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4년 10월 4일(금) ~ 10월 10일(목) A9 여행 ■걸어서만 볼 수 있는 비경, 동 강어라연 태백 검룡소에서 발원한 한강 원류는 골지천이란 명칭으로 흐르다 정선 아우라지에서 송 천과 합류해 조양강이 된다. 조 양강은 평창에서 흘러온 오대 천과 합류해 정선 골짜기를 두 루 적시고 영월 땅에 접어들며 동강으로 불린다. 구불구불하 기가 뱀이 기어가는 모습 같아 사행천이다. 굽이마다 비경이 지만 높은 산에 가로막혀 그 속 살에 닿자면 웬만큼 발품을 팔 아야한다. 동강최고비경으로꼽히는어 라연도 마찬가지다. 물고기가 뛰어오르는 모습이 비단같이 눈부시다는 곳이다. 래프팅이 아니면 걸어야만 닿을 수 있다. 트레킹은 영월읍 동쪽 거운마 을에서 시작된다. 거운분교(폐 교)를 출발해 잣봉을 넘고, 돌 아올 때는 강가로 난 길을 따라 내려온다. 왕복 약 7㎞, 쉬엄쉬 엄 4시간을잡는다. 삼옥탐방안내소에서 잣봉과 동강 방향으로 갈라지는 삼거 리까지 1㎞는 완만한 오르막이 다. 마지막 마을 대마차까지는 임도 겸 시멘트 포장도로로 연 결돼 있다. 삼거리에서 제법 가 파른 오르막길을 넘으면 옴폭 한 산중에 서너 채의 민가가 보 인다. 길은 강에서 점점 멀어지 고솔바람소리만적막을깬다. 길 양쪽으로 사과가 탐스럽게 익어가는데 인적 없는 과수원 에 클래식 선율이 감미롭다. 나 무 지지대에 스피커를 달아 놓 았다. 노동의 외로움과 고단함 을 달래고 산짐승도 쫓으려는 산골 농부의 이중 포석으로 보 인다. 옥수수와메밀이심긴작은밭 뙈기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등 산로가 시작된다. 짧은 구간 평 탄한 숲길이 끝나면 곧장 가파 른 계단이다. 산등성이까지 약 500m는 숨 돌릴 구간 없는 오 르막이다. 능선 부근에 닿으면 다시 완만한 숲길이 이어진다. 그제야 주변의 일본잎갈나무 조림지며 아름드리 솔숲이 눈 에들어온다. 힘든구간맘놓고 엉덩이 붙일 곳이 없었는데, 능 선에놓인벤치가반갑다. 멀리서 여울소리 들리고 나뭇 가지 사이로 까마득히 동강 물 줄기가 어른거린다. 조금 더 가 니 드디어 시야가 확 트인다. 따 로 전망대라 표시해 놓지 않았 지만 능선에서 동강 물줄기가 가장 잘 보이는 곳이다. 가파르 게 쏟아지는 산자락 아래에 푸 른색과 초록색을 섞어 놓은 것 같은 옥색 물줄기가 바위섬을 휘돌아 나간다. 산에서 전망 좋 은 곳은 항상 위험을 동반한다. 조금이라도 더 보기 위해 바위 끝까지 가는 이들이 더러 있는 듯 출입금지 통제선이 둘러져 있다. 그 너머는 천길 낭떠러지 다. 다시 솔숲으로 느긋하게 발 길을 옮기면 곧 정상이다. 올라 온 수고에 비하면 다소 허탈하 다. 전망이랄게없고잣봉정상 (537m)을 알리는 표석만 세워 져있을뿐이다. 하기야이길의 주인공은 산이 아니라 강이 아 닌가. 정상에서 어라연으로 내려가 는 길은 오를 때보다 훨씬 가파 르다. 폭이 좁고 돌부리까지 거 칠어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중 턱쯤 내려왔을까, 앞서간 행인 이 없었는데 어디선가 사람 소 리가 들린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강물에 뗏목이 여러 대 떠있다. 다리에 힘을 잔뜩 주고 긴장 하며 땀을 쏟은 뒤라 물결 따라 느긋하게 내려가는 이들이 한 없이 부럽다. 그 옛날 뗏목꾼들 이 소금땀을 흘렸을 강줄기에 싱그러운웃음소리가물빛처럼 청량하다. 내리막이 끝나는 지점에‘어 라연 전망대’이정표가 보인다. 약 100m 이동하면 다소 평평 한 바위가 나타나고, 그 아래로 크게 휘어진 물줄기와 강 한가 운데 바위섬이 내려다보인다. 물빛깔에 초록이 뚝뚝 듣는다. 소나무가 뿌리내린 바위는 화 산탄이 응고된 것처럼 신비롭 다. 깎아지른절벽(단애)과모래 사장, 자갈 퇴적물이 빚은 동강 은 강원고생대국가지질공원으 로지정돼있다. 전망대에서 짧은 구간 가파른 내리막을 거치면 돌아오는 길 은 강줄기와 나란히 이어진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절반가량 은 절벽에서 굴러떨어진 거친 바위투성이라 걷기가 쉽지만은 않다. 