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5년 6월 4일 (수요일) D2 21대 대선ㆍ이재명 스토리 경이로운 ‘언더도그 � Underdog·이길가능성이희박한비 주류를칭하는용어 � ’ 신화.이재명대통령후보의인생역정 은이렇게요약된다. 중학교도다니지못한 ‘무 � 無 � 수저’ 소 년공출신에서변호사,성남시장,경기지사를거쳐대한민국 권력의최정점에우뚝서기까지.그는숱한위기를마주할때 마다 무너지긴커녕오뚝이처럼일어나 스스로길을개척했 고더높은곳을향했다. 대한민국주권자가백척간두위기 에처한대한민국을구할선장으로낙점한배경이다. 이후보가 6·3 대선전피날레유세에서이렇게말했다.“여 러분,저는알고계신것처럼가진것없이자랐습니다. 그러 나남의것탐하거나가해하지않고나쁜길로빠지지않았 습니다.평범한사람들이공정하게대우받는상식적세상을 만들기위해온갖위기를이겨내며여러분힘으로이자리까 지왔습니다.” 그의말처럼이후보가위기에처할때마다굴하지않고더 선명하고 단단해졌다. 때론 저돌적추진력으로 갈채를 받 고,때로는거친행동으로비판을받기도했다.이후보가위 기를기회로 만드는 불굴의의지를 발휘했고, 국민역시변 화를열망하는 투표로 그에게호응했다.이제그는 자신이 염원하던 ‘평범한 사람들이대우받는 상식적세상’을 만들 출발선에섰다. 가난한소년공, 운명을개척하다 이후보가지금도길에피어있는식물이름을 달달 외는 건지독한가난때문이다.이후보가1963년 � 호적상1964년 � 경북안동에서5남 4녀중일곱째로태어났다. 매일왕복 10 ㎞산길을걸어초등학교에다녔고, 꽃과나물을캐먹으며 배고픔을달랬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1976년아버지를 따라 모든 가족이 성남상대원시장뒷골목반지하 단칸방으로이사했다. 살 아남기위해그는 중학교 졸업대신공장을전전하는 소년 공의삶을받아들여야만했다.“초등학교 3, 4학년이될무 렵중학교에진학할수없다는걸완전히이해하고있었다.” 나이가어린탓에형의이름을빌려위장취업한그가공장에 서받은일당은100원이었다. 여섯번째로취업한대양실업이라는야구글러브공장에서 압착프레스에왼쪽손목이으스러졌다.성인이되어장애판 정을받고군대를면제받을만큼의큰부상이었다. 그러나 사고는기회로이어졌다.공장에서30분일찍퇴근할수있게 해준덕에학원에다닐수있었고, 고교검정고시를 수월하 게통과한다. 하루두시간씩자며공부하는의지로중앙대 법학과에장학생으로입학한다. ‘82학번이재명’은빛나는 학생이었다. 대학 시절은사인 이상돈중앙대법학전문대학원명예교수 � 20대국회의원 � 는 “아주 우수한 성적으로입학해특별장학생조건으로 들어 온이재명은이미유명한학생이었다.보통학생보다나이가 좀 많았고 공부도 잘하고해서학생들 사이에신망이있었 다”고기억했다. 대학시절접한 5·18 민주화 운동의실상은 그에게‘사회의식’을깨우치는계기가됐다. 기득권대결패배,‘현실정치’에눈뜨다 이후보가 1986년두 번째도전끝에사법시험에합격한 다. 사법연수원성적은상위30%정도였다고한다. 판·검사 도노려볼만했지만,인권변호사로활동하던고 � 故 � 노무현 전대통령의강연을듣고삶의방향을틀었다. 1989년성남에서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고, ‘민주사회 를위한변호사모임’ ‘이천·광주 노동상담소’에서일하는 등 열혈 시민 활동가로 지냈다. 1995년에는 성남시민모임을 만들어△2000년분당 백궁·정자지구용도변경특혜의혹 △2002년분당파크뷰특혜분양사건의혹등을파헤친다. 처음부터정치에뜻을둔건아니다. 그의운명을바꾼건 뒤틀어진기득권정치에대한울분이시작이었다. 2004년시 민 20만명의뜻을모아성남공공의료원설립을위한 ‘주민 조례’를발의했다. 1년간시민들이분투했던작업은그러나 시의회에서새누리당주도로 47초만에휴지조각이된다.이 에항의하던그는오히려특수공무집행방해혐의로고발을 당했고, 쫓기는신세가됐다. 성남시청앞주민교회지하기 도실에서눈물을 흘리면서그는 다짐한다. “부정한기득권 자들이좌절시킨시립공공병원의꿈을성남시장이되어반 드시이뤄보겠다.정치를하기로결심했다.” ‘변방의시민운동가’의정치생활은순탄치않았다. 2006년 성남시장에도전했지만낙선했다. 2년뒤성남분당갑전략 공천을받았지만떨어졌다.2010년두번째도전끝에성남시 장에당선됐다.시민운동을하던경험을살려청년배당·무상 산후조리원·무상교복등의정책을성공시키는저돌적추진 력을발휘한다.