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5년 3월 6일 (목요일) 오피니언 A8 삶과생각 지천(支泉) 권명오 (수필가·칼럼니스트) 80년전시골에서살던시절교회 가 없었고 기독교 자체도 전혀 몰 랐다. 불교 아니면 유교를 믿었는 데그또한불경도모르고유교에 대한교리도잘몰랐으며1년에한 번소풍따라절에가는정도였고 유교는 조상에 대한 성묘와 제사 가전부였다. 서울이나대도시사람들은기독 교와불교, 유교에대한지식이있 고 또 일부는 유신론과 무신론에 대한 일가견이 있든 구한말 선교 사들에 의해 성당과 기독교 교회 가 서울과 각 도시에 세워졌는데 어느 날 서울에서 내려온 사람이 여호와의 증인인데 그 분이 하나 님과 예수님에 대해 전도를 해 배 우다가 6.25 남침으로 인해 생사 의 고비를 넘나들며 정신없이 헤 매면서 완전히 교회와 인연이 끝 났다. 그 후 휴전이 된 후 각 지역 UN군들이교회를지어주었는데 내 고향 가월리에도 호주 군인들 이언덕위에크게교회를짓고전 도사까지 모셔와 목회가 시작됐 다. 하지만시골개척교회에대한실 상은 사면초가였고 불교와 유교 와 토석신앙 밖에 모르는 시골사 람들은 무조건 기독교를 반대하 고 조상에 대한 제사도 못 지내게 하는예수쟁이라고비판하면서자 녀들을교회에못가게했다. 그당시고등학생이였던나는친 구들과 교회를 다녔지만 하나님 에 대한 믿음도 없고 알지도 못했 다. 그후대학에서연극영화를전 공하다가 방학 때 고향친구들과 신나게 동동주 술타령을 하다 더 워서시원한언덕위교회밑에들 어가고성방가를하다가전도사님 을만났다. 입장이 난처했는데 전도사님이 친절하고 편하게 인사를 하고 이 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나에게 객지생활이힘들겠다고하며혹시 시간이 되면 교회를 나오라고 했 다. 할수없이예하고대답을했기 때문에 주일날 교회 예배에 참석 했다. 그런데교회의형편이너무나열 악하고 교인도 어린 학생들 뿐이 고 성인은 4명 정도였다. 그 때문 에 전도사님 의식주가 시급한 상 태라 할 수 없이 도우면서 교회를 다니게됐다. 이북에서피난온전도사님여동 생이서울에큰병원간호사로근 무하면서 큰 교회 제직들과 함께 전도사 오빠의 개척교회를 도왔 고생활비도도왔다. 나는자의반 타의반 봉사부장직분을수행하 게 됐고 믿음과 신앙심과는 상관 없이교회를돕게됐다. 성탄절에 는 성극“돌아온 탕자”를 직접 쓰 고연출도했다. 개학 후엔 주말에만 참석하다가 연극활동이 바쁘고 난관이 많아 교회와의 인연이 끝났다. 그리고 군 생활 3년이 끝난 후 본격적인 TV출연연기생활이바빠졌고예 술분야에 깊이 빠져 유신론 보다 무신론에 깊이 심취돼 교회와는 멀어졌고그후파란만장한세월을 거쳐 미국으로 이민을 한 후 다시 신앙생활을시작했다. 지금은 애틀랜타 섬기는 교회에 서 하나님을 믿으며 모자라고 부 족한신앙생활을하고있다. 그리 고현재우리부부는열심히성경 공부도하고회개하면서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감사하며 살고있 다. 그래도또죄도짓고실수도할 것같아죽는그날까지열심히믿 고배우련다. 간증할것도많지만 지면상 다음으로 미루고 하나님 께감사를드린다. 