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5년 3월 21일 (금요일) 오피니언 A8 2020년5월에우리가족은시카 고를 여행할 계획이었다. 한국과 미국에 떨어져 살고 있는 자매들 이시카고에서만나관광한후함 께LA로돌아와즐거운시간을보 낸다는 야무진 계획이었다. 다들 비행기 표까지 구입하고 목 빠지 게기다리던이여행은그러나실 현되지 못했다. 바로 그 두 달 전, 갑자기 미국과 한국과 세계가 다 같이문을걸어잠갔기때문이다. 코로나바이러스팬데믹셧다운의 시작이었다. 지금으로부터 꼭 5년 전 일어난 일인데, 얼마전한국의언니와전 화하다가 불현듯 생각나서 그 이 야기를꺼냈더니언니는기억조차 하지못했다.사실나역시거의잊 고 있었으니 불과 5년 전의 소동 이이렇듯‘희미한옛추억의그림 자’가돼버릴줄은미처몰랐다. 팬데믹은우리모두그때까지겪 어보지못한전대미문의사건이었 기에, 또그와관련된역대급뉴스 들이계속해서터져나왔기에, 당 시의 소소한 사건들은 머릿속에 서많이지워진모양이었다. 2020년3월15일,정신없이굴러 가던 톱니바퀴를 억지로 멈춰 세 우고시작된강제격리생활, 학교 와직장과식당들이문을닫고텅 비었던거리, 코비드검사를위해 길게 늘어섰던 차량행렬, 백신접 종 카드를 지참하고 다녀야했던 번거로움, 공항에서의 PCR 검사 와14일간자가격리,관중없는스 포츠경기와 올림픽… 그렇게 많 은 일들이 옛이야기가 돼버렸고 그때의 풍경들은 벌써 많이 잊혔 다. 시계를앞으로돌려2025년3월 현재, 사람들은이전의일상을되 찾았다. 팬데믹으로 인해 사랑하 는 가족을 잃었거나 인생이 크게 바뀐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무일도없었던듯여전해보인 다.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걸까? 아무것도달라지지않았을까? 팬데믹 5주년을 맞아 최근 전문 가들은 우리에게 일어난 변화에 대해 다양한 연구결과를 내놓고 있다. 처음에는 도무지 한치 앞도 볼수없었지만이제시간이꽤흘 러그영향과후유증을평가할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팬데믹이 아니었다면절대로할수없는실 험을전세계가다함께하게된덕 분에 비상시 인간의 신체적, 행동 적, 심리적변화를지켜보고분석 할수있는절호의기회를갖게된 것이다. 우선의학적으로이바이러스는 특이하게도3개월이상증상이계 속되는‘롱코비드’라는장기적신 체변화를 환자의 약 20%에게 남 겼다. 만성피로와 뇌안개(brain fog)로대표되는증상이미국성인 의7%인1,700만명,세계적으로4 억명을오랫동안괴롭혔으며이것 은두통, 어지럼증, 기억력과집중 력손실, 심지어우울증과불안증 까지야기했다. 사회적으로는술을마시는사람 들이크게늘었다. 집에서보내는 시간, 혼자있는시간이늘어나면 서 음주소비량은 팬데믹 기간에 수직상승했으며 차츰 줄었지만 지금도그전에비해서는높은수 준이다. 반면관계의단절은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도 새삼 조명됐다. 소셜미디어는 만남의 대안이될수는없다는사실,특히 사회생활을 하지 못한 노인들은 심혈관계 질환과 인지건강이 눈 에띄게퇴화한다는사실도이기 간에다시증명되었다. 수많은사람이이바이러스로속 절없이죽어가자‘인생은짧다’며 잃어버린 시간을 보상받으려는 듯 더 모험적이고 활기찬 라이프 스타일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있 는가하면, 감염위험에대한두려 움으로 여행, 심지어 대중교통을 기피하는사람들도많아졌다. 퓨리서치에 따르면 아직도 항상 마스크를 쓰는 사람이 4%, 여행 할때면반드시쓰는사람이13% 나된다. 여행패턴도변해서가족 과의여행이늘었고, 사람들이몰 리지않는외진여행지를찾는사 람이많아졌다. 취업보다자기비즈니스를창업 하는 비율이 높아진 것과 직장인 들의 근무자세가 소극적으로 변 한 것도 또 다른 변화다. 2020년 셧다운 대량실직에 이어 2022년 부터 대 사직(Great Resignation) 과조용한사직(Quiet Quitting)이 라 해서 수백만명에 이르는 노동 인구가 새로운 잡을 찾아 일터를 떠났거나 남아있더라도 업무를 대하는태도가달라졌다. 온라인샤핑이급격하게늘었고, 익숙하지 않던 텔레헬스(영상진 료)가자리를잡으면서꼭필요하 지않은의사방문과수술이줄었 다. 