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4년 6월 5일 (수요일) D3 기획 미국에서대중지시대를연이가조지 프퓰리처다.정론지 ( 政論紙 ) 가판을치 고있을때, 그는대중을정치적오염에 서벗어나게하고싶었다.그는미국남 북전쟁에북군 용병으로 참전했다가 퇴역한 헝가리출신이민자로, 영어조 차서툴렀다. 그러나언론지형을바꾸 는데는고매한지성이필요한것이아 니었다. 감각과열정이면충분했다. 그 는조그만신문을사들였다.기자들에 게정치문제에매달리기보다는대중에 게유익하고대중이흥미를 느낄만한 기사를개발하게했다. 대중은재빨리 호응했다. 퓰리처는 생전에미국의신 문왕이됐고, 퓰리처덕에미국언론은 정파신문 시대의긴터널을 지나 대중 신문시대로진입했다. 우리나라에서대중신문시대를열고 자한이가장기영이다.전쟁을겪고나 서도 우리언론계는 여당지와 야당지 로 갈려진흙탕 싸움에서빠져나오지 못했다.장기영은 1954년‘태양신문’을 사들이고제호를바꿔6월 9일‘한국일 보’창간호를냈다. 이신문은창간사설에서“신문은누 구도이용할수없고,누구도억제할수 없다”고천명했다.항시권력을감시하 고민중을대변할것임을다짐했다.한 국일보는 아울러자유경제사회를 옹 호하며,리얼리즘에입각한상업신문의 길을개척할것임을밝혔다. 그렇게하 여우리나라에서도대중신문시대를지 향하는새로운신문이등장한것이다. 한국일보 기자들은 새로운 저널리 즘을 구현하기위해솔선했다. 기자들 은정파적편향성을벗어나 사실을 사 실대로보도한다는기자정신에충실하 고자했다. 가장가까이에서전쟁을취 재하려다 순직한 최병우가 한국일보 기자였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아니 었다.물론더러미흡함도있고때로일 탈도있었다. 그러나많은기자의노력 이쌓여한국일보는기자양성사관학 교라는평판을굳혔고, 한국일보를거 쳐간많은기자가다른언론사에간부 로 뽑혀가 한국저널리즘 발전에이바 지했다. 언론환경이급변해한국일보가경영 난에봉착하자, 2015년동화그룹이이 신문을인수했다. 동화그룹은 편집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며한국일보 의전통을계승하고발전시켜왔다. 한 국일보는정정당당, 춘추필법, 불편부 당의자세로,정론지 ( 政論紙 ) 가아닌정 론지 ( 正論紙 ) 로거듭나기위해노력해 왔다. 그런노력이대중의눈에는아직 두드러져보이지않을지 모르 지만, 전 문가들사이에서는이미매우 긍 정적인 평가를 받 고있다. 대학에서저널리즘 을 가 르 치는 교수들 사이에서는 한국 일보의신 뢰 도가 압 도적으로 가장 높 다. 신문 방송 학과 학생들에게한국일 보는신문과 방송 을통 틀 어가장들어 가고싶은언론사로자리매 김 한지오 래 다.이런평판은 머잖 아 대중 사이에 서도빠 르 게 확산 할것이다. 여론시장의선진화를위해서는두가 지조 건 이 갖춰 져야한다. 하나는여론 의다양성이고, 다른 하나는 통 합 성이 다.여론은 좌 에서우에이 르 기까지다 양해야하지만, 다양한여론은 숙 의과 정을거쳐적 절 한시기에통 합 을이 뤄 야 한다.이런조 건 을 충 족 하기위해서는 언론사가역할을분 담 할필요가있다. 좌 우에서여러 날 개언론이다양한 의 사를 반 영하 되 , 중간에서 몸 통언론이 균 형을 잡 아 줘 야한다. 한국일보는창간 초 기부터정치면에 치중하기보다경제나사회문제를적 극 적으로보도해왔다.정파성에매 몰돼좌 우어느정파를대변하는일은 금 기로 여 겨 왔다.