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4년 3월 2일 (토요일) A5 종합 또 항공기 유리창 균열 뉴욕발 AA기 비상착륙 뉴욕JFK공항을출발해스페인마드 리드로향하던아메리칸항공여객기가 이륙 2시간 만에 유리창 균열 문제로 보스턴에비상착륙했다. 연방 항공청(FAA)에 따르면 지난달 28일오후7시28분께JFK공항을이륙 해 마드리드로 향하던 아메리칸항공 94편(보잉777-200)은 오후 9시46분 께유리창균열로2단계경보가발령되 면서기체를돌려오후 10시께보스턴 로건국제공항으로비상착륙했다. 착륙 후 항공사는 기체 점검을 거쳐 29일오후4시께해당편의마드리드행 운행을 재개해 현지시각 1일 오전 5시 30분에 마드리드 바라하스 국제공항 에착륙했다. 잊혀져서는안되는3.1운동민족대 표33인의일원이자독립지사였던최 성모선생,조국의독립에앞장섰던그 의 뜻을 그 누구보다 가슴에 새기는 미주한인이있다.바로뉴저지주버겐 필드에 거주하는 증손자 최선일(75) 씨다. 최씨는 본보와의 3.1절 105주년 특 별 인터뷰에서“증조부의 삶을 돌아 보며 독립유공자가 잊혀져서는 안된 다는 메시지를 꼭 전하고 싶었다”고 힘주어말했다. 1873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난 최성 모 목사는 1884년 14세 나이로 과거 에급제해진사가됐다.선비로의삶을 살던 그는 1905년 을사늑약 체결 후 정세가혼란해진시기에우연히남대 문에있던상동교회앞을지나다전덕 기목사의시국강연을듣고기독교인 이됐다. 1913년신학교를졸업후감리교목 사가됐고만주와해주등에서선교및 목회활동에전념하는동시에민중을 계몽하고민족정신및독립사상고취 에노력했다. 1919년독립운동에대한계획을전 해듣고적극호응해민족대표33인의 일원으로독립선언서를낭독했다. 일 제에 의해 옥고를 치른 그는 1921년 출옥한뒤에도독립운동과전도에헌 신했고 1936년 63세의 나이에 숨을 거뒀다. 1962년대한민국건국공로훈 장대통령장이추서됐다. 증손자최선일씨는최성모목사가별 세한 후인 1947년 태어났다. 최씨의 뉴저지주 버겐필드 자택에는 독립유 공자인증조부의자취를곳곳에서볼 수있었다.최씨가“우리가문의가보” 라며1921년경성감옥출옥당시의최 성모목사와아들최경환씨가함께찍 은사진을건넸다.또1917년4월최성 모목사의모습이담긴독사진도찾아 볼수있었다. 최씨는“언론에처음공 개하는사진”이라고말했다. 최선일씨는 1970년대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이민왔다.그에따르면한국 에는최성모목사의후손이없고모두 미국에서살고있다.그는인터뷰를통 해꼭하고싶은말이있다고했다. 독 립유공자에대한한국정부의무관심 을반드시바로잡고싶다는것. 최씨는“증조부는경기도양주시교 현리에 있는 선산에 묻혔다. 하지만 80년대에선산이있던토지는정부에 의해반강제로수용돼예비군훈련장 으로 변모됐다. 3.1운동 민족대표의 묘소가볼썽사납게방치된것”이라며 “후손들의간곡한요청에 2006년증 조부의묘소가국립대전현충원으로 이장됐지만당시국립서울현충원에 자리가없다는이유로민족대표33인 중유일하게대전현충원으로가게된 것이많이아쉽다”고말했다. 그는이어“선산에는가문선조들의 묘소들이 여전히 있다. 지난 2010년 께선산을방문했을때훼손된묘역을 보여너무나안타까웠다”고말했다. 최씨는“후손이해외에살고있다는 이유로독립유공자의묘지가있던토 지가 훼손되고 이렇게 잊혀져서는 안 된다”며“미주한인들이독립지사후 손의간절함호소에귀를기울이고함 께목소리를내주기를간절히바란다. 조국독립을위해삶을바친민족대표 최성모 목사가 영원히 잊혀지지 않고 우리의후손에게계속기억될수있도 록 한인들이 힘을 모아달라”고 강조 했다. 서한서기자 “선조들 독립정신 되새겨야” 독립선언서 낭독 33인 민족대표 최성모 목사 옥고 치른후 사진 공개 재미 증손자 최선일씨 “무관심 바로잡아야” 기미년 3·1 독립선언에민족대표 33인중한명으로참여한최성모목사의증손자최선일씨가 그동안공개되지않았던최성모목사의사진을들어보이고있다. ■ 105돌 3·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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