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3년 8월 24일 (목요일) 오피니언 A8 수 필 박경자 (전숙명여대미주총회장) 어느 조그만 산골로 들어가/ 나는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 살 고 싶소/초가 지붕에 박넝쿨 올 리고/삼밭엔 오이랑 호박을 놓 고/들장미를 울타리 엮어/마당 엔 하늘을 욕심껏 들여놓고/밤 이면 실컷 별을 안고/부엉이가 우는 밤도 내사 외롭지 않겠소/ 기차가 지나가 버리는 마을/놋 양푼 수수엿을 녹여 먹으며/내 좋은 사람과 밤이 늦도록/여우 나는 산골 얘기를 하면/삽살개 는달을 짖고/나는여왕보다더 행복하겠소. (시, 노천명 1912- 1957) 노천명 시인은 1912년 황해도 장단에서태어나이화여대영문 과를졸업, 처녀시집장호림, 별 을쳐다보며등다수의시집을냈 다. 어린시절 병치레를하도많 이해이름을천명이라지었다한 다. 천재 시인은 46세에 지병으 로세상을떠났다. 세상이 하… 시끄러운 요즘같 은 때, 돌산아래홀로거닐으며 옛시인의시를읊어본다. 요즘같이지구별에무서운재 앙이있었던때가 있었던가… 삽시간에 닥친 불이, 와우이섬 을삼켜버렸다. 지구별도이젠 수명이다된것일까… 나같은촌부는알수없는지구 별 이야기, 우린 너무 살기에 바 빠 지구 별을 잔인하게 마구 대 하지않았나…부끄러운맘이든 다. 나홀로도나닦겠다고/님은떠 나시고/나는 남아서/꽃이나 가 꾸며 산다네./뻐꾸기, 소쩍새 울 음/갈하늘풀벌레소리/온갖들 꽃들 마당 가득 심어두고/언젠 가 님 오시면/보시라/자잘한 잔 정도 꽃으로 피어 있거니/내 그 리움의꽃밭에는…/영혼깊숙이 심어 둔 꽃들이 피웠네/한 줌의 흙을 품고/겨울을 울어 울어/그 아픈 가슴 사랑의 불 지펴/잠든 내영혼흔들어깨운다 머지 않아 돌산 바위에는‘노 란 갈데이지’가산을덮는다.연 약한 그 꽃대가 백도가 넘는 불 볕에 아무도몰래 핀생명의꽃 들이산을덮는다. 우리집바윗틈에는작은 솔씨 가 떨어져 이 불볕 여름을 견디 며 아름다운 솔 분재로 자라고 있다. 흙한톨없는그뜨거운돌 위에 어찌 그 여린 생명이 살아 남을수있을까… 그생명의신비, 강인함에자연 앞에 서면 난 부끄러울 때가 많 다. 요즘처럼 시끄러운 세상이 또있었을까…돌산아래살면서 돌산 지기로 돌같은 마음으로 묻혀서 조용히 살고 싶다. 우리 집엔 매년 가꾸지 않아도 홀로 피었다지는들꽃들이나의벗들 이다. 잡초 제거제만 뿌리지 않으면 들꽃들은어디서나아름답게핀 다. 꽃들은 자신의 꽃피는 계절 을안다. 분꽃은 오후부터핀다 해이름이‘포오크락’이다. 밤마다 분꽃은별빛더불어꽃 들의장관이다. 자연에는우리가 알수없는꽃들의시계가있다. 해바라기 피는 계절에는 노오 란 새떼들이 어찌 알고 어디서 날아온 걸까… 사람들은 그 외 딴 산골에서 어찌 사느냐… 묻 지만 아침마다 들꽃 인사, 이름 모를 새들이 찾아와 나는 더불 어 도를닦는기분이다. 지구별에천지운행의 조화도 멎은건가…지구별이변했다. 하늘이 무심한 지구 별의 재앙 을 우린 이제 다시 돌아볼 때이 다. 한줌의흙을가슴에품고돈 보다아끼고자연을사랑해야할 때이다. 아름다운 자연을 헐고 별장을짓고 , 공장이서고, 골프 장을만들고…사람에쫓겨서자 연은어디에도설자리가없다. 자연은스스로그냥두면꽃이 피고, 물 흐르고, 새들이 둥지를 튼다. 자연의 품에는 명품을 들 지 않아도 된다. 잘산다는 것 때 문에 이지구별을인간이살수 없는불모지로만들지는않았는 지우린생각해볼때이다. 