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3년 4월 3일 (월요일) D4 기획 ೠա ۄ ׼ ੿ъ੿଼ ѐಞ ֙ ਘ ੌ ࠁ  ಞ઱੄৬ ࢶ߹઱੄ܳ ই਋ܰ ח ಣࢤ ݏ ୺ഋ ࠂ ૑  ࢎഥ੸ ড੗ܳ ਤೠ ࠂ ૑ࢲ࠺झ ҳ୷ ߂ ࢎഥ ࠁ ೷ ࢎп૑؀ ೧ࣗ  ࠺੿ӏ૒ ର߹ ೧ࣗ৬ ੿ӏ૒ ੹ജ ֢۱  ࠙ ߓ ૑࢚઱੄৬ ನೌ્ܻ ߓ Ѻ ࠂ  ૑ ೣ੿ীࢲ ఎ୹ ࠂ ૑ · ੌ੗ܻ  ࠘ೠҗ ׮নೠ ؀ച৬ Ү ܨ ഈ۱  ಣച૑ೱ੸ Ӑഋ৻Ү ୶ҳ  ࠘ೠ੄ ੗ਬ޹઱઱੄ ୓ઁ ۽ ੄ ੹ജਸ ਤ೧ ֢۱ ాੌ · ৻Ү · Ҵ ߑ ੿ъh੿଼ ࠙ঠ  য ڃ ࢚ടীࢲ ب Ҵ޹ ࢕ਸ ଼੐૑ ח ъೠ ੿ࠗ  ҕ੿ೞҊ ై ݺ ೠ द੢҃ઁ૕ࢲ ഛ݀ਸ ਤೠ ੿ࠗ੄ ৉ೡҗ ӝ מ ਸ ъച೧ ҃ઁ޹઱ച पഅ  ௾ द੢ ੘਷ ੿ࠗ ੿ࠗ৬ द੢҃ઁ ӝઓ ೦ ݾ ࢏ઁ ػ ղਊ ࢜ ۽ ਍ ੿ъh੿଼ Ҵ޹җ੄ ডࣘ ֙ ୨ࢶ ׼द ন׼ ૑૑ਯ ߸ച ױ ਤ ܻ঴޷ఠ ߅ Ӕഌ ࠺࢚؀଼ਤਗഥ ৻ࠗੋࢎ ੋ ౠ૚ ௑ࣆ౟ ੉ ߅ݺ ੿ࠗ ড੼ ߑ যನੋ౟ ࠺Ҋ ҃۱ ҃ઁ ޹઱ച ؀ӝস ಞೱ ੿ࠗ ୒৬؀ ҃ઁࣻࢳ 뿆 ؀ъ ߈ ؀ ؀ъ ߈ ؀ ৈ ۿ ૓ച ઺ঔ؀ Үࣻ 퉇앎 ୒֙ ੿׼ Ҋ۸ച ೞ ߡ ٘؀ ୹न 튣 ߮୊ӝস ࣁ؀ ੤ ߥ ؀ӝস ࠺౟ஹೊఠ ହद੗  ਘ ઱ ઱ ਘ ઱ ઱ ਘ ઱ ઱ ز߸ হ਺ ૑૑ਯ ৉੹ ׼ ݺ ǁ ۽ Ҋǁ੿ъ ѐ੿ ਘ ੌ ਘ ઱ ୨ࢶ Ҵ޹੄൨ ҅ৌ ୨ࢶ ׼द ࢜־ܻ׼ ޹઱׼ ҅ৌ ୨ࢶ ׼द ޹઱ా೤׼ 에너지를 ‘미래권력’을통해방어한경 우였다. 둘째, 비대위구성부터중도확장의 콘셉트를 분명히했다. 박근혜비대위 원장은 2011년 12월 26일비대위원회 구성을 완료했다. 비대위는 당연직 2 인,초선의원2인,외부인사 6인으로구 성됐다. 특히주목할 것은 외부인사 4 인이었다. 외부인사에는 김종인전청와대경 제수석,이상돈중앙대교수,이준석클 라세스튜디오 대표, 조현정비트컴퓨 터대표가포함됐다.김종인전수석은 경제민주화를 상징했다. 이상돈 교수 는이명박정부의4대강비판을상징했 다.이준석대표는당시26세였다.청년 을 상징한다. 조현정대표는 벤처기업 1세대였다. 네명의비대위원이상징하 는 것은 ‘반 ( 反 ) MB’였다. 이명박 정부 와 한나라당의약점은 ①대기업을 옹 호하는세력②4대강추진세력③노인 정당이었다.박근혜비대위원장은최대 한 ‘한나라당스럽지않은’ 사람들로비 대위를구성했다. 셋째, 박근혜비대위원회는 세가지 가 없었다. ①친박 ( 박근혜계 ) 이없었 다. ②친이 ( 이명박계 ) 가 없었다. ③반 북 ( 反北 ) 강경보수인사도없었다. 역 시‘한나라당스러운’ 약점을 커버하기 위한것이었다. 넷째, 박근혜비대위는 ‘당의근간’에 해당하는세가지를더바꿨다. ①당명 을 바꿨다. 한나라당에서새누리당으 로바꿨다.②당을상징하는색깔을바 꿨다. 파란색으로빨간색으로바꿨다. 보수에게빨간색은 ‘빨갱이’를 상징하 는색깔이었다. 거꾸로, 그렇기때문에 빨간색을채택했다.‘강력한변화의지’ 를 보여주고싶었던것이다. ③정책노 선 ( 정강·정책 ) 을 대폭 바꿨다. 특히이 부분이놀랍다. 짊훊샇픦훟솒읊챝펂폲삲 . 정책노선의변경을 잠시살펴보자. 정부와 시장경제의관계에서“강한정 부, 경제민주화”를 반영했다. “보편주 의와 선별주의를아우르는 평생맞춤 형복지”를 채택했다. “비정규직차별 해소와정규직전환노력”도수용했다. 