재미있는 것은 하이힐을 신고 다니다가 발을 삐거나 골절돼서 응급실을 찾는 여성들의 숫자가 팬데믹 동안 급감했는데, 이것이 운동화와 플랫슈즈의 유행을 앞 당겼다는분석도나오고있다. 이외에도다열거할수없을정 도로수많은내적변화가있었다. 사람들은 고립된 생활을 통해 삶 에서꼭필요한것은무엇인지알 게되었고, 자신을깊이들여다보 게 됐으며, 인간관계를 재정립하 고 삶의 우선순위를 헤아리게 되 었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할 것은 이 모든 것이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는사실이다. 코비드는아직도우 리 곁에 있고 미국의 주요사망원 인이며 지금까지 무려 700만 명 이상이 이 바이러스로 생명을 잃 었다는사실을잊어서는안될것 이다. 팬데믹 5년, 달라진 것들 캘리포니아는한때금을찾아몰려든 사람들로 들끓던 금광촌의 땅이었다. 골드러시의 흔적은 여전히 곳곳에 남 아있으며,그중심지중하나였던플레 서빌(Placerville)에 도착했다. 레이크 타호로 가는 길목, 미국 50번 도로 초 입의작은마을이다.목수제임스마샬 이금을발견한후소문이퍼지며사람 들이 몰려들었다. 곡괭이만으로 부족 해지자, 강한수압으로산을허물어금 을 채취했다. 그래서인지 마을 중심에 는 3층 높이의 벨 타워(Bell Tower)가 세워져있다. 이는당시의역사적사건 을 기념하기 위한 상징적인 건축물로, 오늘날까지 마을의 중요한 랜드마크 로자리잡고있다. 이곳은 한때‘행타운(Hangtown)’ 이라불리며, 교수형이자행되던곳이 었다. 금을둘러싼다툼과범죄가끊이 지 않아서 죄인들은 참나무에 매달렸 다. 지금도‘행맨스트리(Hangman’s Tree)’간판아래2층난간에는‘강도’ 라는팻말을단인형이매달려있다.철 도공사와 금광에서 일하던 많은 중국 인들도억울하게처형당했다. 영화 <집행자>(Hang‘Em High)의 교수형장면이떠오른다. 광장에몰려 든군중,지붕위까지빽빽이올라마지 막순간을지켜보려는아우성. 간식을 파는 잡상인들까지 몰려든다. 죄인의 몸이축늘어지는순간, 탄식인지환호 인지 모를 소리가 울려퍼진다. 오락거 리가 부족했던 시절이라지만, 죽음을 구경거리로 삼았다는 사실이 섬뜩하 다. 그들의웅성거림이아직도귓가에 들리는하다. 북쪽으로올라가니 1859년지어진‘ 피어슨스청량음료’건물이보인다.지 금은식당이지만, 옛모습을간직하고 있다.얼음이귀하던시절,이곳은음료 와얼음을함께보관하던창고였다. 먼 지쌓인옛음료수병이35달러에팔리 고있다.누가사가는걸까? 플레서빌은 리바이스 청바지의 고장 이기도 하다. 1853년, 리바이 스트라 우스는 광부들의 바지가 쉽게 해어진 다는점에착안해질긴천막용천으로 청바지를만들었다. 상점안에는색이 바래고 구멍 난 청바지들이‘빈티지’ 라는명목으로비싼가격표를달고있 다. 플레서빌 철물점은 북캘리포니아 에서가장오래된상점으로, 마치금광 촌박물관같다.광부들이사용했던곡 괭이와금접시뿐만아니라나무흔들 의자까지,없는것빼고다있다.구경하 는재미는있지만, 선뜻사고싶지는않 다. 한때번영했지만, 이제는옛명성만 남은 마을. 천년 가는 영화가 없듯, 영 원한영광도없다. 맥주집‘퍼브(pub)’에 들어갔다. 금 광촌 술집에서 들은 이야기를 소설의 소재로삼은작가도있다. <톰소여의 모험>의마크트웨인이다.남북전쟁으 로뱃길이막히자서부로향한그는금 광에서 실패하고 신문사에 글을 기고 하며‘마크 트웨인’이라는 필명을 쓰 기시작했다. 엔젤스캠프호텔술집에 서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캘러버 라스 카운티의 명물, 뜀뛰는 개구리> 를썼다. 흥겨운 음악 속, 백발이 성성한 손님 들이복도로나와춤을춘다. 왜이한 적한마을을떠나지않을까. 조상들의 땀을기억하고싶은걸지도모른다. 밖 으로나오니황금빛노을이벨타워꼭 대기의종을감싼다. 한때이곳을뜨겁 게달궜던추억들을어루만지는것같 다.모든것은떠오르면,결국지기마련 이다.인생도마찬가지다. 영광의 그림자를 품고 금요 에세이 이현숙 수필문학가협회 이사장 정숙희 의 시선 LA미주본사논설위원 막지않겠어! 최후의 방어선 막지 않겠어! 시사만평 데이브와몬드작 <케이글 USA-본사특약> 나약한 민주당 비켜라!! 헬스케어와 재향군인 혜택을 삭감할 거야… 공화당 ‘프로젝트 25’ 최후의 방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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