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5년 3월 29일 (토요일) 오피니언 A8 김정자 시인·수필가 행복한아침 *모든 칼럼은 애틀랜타한국일보의 편집 방향과 관련 없습니다 시사만평 데이브그랜런드작 <케이글 USA-본사특약> 힐러리가 웃는 이유 빌, 팝콘이 더 필요할 거 같은데요… 시그널게이트 국가보안유출사태 철들무렵 우연히오랜친분이있는분들을 음식점에서 만나게 되었다. 반가 움에두손을잡고어린아이처럼 깡충대며어쩔줄몰라하다가문 득‘나이제철들었어’하신다. 그 리 쉽지 않은 고해성사 같은 말씀 을하신다.두손을힘주어잡아주 었다. 무언으로 다정한 눈빛을 주 고 받으면서 둘 사이에 보이지 않 던벽이허물어져버렸다. 이즈음 흔히들‘너무 가깝지 도 멀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가 최상 이다’라는경우가많다.함부로다 그치듯반응을요구하지않는우 정’이라고말할만큼시대적모순 이다. 인간관계는 관심을 주고 받 는기초석이든든해야관계가실 하게 이어지기 마련이다. 상대적 으로서로처지를바꿔생각해주 기를 바라게 되는 게 인지상정인 데 필자만 느끼게 되는 것인지 정 이란 따스함이 조금은 계산적인 것으로변질되면서차츰냉각되어 가는 흐름을 감지하게 되면서 아 무래도 옛정만 못 하다는 결론이 나지만 어쩐지 아련한 아쉬움이 남게된다. 식사를끝내고커피타임을가지 자고 카페로 자리를 바꾸어 가면 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수다는 이어졌다. 반가움을 제대로 삭이 기에는역시수다밖에없는듯하 다.‘철 들면 안 되는데, 철들 무 렵이면노망든다는말이있는데’ 하시며 앞뒤 정황을 모르시는 분 이 거들고 나섰지만 우리는 이미 철없이쌓아두었던벽이허물러 졌다는사실에묵은체증이순식 간에 사라져버리는 기적을 맛보 았다. 제법오랜시간을뵙지못했 던 아쉬움을 상쇄하려는 듯 할머 니들의 수다는 끝 모르게 이어진 다. 늦었지만 이제서라도 철들자 는주제로이런저런대화주고받 기에정신없이시간을보내다결 국 저녁식사로까지 이어지면서 하루 종일을 보냈던 그날이 문득 떠올라 슬며시 환한 미소가 지어 진다. 나이들어가면서철이제대로들 어가는 건지 혹여나 하는 노파심 으로 매사에 거품빼기를 하자고 들여다보니 군데 군데 거품 흔적 이보인다. 일상의구석진곳에숨 어있던 거품을 찾아가며 거품 걷 어내기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서 철들기 과정으로 삼자고 마음 다 짐 끝에 돌아보니 한결 세상살이 가 가뿐해지고 편안해 진다. 거품 이 빠져버린 삶이야 말로 진정한 내모습인것을, 세상은겉모양허 울 허식 겉치레에 열중한 나머지 겉모습이 우선 순위가 되어 버렸 고 내실에는 관심이 멀어져 가고 있다. 실속없는겉모양, 허울뿐인 다짐들이 붐을 일으키듯 성행하 고있다. 허물만 근사하면 그만인 세상이 다. 텅 빈 겉껍질 뿐인 허깨비 같 이 허울좋은 실존의 허상이 거품 을조장하고있다. 삶을올곧게살 아온인생은바르고, 맑고, 순수하 고, 매사 선명하다. 보여주기식으 로사는것이아닌,사는모습그대 로를 보여준다. 주변 눈치보기에 고심할 까닭이 없음은 물론이요, 먼저자신을속이지않을수있음 에떳떳할수있다.잘살고있는양 좋은 모습으로 보이려고. 잘난 체 하려는 우쭐대는 자만심 충족을 위해 스스로를 닦달하고 옭아매 며살아야하는구속에서벗어날 수가있다. 더는내세울것도숨길 것도 없는 삶이야 말로 홀가분한 삶이요, 삶의진국을맛볼수있는 지름길이될것이다. 내가아닌가 짜 인생에서 진짜 인생을 찾을 수 있게될것이다. 세상은참모습을 보일때철들었다고인정해주기도 하니까. 이렇듯 차원있는 삶을 추구하노 라면 언젠가 철이 들어있을 것 같 은희망을엿보게된다. 겨우한뼘 잘났음을 강조하느라 소중한 정 을 잃어버리는 일은 범하지 않아 야할터이다. 하기야제일힘든싸 움이자신과의싸움이다. 이싸움 은 이기든 패배하든 결과는 오롯 이자기몫이되고만다.수없이번 복되는 후회로 뉘우치고 되돌려 보려 하지만 본성이 버티고 있는 한 자신을 감당해 내기는 만만치 않음이다. 다행인 것은 민폐 수준 까지는덤비지않았음에그런대로 자신을잘다스려온셈이된다. 