오랜꿈이던성남시민의료원도설립한다. 2016년10월국정농단사건이터지자앞장서서박근혜전대 통령하야를주장했다.‘사이다이재명’을전국에각인시킨계 기였다.19대대선경선에서문재인전대통령,안희정전충남 지사와경쟁했지만 21.2%득표율로 3위를기록하며탈락했 다.굴하지않고2018년경기지사에도전해문재인정권의실세 전해철전의원을꺾고경기지사에오른다.2022년대선재수에 도전,이낙연전국무총리를누르고대선주자로도약한다. 숱한위기에기사회생,‘이재명일극체제’이루다 대권가도에오른이후보에게브레이크는없었다. 2022년 대선에서윤석열전대통령에게0.73%포인트차이로패했지 만,이후보가굴하지않았다.“대선에서패배한정치인은일 선에서물러난다”는관례를스스로깨부수고,대선3개월만 에치러진국회의원보궐선거에출마해인천계양을에당선 됐다. 내친김에그해 8월당대표선거에출마, 77.77%득표 율로민주당당권을차지한다. 차기를넘보는야권대선주자의정치생활은위기의연속 이었다.대장동개발특혜의혹, 공직선거법위반, 쌍방울관 련수사등그의목에는늘검찰의칼이겨눠져있었다. 2023 년 9월검찰이구속영장을청구하고, 국회체포동의안에민 주당일부의원들이동조하며구속위기에몰린다.이후보 가단식투쟁으로맞섰고,법원이구속영장을기각하며기사 회생한다. 그에게는 ‘냉정하다’는꼬리표가따라붙는다. 2024년총 선을앞두고체포동의안표결때‘반란표’를던진것으로지 목된친문재인계의원들이줄줄이공천에서탈락한것이대 표적이다.이른바 ‘비명횡사’ 논란이다. 정치적타협대신사 생결단식의대결을선택했다는비판이거셌다. 그러나그해 총선에서이후보가이끌던민주당은 172석을따내며공천 잡음에대한비판도잠재워버렸다.압도적승리를거둔그를 더이상‘비주류’라고부르는이는없었다. 위기때마다기사회생하는반전드라마도써냈다.지난해 1월부산가덕도신공항부지방문중흉기에목을찔리는정 치테러를당했다. 자칫생명이위태로울수있는부상에도, 서울로옮겨져응급수술을받고목숨을건졌다.대법원이지 난달공직선거법위반혐의에‘유죄’취지의파기환송을내리 며정치생명이끝날위기에처했지만, 고등법원이선거이후 로재판을미루며또한번살아났다. 비상계엄과조기대선, 21대대통령에당선되다 이후보에게날개를달아준건역설적으로윤석열전대통 령이다. 지난해느닷없는 불법계엄을 선포하자이후보가 국회에서비상계엄해제를진두지휘하며‘민주세력리더’입 지를공고히다진다.이어헌법재판소가숙의끝에윤전대 통령을탄핵하면서조기대선레이스에참여한다.선거내내 ‘어대명’ � 어차피대세는이재명 � 은흔들리지않았고, 막판 ‘아 들발언논란’등네거티브공세에시달렸지만대세론을꺾기 에는역부족이었다. “단한번의순탄한과정도, 단한번의쉬운싸움도없었 습니다. 그러나어려울때마다, 우리당원동지들께서, 우리 국민들께서상처투성이로 쓰러지던저이재명을일으켜주 셨습니다. 저이재명은지금부터여러분이지어주신희망의 새이름입니다.” 그의말마따나 국민들은이후보가 사선에놓일때마다 우군이되어살려냈고,결국대통령이라는최고권력자리까 지부여했다. 2030년대통령임기를마무리할 때도 그의이 름이‘희망’으로기억될지,이제그자신이대한민국국민앞 에증명해야할차례다. 정지용기자 숱한 위기를 기회로$ 무수저소년공, 결국 권력 ‘정점’에 서다 가난때문에공장전전,왼쪽손목다쳐장애입기도 공장일^공부병행검정고시거쳐중앙대법학과졸업 성남의료원설립좌절된후정치로삶의방향틀어 국정농단때‘박근혜하야’주장사이다이미지각인 대장동개발의혹등정치생명끝날위기서기사회생 尹계엄해제진두지휘,민주세력리더로반전드라마 1. ����������������������������������������������������� 2. ����������������������������������������������������������������������������������� ������������� 3. ����������������������������������������������������������������������������� 4. ���������������������������������������������������������������� ����� �������������� ��������������������� � ������������������ 1 2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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