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3년 10월 27일 (금요일) 오피니언 A8 기고문 (애틀랜타거주) 김대원 딕라이트작 케이글 USA 본사특약 시사만평 새 하원의장 선출 연방하원의장 존슨 미궁에 빠진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 지난 10월 7일새벽하마스가이 스라엘을 기습 공격해서 1천여 명 의무고한인명을살해하고2백여 명의인질을잡고대치하면서시작 된전쟁으로양측에서 1만여명의 사상자가발생한것으로보도되고 있다. 이번 전쟁은 천부인권을 신 성시하는민주국가에서어떤명분 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극악한 범죄라는 데에는 이의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차제에 이스라엘 과 팔레스타인이 왜 이처럼 철천 지원수지간이되어서끊이지않고 피터지게싸우고있는지균형잡힌 시각으로근본적인이유를분석해 보고자한다. 서기 66년유대인열심당원들이 주동이 되어 제정 로마의 통치에 반발하는 유대인들의 봉기가 팔 레스타인에서 불붙었다. 그 후 3 년만인 70년로마의명장티투스 의 군대에 의해서 예루살렘은 초 토화되었고유대인들은세계각처 로 흩어지게 되어서 그 때 유대인 들의제1 차디아스포라가형성되 었다. 가나안 땅은 원래 필리스틴인(지 금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고 있던땅이었다. 여기서간과할수없는것은다음 의 몇 가지 역사적인 사실이 지금 의 비극을 자초한 것이라는 생각 이든다. 첫째 구약성경의 창세기 12장 1 절에보면여호와께서아브람에게 너의 본토 친척을 떠나 내가 지시 할땅으로가라는구절이나온다. 그들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유대 인들의영유권을주장하는근거가 바로그것이라는것이다. 4천년전고릿적이야기이다. 현 대로접어들면서1914년세계1차 대전이 발발했다. 영국 프랑스 러 시아는 협상국이었고 독일 오스 트리아, 오스만 제국은 동맹국이 었다. 중동 국가들 대부분은 팔레스 타인을 포함해서 당시 막강한 오 스만 투르크의 지배하에 있었다. 1918년 오스만 제국이 1차 세계 대전에서 패전함으로 해서 6백년 간을유지해온오스만제국은무 너지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 다. 그후영국이팔레스타인을장악 했으며그때부터팔레스타인은뜨 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그 이유는 유대인들에게 팔레스타인은 야훼 하나님이점지해주신자기조상들 의 고향이었기에 한치도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이며 또한 아랍인들 에게도예루살렘은이슬람의창시 자인무하마드가천사가브리엘의 도움으로 승천해서 알라를 만난 다음 계시를 받고 지상의 통치를 위해서다시내려온곳이기에가장 신성한 땅으로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둘다팔레스타인에국가를설립 하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1914년 에 시작되어서 1918년 종전이 되 기까지 영국과 프랑스가 꿈꾼 동 상이몽의속내는다음과같았다. 영국은 어떻게 산유국들을 자 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회유 할 수 있을까 하고 고심하던 중에 1915년 당시 영국의 외무장관 맥 마흔 공작이 아랍 세계의 정신적 지주였던샤리프후세인에게이스 라엘 모르게 비밀리에 협상을 제 의했다. 만일 너희들이 우리들의 편에서 협조하면오스만의지배하에있던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모든 아랍 국가들의독립을보장해준다는벨 프어(Balfour)선언을하게된것이 다. 