기존 정책을 삭제하기도 했다. “큰 시 장, 작은정부”, “복지함정에서탈출”, “북한에 대한 자유민주주의 체제 전 환”조항을모두삭제했다. 선거는 4월 11일에예정되어있었다. 선거를 딱 2개월앞두고 박근혜비대 위원장은‘당의근간’에해당하는세가 지를바꿨다. 재창당에버금가는변화 였다.과거이건희삼성전자회장은“마 누라와 자식빼고 다 바꿔야 한다”고 말한적이있다. 박근혜비대위원장역 시 “마누라와 자식빼고 다 바꾼” 경 우였다. 2012년 1월 당시민주통합당 ( 현재 더불어민주당 ) 은 지도부 경선과 전당 1987년이후부터현재까지9번의국 회의원선거가있었다.‘불리했던선거’ 를 리더십과 전략·전술을 통해역전했 던가장 대표적인선거를 꼽으 면무엇 일까 ? 단 연 2012년 총 선을꼽을수있 다. 박근혜한나라당 ( 현국민의 힘 ) 비 상대책위원장이진두지 휘 했던 2012년 총 선은불리했던‘선거의교과서’라불 러도과 언 이아 니 다. 2012년 총 선분석 은민주당이 든 ,국민의 힘 이 든 시사점을 제 공 한다. 본격 적으로살펴보자. 대회를했다.100 만 명이 넘 는지지자들 이모바일경선에 참 여했다. 당시리 얼 미터조사에의하 면 , 12월까지 만 해도 민주당은 정당 지지 율 에서한나라당 에 5~ 10 % 포인트 뒤 지고있었다. 12월 3 주차,한나라당지지 율 은 29.9 % 였다. 민주당은 22.2 % 였다.민주당은12월 5 주차에처 음 으로역전에성 공 한다.1월 3 주차에는 격 차가최대로 벌 어 졌 다.민 주당 3 9.7 % ,한나라당 29.1 % 였다. 무려 10.6 % 포인트까지 벌 어 졌 다.민주당의 총 선 승 리가 능 성이 높 아 졌 다. 민주당에게지지 율 이역전되었을때, 박근혜비대위원장은당명, 당색깔,정 책노선 변경을 2월 1 3 일에통과시 킨 다. 2월 3 주차였다. “경제민주화, 복지 강화,강한정부”를전 면 에 내 세 웠 다. 2월 1 3 일정책노선의 혁신 이후, 딱 3 주가지나자정당지지 율 이재역전됐 다. 3 월1주차부터새누리당 ( 국민의 힘 ) 40. 3% , 민주당 3 2.7 % 가 됐다. 새누리 당은 7.6 % 포인트앞서게됐다. 총 선직 전마지 막 여 론 조사였던 3 월 4주차에 는새누리당 3 9.8 % ,민주당은 3 0. 5% 였 다. 새누리당은 9. 3% 포인트를앞서게 됐다. 총 선 결 과는새누리당 1 5 2석, 민 주당은 127석이었다. 새누리당의과반 승 리였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민주당스러 운’ 정책을 통해 ‘민주당의중도표’를 뺐 어 온 경우다. 과 감 한중도확장의교 과서적인사 례 다. 컮먾쁢 ‘51% 멚핒 ’, 훟솒펾펔핆짾 박근혜비대위원장과새누리당 총 선 승 리의 또 다 른숨 은 공신 은 ‘민주당의 리더십’이었다. 민주당의 총 선지도부 는한명 숙 대표였다.당시1 심 에서유 죄 를 받았 던 임 종석전의원을 사 무총 장 으로 지명했다. 당연히여 론 의반 발 이 커 졌 다. 결 국사 퇴 했다.‘ 무 경선전략 공 천 ’지역을 먼저발 표했다. 언론 의 집 중 공격 을자초했고당 내갈등 은더커 졌 다. 팟캐 스트 방 송 ‘나는 꼼 수다’ 출 신 김용민후보의 막 말 파 동 이 벌 어 졌 는 데 후보사 퇴 를관 철 시 키 지않 았 다. 선거는 ‘ 5 1 % 게 임 ’이다.진보파도, 보 수파도 단독 으로 5 1 % 를 받 을수없다. ‘유권자연합’이중 요 하다.전통적인지 지 층 이이탈하지않되, 과 감 한 중도확 장에성 공 하는 것. 