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3년 8월 15일 (화) D www.Koreatimes.com 전화 770-622-9600 The Korea Times www.higoodday.com 한국판 “조국이 이렇게 좋구나. 나도 조국의 부름을받아무슨일이든할결심이되 어있었다.” (1946년경찰전문학교시절 을회상한전창신경감)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난지갓열달이된1946년6월. 고 된경찰학교훈련에도다섯아이엄마전 창신(1901~1985)의 눈은 반짝였다. 열 두살에독립군에입대한이후늘품었 던 소망, 바로‘조국’을 위해 일하고 싶 다던꿈이마흔다섯나이에이뤄졌기때 문이었다. ★관련기사3면 1946년 경무부(미군정 경찰조직)에서 처음모집한여자경찰간부시험에지원 한 전창신. 그는 18세에 함흥영생여고 교사로 일하면서 3·3운동(함흥의 3·1 운동)을주도하다 8개월간옥고를치른 독립운동가다. 경찰전문학교졸업후 1 기 여자경찰간부(경사)로 임용된 그는 오늘 78주년 광복절 해방이듬해여경간부후보 16명선발 다음해서울등 4곳여자경찰서창설 ‘순사’ 이미지벗으려항일지사들중용 “근거부족” 서훈심사선상당수보류 대한민국여경의뿌리,독립운동가들이었다 서울중부경찰서보안계, 서울여자경찰 서보안주임등을거쳐인천여자경찰서 장을역임하며경감까지진급했다. 미군정 때인 1947년 설치된 여자경찰 서는△여성신체수색△여성범죄정보 수집△여자유치장관리△전쟁고아보 호 등을 전담하는 곳이었다. 해방 이후 경찰에투신했던여성독립운동가는전 창신서장뿐만이아니었다.어린나이에 태극기와선언문을 제작·배포해 3·1운 동을 주도한 고등학생, 상하이와 부산 을 오가며 군자금을 모집하고전달했던 전달책까지. 대한민국여경의뿌리는앞 장서“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애국지 사들이었다.경찰청에따르면,해방이후 경무부 여자경찰국 소속으로 활동했던 여성경찰은약250명규모로추산된다. 여경의역사는해방직후인1945년10 월에시작된다.당시미군정은미군주둔 지역내풍기문란단속을위해여자경찰 제를도입했다. 미군정은당장의치안유 지를위해일제의조선인순사들을군정 경찰에그대로흡수했는데, 독립운동가 를고문했던순사들이광복후에도권력 을휘두르자시민들이따를리없어 독 립운동에 헌신했던‘여성’이 필요하다 고판단한것이다. 이승엽기자☞3면에계속 | (02)724-2114 | 2023년8월15일화요일 제23434호 | ★ 뫎엶믾칺 3 졂 ( ) Ԃ 3 졂펞몒콛 ( ) ( ) Ԃ 4 졂펞몒콛 ( ) ( ) ★ 뫎엶믾칺 5·19 졂 ( ) ( ) ( ) Ԃ 5 졂펞몒콛 에 몒콛 황현숙전치안국여자경찰과장 ● 최초의여성경무관 ● 1919년충남 천안 3·1운동주도,유관순열사등과함께옥고 안맥결전서울여자경찰서장 ● 도산 안창호 선생의조카 ● 1919년평양 3·1운동,임정군자금모금단체 ‘결백단’활동 양한나전서울여자경찰서장 ● 여자경찰의맏언니 ● 1919년상해와부산 을오가며군자금모집및전달 전창신전인천여자경찰서장 ● 1919년함흥3·1운동주도 ● 일제경찰출 신이익흥내무부장관부임에반발해사표 이양전전부산여자경찰서장 ● 1919년3월경성여고보동기들과비밀단 체결성,3·1운동선언서인쇄·배부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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