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5년 5월 23일(금) ~ 5월 29일(목) A10 여행 예산군신암면용궁리.고요한시골 마을언덕위에자리한추사고택과 묘소는봄날에도소란스럽지않았다. 마당을노랗게물들인수선화는마 치추사의붓끝에서뿜어져나온수묵 의여백처럼가볍고도선명했다. 그의 묘소는오래된소나무숲과벚나무에 둘러싸여있다.단정하고절제된봉분 은세월의침묵속자신을낮춘채누 워있다. 이곳에서면삶의마지막문장을써 내려간문인의기품이고요하게감돈 다. 추사김정희(1786~1856년)는 단지서화가에그치지않았다. 금석 학자이자실학의계승자로서조선후 기문인의전범이자지성의화신이었 다.생은순탄하지않았다.세도정치의 틈바구니에서유배를견뎌야했고말 년에는제주도로유배돼‘세한도’라는 한점의그림으로시대를응시했다.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겨울이지난후에야소 나무와잣나무의절개를알수있다 는이문장은그의인생이기도하다. 군더더기없이선명하고고요하되무 너지지않는흔적. 나는벚꽃잎이묘 소위에사뿐히내려앉는그장면에 서문인의마지막 품격을다시금떠 올렸다. 묘소를뒤로하고차로15분남짓 달리면예산용궁리마을에도달한다. 그한복판에백송이우뚝서있다. 수 령200여년, 천연기념물제106호로 지정된이백송은흰빛나무껍질이은 은하게빛나며이방의기운을머금고 있다.전해지는이야기에따르면,조선 후기사신단이청나라에서들여와심 은것으로, 시대를건너온외교의증 표이자문화의이동이다. 푸른산자락과봄볕아래선백송 은마치수묵화의여백을가로지르는 선처럼고요하고단단하다.균열진껍 질과굽은가지는시간이새긴문장처 럼느껴졌다. 나는그나무앞에서문 득추사의세한도속고목들이떠올 랐다. 언젠가같은시대를호흡했던 것처럼,그의정신과백송의존재는시 간너머에서조우하고있었다. 기억은 나무가돼뿌리를내리고살아난다. 다시길을나서차로약20분.예산 군덕산면에자리한수덕사에닿는 다. 절입구부터흩날리는벚꽃이소 복이쌓인돌계단위로내려앉고고요 한종소리가바람에실려온다.이고 찰은백제시대창건설이전해질만큼 오래된역사와함께고려와조선을지 나한국불교사에깊은자취를남긴 곳이다. 국보제49호인대웅전은고려말 목조건축의백미로,정제된아름다움 과구조미를동시에지닌다.수덕사는 조선말기이후비구니승가의본산이 됐고일제강점기에는독립운동가들 의숨은거점이기도했다. 특히만공 스님의개혁적사상과수행의흔적이 곳곳에서려있다. 나는석탑곁그늘에앉아 조용히 숨을고른다. 낙화하는벚꽃잎은소 리없이바람을타고흘렀고, 그속에 서‘무심’(無心)의의미가되살아난다. 삶이란때론흘러가는것이아니라스 스로를가라앉히는일이라는사유가 마음을감싼다. 번다한일상속침묵 의귀환수덕사는그런고요의기술을 가르쳐줬다. 수덕사에서차로약1시간30분.태 안군소원면서해를마주한언덕에자 리한천리포수목원에도착했다. 바 닷바람과 꽃향기가 동시에와 닿는 이곳은1979년미국출신칼페리스 밀러(한국명민병갈·1920~2002년) 가설립한국내최초민간수목원이 다. 밀러는한국전쟁직후이땅에정 착해평생을식물과의공존에바쳤다. 현재천리포수목원에는1만6900 여종식물이자라고있고토종식물 과외래종이조화를이루는세계적생 태정원이다. 이름모를나무들이줄 지어선숲길을따라걷다보면자연 과인간이함께호흡해온세월의결이 느껴진다.바닷바람에실려오는향기 속에서꽃이진자리에새순이고개를 들고늙은나무옆엔어린묘목이자 라고있다.이곳에서시간은뿌리내리 며자라나는것이다. 여러장소를거쳤지만,이하루의여 정은결국하나의문장으로이어진다. 추사고택은 ‘절개’,백송은 ‘기억’,수덕 사는 ‘침묵’, 천리포수목원은 ‘공존’이 다. 나는그문장들사이를조심스럽 게걸었고, 바람과꽃과햇살의결을 따라그이야기를받아적었다. 벚꽃은피고, 지고, 또다시피어난 다. 그러나 그 사이에남는 것은 사 람의마음이다. 그마음을붙잡기위 해우리는 다시길을 나선다. 봄날, 이조용한여정은결국사라지는것 이아니라천천히스며드는것임을알 게된다. travel 추사고택서천리포수목원까지 ‘봄날의여정’ ●박윤 정 (주) 민 트투 어대표 프랑 스에서대학 생 활 을 하며 유럽여행문화를 익혔 다. 귀국 후스스로를위한여행을 즐 기 겠 다는마음으로2002년민 트 투 어여행사를차렸다. 20여년 동안 맞춤 여행으로여행 객 들의취향에 맞 는여행 을 디 자인하고있다. 2021년4월여행 책 ‘나도한번 은 트레킹 페스 티벌크 루 즈 ’와이 듬 해6월 ‘나도한 번은 발트 3국 발칸반 도’를 쓰 고 냈 다. 서울에서서해를향해차를 몰 면고속도로는점차도시의 경 계를 벗 어나 충 청도의부드러운 능 선을따라이어진다. 봄 햇살이유리창을스치고어 디 론가떠난다는감 각 이마음을차분히 깨 운다.이번여정은 충 남예산과태안, 서해의바람과 함께걸은역사와자연의길이었다. 그시 작 은조선최고의문인, 추사고택이다. 추사고택전 경 . 26 2 0 2 5년5월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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