그 냥 생긴대로 주어진 부피와 높이 와 깊이 만큼 살아가기로 마음을 정해두면되는것인데. 철들무렵은모든세대를아우르 는 말이기도 하지만 생을 살만큼 살아왔다고자부하는노년층에게 는한계용량초과일수밖에. 바람 직한철들기는아직이지만함부로 무너뜨릴 수 없는 내면의 고요가 생의 여정이 남긴 재고처럼 숨쉬 고있다. 늙음과시듦으로갈수록말은줄 어들고있지만살아온날동안글 을다듬고나누기에만몰입했는데 이젠고요가말을한다. 철들지않 은채지금처럼살아가라한다. 하 지만 꾸준히 철들어 가자고 다짐 을 하게 된다. 철들기 추대받기로 부터 철들기 옹립을 받기까지는 결코 쉽지는 않겠지만. 철들 무렵 은 수열의 극한과 무한대처럼 한 계없이진행중이다. 네 얼굴이 마치… 토요 단상 어느날유치원에다녀온딸이 엎드려 울고 있었다. 엄마가 조 용히 다가가 어깨를 감싸주었 다. “몹시 아픈가 보다. 어디가 아 프니?” “...” 딸은 말이 없었다. 한참을 흐 느낀후조용히입을열었다. “아이들이 나를 보고 놀렸어 요... 내 얼굴이 꼭 프라이팬 같 대요...” 엄마는가슴이쿵내려앉는것 같았다. 어린딸이유치원에다 니기시작한지열흘도채되지 않은날일어난일이었다. 영석이네가족이미국에이민 온지반년쯤지났다. 한국을떠나온후미국생활에 정착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딸을유치원에입학시키려고갔 을때만났던딸또래의얼굴들 이 떠올랐다. 예쁘장한 아이들 이었다. 코가 오뚝하고 파란 눈 들이 반짝이는 모습이 인형 같 았다. 그아이들에게딸이이런 말을듣고올줄은상상하지못 했다. 아이들을기죽지않게기르고 싶었다. 비록 외모는 다르게 보이지만 심성만은 착하고 밝게 길러야 겠다고 다짐했다. 피아노도 가 르치고 바이올린도 가르쳐 자 신감도심어주고싶었다. 며칠이지나자딸은다시밝은 모습으로 유치원에서 돌아왔 다. 차츰 유치원에 가는 발걸음 도가벼워보였다. 배워온영어 노래도 잘 부르고 친구들과도 잘어울리곤했다. 딸이여간고 맙지않았다. 이민의삶은녹녹하지않았지 만생각만큼힘들지도않았다. 제일 걱정했던 것은 자녀들의 장래문제였다. 여러나라에서온아이들과경 쟁해야 하고 영어 장벽도 극복 해야했다. 어린남매는고맙게도미국생 활을 힘들어하지 않았다. 아이 들만잘자라준다면더바랄것 이없을것같았다. 유치원을 마친 딸은 초등학교 에 입학한 후 더욱 활발해졌다. 학교생활을 참 좋아했다. 선생 님의 칭찬에 아이들은 신이 나 는듯했다. 학과뿐만아니라피 아노, 바이올린 연습도 계속했 다. 영석이부모는이민오기를잘 했다고 생각했다. 누나 못지않 게영석이도매사에적극적이었 다. 피아노를참좋아했다. 음악 을 전공해도 성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부모는 내심 아이들이 의사가 되었으 면했다. 영석이부모는아이들이구김 살 없이 자라가는 것이 대견스 러웠다. 고등학교를졸업후딸은스탠 퍼드 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 했다. 부모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딸이 자랑 스러웠다. 의대졸업후그딸은샌프란시 스코에 위치한 한 병원 소아과 과장으로 근무하는 중이다. 일 주일에 이틀간 진료하고 다른 날들은 그 지역 소아과 의사들 을보살피는역할을하고있다. 약 250명의소아과의사와상 담도 하고 진료 중에 일어나는 문제나, 소아과 병원의 운영 자 문등딸의역할은매우중요하 다. 영석이아버지는잠시눈을감 는 듯하더니 활짝 웃으며 이렇 게말했다. “처음 이곳으로 이민 와서 딸 을 유치원에 입학시킨 일이 엊 그제같습니다. 어느날딸이유 치원에다녀온후울던때가잊 히지않습니다. 반친구들이딸 의얼굴을보고놀렸지요. 코가 납작하게생겼다고손가락으로 눌러보인일이었지요. 그아이 가 지금은 소아과 의사가 되어 수많은 아이를 치료할 뿐만 아 니라 소아과 의사들을 지도하 고있으니까요...” 오후의넘어가는햇살이아버 지의 불그스름한 얼굴을 반짝 이게하고있었다. 전병두 서북미수필가협회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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