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4년 4월 15일 (월요일) D4 기획 2 3 Ԃ 1 졂펞컪몒콛 첫출항.여객선이충남인근해로를지나제주를향하던 새벽,전영준은지하기관실에서당직근무를섰다.네시간 쯤일한뒤오전 7시30분이돼서야 3층선원객실로돌아 왔다.그는근무기록을정리하며숨을돌렸다. “쿵”하는굉음이들린건한시간쯤흐른뒤였다.믿기지 않는일이었지만,거대한배가왼편으로크게휘청했다.전영 준은균형을잃고넘어지다침대에허리를부딪혔다.정신을 부여잡으며기울어진선실을기어올라복도로나왔다.새파 랗게질린다른기관부선원들이보였다.전영준과동료들은 배가급격히기울고있음을느꼈다.경험많은기관장박기 호는침몰선에서살아남을수있는방법을직감했다. “일단 나가자. 배밖으로 떨어지지않게손을 잡고 3층 갑판으로가자.” 선체에물이더들어오면빠져나갈길이없다고 판단한 것이다.이는 승객을내팽개치겠다는선언이기도했다. 하 지만박기호의말에토를단선원은없었다.이들의 승선경력은모두달랐지만배가위태로워지면승 객부터지켜야한다는건뭍사람도아는기본이다. 선원들은승객을버리고구조보트에올라탔다.해경이구 한첫탈출자들이었다.얼마뒤선장이준석도팬티차림으 로해경정에급히뛰어올랐다. 횒쿦펞멚폶 ‘ 졷칺픦힎 ’ 전영준은목숨을부지했지만,대신‘책임의시간’을마주 해야했다.배에탔던승객등 304명이죽었다.선원인그가 살려야했던사람들이다.판사는구조책임을다하지않은 전영준에게징역1년6개월을선고했다.선원중가장가벼 운처벌을받았다.배가뒤집힐때허리를크게다쳤고승선 기간이하루에불과했으며침몰에대한직접책임이없는기 관실에서일한점이참작됐다.하지만그가승객을버린범 죄자라는사실은바뀌지않았다. 전영준은선사가왜그토록자신에게목을맸는지재판 을받으며알게됐다. 그가 탔던배는늘뒤뚱거리며바다 위를떠다녔다. 선사는건조된지18년된낡은선박을사 들여승객을더태우려개조했다.화물을하나라도더싣기 위해배의균형을잡아줄평형수까지덜넣었다. 선사는돈벌이에브레이크를 걸 수있는자들을 매 수했 다.인 천 해 양 경 찰 청해 상안 전과장 장지명도 타깃 이었다. 인 천 과제주사이를오갈배의 안 전을 최종 점 검 해야했던 공 무원이다. 하지만선사의돈으로 성산 일출 봉 과해 녀 박 물관등을다 니 며제주관 광 을 즐긴 그에게제역 할 을기대 하기는어려 웠 다.이 후 대형여객선은아 슬 아 슬 하게바다 를떠다 니 기시작했다.선원들은“대한 민국 에서가장위험 한배”라며뒤에서 속닥 거렸다.불 안 감을느 낀 이들이 잇따 라 퇴 사했고, 빈 자리에전영준이 채용 됐다.모 든 일은 결국 돈때 문 에시작됐다. 몇푼 더벌어보려는선사의 탐욕 이수 백 명의승객을 삼 켜버렸다. 전영준이수감된지두달쯤지 났 을무 렵 ,집에서 연락 이 왔다. 딸 이죽었다는 소식 이었다. 자 식 중 유독 정이가던 아이였다. 허리 통증 이나 피 부 병 은 죗값 으로 생각 하고받 <1>죄와벌上 ‘수인번호 4121’전영준의때늦은편지 아들였지만, 딸 의죽음은그를 공황 으로빠 뜨 렸다.자 식 을 잃고나 니 고 교생 이 잔뜩 탔던배에서도주한죄의무게를 비 로 소절 감했다.의 미 없는 후회 만 깊 어 졌 다. 목사장 헌권 으로부터편지가 온 건그때쯤이었다. 생 면 부지의 종교 인이었지만 붙 잡고 쏟 아내고 싶 었다. 늙 은죄 수는 세상 을떠 난딸 을위해기도해달라고부 탁 했다. 장 헌권 에게도 착 한 또 다른 답 장은조 타 수오 용 석이보 낸 것이었다.그는편지에‘배벽면이부실해바 닷 물이들어 온탓 에침몰 속 도가 빨 랐을수있다’는 취 지의주장을 적 었다.일 종 의 양심 고 백 이었다. 오 용 석은징역 2 년을선고 받았다.동료들과 함께 도 망 쳤지만,해경정을 타 고다시여 객선 쪽 으로돌아 와 해 머 로객실 유 리 창 을 깬 뒤승객 5 명 가 량 을구조한게참작됐다. 오 용 석은편지에서선장의무책임을 탓 했다.“배가넘어 간다고고 함 을 쳐 도보고만있었고승객들에게 퇴 선명 령 도하지않았다”고원 망 했다. 사실그는 3년전 비슷 한 사 고를 겪 은 적 이있다. 선원으로 탔던여객선에한 밤 중 큰 불이 났 다. 하지만, 결 과는전 혀 달랐다. 선장등이승객을 급히대 피 시켜화를면했다. 오 용 석은편지를보내고1년 반 뒤 폐암 으로사 망 했다.그 의나이60 세 였다.장 헌권 은“오 용 석이‘내무 덤 의 비 석에진 실을 밝혀 달라는 문 구를 써 달라’는 유 언을남 겼 다”고했다. 