지구가 뜨겁게타면바다에 물 고기들도살수가없어바닷가에 죽은물고기가떠다닌다. 섬들도 물수위가올라살수가없게되 었다. 지구 별 재앙을 우린 다시 생각해볼때이다. 좀못살면어떠랴, 둥굴레산올 라 산나물 캐고 뻐꾹채, 장구채, 범부채, 도라지, 곰취,개두릎사 람 살리는 온갖 약초들이 살고 있는자연을다시찾자. 목사없 는 교회당, 누구나 설교하는 산 골 마을, 그날의 향수가 그리운 세상 아닌가… 우린 잃어버린 그옛날을 다시찾아가자. ‘마당엔하늘을욕심껏들여놓 고/놋양쁜 수수엿을 녹여 먹으 며/내좋은사람과 밤이늦도록 산골얘기를하며/참마음, 그옛 날로 우리 다시 돌아갈 수는 없 을까…/‘청노루/맑은 눈에/도 는/구름’(시인박목월) ‘나는이름없는여인이되어살고싶소’ 얼마 전 친구들과의 대화 도중 죽음에 대한 이야기 가 나왔다. 최근 한 지인이 안락사를선택해세상을떠 났다는소식을들으면서자 연스럽게 시작된 이야기였 다. 회복 가능성이 없는 불치 병에 걸렸고 시한부 선고 를받았다.더이상의학적치료는 아무효과가없다. 그런데육체적 통증이너무심해서살아있는매 순간이 고통의 연속이다. 당신이 라면어떻게하겠는가?이질문에 친구들은 모두“스스로 죽음을 택하겠다”고했다. “그렇게 사는건 사는게 아니다 …태어날때는내뜻이아니었지 만갈때만큼은내의지대로가고 싶다…죽는날과시간을직접정 하면좋겠다…진통제에취해몽 롱한상태로작별하고싶지않다 …살아서보는마지막풍경이병 실천정이아니기를바란다…나 무아래누워서자연의숨결속에 잠드는것이최후의소원이다…” 한친구는캘리포니아에서안락 사가 허용되는지 몰랐다며 만일 의경우자신은스위스로떠날생 각까지 하고 있었다면서‘기뻐’ 했다. 캘리포니아주는 2015년 안락 사법(End of Life Option Act)을 통과시켜 다음해 6월9일 시행에 들어갔다. 당시적지않은환자들 이의료진과함께만반의준비를 하고있다가시행직후곧바로죽 음을 선택했을 정도로 존엄사는 오랫동안 많은 이들에게 간절한 소망이었다. 이 법에 따르면 가주에서 안락 사는 예상 수명이 6개월 이하인 성인불치병환자가의사에게‘생 명을 끊는 약’을 구두로 2회, 서 면양식으로1회요청하면허용된 다.(2회구두요청의간격은처음 에 15일이었으나 2022년 1월법 이개정되어2일로단축됐다.) 의 사에게 요청할 때는 2명의 성인 이입회해야하는데그중한명은 환자의죽음으로인해재정적혜 택을입지않는사람이어야한다. 의사는 환자의 정신상태가 정 상이고, 자발적 결정이며, 스스 로 투약할 수 있는 상태임을 확 인하면치사약물을처방할수있 다. 지난 주 LA타임스는 안락사를 택하고떠난두사람의스토리를 소개했다. 하나는피부암으로시 작해 골수암, 뇌암, 척수암으로 번져가며 10년 동안 투병하다가 마침내안락사를선택한52세남 성의사연이고,다른하나는근위 축경화증(루게릭병)으로 고생하 던 아내가 가족친지들에 둘러싸 인채안락사약을복용하고떠나 기까지의순간을할리웃의한작 가가기록한글이다. 이 신문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에서는 안락사가 합법화된 이래 5,168명이 신청했고 그중 3분의 2가실제로약을복용한후세상 을떠났다. 미국에서안락사법이처음시행 된것은 1997년오리건주에서였 다. 당시주민들의찬반논쟁이어 찌나치열했던지‘오리건에서죽 기’(How to Die in Oregon)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만들어졌을 정도다.