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4년 3월 2일 (토요일) D3 종합 “택시비먹튀집쫓아가 대문 발로 차 “ 강도짓하려던손님들골탕먹이기도” “5,000년역사의권위에의지하여 독립을선언하는것이며, 2,000만민 중의충성을 한데모아 독립국임을 널리밝히는것이다!” 1일오후 2시서울종로구탑골공 원 팔각정. 1919년 3월 1일 그날처 럼, 독립운동가정재용 ( 1886~1976 ) 선생이등장했다. 인공지능 ( AI ) 으 로 복원된정선생은 105년전팔각 정에서기미독립선언서를직접낭독 했던서른셋의혈기넘치는청년이었 다. 그가 독립선언문을꺼내카랑카 랑한 목소리로 조국 독립을 선언하 자,지금딱서른세살인정선생의증 손자인정연규씨도 “조선이독립한 나라이고, 조선사람이자주적인국 민이라는 것을 선언하노라”라고 외 쳤다.두사람이여섯문단으로압축 된독립선언문을세문단씩나눠5분 가량 낭독하자, 불교와개신교 등 7 대종단대표와 광복회장, 시민들도 “만세”를부르며감격을되새겼다. 매년 3·1절마다 기념행사가 열리 는 탑골공원에서올해색다른 풍경 이펼쳐졌다. 첨단기술을 활용해정 재용 선생의청년시절모습과 목소 리를 구현해증손자 정연규씨와 나 란히독립을외친것이다. 행사를준 비한 서희숙 종로구 문화유산과장 은“정재용선생의손자와후손들이, 정선생의생전 육성이담긴카세트 테이프와 활동 사진을 잘 보관하고 계셨다”며“그것을받아복원한것” 이라고설명했다. 독립선언낭독으로 3·1만세운동 물결이전국으로 퍼지게한 정재용 선생은 1919년 8월체포돼 2년 6월 형을 선고받고 평양에서감옥 생활 을했다.출옥한뒤에는독립운동단 체인의용단에가입해항일운동에투 신했다. 1977년에건국포장, 1990년 에건국훈장애국장이추서됐다. 정 연규씨는 “생전에뵌적이없는 ( 증 조 ) 할아버지를이렇게뵐수있어감 회가새롭다”며“독립운동가분들을 생각하면마음이무겁고 감사할 따 름”이라고했다. 탑골공원의원형을되찾기위한개 선사업선포식도이날열렸다. 탑골 공원은 조선시대 원각사터에 세운 서울 최초의근대식공원이다. 1919 년 3월 1일민족대표 33인의이름으 로독립선언서가낭독된‘3·1 운동의 성지’로 1991년사적으로지정됐다. 그러나 1967년현대화 차원에서공 원주변에 상 가건물 ( 파 고다아 케 이 드 ) 이지어지면서동·서· 남 · 북 4 개의 문중서문이사라졌다.1983년 상 가 가 철거 되면서서문은 원 래 자리가 아 닌 지금위치에세 워 졌지만문화재 적가치를 잃 었다. 종로구는 앞 으로 서문복원, 탑골공원개선 작 업에 돌 입한다.정문 헌 종로구청장은“탑골 공원의역사·문화적가치를 재조명 하고고증을 통 해원 래 모습을찾 겠 다”고 강 조했다. 박민식기자 1일서울탑골공원에서열린제105주년3·1절기념식에서인공지능(AI)기술을활용해105년전조국독립을염원한 33세청년독립운동가정 재용(빨간색점선원)의모습이구현돼증손자정연규씨와함께독립선언서를낭독하고있다. 연합뉴스 1919년3월1일독립선언낭독 당시서른셋의모습AI로복원 증손자정연규씨와 독립외쳐 ‘3·1 성지’탑골공원개선사업 사라진서문재건등원형복원 Ԃ 1 졂 ’ 펺컿 킪믾칺 100 뼒 ’ 펞컪몒콛 어 느 분 야 가 안 그렇 겠냐 만, 택 시기 사일도여성에게 녹록 지 않았 다.여성 이라는 이유만으로 얕잡 아 보고, 스 스 럼없이성희 롱 을 해대는 남 성손 님 을 상 대해 야 했다. 정옥씨는인터 뷰 에 서“조수를치 워 라,내가운전대에 앉겠 다는 둥별별 추 잡스 러운 농 을다 걸 지 요 ”라고했다.그 때 나지금이나 상황 은 별반달 라진게없다. 공무원을 관두고 택 시기사를 택 한 장 윤 서 ( 67 ) 씨는 올해로 10년차다. 평 소 운전을 좋 아했기에일이고되진 않 다. 하나만 빼 고서다. “처음에선 배님 들이‘ 커 트 머 리로 자르라’고 하 더 라고 요 .” 시 간 이지날수 록 그 의미를 절절 히 깨달았 다. “한 번 은 차 안 에 방향제 를 뿌려놨 는데, 어 떤 손 님 이 ‘어 디 서! 분내 냄 새를 풍 겨 . 일 찍집 에나 가라!’ 고 소리치기도 했 죠 .” “만만하게 보 이지 않 기위해서” 많 은여성기사들이 짧 은 머 리를 선 호 한다고 윤 서씨는 생 각한다. 