내 자신이 몹시 초라하고부끄 럽게느껴질때가있다./내가갖 은것보다더많은것을 갖고있 는/사람앞에섰을때가아니다/ 나보다 훨씬 적게 가졌어도/그 단순함과간소함속에 / 삶의기 쁨과 순수성을 잃지 않는/사람 앞에 섰을 때 /그때 내 자신이/ 몹시초라하고가난하게되돌아 보인다./내가가진것보다더많 은것을/갖고있는/사람앞에섰 을 때/나는 기가 죽지 않는다./ 내가 기가 죽을 때는 / 내 자신 이가난함을느낄때는 / 나보다 훨씬적게갖고있으면서도 / 그 단순함과 간소함 속에서 / 여전 히당당함을잃지않는/그런사 람을만났을 때이다.(글, 법정스 님-살아있는것은다행복하라 에서…) 한여인이있었다. 온통검은옷을입고온몸으로 울음을삼키며 우리와함께 시 간을보내고있을때였다. 이제 막 그녀는 죽은 아들의 49제를 마쳤다. 그녀의 몸 전체 가슬픔으로일렁이고있었다. 아들은외국유학을마치고군 입대를 준비하던 중, 어느날 친 구들과저녁을먹고돌아와서는 그밤, 돌연히심장마비로세상 을떠났다. 하나뿐인아들을잃 고 그녀의 고통은 가슴을 눈물 로채웠다. 우연히법정스님과밥상을 마 주하며 차마흘러나오는슬픔 을 감추지 못하고 울고 있었다. 함께 한 자리에서 법정 스님이 그 여인에게 어떤 위로의 말씀 을하실까 돌아보았다. “아들은그인연만으로당신에 게왔다간것이요, 이우주가잠 시 당신에게 그 아들을 맡겼다 가데리고간것뿐이요.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라고 스 님이그여인을 위로하실줄알 았다. 스님은아무말씀이없으셨다. 같은 밥상에서 묵묵히 식사를 하면서 그녀 앞으로 만찬을 밀 어주고‘어서 드시라’고 밀어 주셨다. 여인은 계속해서 아들의 이야 기를 했고 스님은 침묵속에서 듣고만 계셨다. 스님은 단 한마 디 위로의 말씀도 없으셨지만, 식사가 끝나고 분명 그 여인의 얼굴 어딘가에 안정과 평화의 분위기가감돌고있었다. 눈물로얼룩진얼굴어딘가평 화의 빛이 감돌고 있었고 알수 없는 빛의 물결이 그녀에게 반 사하기 시작했다. 그 어떤 힘이 었을까… 현실적인 차원에서는 느낄 수 없는‘투명한 오라’가 오고 가 고 있었다. 스님은 한마디 말씀 도없이그녀앞에반찬을 밀어 주시며한시도눈길을그녀에게 서떼지않으셨다. 마치고통받는환자를치료하 시듯그녀의눈물한방울도 신 성시하시며그녀의삶의한계를 승화시켰는지도모른다. 식사를마치고봄이가득한절 뒷마당을 함께 거닐은 그녀의 눈빛이예전과는 달랐다. 죽어가는영혼이봄향기에소 생의 순간처럼 다시 소생하는 순간을맞이한느낌이었다. 절 마당에서 스님과 헤어지 며합장하는여인의눈물위에 알수 없는 감사와 상처를 위로 받는 감사의 눈물도 섞여 있었 다. 그녀는 그 뒤 홀로 설 수 있었 고 그후에도가끔‘하루의출가 ’를한다.(법정스님,‘살아있는 것은다행복하라’중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는 여인숙과 같다. 매일 아침 새로운 손님이 도착한다. 기쁨, 절망, 슬픔그리 고 약간의 순간적인 깨달음도 방문객처럼찾아온다. 그 모두를 환영하고 맞아들 이라./설령 그들이 슬픔의 군 중이어서/그대의 집을 난폭하 게쓸어가버리고/가구들을몽 땅내가더라도./그렇다해도각 자손님을존중하라/그들은어 떤새로운기쁨을주기위해/그 대를 청소하는 것인지도 모르 니까 (시.잘랄루딘,루미) 하루의 출가 신앙과 양심 고백 박경자 (전숙명여대미주총회장) 시와수필 시사만평 데이브와몬드작 <케이글 USA-본사특약> 다윗과 골리앗 관세 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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