에대한재산세가많이줄어든 다고들어본적이있는‘은태인’ 씨는이것에관해알아보기위해 카운티사무실을찾아갔다.이것 저것구비서류를안내해주던직 원이나이를물어보면서원래는 62세부터 School Tax를면제받 게되는데‘은태인’씨는65세가 되었으므로‘은태인’씨의 재산 세는 약 60%에서 70% 정도는 줄게될것이라고알려준다. 62세부터 School Tax 면제혜 택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깜짝 놀란‘은태인’씨는자기는62세 훨씬이전부터같은집을소유하 고 있었는데, 62세 때인 3년 전 으로 소급해서 혜택을 받을 수 있느냐고 담당직원에게 물었다. 그러자직원은그럴수는없다고 하면서지금이라도신청하게된 것도다행히아니냐며위로아닌 위로를해준다. 그렇다. 은퇴 나이에 이르면 School Tax를면제받을수있다. 은퇴나이에이르렀음에도불구 하고 School Tax 면제를신청하 지않고있는분들이가끔눈에 띈다. School Tax를면제받을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 는 경우도 있겠고, 카운티마다 School Tax를면제해주는연령 기준이달라서깜빡하고그냥지 나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대 부분의경우주택의재산세는카 운티정부혹은City정부가걷어 간다. 그리고 이 재산세의 많은 부분은 School Tax로구성되어 있다. 때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60%에서70%를차지하는것으 로 나타난다. 은퇴의 나이에 이 르면이School Tax를면제해주 는 것이다. 이유는 잘 알려지지 는 않지만, 은퇴할 나이에 수입 이적어진상황을고려한것으로 생각한다.그런데이School Tax 면제는각카운티정부가나름대 로기준을정하기때문에카운티 마다규정이각각다르다. 대개65세부터혜택을주는것 이보편적이며간혹62세부터혜 택을 주는 곳도 있고 70세가 되 어야 혜택을 주는 곳도 있다. 그 리고 소득이 높고 적음에 따라 혜택을주기도하고안주기도하 며대지면적이문제가되는곳도 있다. 대개 주택에 직접 살고 있 어야만 School Tax를 면제받을 수 있으며, 소유자가 여러 명일 경우에 한 사람만 은퇴 연령에 이르면혜택을받을수있다. 중요한것은각자사는카운티 정부에미리문의하여기준을평 소에 알고 있다가 해당하는 나 이에이르는제때신청하는해야 손해를 덜 보게 될 것이라는 점 이다. 최선호보험제공 770-234-4800 보석줍기 종이배 인생 한평생돌고돌아떠밀려온나그네길끝내고 아름다운추억만기억에주어담아 슬금슬금바다품에안기는강물따라 애처로운단풍잎같은작은종이배 흔들흔들종이배는어디서왔을까 처음부터강물따라흘러왔는가 저강물은얼마나먼길을밀려왔을까 종이배도강물에얹혀왔나봐 잘은모르지만작은물줄기따라 조심조심흐를때계곡물에어울렸고 서로모여제법큰물이루어 종이배는조금은익숙해졌나봐요 강물따라바위에부딪쳐뒹굴던아픔 낭떠러지에서떨어지던무서운기억잊어버리고 따스한그리움만기억에쌓인채 종이배는가물가물예쁜추억이되어갑니다 아틀란타 소풍 보고서 1 셋째날,6월20일,월요일 아침 7시 30분이되기전에로비로 내려갔는데도벌써신복룡교수님과 김승웅방장님,신우재선배님이내려 와아침을들고있다. 모두들놀랄정 도로 부지런하고 건강해 보인다. 한 국에서오랜시간비행기를타고와서 그날부터강행군을하는데도피로한 기색들이없다.거기에다김승웅형과 신우재 형은 술에 담배까지 피운다. 김승웅형은전과달리술이줄은것 같았으나 신우재 형은 술을 상당히 즐겼다. 아침 9시에호텔을출발해남북전 쟁 당시 아틀란타 캠페인(전투)의 격전지 케너사 마운틴(Kennesaw Mountain)으로 향했다. 남북전쟁의 운명을가늠했던아틀란타전쟁의상 징으로꼽히는케너사산은국립전 투장유적지로보존되어있다.유적지 시설은작은전시장에기념품판매장 이함께있고그옆에작은강당이있 고그뒤에실제격전장이었던케너사 마운틴이 있었다. 단층으로 된 작은 붉은벽돌집벽에KennesawMoun- tainNationalBattlefieldPark라고쓰 여있다. 윌리암 셔만(William Sherman) 장 군이이끄는 10만북군과조셉존스 턴(Joseph Johnston) 장군이 지휘하 는 5만의남군이 1864년 6월에 2주 간 대결했던 케너사 마운틴 전투는 북군이 공략하고 남군이 방어하는 전쟁이었다. 