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2년 7월 16일 (토요일) 오피니언 A8 김정자 (시인·수필가) 행복한 아침 존재하는그어떤삶에도존재가치 가부여되지아니한것은없다. 존재 케한실체가없이스스로존재하는 인생은없기때문이다. 스스로존재 하시는 창조주 앞에서는 잘 살아왔 든,함부로대충살아왔든,삶의맥을 짚어 보면 도토리 키재기다. 지금껏 살아온 것만으로도 목적에 따른 존 재가치를 부여 받았다는 감사로 하 여 격조있는 생애의 마무리를 도모 해야할시한이다가온것같다.노년 을 추동하는 아우라에 집중하며 목 적이이끌어온삶을갈무리로매듭 해야할 기점에서 내려놓음을 복습 하는길로들어섰다. 나이가깊어갈 수록눈가주름도친숙해지고, 그럴 수도 있지가 쉬워진다. 생을 스쳐가 는번민,고뇌,희로애락마저도,희극 도 비극도 흘러간 정경처럼 아득해 지는 초월로 자리잡게 된다. 기어코 붙들어야 했던 것에도 내려놓음이 수월해지고비움의찬스에비켜서지 않았던뒤늦은깨달음까지도대견해 진다. 세월이 건네준 비전은 비움과 범사에감사하는것이었다. 몸은시 들어도 가슴으로 삶을 느끼고 흐려 진시력으로도삶을볼줄알게된다. 남은날이더짧은노구의앞날보다 자손의 앞날과 사명의 번창을 전심 으로 기도하는 시간들로 채워지고 있다. 동년배 할머니들은 어찌된 셈인지 남성화 길로 접어들고 바깥 어르신 들께서는 점차 여성화로 바뀌어 간 다. 안방마님 자리를 지켜내느라 집 안에서 맴돌던 마나님들은 밖으로 나갈구실을수없이꿰고있는데, 가 족부양을등짐삼고살아오느라노 심초사 밖으로만 나돌던 남정네들 은 서서히 집안에서 맴돌고 싶어한 다. 목소리가컸던시절엔아내를이 겨먹고살았지만,바람따라세월따 라 배려라는 무대를 만들고 조금씩 양보하며 지고 살아야 하는 연기에 몰두한다. 해서 할아버지들은 따뜻 한 커피를 마시면서도 가슴에 한기 를 느낀다고 했나보다. 노을지는 하 늘을 우러르다 보면 공연스레 눈꼬 리에눈물이고이고, 책임져야했던 무거운 가장의 자리에서 해방된 민 족이되었지만가슴은더비워낼것 없이 텅하니 빈 둥지가 되어버렸다. 종일을 손주들 틈바구니에서 복작 거렸는데 해가 지면 삭막한 공허를 달래게되는것은외로움과겨룰힘 이소진돼버렸기때문일게다. 몫의외로움을겸허히받아들이는 일 까지도 노년의 향훈이리라. 삶의 순간들을 자욱하게 번져나는 향내 로가공하는노구의충만이아름답 다. 은은한들꽃내음처럼그윽하게 흘러가고 싶음이 노년의 사치는 아 닐까 싶으면서도 땀방울의 노고로 생을 바친 껍데기는 사뭇 초라하지 만이또한순리이며질서로받아들 인지오래다. 자손들은주어진소명 의자리를잘지켜주었고제앞닦음 에 충실한 모습들이 대견하고 자랑 스럽고 존경심까지 우러난다. 그 간 의기쁨과보람은노년의아낙에이 르기까지노구를버틸수있는버팀 목으로남은날동안을품어줄꿈의 보루가 되어줄 것이다. 노년으로 들 어선것은생의과정일뿐마지막끝 이 아니란 것이다. 노년이란 지각과 이성의 사고에서 살아온 동안을 통 칭해서 최고의 경지에 이르는 시점 으로생애중가장나답게살아갈수 있는기회를제공받은적기라할수 있겠다. 지금껏살아보지못한값진새로운 삶을찾아나설수있는도전을시도 해볼만한충분한값어치가있다. 하 루의 마지막을 불태우는 노을같은 생의 정점을 구사해낼 수 있는 마지 막행운을누릴절호의시기가아닐 까. 노년의 상징인 느림의 미학까지 접목한다면 여유롭게 경험해보지 않았던 영역에까지 새로운 분야를 열어갈수있을것이다. 나이의무게 에짓눌려사회적약자가되어야한 다는막연한두려움에매여있기보 다는피할수없다면즐길수있는방 법을찾아야하지않을까. 굽은나무 가선산을지킨다했다. 