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5년 6월 27일 (금요일) 한낮의뜨거움이사그라들고서 늘한 바람이 불었다. 늦은 점심을 먹고바다로향했다. 한시간남짓 달리면 솔트 클릭 공원에 도착한 다. 산과바다가접해있는곳이라 길 건너편에 주차하고 산으로 오 르면높은곳에서바다를볼수있 어좋고, 길아래쪽에주차하면바 로 바다로 연결되어 즐겨가는 곳 이다. 약간경사진언덕은바다쪽으로 길게뻗어있다. 잔디밭위에사람 들이저마다의자세로지는해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뒷모습 을보며걸어내려갔다. 언덕제일 높은곳에의자두개를나란히놓 고노부부가앉아있다. 한사람은 책을 읽고, 아내로 보이는 사람은 차츰 붉어지기 시작하는 노을빛 하늘을 바라보는 모습이 그림처 럼보였다. 그들사이에는어떤말 이나 행동도 없었다. 오랜 세월의 더께로 어색하지 않은 고요함과 익숙함이흘렀다. 나무 그늘을 살짝 빗겨난 곳에 담요를 펴고 한 여인이 엎드려 있 다. 온몸으로햇빛을받고있는모 습이 나른하고 평화롭다. 아무렇 게나 흘러내린 머리가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는 그녀의 삶을 보여 주는것같다. 설핏 잠이 들었는지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주위를 빙빙 돌며소란스럽게놀아도불안해하 지않고내버려두었다. 한무리의젊은이가머리를찰랑 거리며 나를 앞질러 언덕을 내려 간다. 경쾌한재잘거림이기분좋은울 림이다. 탄탄한 근육과 검게 그을 은 손으로 서프보드를 끼고 걷는 뒷모습에서그들의싱싱한생명력 과 활기가 고스란히 내게 전해진 다. 아마도 그들의 얼굴은 파도와 마주하고즐기는자신만만한표정 일것이다. 잔디밭끝에는바다를향한벤치 가줄지어있다. 파도소리가가까 이 들리고 부서지는 거품도 볼 수 있는 거리이다. 사람들이 지는 석 양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조금 있으면 오렌지 알사탕 같은 해가 물속으로사라질즈음이었다. 한 삶이 두 무릎을 의자 위로올 려얼굴을묻고생각에잠겨있다. 지금 그의 영혼이 바위에 부딪힌 파도처럼 산산이 부서지고 있는 지, 아니면 요동치는 파도처럼 펄 펄한 생명력으로 채우고 있는지 잘모르겠다. 아무튼, 그의뒷모습 은현실이닿지않는먼곳어디쯤 을향해있는것처럼보였다. 나는 멀찍이 떨어진 반대편에 자리 잡 고앉았다. 각기다른뒷모습이많은것을말 해주고 있었다. 어떻게 이목구비 를 구별할 수 없는 뒷모습에서도 표정을읽을수있을까. 앙다문입 술이보이고, 표정을감추려돌아 섰는데오히려더숨길수없는모 습을 드러내게 되기도 한다. 그것 은 아마도 앞모습과는 달리 꾸미 거나 연기할 수 없는 정직함 때문 인지모른다. 아직남아있는뒷모습의강한기 억은 아이가 학교에 처음 가던 날 이었다. 잡고있던나의손을놓고 혼자 교실로 걸어가던 뒷모습이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았다. 작은 몸으로 감당해야 할 미래에 대한 안쓰러움과대견함으로자리를뜰 수없었다. 그후로아이는자주뒷모습을보 였다. 기숙사문앞에서손을흔들 던날,공항에내려주던날,직장을 찾아뉴욕으로떠나던날. 한가정 을이룬아이는나에게서점점멀 어져세상을향해날아간다. 때로는 힘들고 지쳐 돌아오기도 했다. 나는언제나그자리에서팔 벌려마주하고있으면된다. 나의돌아선모습을보이고싶지 않아늘떠나가는그를향해있다. 아이의뒷모습에서표정을짐작하 며그대로한참을머문다. 문득생 각해본다. 내가 모르는 나의 정직 한뒷모습은어떤표정일까. 오피니언 A8 윌셔에서 박연실 수필가 시사만평 존다코우작 <케이글 USA-본사특약> 속편은 싫어 이란 이 영화 전에도 봤잖아… 후속편은 싫어! 뒷모습에도표정이있어 세종대왕승하후 40여일지난 1450년 5월 21일좌의정황보인 이입궁해빈소에서한권의책을 꺼냈다. 대나무로만든책에금가 루로글자를새기고귀한옥장식 을붙여만든‘옥책’이다. 조선 왕실과 조정은 임금 등의 공덕을 기리는 이름인‘존호’ ‘묘호’를지을때그내용을옥책 에기록해바치고는했다. 