잔잔해 보이는 물길도 사 납기는 마찬가지여서‘떼꾼들 의 무덤’이라 불리던 위험구간 이다. ■푸르러서 서러운 육지 속 섬, 청령포 청령포는 영월읍을 코앞에 두 고 크게 휘어 도는 서강 물줄기 안쪽에 위치하고 있다. 삼면이 강이고, 한쪽은 높은 산줄기와 이어져 육지 속 섬이자 배 없이 는한발짝도나갈수없는담장 없는감옥이다. 단종은 세조 3년(1457) 노산 군으로 강봉돼 영월로 유배됐 고 청령포에 갇혔다. 그해 여 름 홍수로 서강이 범람해 처소 를 영월 객사인 관풍헌으로 옮 기기 전까지 이곳에 머물렀다. 300여 년이 지난 1763년 영조 는 이곳에‘단묘재본부시유지( 端廟在本府時遺址)’라쓴비석 을 세우고, 뒷면에 지명을 청령 포(淸 浦)라새겼다. 청령포에 가려면 단종이 그랬 던 것처럼 여전히 배를 타야 한 다. 작은 유람선이 수시로 여행 객을 실어 나른다. 잔잔한 물살 을 가른 배는 서강의 정취를 느 낄 새도 없이 모래와 자갈이 섞 인청령포에닿는다. 폐위당한 단종이 서러움을 견 뎠을 청령포에는 수백 그루 아 름드리 소나무가 햇볕이 들지 않을 정도로 무성한 숲을 이루 고 있다. 솔숲으로 난 덱 산책로 를 따라가면 복원한 단종 처소 가 나타난다. 소나무 몇 그루가 어린 임금을 위로하듯 담장 안 으로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다. 마당 가운데 비각 안에 영조가 내린단묘유지비가세워져있다. “숭정황제 무진년(1628) 기원 후, 세 번째 계미년 9월에 눈물 을 닦으며 삼가 써서, 원주감영 에게 명하여 비를 세우다”라고 적었다. 단종에 대한 애틋한 마 음과 별개로 명나라 연호를 사 용한 조선의 처지가 조금은 곤 궁하다. 인근에는 어명으로 민간인 출 입을 금하는‘금표비’도 있다. 역시 영조가 세운 비석으로 동 서 300척(약 91m), 남북 490척 (148.5m) 범위를 출입금지 구 역으로 설정했다. 모래와 자갈 이 실려와 해마다 확장되는 땅 역시 그 대상에 포함된다는 점 도명확히했다. 청령포 솔숲에서 가장 돋보이 는 나무는 수령 630년으로 추 정되는관음송이다. 높이 30m, 가슴높이 둘레 5m에 이르는 큰 나무로, 아래서부터 두 갈래 로 힘차게 뻗은 기세가 마치 청 령포의 주인인 듯하다. 단종이 유배 생활을 할 때 둘로 갈라진 나무줄기에 걸터앉아 시간을 보냈다는이야기까지전해진다. 그의 처량한 모습과 울음을 가 까이서 지켜보고 들었다는 뜻 에서‘관음’이라는 이름이 붙 었다. 배를 타고 되돌아 나오면 주 차장 모퉁이에‘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 내 마 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 길 예놋다’라는 시비가 세워져 있다. 지은이를 단종 유배길에 호송 책임을 맡은 금부도사 왕 방연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일 각에서는 왕방연이 사람 이름 이 아니라‘왕이 강물에 흐르 다(王邦衍)’라는 뜻의 시조 제 목이라주장한다. 바로옆에는단종과부인정순 왕후가 손을 맞잡은 동상이 세 워져 있다. 정순왕후도 단종 폐 위와 함께 국모에서 노비로 강 등되는 비운을 겪었다. 눈이 부 시게 풋풋해야 할 청춘 남녀의 사랑이 애틋하고 서럽게 느껴 진다. <영월=글·사진최흥수기자> 래프팅여행객들이영월동강어라연구간을지나고있다.물고기비늘이비단처럼눈부시다는어라연은동강에서도경치가가장 빼어난곳이다. 산을 넘지 못한 물은 골짜기로 에두른다. 강원 영월은 평 창, 정선의 우람한 산줄기를 감싸며 흐르는 동강과 서강이 만나 본격적으로 한강(남한강)이 시작되는 곳이다. 영월읍 내를 가운데 두고 동서 양쪽으로 흘러 이렇게 부르지만 동 강과 서강의 정식 명칭은 조양강과 평창강이다. 굽이마다 아름다운 풍광과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품고 있다. 영월동강어라연과서강청령포 눈이부시게, 눈물겹게…설렘도설움도물결따라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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