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5년 6월 13일(금) ~ 6월 19일(목) A10 옹플뢰르항구풍경. 프랑스파리에서차로세시간센강하구를따라북서 쪽으로 달리다 보면 바다가 언어를 바꾸는 지점에 도 달하게 된다. 노르망디 해안선은 파리의 세련된 회화 와는 다른 질감을 갖고 있다. 그것은 습기 머금은 공기 속의회색빛, 잦은안개와짧은햇살, 그리고바람이다. 그바람이향하는끝자락에‘옹플뢰르’(Honfleur)가 있다. 그이름은오래된울림으로퍼진다. 11세기 바이킹들 교두보였던 이 도시는, 중세에는 프 랑스 왕실의 항구로, 17세기에는 대서양을 향한 개척 의 전초기지로서 역사를 쌓았다. 그리고 지금은 수많 은 예술가와 여행자가 머무는 빛의 항구가 됐다. 인구 는 7000명 남짓에 불과하지만 매년 백만 명 이상관광 객이 찾는 이 도시는 규모보다 깊이로 존재감을 증명 하는곳이다. 좁고 구불거리는 골목 사이를 걸으면 과거와 현재가 겹쳐지는듯하다. 마치고딕의무게와인상주의의가벼 움이 동시에 공존하며 묘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 항 구를 중심으로 펼쳐진 옛 항구(Vieux Bassin)는 그림 엽서처럼 완벽한 구도를 지닌 풍경이지만 실제로는 더 많은이야기를품고있다. 아침에는 어부들의 손길이, 낮에는 화가들의 시선이, 밤에는 여행자의 발자국이 물 위를 스친다. 오래된 목 조건물들이 서로 어깨를 기댄 채 서 있는 이 풍경은 아 름다움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수백 년 동안 서 로를 지탱해 온 구조, 그리고 역사를 견뎌낸 도시의 기 억이다. 외젠부댕미술관을보기위해언덕을올랐다. 부댕은 이 도시의 빛을 누구보다 사랑했던 화가였다. 옹플뢰 르에서 태어나 자랐고 노르망디 해안의 구름과 빛, 해 무와 잔잔한 파도 속에서 자연의 찰나를 포착하는 법 을익혔다. 클로드모네에게야외에서그림을그리는방 법을 처음으로 알려준 인물이기도 하다. 부댕의 손길 아래 하늘과 바다와 사람이한 장의 캔버스 안에서 호 흡하기 시작했고, 이는 곧 인상주의라는 새로운 시각 의문을열었다, 미술관에 다다랐을 때 문은 닫힌 상태였다. 문 앞에 서 아쉬움을 안고 고요히 거리 풍경을 바라본다. 바람 결에부딪히는창틀, 햇빛에바랜간판, 그리고멀리보 이는 항구의 윤곽. 이상하게도 그림은 미술관 안이 아니 라 도시 전체에 펼 쳐져있는듯하다. 언덕을 내려와 에 리크사티의고향집 앞에 멈췄다.‘짐노 페디’의 음이 떠오 른다. 단순하지만 기묘하게 잔상을 남기는 멜로디. 그 의음악처럼 그 집 역시 단순하면서도 묘한 매력을 지 니고 있었다. 그는 전통을 벗어나려 했고 기성 음악의 틀을 흔들며 20세기 전위음악의 선구자가 됐다. 그가 떠나던 날에도 이곳에는 이런 바람이 불고 있었을까? 음악이풍경처럼펼쳐진다. 항구로발걸음을향하며걷는다. 골목마다 숨어 있는 갤러리들을 둘러 봤다. 어느 곳 은현대적색채로가득했고, 또다른곳은바다의풍경 을 소묘처럼 담고 있었다. 골동품 상점에서 만난 낡은 촛대와 마주한 순간, 문득‘이 물건이 지금까지 어떤 밤 을 밝혔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 질문을 품게 되 는도시, 그런감정을자극하는공간. 옹플뢰르는그런 곳이다. 오후 햇살이 골목의 담벼락을 부드럽게 타고 흐를무렵, 도시기온도천천히높아졌다. 항구를따라 걷는다. 크레페 가게 앞에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고 아이스크림을 든 어린아이들이 눈을 반짝이며 거리를 뛰어다녔다. 벤치마다여행자들이앉아있고, 그들중일부는피크 닉처럼 빵과 치즈를 나누고 일부는 그저 햇빛을 얼굴 에 담은채 고요히 머문다. 거리의 악사는 아코디언을 연주했고길게이어진테라스카페마다잔이부딪히는 소리와 웃음이 흘렀다. 거리마다 사람들 감정이 가로 지르는또하나의풍경을이룬다. 해가기울고항구가붉게물들무렵레스토랑들은어 느새 만석이다. 파스텔 톤 외벽을 가진 해산물 전문점, 벽면에 오래된 선박 그림이 걸린 와인바, 그리고 창 너 머로 촛불이 흔들리는 작은 바스트로까지 모든 식당 이사람들로붐빈다. 그중한곳, 항구를바로바라볼수있는좌석에앉아 프리드 메르를 주문했다. 굴과 홍합, 새우, 게가 층층 이 쌓인 커다란 은쟁반이 식탁 위에 놓이고 레몬 즙이 살짝뿌려지는순간해산물에서바다의기운이올라왔 다. 식당 전체가 마치 큰 배처럼 움직인다. 접시가 부딪 히고, 코르크가 뽑히고, 와인이 따라지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모두가무언가를 기다리 는 듯했고, 모두가 이 저녁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듯했 다 옹플뢰르는 바다와 하늘, 예술과 음악, 그리고 사람 의 감정이 얽혀 있는도시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그렸 던 빛은 여전히 항구의 수면 위에 반짝이고사티의 엇 박자 피아노는 어느 창문 너머에서 조용히 흐른다. 그 리고그순간다시여행자가되고, 이도시의조용한연 인이됐다. ●박윤정 (주)민트투어대표 프랑스에서 대학 생 활을 하며 유럽 여행 문화를 익혔다. 귀국 후 스스로를 위한 여 행을 즐기겠다는 마 음으로 2002년 민트 투어 여행사를 차렸 다. 20여년동안맞춤 여행으로 여행객들의 취향에 맞는 여행을 디 자인하고 있다. 2021년 4월 여행 책 ‘나도 한번은 트레 킹 페스티벌 크루즈’와 이듬해 6월 ‘나도 한번은 발트 3 국발칸반도’를쓰고냈다. 옹플뢰르거리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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