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4년 8월 10일 (토요일) 오피니언 A8 김정자 (시인·수필가) 행복한아침 지평선 하늘을 자주 올려다 보게 된 다. 흐리고 간간이 햇살이 보이 다가 오후가 되면 스콜처럼 한 바탕 비 설거지를 하게 만드는 일기가계속되고있다. 열대성폭풍데비영향으로하 루 내내 구름으로 일관된 날씨 라 오늘 하루만이라도 소나기 없는 날을 보내겠구나 하고 하 늘을올려다보는차에마른천 둥이 포효하듯 기세를 떨친다. 지축을 흔들 듯 무서운 회전음 을 내며 숲을 흔들어댄다. 우람 한 나무들이 깃발처럼 갈피를 잡지못하고허둥지둥흔들리고 있다. 정적이 흐르더니 한순간 멀쩡해진다. 얼마간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 기 창 밖이 어두워진다. 해넘이 시간은 아직인데. 온통 먹장구 름이 어둠을 몰고 밀려드는 기 세다. 요란한 뇌성 벽력이 하늘 을 휘젓는다. 하늘이 찢어질 듯 비명을 질러댄다. 갑자기 계기 일식이 시작된 듯 시가지가 어 둠에 둘러싸여 외등이 밝혀지 고 도로에 주행 중이던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빛줄기를 뿜어 내기 시작하자 억센 빗줄기가 퍼붓기 시작한다. 굵은 빗발이 퍼붓듯 흙바람을 일으키며 몰 려온다, 창을통해훅끼치는더 운 기운을 품은 매케한 흙냄새 가 망향을 불러일으키는 내음 으로 피어 오른다. 엄청난 빗줄 기를 쏟아부는 소나기도 더위 를 식히지 못하고 무르춤 물러 앉았다. 고층 시니어 아파트로 옮겨오 기 전까지 만해도 비오는 날이 면 글쓰기를 멈추고 창을 흔드 는 빗소리에 귀가 열리곤 했었 다. 책상앞에앉아바람소리가창 을 흔들어 대는 소리만 듣고도 가랑비인지 장대비인지 억수인 지짐작할수가있었다. 지붕위 로갑자기개구쟁이들이마당에 서할일없이마구구르는소리 가 나면 소나기가 지나가고 있 을 터였다. 심심해서 못 견디겠 다는듯잊을만하면툭툭처마 끝에 빗줄기가 드나들면 가랑 비가내리고있음이다. 이슬비나 보슬비는 문을 열 고 나가보아야 구분이 간다. 얌전한 새색시 맵시로 내리는 비라서 매무새 가늠이 쉽지 않 다. 안개처럼 뿌옇게 촉촉하게 감 싸는 안개비에, 이슬비보다 굵 고 세차게 내리는 작달비, 장대 처럼 굵고 거센 장대비에 멀쩡 하게 햇볕이 내리쬐는데 잠시 잠깐 지나가는 여우비, 하늘 둑 이 무너진 듯 퍼붓듯이 세차게 내리는 억수라 칭하는 비까지 다양하다. 가끔 산책길에서 안개비를 만나면 가던 길을 멈출 만 한 데도 빗속을 마냥 걸어가게 된 다. 안개비를 만나게 되는 날 이그리흔하지않음이라서. 여학교시절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 속으로 몇몇 친구들이 우르르 운동장으로 몰려나가 자 덩달아 사춘기 충동이었을 까 반 아이들이 모두 운동장으 로뛰쳐나가하늘을향해두팔 을 벌리고 빙글빙글 돌기 시작 했다. 누가 먼저였을까 환호성 이 터져 나와 소나기 빗줄기를 헤치며 번져 나갔다. 무언가 서 서히씻겨나가는것같았다. 교 복 치마에서 퍼런 물이 흘러내 려 종아리에는 푸른 물감이 줄 줄 흘러내리고 하얀 양말도 운 동화도퍼렇게물들었지만지금 도 그 시간이 떠오르면 야릇한 환희의 벅차 오름을 되새기곤 한다. 소나기와 연이 닿은 추억 이란 그윽하기도 하고 가물 가 물 분간하기 힘들만큼 가마득 하니 흐릿하게 남겨져 있는 부 분도있다. 