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3년 8월 12일 (토요일) 오피니언 A8 *모든 칼럼은 애틀랜타 한국일보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정자 (시인·수필가) 행복한 아침 김케이 임상심리학박사 전문가 에세이 할머니 변주곡 굳이정한데없이문득생각나면 급조된만남을이어온머리에서리 앉은 지인들이 기약 없는 만남의 장을 마련했다. 마치 누군가 호루 라기를 불면 모여들 듯 오늘도 세 월없는걸음새로만남이이루어졌 다. 더희어질머리결도없어보이 는데도단정한모습들이다. 며느님이 사주신 입성이라며, 따 님이선물해준신발이라며말쑥하 고 품위 있는 모습으로 단장하시 고는어색한데없는엷은메이크업 까지구가하시며 환한표정들이시 다. 할머니 연세에도 멋을 재대로 아시는 분이라 멋쟁이 할머니로 불리시는 분께서 먼저 운을 떼신 다. 아주 진지 하신 표정으로“바르 게잘살아온걸까몰라. 이즈음엔 과연 하루들을 잘 살아내고 있는 건지, 번번히 되묻게 되더라”고 하 신다.‘잘 살고 있는 걸까’의문의 꼬리는나름대로최선을다해열심 히 살고있는데도 틈틈이 내가 지 금 잘하고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 때가 많다. 반복되는 일상 문턱 을넘나들면서짐짓발이겹질리지 는않으려나노심초사만큼이다.심 리적, 정신적으로좀더안정적이고 보람 있는 여생을 보내기 위한 솔 루션이라도마련하고싶은심정으 로최근담을털어놓으신다. 예쁜 할머니라는 별명을 가지신 분의 토로가 이어진다. 나이가 더 해갈수록 말 한마디를 가지고 후 회를하기도하고, 말한마디로문 제제기를받기도하고, 주변에난 처함을 초래하는 상황을 만들기 도 한다는 하소연을 풀어놓으신 다. 사실앞뒤정황을파악해가면 서 침착하게 쉬어가듯 말하기란 쉽지않다. 혹여생각없이했던악 의 없는 말 한마디로 마음이 상한 사람은 없으려니 하면서도 걱정 스러운구석은존재하고있었으니 까. 가까운 친구일수록 말은 조심해 야 할 일이다. 가깝다고 생각할수 록말은조신해야하는아이러니가 존재한다. 과연 나는 잘하고 있는 편인가. 과연나는좋은친구로인 정받을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인 품일수록 곁에 친구들이 가득할 것이란역학이성립된다.스스로를 성찰하는사람은무례하지않으며 이타적인편이라오래도록곁에두 어도 좋을 친구로 삼아도 후회는 없을 것이다. 평소에 내성적인 편 으로거북스러움이나어색함을견 뎌내기힘들어하시는분께서조심 스레사연을꺼내신다. 이 나이가 되도록 낯간지러운 표 현을잘못하신다고심중을열어놓 으신다. 칭찬 해야할 일과 마주할 때도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쑥스 러워 진심 전하기가 어려우시다는 넋두리를피력하신다.굳이칭찬이 아니라있는사실을그대로나눈다 고생각한다면칭찬하는일에한걸 음다가설수있지않을까싶어제 의를드렸지만 또다른측면을얘 기하시는분이계신다. 흔한‘립서 비스’라는 대화의 양념이 난무하 는 시대라서 실은 칭찬을 받아도 립서비스차원인지진심에서우러 난 칭찬인지 종종 헷갈리면서 받 아도되는칭찬인지불안감이서성 일때도있다고한다. 말수가 적으신 큰언니뻘되시는 할머니께서가만가만속생각을드 러내 놓으신다. 우리 세대는 지난 세대보다많은편리함을누리며살 고 있지만 예전보다 더 복잡한 사 회 구조 속에서 알게 모르게 속앓 이를하며살아야하는어쩔수없 는불편함이끼어들고있다는푸념 을시작하시자모두들내얘기라며 ‘Me Too’로 받아들이며 그간의 어려움들을쏟아내신다. 아날로그 시대를 살아온 세대로 디지털 문명이 낯설기 그지 없다. 전화도송수신만으로충분한데영 상통화에문자띄우기도어설픈체 로 겅중겅중 따라 다니는 시늉으 로 겨우 모면하며 살아간다. 디지 털문명앞에정한데없는마음회 오리가일기도하고불현듯잔잔해 지기도하는터라마음두서잡기가 힘들어진다. 얼추잠에잠긴상태 라면모르긴해도첨예하게발전하 는 통신 문화에 더는 마음껏 키를 손쉽게누를수없는막다른궁지 앞에 선 할머니들이 되고 말았다. 궁지여책으로 자신을 뒷받침해줄 존재감을위해주저없이배움을얻 어내야할용기가필요한때라고이 구 동성이다. 배움에 도전한다는 것은인생노정에서첩경에들어선 다는의미가내포되어있다. 이렇듯 배움을 시도한다해서 갑 자기 할머니 변주곡이 Tempo가 빨라지거나 Crescendo 로 내달음 칠 수 있다거나 행복이 배가 된다 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을 더 두텁 게 이해하게 되면서 스스로의 평 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 만무엇을어떻게배워야할지를찬 찬히알려주는 열린 사람은 귀한 편이지만 그것 을 발견해 나가는 것이 삶의 여정 이라 할 수 있겠다. 남은 삶을 위 해 어떻게 얼마나 시간을 할애해 야 하는지에 몰두할 일만 남았다. 지금내인생시계는몇시인지를 확인해가면서. 초로의 할머니들 이 서로의 심중을 함께 나누고 서 로를 격려하다 보면 유익한 자극 을 받기도 하고 서로의 위로가 되 는에너지를얻기도하면서노년의 남은삶에원동력으로작용하기도 하는 것이라서 할머니들의 노년 변주곡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감미로운실내악이연주되기도하 고 화려한 왈츠 곡으로 바뀌기도 하면서. 