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5년 4월 18일(금) ~ 4월 24일(목) A10 일본을 여행할 때마다‘시간’이라는 개념을 다시 조 율하게 된다. 찰나와 영원이 포개진 듯한 순간들, 그리 고역사가결코박제되지않고살아숨쉬는풍경들, 그 중심에는 교토가 있다. 김포공항을 출발해 간사이의 관문인오사카이타미공항에도착했다. 교토로 향하는 특급열차 하루카에 몸을 싣는다. 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은 점차 도시에서 자연으로, 현재 에서 과거로 스며들었다. 교토로의 이동은 단순한 교 통이아닌, 시간의문턱을넘는여정이다. 호텔 트랜스퍼 차량이 역 앞에서 우리를 맞이한다. 10㎞ 남짓한 길을 달려 아라시야마의 서쪽 끝에 도착 하니, 옥색의 가쓰라강과 산 능선이 어우러진 풍경이 펼쳐졌다. 대나무 숲에 둘러싸인 그곳, 바로 스이란 호 텔이다. 메이지 시대 귀족의 별장이었던 이곳은 가쓰 라강의 잔물결을 배경으로, 자연과 건축이 교감하며 형성된장소다. 전통을 품고 현대적 감각을 덧입혀 과거와 현재가 교 묘히 포개지는 공간을 창조해 냈다. 정원 위에 내려앉 는 안개, 물결에 비치는 햇살까지도 건축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이야기를 들려 주듯 공간 전체가 말을 건넨 다. 전통이 유물이 아닌 감각으로 다가오며 이곳에서 과거의한장면을조용히펼쳐본다. 체크인을 마치고 객실에 짐을 풀고나서, 교토의 숨결 을 따라 산책을 나섰다. 교토는 일본에서 여덟 번째로 큰 도시지만, 그 존재감은 단연 독보적이다. 794년 수 도가 옮겨지며 헤이안 시대의 시작을 알렸고, 1868년 메이지유신까지오랜시간일본의중심이었다. 그래서 교토는‘고도’(古都)라불린다. 강을 따라 걷다 보면, 나무다리 도게쓰교에서 산의 계절을 머금은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산 그림자에 스며드는 잔잔한 바람. 이 모든 것이 시간의 흐름을 잊 게만든다. 아라시야마의고요함은외부의소음마저도 잠재우는듯하다. 교토의 거리엔 과거의 유산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전통 가옥은 카페로, 찻집은 갤러리로 재탄생했지만, 그 속엔 여전히 과거의 숨결이 머문다. 이는단순한 복 원이아니라현재의감각으로과거를재구성한시도다. 고풍스러운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예술이 일상처럼 스며든다. 후쿠다 미술관은 그 정점에 있다. 절제된 디 자인과 섬세한 전시는 교토가 단지 옛 도시에 머무르 지않고, 현재를품은문화의중심임을설명한다. 하루의 끝엔 호텔 카페 하스이에에서 무료로 제공되 는 샴페인 한 잔을 곁들인다. 황혼이 내려앉은 가쓰라 강을 바라보며 잔을 들면, 세상이 잠시멈춘 듯하다. 취 기와함께아름다움에젖어든다. 다음 날 아침, 교-수이란 레스토랑에서의 식사는 그 자체로 여행의 연장이다. 가와사키 쇼조 남작의 여름 별장이었던 이 공간은, 겹겹이 쌓인 시간을 간직한 채 현대적감각으로재해석됐다. 전날저녁프렌치감성을 더한 와쇼쿠를 내던 공간이, 이른 아침엔 정통 일식의 차분한고요함을담는다. 아침 식사를 마친 후 덴류지로 향한다. 대숲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에 이끌려 발걸음을 멈춘다. 굳이 긴카 쿠지(금각사)나 긴가쿠지(은각사)를 찾지않아도 대나 무 숲 그 자체가 시대의 정서를 전한다. 무로마치 시대 의 정원문화, 자연을 예찬하던 사상은 지금도 이 숲길 에고요히남아있다. 걷는순간이곧명상이되고대숲 의잎사귀들이바람에흔들리며속삭인다. “시간은여기서, 아주천천히흐릅니다.” 교토는변화의속도에쫓기지않는다. 전통과현대, 정 적과 창조, 역사와 일상이 서로를 침범하지 않고 절묘 하게공존한다. 그 조화 속에서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된다. 도시를 소비하는 것이 아닌, 도시와 함께 호흡하는 감각. 이것 이교토가전해주는진짜여행의본질일지모른다. 문화의지층위에감각을포갠시간들. 숙소에서의경 험, 피부를 스치는 공기, 절의 침묵과 일상의 속삭임까 지, 모든것이조용히말을건넨다. 풍경은기억이됐고 기억은 추억을 쌓는다.새로운 경험은 감각을 깨우고 고요한떨림으로파동처럼퍼진다. ●박윤정 (주)민트투어대표 프랑스에서 대학 생활을 하 며 유럽 여행 문화를 익혔 다. 귀국후스스로를위한여 행을 즐기겠다는 마음으로 2002년 민트투어 여행사를 차렸다. 20여년동안맞춤여 행으로 여행객들의 취향에 맞는 여행을 디자인하고 있 다. 2021년 4월여행책 ‘나도 한번은 트레킹 페스티벌 크 루즈’와 이듬해 6월 ‘나도 한 번은 발트 3국 발칸반도’를 쓰고냈다. 역사적전통과현재를품은도시 ‘교토’ 텐류지사찰주변대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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