이런전통을 쌓은 한국일보 가 몸 통언론으로서여론시장의 든든 한 균 형추가 돼 야한다. 세계10대 강 국의 문 턱 에서있는 우리나라가 품격 있는 선진국이 되 기위해서는 반 드시 든든 한 품격 언론, 몸 통언론이있어야한다.창 간 7 0 주 년을 맞 이하는한국일보에대한 기대는이전의어느때보다 크 다. 좌우중심잡는‘몸통언론’필요한시대, 한국일보가균형추 돼야 “신문은누구도이용할수없다” 창간호에천명, 정파탈피노력 여론은좌우로다양해야하지만 적절할시기, 숙의거쳐통합필요 美정파신문종식한퓰리처처럼 한국일보가‘품격언론’역할을 창간70년특별기고 김민환 고려대미디어학부명예교수 한국일보 7 0년은 새로운실 험 과 도 전의연 속 이었다. 때로 실 패 하기도 했 지만,새로운시도는 또 다른도전의 밑 바탕이됐고 좁 게는한국언론계의발 전, 크 게는 대한민국의발전과 시민들 의 삶 을 풍 성하게만들었다. 70 뼒맒픦솒헒뫊킮 1954년 6월 9일, 첫 시 작 부터 혁 신이 었다.한자제호가일 색 이 던 당시,한 반 도 모 양의 흰배 경에한 글 로 쓴 제호는 파 격 이었다.2개면에불과했 던 당시신 문에두개사설을실은것도 획 기적이 었고, 시대상을 담 은 1 단칼럼 ‘지평선’ 도 새로운 시도였다. 지평선은지 금 까 지계 속되 고있다. 언론계최 초 시도는이 후 에도계 속 됐 다. 창간 직 후 한국언론 사상 최 초 로 견습 기자 공채 를 실시했으며해 외특 별 기고제 마련 ,사설가로 쓰 기, 점 자신 문 발 행 도 우리나라에선한국일보이 전에그어 떤곳 도시 행 하지않 았 다. 서 울과지 방 을가리지않고전국 모든곳 에최신 소식 을 동시인 쇄 하고, 휴 일없 는신문발 행 에나선것도한국일보였 다. 뉴 미 디 어시대에도 변화와 혁 신을 주 도,인 공 지 능 ( AI ) 뉴스 남용을 막 는 조항 ( 대 량 크롤링 ) 을 홈페 이지이용 약 관에명시하는한편,생성형 AI활 용 준 칙 도제정,운영중이다. 학 술 행 사, 문화 공 연, 스포츠 지 원 에서도 큰 족 적을 남 겼 다. 문 무 대왕 릉 , 반 가사유 석 불 발 견 으로이어진신 라 학 술 조사사업과 ‘재발 굴 - 한국 독 립 운동사’ 등이한국일보 후원 이었으 며, 에 베레스트 등정 · 남 극점 도보 탐험 등한국인의 극 지 탐 사도함 께 했다.미 스 코리아 선발대회거북이 마 라 톤 봉 황 대기쟁탈전국고교야구대회경부역 전경 주 대회 메디힐· 한국일보 챔피 언 십 ( KLPGA 투 어 ) 등은한국인의 건강 한 삶 을, 샤 갈전등다수의미 술 전시와한 국출판문화상 한국일보문학상 신춘 문 예 명인전 ( 바 둑 ) 등은시민들의 예술 적감수성을 높 이고문화수요를충 족 시 킨 기 획 물들이었다. 묻픒힎 몮짢붊홓슲 체 제를지 키 고권력형 비 리를파 헤 쳐 대한민국 공 동 체 의지 속 가 능 성을 높 인 굵 직한 특종 ,진한 휴머 니즘을 담 아사 회통 합 에기여한 감동 사연도 한국일 보를통해 7 0년간 쉬 지않고 뉴스 이용 자들에게제 공 됐다. 전통적으로 사 건·탐 사보도에 강 했 던 한국일보는 통진당 해 체 로이어진 이 석 기 녹 취 록 전문을 공 개하는 특종 ( 201 3 년 ) 을이 뤄 냈다. 김 대중정부의진 승현 · 이용호 · 최 규 선게이 트 , 노 무 현정 부 초 기양길승 청 와대제1부 속 실장호 텔 향응파문도권력감시임 무 에충실 한결과였다.