어느누구의인생이라한들후회 없는 삶이란 없겠으나 살아온 삶 을 돌아보았을 때 모질고 나쁜 마 음 품지 않았고 크게 고약한 일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열심히 잘 살 아온것일게다. 지난삶을초조감 으로 돌아보는 노심의 긴장이 다 함 없는 아련한 아름다움으로 보 인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샘을감추고있기때문’이라는구 절이생텍쥐페리의소설‘어린왕 자’에서나온다. 세월을건너온할 머니 가슴들 마다 자신만의 샘을 깊숙이 간직하고 있다. 인생이란 삶의 목마름을 해갈하기 위해 끝 없이 샘을 찾아 다니는 과정이 아 닐까 한다. 할머니 변주곡은 샘을 찾아다니는과정에서작곡된아름 다운 선율들이 은밀한 샘에서 흘 러나오는 것일 게다. 때론 우아하 게때론조촐한곡조를이어가며. 잔인하지만, 성장이 멈춘 시기 부터노화는시작된다.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할아버 지! 라고처음불렸을때어떤느 낌을 가졌나? 나이 어린 점원이 할머니! 라고부른게남이아니 라 자기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 느낌은? 젊은이가 예의를 갖춘 다고“어르신!”하고부르면어떤 기분이들까? 노년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일 반적으로내가나를생각할때와 남을바라볼때의‘노화인식’이 서로다르다고말한다. ‘내 맘은 아직도 청춘’이라서 스스로그렇게늙었다는생각이 안 들지만, 자신과 동갑짜리 친 구를보면눈가의주름과느릿한 행동거지가 영락없는‘늙은이’ 로보이기도한다. 우리가나이를추측할때대개 는 얼굴 주름 같은 외모에 의존 하는데스탠포드의대연구팀은 단 한 방울의 혈액 안에 들어있 는 혈장 분석을 통해 노화 정도 를알아보는과학적방법을개발 했다(2019년연구). 18세부터 95세 사이 4,300명 을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 사람 이란생각처럼서서히늙어가는 게 아니라 일생을 통해 3번의‘ 확늙는시점’이있더라는것. 연 구팀은“혈장에있는수천개세 포가몸전체에서일어나는일에 대해 한 장의 스냅 샷을 제공한 다.”고말한다. 밝혀진 3번의 시점은 평균 34 세, 60세, 그리고 78세. 나이가 들어가는 동안 혈중 단백질 수 준이 한동안 일정하게 유지되 다가 3개 나이 때 갑자기 위, 또 는 아래로 이동하면서 눈에 띄 게 변화가 일어나더라는 설명 이다. 이 결과에 따른다면 흔히 65-75세를 초기 노년기, 75세 이상을후기노년기로나누는기 준점, 75세를 78세로 이동시켜 야할지모른다. ‘노화인식’은 나이가 들면서 자신의 행동과, 일을 처리하는 능력, 인생을 보는 방식이 예전 과다르다는것을인식하게되는 모든경험을말한다. 이 체험은 순전히 주관적이지 만 대다수 노화인식은 신체 기 능이 떨어지고, 인지 기능이 저 하되면서암울한쪽으로기우는 경향이있다. 초고령 사회인 일본에서 7년 전일어났던끔찍한사건은인간 을생산성으로점수매기려는사 회병폐속에서일어났다. 한 장애인 복지시설에 침입한 범인이 26명을 대상으로 흉기 테러를벌였는데범죄동기를묻 는기자들질문에범인의대답은 태연하다.“사회에도움이안되 는장애인은안락사시키거나살 처분하는게맞다.” 사회가 노인을 보는 시각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의견도 있 다. 그러나‘미래를위해생산성 떨어진 노인들은 쓸모없다’는 위험한 발상에 대해 반발하는 영화가지난해일본에서제작되 어칸영화제특별상을수상했었 다. 영화‘플랜 75’는 이렇게 시작 한다. 고령화로 인한 사회혼란 속에서 75세 이상은 누구나 스 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법이 제 정되는데,이름하여‘플랜75’. 죽음을국가에신청하면정부가 이를시행해주는제도이다. 담당공무원들이 공원에 나가 서노인들에게죽음을권유하기 도하고마지막여행이나장례에 사용할 수 있는‘죽음 장려금’ 을지원하기도한다. 남편과사별하고혼자사는 78 세여주인공도이런정책에조금 씩 마음이 기운다. TV에서는‘ 원할때죽을수있어서너무행 복하다’는 공익광고가 이어진 다. 화낼필요는없다. 실화가아니 라영화줄거리니까. 이화여대의또다른연구(2015 년)에서는‘노화인식’이건강한 사람은일상생활에서건강한활 동에 투자하는 시간이 더 많은 것으로조사됐다. 노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부정적으로 받아들 인 사람보다 치매 전단계인 경 도인지장애에 걸릴 확률이 낮 았다. 노화를 죽음으로 가는 마지막 스텝이 아니라, 삶의 다채로운 모습 중 하나로 받아들인 사람 들이다. 주변에 활동적인 90대가 너무 많다.‘100세까지 건강하게!’라 는슬로건도곧‘100세이상’으 로바뀔것같다. 그러니 75세는 아직도 싱싱한 청춘이다. 75살이 늙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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