커 트 머 리를 수 십 년 간 고수해 온 50 년차 택 시기사 김 종 남 ( 72 ) 씨도오 래 전 기 억 하나를 끄집 어 냈 다.“서울신 림 동 에서경기의 왕 시부 곡 동으로 가는 손 님 이었어. 따 블 ( 2 배 ) 을 주 겠 다는 거야 . 졸린 눈 을 부여 잡 고 도 착 했 더니집 에 가서 돈 을가 져 오 겠 다하 더 라고.”역시 나 손 님 은 집 으로 들어가자마자 형광 등을 꺼버렸다. “그 때알았 어, 당 했구 나.분을 삭 이다문 짝 을 발 로차버렸어. 계 속 차면서‘ 돈 은내 놔야될거 아 니야 ’ 소리쳤지.”그 간 자신을조 롱 했던수 많 은 손 님 의 얼굴 이 스 쳐지나가며 쌓 인 울분이일 거 에 폭발 한것이다. 믆앦솒 킪믾칺핊픎 ‘ 흞멏삲 ’ “전수한테는 1원한장을내고 꼭거 슬 러받지마 은, 내가 할 때 는신사가 1원 한 장 여자한 테 내 밀 고 20 전 받으 랴 고 서 잇 기는자 존 심 이 허락 하지 않 는지대개는 1원을 그대로 주고내립 니 다.” ( 동아일보 1936년1월 3일자신문 ) 그 래 도 운전대를 놓 지 않았 다. 택 시 의매 력때 문이다. 정옥씨는 100년전 차 별 을받을 때상 대의 뺨 을 때 리고 싶 을 정도로 속상 하다 했지만, 종종 손 님 들의 바 보 같 은모습을보며재미를 느꼈 다고했다. 좋 아하는 택 시일에 흠 뻑 빠져 결국 ‘동양 택 시’라는 회사를 인수해차량 10대를 거느린 사장 님까 지됐다. 지금도 마 찬 가지다. 핸 들을 잡 고이 런저런 사람을 만나면 즐 겁다. “사람 보는 눈 이 달 라 져 . 관 상 가가 된다 니 까 .” 종 남 씨가입을 뗐 다. 1980년대초 서울청량리에서 짙 은색 옷 을 맞춰 입 은 장정 4 명을 태 운 날이었다. 백 미러 로 흘끔흘끔 동 태 를 주시하던종 남 씨 는이들이한 건물을지 칭 하며신 호 를 주고받는 모습을 포 착 했다. “ 강 도 짓 을 하 려 는구나.” 확 신이들자 꾀 를 냈 다.운행도중 몰래 시동을꺼버리고손 님 들에게차를 밀 어 달 라청했다.“ 옛 날 에는 시동이꺼지면차를 밀 어 야 굴 러 갔거든 . 4 명이다 내리 더 라고. 그 래 서 그 냥 출 발 했지 ( 웃 음 ) .”여성 택 시기사 3 명은손 님 들을중매해준이 야 기, 손 님 을 태우 러구치소에 갔 던이 야 기등을 주고받으며 웃 음 꽃 을 피웠 다. “100 뼒쉲펢펺컿쿦킫펂칺않힎밆 ” “전 같 으면여자운전수노 릇 을하는 일이없었으나 오 늘 에와서 점점늘 어 가는이 쯤 에있으 니까 , 앞 으로이자동 차부를 순 연히여자로서구성해 놓 고 자생각 합니 다.” ( 조선일보 1932년1월 2일자신문 ) 다시100년이지 난 212 4 년에도여성 택 시기사들은 활동할 것이다. 그 때 는 좀더 사정이나아 질까 .정옥씨는“ 앞 으 로여성 택 시기사수가 늘 것”이라고했 다.그의 예상 은적중했다. 이들이그리는 미 래 는 하나다. 택 시 기사 앞 에‘여성’이라는 수식어를 떼 버 리는 것이다. 남녀 구분 없이 온 전히 택 시기사로일할 수있는 환 경이만들 어졌으면 한다. 은자씨는 “여성이이 용할 수 있는 공중화장 실 이 있었으 면 좋겠 다”고 말 했다. 서울에여성기 사가 마음 놓 고 사용 가능한 공중화 장 실 은 극 소수에 불과하다고 한다. 여자화장 실 문은 대부분 잠 가 놓 는 탓 이다. 윤 서씨도 거 들었다. “다음 100년뒤 엔 여성기사 님 들이 더 이 상 희 롱안 당 하고, 범죄 에 노출되지 않 고, 기사로 서 존 중받는사회가돼있기를소 망합 니 다.” 50년·40년·10년차여성기사인터뷰 호기심에이끌려, 목돈벌기위해$ 모두‘운명처럼’택시기사일시작 이정옥씨‘동양택시’회사직접인수 여성기사위한공중화장실태부족 “후배들일할 100년뒤 2124년엔 택시기사로서존중받는사회되길” 1일서울 종로구탑골공원에서열린제105 주년 3·1절기념식및탑골공원개선사업선 포식에서서문인근콘크리트담장철거작업 이시작되고있다. 뉴스1 ‘AI 정재용선생’이낭독한독립선언문 <독립운동가> 공무원을그만두고운전대를잡았다는10년차택시기사장윤서씨. 이서현기자 한국 최초 여성 택시기사 이정옥씨. 여성 택시기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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