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5년 5월 16일(금) ~ 5월 22일(목) A10 피닉스골프장. 인천에서 하노이까지는 약 4시간 30분에서 5시간 남 짓의 비행. 하늘 길을 따라 남하한 비행기는 하노이의 노이바이 국제공항에 착륙했고 문이 열리자마자 겨울 의 찬 기운은 사라지고 남국의 따뜻하고 습한 공기가 곧장피부에와닿았다.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차로 약 40분. 차창 밖으로 펼 쳐지는푸른논과간헐적으로등장하는거대한사이니 지는도시의경계선을알린다. 한국프랜차이즈간판과 현지 식당, 그리고 오토바이 행렬이 어우러져 베트남 일상의리듬을만났다. 베트남은 40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나라다. 한나 라부터 청나라까지 천 년 가까이 중국의 지배를 받았 고, 이후 프랑스 식민지 시대와 인도차이나 전쟁, 베트 남 전쟁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렀다. 현재는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1986년 개혁개방 정책인‘도이 머이’를통해시장경제를적극적으로도입하고있다. 이러한역사적궤적은분단과전쟁, 재건과성장을거 쳐 온 한국과의 공통분모를 만들어냈다. 1992년 수교 이후 한국은 베트남의 최대 투자국이 됐고 2023년 기 준약 9000여개한국기업이진출해있다. 베트남의 국토는 남북으로 길게 뻗은‘S’자 형상이 다. 북부하노이는정치와역사의중심, 중부다낭은휴 양과 해양 관광의 중심, 남부 호찌민은 경제와 근대 문 화의 중심으로 구분된다. 그 중에서도 하노이는 천 년 수도의무게를간직한도시다. 리 왕조가 세운 승룡성은 현재 하노이 중심부로, 이 곳에 남겨진 탕롱 황성 유적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 산으로지정돼있다. 프랑스식민시기를거치며파리풍 건축 양식을 도입했고 1945년 9월 2일 호찌민 주석이 독립선언을낭독한정치사의중심지이기도하다. 하노이 시내를 걷다 보면 곳곳에서 한국의 흔적을 발 견하게 된다.‘김밥 천국’,‘한강치킨’,‘서울뷰티’ 같은간판이골목어귀마다자리하고젊은이들사이에 서는 K드라마와 K팝이일상언어가돼있다. 하노이는 더이상낯선도시가아니다. 타국의이국성이아닌, 어 딘가모르게익숙한온기가서려있었다. 호안끼엠 호수 주변을 걷다가 문득 느릿한 노을빛에 발걸음을멈춘다. 물위에떠오른거북탑과그위로내 려앉는 햇살, 벤치에 앉아 결혼 사진을 찍고 있는 신혼 부부, 그리고그들을바라보는노부부의미소. 이도시 는더이상혁명과전쟁의무대가아니라평범한일상 이차곡차곡쌓여가는공간이었다. 하노이에서북쪽으로약한시간. 박닌성구릉지에위 치한 피닉스 골프 리조트는‘작은 할롱베이’라 불릴 만큼 독특한 카르스트 지형 위에 조성된 곳이다. 안개 와석회암산들이어우러진이골프장의풍경은자연과 라운딩이 하나 되는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안개가 채 걷히지않은페어웨이에서의첫티샷은도시의소음을 지우는명상의순간이었다. 라운딩 중 만난 캐디에게“한국어를 어디서 배웠나 요?”라고 묻자 K드라마와 유튜브로 혼자 배웠다는 대 답이 돌아온다. 한국 문화가 이토록 자연 스럽게 녹아 든공간은이방인의마음을부드럽게풀어놓는다. 하노이의 밤은 낮보다 고요하게 흐른다. 쩐꾸억 사원 근처 한적한 카페에 앉아‘에그 커피’를 천천히 음미 한다. 유리창 너머로 비치는 호수의 물결과 오토바이 불빛, 느릿한음악이이도시의시간을구부러뜨린다. 빠른성장의굴레속에서도삶의속도를조절할줄아 는 사람들이 이곳에 있다. 거리의 공기 속에는 한국과 닮은 정서가 묻어나고 골목마다 익숙한 간판이 길잡 이처럼 다가온다. 안개가 머문 자리엔 커피의 향, 골목 의소란, 그리고언젠가다시걷게될길이아른거린다. 하노이는 그렇게, 내게 또 하나의‘귀향’을 남긴 도시 가됐다. ●박윤정 (주)민트투어대표 프랑스에서 대학 생 활을 하며 유럽 여행 문화를 익혔다. 귀국 후 스스로를 위한 여 행을 즐기겠다는 마 음으로 2002년 민트 투어 여행사를 차렸 다. 20여년동안맞춤 여행으로 여행객들의 취향에 맞는 여행을 디 자인하고 있다. 2021년 4월 여행 책 ‘나도 한번은 트레 킹 페스티벌 크루즈’와 이듬해 6월 ‘나도 한번은 발트 3 국발칸반도’를쓰고냈다. 하노이시장. 하노이는언제나안개속에있다. 강가에옅게깔린물안개는도시의오랜기억을가리고 해가떠오르면오토바이의소음과사람들의분주한발걸음이다시그역사를드러낸다. 어느조용한겨울의끝자락, 낯설면서도어딘가익숙한공기를따라하노이의거리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