이에 앞 서유신 체 제의 종 식 으로이어진 YH무 역생 산 직여성 근 로자의 마포 신민당사 농 성 ( 19 7 9년 8 월 ) 도한국일보가최 초 보도했다. 1 8 세때일 본 군 종 군위 안 부로 끌 려 간 뒤 55년만에 캄 보 디 아에서 소 재가 확 인 된훈 할 머 니의기구한 삶 , 범 국민 적 골 수기 증 운동을이 끌 어 낸 한인입 양아 성덕바우만 씨 사연도 한국일보 의 섬 세한 특종목록 에 올 라있다.한국 일보는 디 지 털 시대에도 방배 동 모 자의 비극 ( 2020년 ) 폭주 하는 유 튜버 ( 2022 년 ) 무 법지대코인리 스크 ( 202 3 년 ) 등 새로운 사회병리현상을 선도적으로 고발하고있다. 특종 에 강 한한국일보 의위상은 통계로도 확 인 된 다. 한국기 자 협 회에 따르 면1990년 9월부터시 작 된 ‘이달의기자상’ 가운데 202 3 년 말 현재한국일보 기자에게 돌 아간 경우 가 94회에달했다. 묻핊쫂많짾 핆핺슲 세상을바 꾼특종 ,선도적기 획 과 공 익사업이 잇따르 면서한국일보는기자 사관학교, 신문의신문이라는 별칭 을 얻 었다.언론계는 물론 한국일보경력 을 바탕으로 타 분야에서도 대한민국 에기여한많은인재가 배 출됐다. 언론계에서는 유신 체 제에서민 주 화 운동에 앞 장 섰던 천관우 ( 1925 ~ 1991 ) 전 논 설위 원 을 꼽 을수있다.문화부장 과 주 필을역임한 예 용해 ( 1929 ~ 1995 ) 씨 는인간문화재라는 용어를 첫 사용 하며우리전통 무 형문화재발 굴 에 크 게기여했다. 종합 일간지 첫 여성 주 필 과사장을역임한장명수 ( 8 2 ) 씨 는재직 시 절 ‘장명수 칼럼 ’으로 독 자들의사 랑 을 받 은국 내 대 표 여성언론인이다.정 광모 ( 1929 ~ 201 3 ) 씨 는 한국 소비 자연 맹 회장을역임하는 등 우리나라 소비 자운동의대 모 로불리기도했다. 정치권인사로는조세형 ( 19 3 1 ~ 2009 ) 전 민 주 당 상임고문, 오인환 ( 8 5 ) 전 공 보처장관, 박 실 ( 19 3 9 ~ 2022 ) 전의 원 , 정진 석 ( 6 3 ) 대통 령 비 서실장 등 이 한국일보와 인연을 맺 었다. 문인 으로는 신 석초 ( 1909 ~ 19 7 5 ) 시인과 조경 희 ( 191 8~ 2005 ) 수필가, 한운사 ( 192 3~ 2009 ) 작 가,이성부 ( 1942 ~ 2012 ) 시인, 김훈 ( 7 5 ) 소 설가 등이한국일보 에서도필력을발 휘 했다. 강주형기자 견습기자 공채^에베레스트등정^AI 활용준칙$한국언론^사회를바꾼 70년 1954 } 한국언론사상첫견습기자공채 1955 } 경부역전경주대회 1957 } 미스코리아선발대회 1957 } 최초뉴스전광판 1964 } 신라학술조사사업 1967 } 한국명인전바둑대회 1971 } 봉황대기고교야구대회 1977 } 에베레스트등정 1978 } 거북이마라톤 1991 } - 전국동시인쇄 - 휴일없는신문발행 1994 } 남극점도보탐험 1999 } 점자신문최초발행 2004 } 샤갈전 2017 } 베트남특파원 2022 } 메디힐·한국일보 챔피언십(KLPGA투어) 2023 } AI및대량크롤링방지이용약관 2024 } 생성형AI 활용준칙제정 ⼥ܶⅅᚽ℡᪑ሥ⁽Ქඍ ⋅⁝᩵ᾎ 혁신과도전의한국일보史 신라학술조사^봉황대기야구등 학술^문화공연^체육분야큰족적 이석기녹취록공개등다수특종 사회병리파헤친탐사보도선도 1954년6월9일한국일보창간호1면(왼쪽)과2015년재창간(61주년)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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