옥책을 펴든 황보인은“삼가 옥책을 받 들어 영문예무인성명효대왕(英 文睿武仁聖明孝大王)이라는 존 시와 세종이라는 묘호를 올립니 다”라고 고했다. 이 가운데 존시 (존호)의 내용은‘학식이 뛰어나 고군사에밝으며성인처럼인자 한데다가효의도리를깨친위대 한 임금’으로 풀이된다. 존호의 경우 왕이 책봉될 때 혹은 재위 기간중에바쳐지는경우가많았 다. 사후에 올려지는 묘호와 달 리존호가임금생전에지어진것 은군왕스스로존호에담긴내용 대로선정을베풀어달라는취지 에서였을것이다. 오늘날우리의대통령은제왕적 이라고불릴만큼강력한권한을 부여받았다.문민정부이후30여 년이지났음에도이같은대통령 제가 유지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정치 안정, 경제성장, 법치 확립, 자주 국방을 이루려면 강력한 리더십 의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생각하 는국민들이적지않기때문일것 이다. 만약 우리나라 대통령이 강력 한 권한을 좋은 정치를 펴는 데 써달라고 당부하는 차원에서 국 민들이 존호를 지어준다면 어 떻게 될까. 아마도‘민심을 경청 해 국론을 모으고, 야당과 협치 해정치를안정시키며법치를바 로세우고, 경제를풍요롭게하면 서나라의안보를튼튼히지켜달 라’는 취지의 당부를 담게 될 것 이다. 안타깝게도 건국 이래 13명에 이르는 전임 대통령 중 이 같은 존호를온전히받을만한인물을 고르기는 쉽지 않다. 그보다는 재임중초심을잃고이념적도그 마에빠지거나측근정치에기대 었다가민심을잃고불행한결말 을맞이하는경우가많았다. 저명한 비교정치학자인 후안 린츠 미국 예일대 명예교수는 ‘대통령제의 위험성’이라는 제 목의 글에서“대통령제는 승자 독식규칙에따라운영되므로많 은문제를안고있다”며“민주적 정치를 갈등적 제로섬게임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고 진단했 다. 특히 대선에서 당선인과 2위 후보간득표차이가매우근소하 거나, 의회의다수가대통령과반 대되는정치노선을추구할때대 통령과다수당중누가더국민을 대변하는지를놓고충돌할수있 다고지적했다.이경우군의개입 유혹이발생할수있다는분석도 곁들였다. 마치 우리의 2022년 대선이후를정확히예견한듯한 대목이다. 린츠교수는이같은문제를푸 는 방안으로 포용적 정책을 꼽 았다. 반대 진영도 껴안아 대통 령 스스로‘모든 국민의 대통령 (president of all the people)’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특히 대통령이 자신의 진영에서 극단주의세력을배제하고, 선거 에서패배한경쟁진영에입각을 제안하는 방법 등을 제시했다. 마침이재명대통령은취임당시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 언했다. 최근에는 새 정부의 첫 장관후보자로기업인, 비명계의 원, 보수 진영 출신 정치인 등을 발탁하는포용적실용인선을단 행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입법 독주 움 직임을보이는여당과정부관료 들을향해코드맞추기를강요하 는 국정기획위원회의 모습을 보 면이대통령의‘포용적정치’가 과연지속될수있을지반신반의 하게 된다. 최근 김민석 총리 후 보자가과거유죄확정판결을받 은자신의정치자금법위반사건 에 대해“표적 사정의 성격이 농 후한사건”이라고주장한대목은 새정부의법치주의존중여부에 대한국민적우려를촉발했다. 518년 조선 역사에서 27명의 임금이평균19년간재위에올랐 지만존호에맞는선정을편성군 은극소수다. 오늘날그보다짧은5년임기의 대통령이‘나 홀로’치적을 쌓기 는더힘들수밖에없다. 이대통 령은 강력한 리더십을 오남용해 독단에빠졌던 전임자들을반면 교사로 삼아야 한다. 국론 분열 을막고여야협치를통해일관성 있게중도실용정치를지속해야 성공할수있다.만약국민들로부 터옥책에존호를담아받게된다 면어떤당부가담겨있을지스스 로돌아보면서극단의정치를배 격해야할것이다. 대통령도 옥책과 존호를 받는다면 민병권 서울경제 논설위원 금요일 아침에 중동극장 개봉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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