남북전쟁에서가장격렬 하고참혹했던전투중에하나로꼽히 는케너사마운틴전투에서5천3백명 이사망한것으로기록되었으며남군 이방어에승리했으나남군이전선에 서후퇴하고남북전쟁의전세를결정 적으로바꾸었다. 아틀란타 전투를 기억하는 전시장 에 북군과 남군을 상징하는 군대와 장군들이있고그장군들가운데2명 의 얼굴이 유난히 두드러지게 서 있 다. 실물크기사진의두얼굴은북군 의 윌리암 셔만 장군과 남군의 조셉 존스톤 장군이었다. 신복룡 교수님 은여기에서있는셔만장군이조선 과미국의군사충돌이었던제너널셔 만호사건의‘셔만’과같은인물이라 고말했다. 1866년조선의평양대동 강 변에서 불탔던 상선(商船) 제너널 셔만호에셔만장군이승선했던것이 아니라 배 이름이 셔만호인 것이다. 1866년이면 남북전쟁이 끝난 다음 해였으니셔만장군의명성이대단했 을것이다. 전시관에진열된검은대포옆에말 을탄셔만장군의실물사진조형옆 벽에“War is cruelty and you cannot refineit”이란구절이적혀있다.“전쟁 은잔학하다, 고상하게정제할수없 다.”잔혹함을정제할수없는전쟁은 비인간적이고 비도덕적인 것에서 자 유스러울 수 없다는 뜻이다. 윌리암 셔만장군은능력있는장군으로평가 되고 있으나 남군에서는 그의 잔혹 행위로상당히비판받고있다.셔만은 조지아전투에서민간인들에게가혹 행위를 하고 초토 작전을 썼던 것으 로전사는기록하고있다. 그에관한 평가와논쟁이커지면서남북전쟁이 끝난지1백년이훨씬더지나서저술 가제임스레스턴은셔만이월남전에 서 악명을 떨쳤던“에이전트 오렌지 (AgentOrange)”화학무기의씨를남 북전쟁에서심었다고비판했다. 전쟁 은잔혹한것으로고상하게할수없 다는셔만의말은그의잔혹행위에 대한비판을의식하고한말이었는지 도 모른다. 전시장이 끝나는 그곳에 Aftermath(결과)란말이쓰여있고그 밑에성조기가걸려있고다음과같은 구절이적혀있다: “This is hallowed ground. For two terribleweeks inthesummerof1864, thousands of Americans fought and bled and died here. Honor their sacrifices. Walk reverently in their footsteps. The fierce struggle they waged here not only helped decide theoutcomeofAmerica’sCivilWar. It shaped the fate of a nation, and the destinyofgenerationsyetunborn.” “여기는 신성한 땅입니다. 1864년 여름참혹한두주동안수천명의아 메리칸은여기서피흘리며싸우고죽 었습니다.그분들의희생을기립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그 분들의 발자국 을걷습니다. 그분들이여기서치렀 던치열한격전은미국내전의결말을 결정했을뿐만아니라,국가의숙명을 결정지었고,아직태어나지않은세대 들의운명을결정했습니다.” 전시장옆에있는자그마한강당에 서케너사마운틴격전을그린다큐 영화를감상했다. 30분가량의이다 큐는당시의치열하고잔혹했던전투 를생생하고숨막히는박진감으로묘 사했다. 냉방이너무잘된강당에자 켓을가지고오질않아서몸이냉랭해 진나를이영화는내마음을더욱얼 어붙게했다.이다큐영화는북군,남 군,어느쪽편도들수없는역사의감 정을신중하면서도사려깊은안목으 로스토리를이끌어갔다. 어쩌면남 부 사람이 남부의 가슴으로 만들었 을지도모를이다큐는북부에게무 릎꿇은남부의감정과시각을절제와 품위를가지고패자의긍지를담담하 면서도장엄하게그렸다. 어느쪽을위해피를흘렸건이들의 죽음은고결하고숭고했고그들이총 을맞대고죽이고죽었던이땅은신 성한땅이되었다. 그들이무엇을위 해서 젊은 생명을 바쳤는지를 알 수 없지만그들이생명을바쳐야하는것 은 그들이 사는 땅의 명령이었기에 그들에게는숙명이자운명이었다.역 사에서가정은없다지만여기아틀란 타전투에서남군이승리했다면아메 리카역사의운명은또달라졌을것이 고오늘을사는아메리칸이나미래의 아메리칸운명도달라졌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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