번듯한나무 는용도에따라다잘려나가고굽어 지고 뒤틀린 나무라 타박받던 나무 가마을을지키듯나이들어쓸모없 어보일지라도오히려제구실을해 낸다는옛말에힘을얻는다. 언어의밭을갈고모내기를하고노 심초사 논두렁 풀베기를 하고 이삭 이피기까지세상아름다움과진실의 물을대고이삭이여물무렵이면물 꼬를 열어두고, 도랑치기가 끝나면 나락이익을때를기다리다가 벼베 기로 들어간다. 언어의 알곡이 고방 에가득쌓여가면원고지를덮고집 필을접어야할때가아닐까. 글쓰기 마지막궁극의고지가저만치에보 이듯한다. 생이란미리알림이없이 섭리로 진행된다. 세상을 잠깐 빌려 살면서 목초지를 찾아 유랑하는 순 례자로살아가다본향으로돌아가는 유목민의삶이다.가까운날,이긴순 례의 여정이 끝나면 오늘같은 노을 이황홀하게하늘을물들일것이다. 밝은 태양 아래 신선한 바람을 느 끼고있는지금의삶이터무니없는 은총임에비우고감사하자고다짐하 게된다.하루를다한찬란한노을앞 에 섰다. 간결하고 여미한 노년으로 나이들고싶은소망을안고. 노을 앞에 서다 독자기고 조광동 /언론인 아틀란타 소풍 보고서 2 전시장 박물관을 나와 격전 지를향해걸었다. 숲길을오 르는데이미격전지를답사하 고 내려 오던 틴에이저로 보 이는 예쁜 백인 여성이 우리 와마주치자한국식으로고개 와 허리를 약간 숙이며 미소 띤 얼굴로 인사했다. 나도 약 간 고개를 숙이며 하이! 하고 답례했다. 저 젊은 틴에이저 여성은분명한국드라마나K 팝영향을받았을것이다. 일리노이 기념비가 있는 케 너사마운틴격전지언덕길을 걸으면서다큐영화에서보았 던장면을생각했다. 케너사 마운틴 격전지는 백 수십년 전 전쟁 당시 모습을 변형하지않고그대로보존하 고 있었다. 전쟁터로 가는 황 토길은 울창한 숲 속에 드문 드문가꾸지않거나제멋대로 자란 잔디와 잡초들이 흩어 져있다. 군데군데당시남군 과 북군이 구축했던 방어 진 지가 있고 거기에 대포가 있 다. 이 진지는 흔히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거창한 참호가 아 니라얕으막하게둘러진흙더 미였다. 진지 근처에 주둔했던 부 대 이름을 적은 푯말이 보 인다. 북군의 UNION 3RD. BR IG . HARKER 2ND DIV. NEWTON IV CORPS HOWARD 표 지판 이 있 고 남군의 CONFEDER- ATE VAUGHAN’S BRIG. CH E AT H A M’S D I V. HARDEE’S CORPS 푯말도 있다. 대포가서있는 CONFED- ERATE MEBANE’S TENN BATTERY란 푯말이 세워진 진지 한 귀퉁이에 작은 보라 꽃이주저앉은듯피어있다. 숲길을 한참 걸어서 일리노 이기념비가있는곳에이르니 기념비앞이절벽처럼깎아져 내리고 그 아래에 평평한 운 동장이 있고 그 주위를 나무 들이 둘러서 있다. 문외한의 눈에도지형이특이했다. 일리노이 기념비는 케니소 전투에서 희생된 일리노이주 와 인디아나 주의 북군들을 추모하기위해설립된것이다. 일리노이주는 지금 내가 사 는 곳이고 전쟁 당시는 아틀 란타 남군의 적군이었다. 남 부의 땅에 있는 북군 추모 기 념비다. 밤낮으로전개된6일간의치 열한 전투에서 희생된 480명 의사상자들을기억하기위해 서세워졌다. 일리노이 기념비는 케너사 전투에서도가장혈투를전개 했던 곳의 하나로 꼽히는“데 드앵글(DeadAngle)”전투를 전개했던곳에서있다. 이격 전지를“죽음의각도”라고부 르는 것은 피를 많이 흘렸던 곳이기때문이기도하지만진 지를구축한위치가적군의진 지위에서보이지않는절묘한 위장지대였기때문이기도했 다. 조금전에관람했던다큐영 화장면이떠오른다. 