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3년 12월 4일 (월요일) D6 기획 1. ᫥₁⋚ᅚܵ᪊ᛒ⫹ᗁ૙℡᎑⎉᎒Ὴᾎⅅ⼡኱⇍੩⅁⎉੥ವ㋉㋐ⅅ⫹ᗁ૙೉⼲Ჭᾙ ߁ ׍ ⇞◱⼡ഡᙍᱭἧ⃩፵ᾙᝉ◲ෙഡ⽒᫩⎉ⴄ᎙ℽଡ଼᾵⅑ಭ㍗㜬 ℽ⼥、߹⅙ 2. ⎉੥ವ㋉㋐ⅅ⅁߹♢ᾏౝ᪊ᛒ⫹ᗁ૙Ꭽ⸥᭕ᾙ⁽Ὴ⋚ಱ຺ℍἕ፵ౝἑ੽ᔁℽ׉຦ ᝉ◲ළ⅑ಭ㍗㜬 ℽ⼥、߹⅙ 3. ᪊ᛒ⫹ᗁ૙᎑⎉᎒Ὴᾎⅅ⅁⎉੥ವ㋊㋇ⅅℽ੩ₙ⋅ᾙ᫥ඍ◲⼥Ქ⁁ᙍᱭ℡⁽⽒ⅅᚽ׉ ೉⼲Ჭ☎᪊⃍ᾙଡ଼᾵⅑ಭ㍗㜬 Ᾱ⼲ఽᱭ 4. ⁽Ὴ⛑߹ᙍᱭᲂ◱Ⅾ℅ሥẹℽഡ૜℉ ھ ׍℉⿍ⅵ⅙ජ◱⼢ₙ⋅⽒Ⅾ℅ሥ㍘Ⅾ߹ ⋅◱Ⅾ℉⅁ ߅ ೉⿞᎑ⲁ⎊ₙ⋅◱Ⅾ℅ሥℽ⁲෡ ک ⅑ಭ㍗㜬 ℽ⼥、߹⅙ 5. ೉⼲ᲭሥẹΈഡ૜℉ ھ ׍℉⼥༕⋚ ک ⅙ජ◱ᎭⅮ⇍ᲥⅮ℅ሥẹℽಭℽ੽⼡኱ ≎ⅅ⇍຺∹◱⣥⎉⎉ἓౝᙍᇭ⎍ ھ ׍℅ሥᚉ⽑ಭ㍗㜬 ℽ⼥、߹⅙ 2 1 인 제, 홍천, 원통, 거진, 청주, 수원, 여주…때 묻은흰색플라스틱팻말에 전국곳곳의지명이굵은글씨로 적혀있다. 서울중랑구 상봉터미널의마지막영업일을 하루앞둔지난달29일수년에 걸쳐축소돼온터미널대합실에 마지막까지남겨져있던행선지 팻말이다. 이팻말들을달고승객을기다리던 버스가수십대였던적도있었지만현재이 중쓰임새가있는것은 ‘상봉동’, ‘구리’, ‘문막’, ‘원주’ 네종류뿐이다. 구리와 문막은이날까지상봉터미널에정차하는 유일한노선인상봉-원주구간의중간 정류장이다. 시대의변화에휩쓸려예기치못한끝을 맞은것처럼보일수도있지만사실 상봉터미널의쇠락은예정돼있었다. 서울시는1970~1980년대야심차게 시외버스터미널재편성을추진하며 상봉을포함한6개터미널을계획했지만 이중실제로건립돼현재까지명맥을 유지하고있는것은단두 곳(남부·동서울)뿐이다. 상봉터미널이 1985년영업을개시해1997년부터 폐쇄를추진한사실을고려하면수십년은 기능해야할거점시설이불과수년만에 제기능을잃기시작한것이다. 가장결정적인요인은시내교통과의 연계부족이었다. 서울시는1981년8월 상봉터미널부지를결정고시하며 “지하철역부근에잡아도심까지의 연계수송이최대한편리하게할 계획(”상봉동에시외버스터미널“, 한국일보, 1981년8월9일자)”이라고 밝혔지만인근에지하철역이들어선것은 1996년7호선상봉역이처음이었다.이는 운영사 ݫ 신아주가첫폐쇄신청을내기 불과1년전으로, 상봉터미널은이미10여 년간점진적으로시민들에게외면받아온 셈이다. 존재감이희박했던강변역이 동서울터미널준공후시너지를내며 폭발적으로성장한것과대조적이다. 서울시는시내버스노선을다수 변경하며상봉터미널을경유하도록 했지만이미전철로넘어가기시작했던 시내대중교통의대세를뒤집기는 역부족이었다. 노선운행거리가길어지자 시내버스운행사들이수익성저하를 이유로변경노선을준수하지않고 정차하지않는문제도발생했다. 시내교통여건이완비되지않은채 서둘러운영을개시한터미널을이용할 수밖에없었던시민들의불편은컸고, 서울시는결국1989년상봉터미널에 배정됐던춘천·속초행시외버스노선을 동서울터미널에넘기며상봉터미널의짧은 전성기에종지부를찍는다. 2만명이넘던 상봉터미널의일평균이용객은단10년 만에4분의1토막나며5,000명대로 곤두박질쳤다. 상봉터미널건립근거가된당시 서울시의시외버스터미널시외곽이전방침 자체가 ‘시내교통혼잡해소’라는1차적 목표만고려한주먹구구식정책이었다. 동부, 서부,남부, 북부, 영동, 망우(상봉) 등서울을방사형으로둘러싼 6개 터미널로시외교통수요를분산하려 했지만이중원안대로건립·유지된곳은 동부(현동서울터미널)단한곳뿐이다. 얼핏보면6개터미널이시외곽방위마다 적절하게배치된것처럼보인다. 그러나 상봉터미널처럼실질교통여건이 열악하거나시스스로가추진중이던다른 개발계획과상충되는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서울은평구서부터미널은상봉과 마찬가지로시내교통연계가부실하고 열차등에교통수요를뺏겨2015년앞서 폐업했다. 영등포구당산동과 (당시)강남구서초동에건립예정이었던 영동·남부터미널은동시에추진중이던 공동주택단지개발을고려하지못해 뒤늦게현남부터미널로통합됐다. 도봉구 창동에계획된북부터미널은유야무야 무산됐다. 시당국스스로가추진한개발 정책과합을맞추지못하고장기적안목 없이 ‘일단추진하고본’, 실제이용객 편의와지속성을고려하지않은 도시계획의말로인셈이다. 이한호기자 38년간의추억만내려놓고$ 상봉터미널마지막버스가떠났다 3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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