선거 승 리의 법칙 이 다. 최병천좋은불평등저자 신성장경제연구소소장 먼저 2012년 총 선을둘러 싼 당시상 황 들을 살펴 볼 필요 가 있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2월에출 범 했다. 2006 년지방선거, 2007년대선, 2008년 총 선세차 례 선거를모두 압승 했다.권력 을 독 점하게되 니 비판도 집 중되었다. 2008년 글 로 벌 금 융 위기, 2009년노 무 현대통 령 서거, 2010년지방선거에서 무 상 급 식으로 상징되는 ‘복지 열풍 ’이 불었다. 2011년에는오세 훈 서 울 시장이 무 상 급 식 찬 반 투 표라는 정 치 적 승 부수를 던 졌 다. 결 국 부 결 됐다. 오세 훈 은 사 퇴 했다. 당시한나라당 입 장에서는 안 해도되는서 울 시장재·보 궐 선거를하 게됐다. 2011년 10월서 울 시장 재보선을앞 두고 ‘ 안철 수 태풍 ’이불기시작했다. 양 자 가상대 결 에서 안철 수가 박근혜 를앞 섰 다.‘이명박정부와한나라당 심 판’의에너지가 치솟 고있었다. 2011년 10월 26일, 서 울 시장 재보 궐 선거에서 는 무 소 속 으로출마한박원 순 후보가 53% 를 득 표해 승 리했다. 2011년 10월 서 울 시장 재보 궐 선거 에서놀라운점은 ‘세대별 투 표성 향 ’이 었다. 방 송3 사 출구조사에의하 면 20 대는 박원 순 ( 69. 3% ) , 나경원 ( 3 0.1 % ) 을 찍 었다. 3 0대는 박원 순 ( 7 5 .8 % ) , 나 경원 ( 2 3 .8 % ) 을 찍 었다. 40대는박원 순 ( 66.8 % ) , 나경원 ( 3 2.9 % ) 를 찍 었다. 20 대, 3 0대, 40대유권자가 모두약 70 % 정도‘진보’를선택했다.한나라당은약 3 0 % 지지에그 쳤 다.지금 봐 도놀라운 결 과였다. 당시한나라당 입 장에서는 ‘ 공 포스러운’여 론 지형이었다. ‘ 빦않샇큲엋힎팘픎 ’ 칺앚뫊헣 2012년4월11일이 총 선이었다.박근 혜비대위는 2011년 12월말에꾸 려졌 다. 박근혜비대위의특징은네가지로 집 약할수있다. 첫 째, 박근혜비대위원 장 본 인이가장 강력한 ‘미래권력’이었 다.역대한국정 치 사를복기해보 면집 권여당은 집 권초반에 패배 하는 경우 가별로없고, 집 권후반에 승 리하는경 우가거의없다. 선거 승 리와상관관계 가 가장 높 은 것은 ‘ 임 기 몇 년차’인지 다. 임 기후반부가 될 수 록 ‘ 심 판선거’의 양 상이강해지기때문이다. 2012년 4월 총 선은이명박 정부 5 년차였다. 완전 불리한선거였다.박근혜비대위원장이 전 면 에나 섰 다.‘현재권력’에대한 심 판 2012년총선, 보수의역전드라마는‘중도 확장=선거승리’의교과서 최병천의 아웃사이트 서울시장뽑는 2011년말재보궐 20~40대유권자 70%진보찍어 보수당에‘공포’스러운여론상황 ‘반MB’4명수혈한박근혜비대위 약점될친박^친이^반북인사제외 당명^당색깔^정책노선싹다바꿔 ‘경제민주화^복지강화^강한정부’ 민주당스러운정책으로승부수 총선한달앞두고‘지지율역전’ 2012년당시한나라당(국민의힘) 서울시당에서열린신년인사회에서박근혜(오른쪽세번째)비대 위원장등이시루떡을자르고있다. 한국일보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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