이후유사한법이워싱턴, 몬태나, 버몬트에 이어 가주에서 통과되었고, 지금은콜로라도, 워 싱턴DC, 메인, 하와이, 뉴멕시코, 뉴저지 등 11개주가 이를 시행하 고있다. 텍사스와 매사추세츠 주는 안 락사는아니지만환자자신이인 공적인연명치료를거부하는‘존 엄사’를 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 다. (안락사는 약물투입을 통해 인위적으로생을마감하는것, 존 엄사는 심폐소생술이나 산소호 흡기, 영양공급 등의 연명치료를 중단하는것을말한다.) 사실그보다훨씬일찍 1980년 대부터인간의‘죽을권리’를주 장하며미국사회에큰반향을일 으킨사람이있다. ‘닥터데스’라불렸던잭케보키 언(1928-2011) 박사, 90년대부 터 공개적으로 안락사를 시행하 여9년간말기환자130명의죽음 을도왔고결국1999년2급살인 죄로수감되어 8년복역후가석 방되었다. 알 파치노가 주연한 배리 레 빈슨 감독의‘너는 잭을 몰라’ (2010, You Don’t Know Jack) 는케보키언박사의이야기 를 다룬 영화다. 당시엔 반 윤리적‘살인’으로 지탄받 았던안락사가지금은대부 분의 문명국가에서 허용되 는것을보면격세지감이느 껴진다. 영화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2005년 오스카 외 국어영화상을 탄‘시 인사이드’ (Sea Inside)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명작이다.스페인에서25세때 다이빙하다가 다쳐서 하반신 마 비가 된 라몬 삼페드로가 30년 동안국가를상대로죽을권리를 달라고 투쟁하는 이야기가 감동 적으로펼쳐진다.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2021년 영화‘다 잘된 거야’(Every- thing Went Fine)는 갑자기 쓰러 진 아버지로부터 죽음을 도와달 라는부탁을받은딸이갈등하는 스토리, 이역시문제작으로호평 받았다. 이 외에도 안락사가 불법인 상 황에서 벌어지는 일은 오스카 4 개상을 휩쓴 영화‘밀리언달러 베이비’(2004)와 칸 황금종려 상을받은프랑스영화‘아무르’ (2012)에서아프게그려진다. 윤여정이 주연한‘죽여주는 여 자’(2016)는 노인 매춘으로 살 아가던‘박카스 할머니’가 고독 사를 기다리는 할아버지들을 진 짜로 죽여주는‘자비의 손길’을 베푼다. 여기서 더 나아간 이야기가 작 년에나온고레에다히로카즈감 독의 영화‘플랜 75’다. 초고령 화사회의일본, 의료비와사회보 장비가 증가하고 경제성장이 둔 화하자75세이상노인은스스로 죽음을선택할수있게하는법이 시행된다. 공무원들은 노인들에 게죽음을권유하고, 죽기로결심 하면위로금을주고장례도치러 준다. 노인들은 마지막 온천여행 을다녀온후목덜미에패치를붙 이고조용히생을마감한다. 너무 섬뜩한가? 거의모든선진국이고령사회로 접어들었다. 이제우리는모두죽 음의 질에 대해 생각해야하고‘ 만일의 경우’에 관해 가족과 대 화해야한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하는 화두 는바로‘오늘나는어떻게살것 인가’를생각하게한다. <LA미주본사논설실장> 어떻게 죽을까 정숙희 의 시선 뉴스ㆍ속보 서비스 www.HiGood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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