짆팖삲 , 펃풆삲 , 짆팖삲 … 팒삖 , 펃풆삲 ‘ 父母千年壽子孫萬世榮 ’ ( 부모 천 년수자손만 세 영 ) 3월8일, 붉 은 글씨 의부 적 이나 붙 은낡은아파트의 철문 앞 에섰다.부모는장수를 누 리고,자손은영화 롭 길 비 는내 용 이다. 문 을두 드 리자여 성 이나왔다.전영준의아내였다. 그는실제나이보다 훨씬늙 어보였다.남편은 8년여전출 소 했다.동네사람들의시선을의 식 했다면이사 갔 을법도 했지만,여전히그집에살고있었다. 아내는 안 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부부는건 강 을 꽤 나 챙 기는것 같 았 다.부 엌 과벽한편에는 양 파 즙 과 프 로 틴 등건 강 제 품 이어지 럽 게 놓 여있었다. 혈압 과 콜 레 스테롤 , 당 뇨약 도 눈 에들 어왔다.아내는 함께 사는자 식 이없는 데 도 커 다 란냉 장고 와 4인 용식탁 을 썼 다. 낯 선기 자를 혼 자대면하기어 색 했는지 친 언 니와 그의 남편을불 렀 다. 세 사람은출 소후 전영준의 삶 을 얘 기했다. ‘ 미안 하다, 억 울하다, 미안 하다 … 아 니 , 억 울하다.’ 집으로돌아 온 전영준의감정의 추 는하루 종 일 쉴 새없 이 움 직였다.배에두고 온 아이들얼 굴 이떠오를때마다 혼 자 뭔 가를중얼거리며 눈 물을보였다.그 러 나한편으로는 풀릴 길없는 궁핍 한 생활 탓 에 억 울 함 이 북 받 쳐 올랐다. 다 친 허리가 너 무아파수 술 을받아야했지만돈이없었다. 정부는여객선침몰의책임이있는 선사 와 선원들에게구 상권 을청구했다.전영준도 예외 가아 니 었다.월급을모아 둔 부 산 은 행계좌예금 도, 고향마을의100여평 짜 리 밭뙈 기도가 압류 당했다.아내가청 소 일을하며돈을벌었지만, 부부가 먹 고살만 할 정도는아 니 었다. 수 술비 1,000만원은아들이어 렵 게 융통 해왔다.전영준 은돈만 축낸 다는 생각 에가 족볼낯 이없었다.객기인줄 알면서도 할 줄아는 유 일한 업 인 뱃 일을하 러 나가기도했 다. 하지만허리가버 텨 줄리없었다.언 덕 길에서 미끄러 져 발 목마 저 다 친 뒤에는집에서 틀 어박 혀 지 냈 다. 그는 또 편지를 써 대기시작했다.이 번엔 목사가아 니 라 판사가수신인이었다. 혹 시가 압류 된 예금 을 되찾 을수있 을까 싶 어 읍소 의 글 을 썼 지만 소용 없는일이었다.전영준 의아내는 혼잣 말하 듯 법집 행 의 공 정 함 을 따졌 다.“그배 에서오 래 일한 누 구네는재 산 이다마 누 라이 름 으로돼있 어서하나도 안뺏겼 다던 데$ ” 밤 이제법 깊 었는 데 도전영준은집에오지않았다.집 안 을 둘러 보 니 그의 흔적 이보이지않았다. 흔 한가 족 사진이 나남 성 의 옷 가지도없었다.아내를바라 봤 다. “우리아 저씨 돌아가 셨 어 요 . 급 성췌 장 암 으로. 2 년도더 됐지,아마.진단받고 2 개월만에그 랬 으 니$ ” 아내는남편을떠올렸다.아버지 병 간호하느라직장까 지그만 뒀 던아들 생각 도나는 듯 했다. 세 월호에 타 지않았 더라면,그때도 망 치지않았더라면 $ 부질없는가정이라는 걸깨 달았는지이내 현 실로돌아왔다. “ 난저 것만 풀 리면 좋 겠어. 압류 돼있는거. 저 것만 좀풀 어주면살수있을것 같 아.” 죽은자도, 산 자도모 든 일은 결국 돈으로 끝났 다. 쩣헣펞톭팒힒풞잫 , 믆읺몮믆많빦퐢삲 전영준이사 망 한 그해 2 월 1 5 일 오 후 서울중 앙 지법의 417호대법정. 판사가판 결문 을다 읽 은뒤자리에서일어 났 다. 그 러 자방청석에서는원 망섞 인고 성 이터져나왔다. 검 은마 스 크를 쓴 사내가 혼란스러 운법정 안 에서빠져나 왔다. 피 고인석에 앉 았던전직해 양 경 찰 청장 김 석균이었다. → 하 ( 下 ) 편에계속 승객구조저버린기관부선원의후회 생면부지목사의양심고백요구편지에참회의답장 돈벌이노린회사가위험하게개조한배,모르고탔지만 한없는미안함과‘재산압류’억울함속암으로사망 ώᑎ 1. ∹߹ᯡ ۉ߹ ᝉₙ㍗߹ ۉ ᩵℡⎉Ქᾙᅅᗹ℡ ۉ߹ ㏖ᾝ⎍㍘ᗥ⇍߹㍘ᚽⅅᆵ຺㏗ℍᚽᯡ㍘ ۉ ፵⼡ౝᾶ⼩㍗ 2. ∹߹Ⅾ ∹߹ᯡ⋚✥⅍⅙㍗ 기획 감옥살이를하던전영준이장헌권목사에게보낸편 지(위사진)와세월호침몰당시승객구호조치를하 지않은채탈출한혐의(유기치사)로구속영장이청 구된선원들. 장헌권목사제공·한국일보자료사진 일러스트= 신동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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