격전이 끝난뒤, 그때가 6월 27일 무더운 아틀란타 여름 이라 북군들의 시체 썩는 냄 새를 견딜 수 없어 남부군이 먼저 일시 휴전을 제의하고 남군과 북군은 악수를 나누 고썩어가는시체들을흙구덩 이를 파고 묻었다. 휴전하는 동안 남군과 북군은 함께 카 드놀이를하면서친구처럼지 냈다.전쟁이서로를적군으로 만들었지인간으론친구였다. 휴전이 끝난 뒤 남군은 예상 을뒤엎고대치지역에서퇴각 했다. 오늘이 6월 20일이니 160 년 전, 오늘처럼 더운 6월의 아틀란타케너사마운틴에서 수많은생명들이자기들이신 봉하는유니언깃발과컨퍼데 리트깃발을휘날리며죽어갔 다. 어디에 사느냐가 인간의 운 명을 가른다. 거역할 수 없는 것이인간이사는시스템의이 치고 보면 사는 곳의 땅이 명 령하면 누군들 거역할 수 있 겠는가. 자기가 사는 땅의 부 름을받고생명을바친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세월의 황토에 젖어들고 바 람결에스쳐간수많은젊은영 혼들의애가는아직도케너사 마운틴에남아서나그네의가 슴을숙연케한다. 케너사 마운틴을 내려와 짜 장면집으로이동했다. 밴이이동할때면내자리는 맨 뒷좌석 맨 왼쪽이다. 운전 석 바로 뒤 첫줄에 김승웅 방 장과신복룡교수가앉고둘째 줄에신우재선배와홍경삼선 생이타고, 셋째줄에나와천 양곡 선생과 양종석 총무가 앉는다. 여성들이타는작은밴에탑 승했던 김명희 선생이 오늘 은 남성들이 타는 큰 밴으로 옮겼다. 둘째줄, 홍경삼선생 옆에 앉았다. 좌석이 두 사람 이 앉는 것이나 넉넉한 2인 좌석이라 세 사람이 앉을만 하다. 자리에 앉자마자 나는 김명 희 선생에게 대뜸“남북전쟁 은피할수없었을까요?”하고 물었다. 링컨 책을 쓴 김명희 선생의 대답은간결하고분명했다.물 론피할수없었다였다.“노예 폐지를 점진적으로 하면 전 쟁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요?”김명희선생은역시불가 능했다고 대답했다. 그럴지도 모른다. 대부분 역사가들이 그렇게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에 대한 회의는 멈추질 않는다. 북군 가운데 흑인 노예를 해 방시키려는인간평등과정의 감으로 목숨을 던진 사람이 얼마나 되고 남군 가운데 노 예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사람이얼마나되었을까. 인간본능은선택이있을때 쉽게 목숨을 걸지 않는다. 선 택할 수밖에 없어서 목숨을 걸었다. 다시 케너사 전쟁기념관에 서본다큐영화장면이지나 간다. 산촌 마을에 노예 없이 빈한하게사는아틀란타백인 여성이 북군이 쳐들어 오자 아이들을마차에태우고황급 히 피난길을 떠난다. 남편은 전쟁터로 갔을 것이다. 북군 이 들어와 빈집의 옷을 약탈 하고닭을잡으려쫓는다. 전쟁은잃을것이많은힘있 는 사람들과 얻을 것이 많은 힘있는사람들의땅따먹기인 지도모른다. 그땅에사는사 람은권력이부르면전쟁터로 가야하고, 가족은피난을떠 나야한다. 노예 해방을 위해 남군, 북 군 70만명이 죽었다. 당시 미 국인구의 2%에해당하는숫 자다. 지금의 인구 비율로 보 면 6백만명이다. 여기에 부상 자 50만명, 민간인 사망자 5 만명, 포로 수십만명을 합하 면전쟁의여파가어떠했을지 가상상만으로도끔찍하다. 그많은피를흘리면서노예 해방이 된지 160년이 되었으 나흑인문제는여전히미국이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 가운데하나로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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