물론 같은 아랍연맹인 팔레스 타인에게도독립된국가를건립해 준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의제였 다. 자신들이 꾸민 각본이 잘 먹혀 들어가자 1916년 영국의 대표인 마그 사이크스와 프랑스의 대표 인 프랑수아 피코가 은밀히 만나 서시리아와쿠웨이트를기준으로 북쪽은 프랑스가 가져가고 남쪽 은 영국이 가져 간다는 이른바 전 후논공행상의비밀조약인사이크 스-피코조약을맺었다. 레반트 지역에서 오스만 제국에 게 열세에 몰린 영국은 아랍인들 모르게 바닥이 난 전쟁비용을 마 련하기 위해서 1917년 유럽 금융 계의 대부격인 유대인 자본가 로 스차일드 가문에게 다음과 같은 결정적인제안을하게된다. 너희들이 영국을 도와준다면 그 토록 꿈꾸던 유대인 향토국가를 팔레스타인에 건설해준다는 빅딜 을성공시킨것이다. 영국은 이처럼 아랍대표와 이스 라엘그리고팔레스타인대표들에 게 약속어음을 마구 남발했던 것 이다. 영국이이들에게해준 3중비밀 조약이오늘날이스라엘과하마스 전쟁의직접적인도화선이되었다 고말할수있다. 1차 세계대전은 연합국 승리로 끝나고 난 뒤 디아스포라에 흩어 져살던유대인들중68만명정도 가세계도처에서팔레스타인으로 몰려들기시작했다. 2차대전 후 팔레스타인들과 이 스라엘의 건국 문제를 주 의제로 1947년UN총회가열렸다. 그때팔레스타인지방을유대인 과 아랍인으로 나누자는 분할국 가 설립안과 두 민족이 함께 연방 을 만들자는 연방안 두개의 의견 이제시되었다. 투표 결과 이스라엘의 압력으로 미국이주도한분할안이압도적으 로 통과되었다. 당시 영국은 기권 표를던졌다. 전체 인구의 10% 밖에 안되는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의 56%가 넘는 좋은 땅을 차지하게 되는불합리한조약이었기에유대 인들은 쌍수를 들어 모두 찬성했 으나 아랍인들은 결사 반대하였 다. 1948년5월14일이스라엘은건 국되었고같은해에아랍국가들이 동맹을해서이스라엘의국가건설 에반대하는제1차중동전쟁이발 발했고56년에2차67년에3차전 쟁이터졌다. 그러나 4억이 넘는 인구를 가진 아랍연맹이었지만 막강한 군사력 을가진 6백만의이스라엘을당해 낼재간이없었다. 3차6일전쟁이후이스라엘은아 예 서안 지구 및 가자지구를 병합 해버렸다. 그후이스라엘의정착촌확대와 차별로 70만 이상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이인근의요르단과이라크 레바논지역으로쫓겨났다. 1993년 PLO의장인 야세르 아 라파트가 독립을 위해 노력한 끝 에 이스라엘과 합의 하에 UN의 옵서버국가로인정받아서요르단 강 서안 라말라 지역에 유명무실 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세웠 다. 팔레스타에남아있는사람들은 이스라엘의감시하에숨죽이며살 아가고있었는데이젠아예4천년 전부터 조상들이 살아온 삶의 터 전을송두리째빼앗기고마치 2천 년 전 방랑하던 유대인들의 신세 로전락해버렸다. 우리는일제강점기때국권을찬 탈당했던 민족의 후예로서 왠지 팔레스타인사람들이겪는비애가 남다르게우리들에게공명으로다 가오는것같다. 철학자 헤겔은“인류가 역사로 부터 배운 유일한 점은 역사로부 터 배운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라는의미심장한말을남겼 다. 월남전에 참전했던 한 병사로서 나는 전쟁의 참상을 너무도 잘 알 고 있다. 과연 호모사피엔스의 미 래는있는것일까? 종우(宗愚) 이한기 (국가유공자·미주한국문협 회원·애틀랜타문학회회원) 내 마음의시 고향의 가을 내음 무료(無聊)한가을날의아침 어디로가야만붉게물든단풍을 눈요기라도할수있을까! 어디로가면가을걷이하는일꾼들과 새참한그릇할수있을까? 가을이성큼내곁으로와주었건만 울긋불긋,넉넉했던그가을은 지금어디에꼭꼭숨어있을까? 붉게익은감,대추,석류 주렁주렁매달린그가을은 어디로갔는지만날수없구려 오래전낯설고물선땅에 나그네된한늙은이 몹시도맡아보고싶은내음 울긋불긋,넉넉했던 내고향의그가을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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