소나기를 지나치게 과학적이 고 학술적 분석을 한다면 낭만 은 일찍이 물러나버리고 말 것 이다. 일상중에접하게되는소나기 를 포함한 비는 소리로 구분 짓 게 된다. 시에 표현되는 시인들 의빗소리를들어보면, 밤비소 리를 도란도란 양철지붕에서 울리는소리로묘사되기도했고 닭장 위에서 울리는 곡괭이 소 리로표현했다. 사나운 빗줄기를‘빗 발이 온 누리를 도리깨질 한다’로,‘싸 리비로 두드린다’로 구현했고, 사월에는‘미의음에’칠월이면 ‘솔의음처럼높아진다’고읊기 도 했다.‘진흙탕 물을 튀어 오 르게 하는 비에서 원시 내음이 번진다’,‘한여름 소나기는 소 잔등을 가른다’로 직설적으로 그리기도 했다. 국지성 호우를 시현한것일게다. 생애속에서만난갑작스런소 나기들로 하여 잃은 것도 많음 이요얻은것또한숱하다. 관계 소나기는 어쩔 수 없이 감내하 기도하지만갑작스레퍼부어대 는 소나기가 남긴 상처가 선명 하게 남겨져 있어 아쉬움의 색 상이심히어둡다. 반투명유리처럼속속들이보 이진 않지만 그 속을 제대로 들 여다 보면 자질구레한 더는 사 용 불가한 부서진 잔해들, 부패 로 분해돼 버려 기능을 잃고 회 복하기 어려운 잡동사니, 구질 구질한 결핍과 치욕과 모욕의 부유물들이 떠돌아 다니기도 한다. 철없는 아이들 마냥 하나 둘 따질 수도 없음이라서 인내 의 기도가 소모되어야 하는 힘 든 일들이다. 소나기로 인해 빚 어진 추억도 지난 일들도 잊고 싶거나 감추고 싶은 부분도 있 음이요, 낭만적으로 채색해두 고싶은, 위장막을치고싶은부 분도 있을 것이나 여학교 시절 소나기추억은낭만적인것으로 남겨져있음이라서두고두고간 직하고싶은마음이크다. 그시 절 추억만은 손때를 묻히고 싶 지않음이라서. 소나기기질이마음에든다.시 원하게 내리 쏟다가 언제 그랬 냐는듯말끔하게뒤끝없이기 세를 거둘 줄 아는 호탕한 기백 이 취향에 맞는다. 그렇다고 소 나기가 마음에 든다고 자주 찾 아오는일에는손사레를휘젓고 싶다. 소나기 뒷설거지는 늘 고 단함을 남겼고, 인생들이 퍼붓 는 소나기 역시 자중으로 세상 을 살아가야 하는 이치며,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무서워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기에. 인생살 이가빚어낸소나기빗줄기에서 도 역사를 바꿀 만큼의 영향력 이 내재되어 있음을 덧붙이고 싶다. 입추 절기가 들어섰는데 더위 가 여전한 걸 보면 소나기 역시 절기와 상관 없이 찾아 오려 나 보다. 예찬도할수없는, 밀어낼 수도없는소나기여. 소나기 포기하지 않을 용기 2016년브라질리우 올림픽. 남자 펜싱 에 페 개인전 결승에 오 른 20대 초반의 대한 민국 선수가 잠시 휴 식을 취하기 위해 앉 아있다. 점수는13대9,넉점 차로 벌어졌고 남은 시간은 3분. 2점만보 태면 헝가리의 노장 임레게저의승리다. 패색이짙어보이는상황에서사 내는 주문을 외듯이 중얼거린다. “할수있다. 할수있다. 할수있 다.후,할수있다.” 휴식을끝내고경기는재개됐다. 14대10. 그리고기적이일어났다. 젊은선수가내리넉점을따내며 14대14 동점을 만들었고 마지막 칼날이 상대 선수의 머리를 찌른 다. 15대14역전승. 우리모두가기억하는리우올림 픽 드라마의 주인공 펜싱 박상영 선수의이야기다. 2024년 파리 올림픽이 종반으 로 접어드는 지금 8년 전 올림픽 스타를 소환한 것은 결코 포기하 지않았던그의도전과현재파리 에서 펼쳐지고 있는 우리 선수들 의사투가오버랩됐기때문이다. 신유빈선수의탁구개인전 8강 전중계를보면서천성이‘새가슴 ’인 필자는 채널을 몇 번이나 돌 렸는지모른다. 그러다‘마음을 다잡고’그의 투혼 넘치는 플레이를 응원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나는 어떨까, 저상황에서도결코포기 하지않을,그런용기를낼수있을 까’. 앞서여자10m공기소총결 선에서 16세 반효진 선수의 금메 달을건슛오프를봐야만했을때 도그랬다.‘내가저순간, 저렇게 담대할수있을까.’ 유도혼성단체전패자부활전에 서10분가까이뛰고동메달결정 전에서도 서든 데스를 치렀던 안 바울선수. 독일팀과3대3으로비 겨마지막룰렛으로본인이또시 합을 치러야 했을 때‘무조건 이 기겠다’는다짐을했다고한다.그 리고는 초인적인 힘으로 이겨 결 국동메달을목에걸었다. 남자 펜싱 사브르 단체전 결승 때교체출전해생애첫올림픽무 대에 섰던, 그리고 내리 5점을 따 내며 금메달의 주역이 된 도경동 선수에게는이렇게묻고싶다.“그 렇게잘할자신이있었나. 그거침 없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 인가.” 어리석은질문에선수들은이렇 게 답했다. 리우와 도 쿄 올림픽 금메달에 이어 파리에서도 3관 왕을 차지하며 세계 최고 궁사 자리에 오 른 김우진은“오늘까 지는즐기지만내일부 터는 과거가 되기 때 문에 새로운 목표를 갖고 전진하겠다”며 그간의여정을보여줬 다. 유도최중량급김민종선수는개 인전은메달이아쉬워마냥눈물 을훔치며“하늘을완전히감동시 키기에는, 이정도로는부족한것 같다”며고개를떨궜다. 비록 주 종목 25m 권총에서 메 달을 놓쳤지만 10m 공기권총에 서은메달을딴후세계적인소셜 네트워크서비스(SNS) 스타가 된 김예지는“미친 사람처럼 훈련했 다”고말했다. 하늘을 감동시킬 만큼 피땀을 흘려야 하는 선수들 뒤에는 그들 을묵묵히후원하는‘키다리아저 씨’와같은기업들이있다. 올림픽무대위에태극기가오를 수 있도록 헌신하는 기업들의 지 원이 있어야 선수들이 오로지 훈 련에 집중하며 실전에서의 마지 막순간에도파이팅을외칠수있 는것이다. 더불어선수의노력과기업의지 원이최고의시너지를낼수있었 던비결은단체운영과선수선발 의공정함이다. 그래서올림픽무 대를 처음 밟고도 양궁에서 금메 달세개를따낸임시현이탄생할 수있었다. 폭염만큼이나 뜨거웠던 올림픽 도오는주말이면끝이난다. 어쩌면 15일 동안 선수들을 응 원하고 그들의 눈물에 공감했던 평범한 국민들의 일상은 경기장 보다 더욱 치열하고 눈물겨울지 모른다. 그들의팍팍한삶순간순 간이‘매치포인트’와‘슛오프’ ‘ 서든 데스’에 몰린, 그런 때일 수 있다. 그런데국가를대표하는선수들 만큼이나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 들이삶의터전에서벼랑끝에서 있을 때 누가 그들에게 포기하지 않을 용기를 불어넣어줄 수 있을 까. 최선을다하기만하면소박한 성취와 행복이 가능하도록 돕는 국민들의 키다리 아저씨 말이다. 그런누군가가이땅에있을까. 불 행하게도없어보인다. 2024년대한민국에서국민들의 손을잡아줄정부와정치는잘보 이지않는다. 박태준 서울경제TV 보도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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