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5년 6월 27일(금) ~ 7월 3일(목) A10 프랑스파리에서북서쪽으로차를몰아세시간남짓. 노르망디 곡선진들판과 유채꽃밭을 지나 하늘과 바다 가맞닿는지점에이르면거기, 에트르타(Etretat)가있 다. 이 해안 마을은 규모는 작지만, 그 작음 속에 응축 된 시간과 풍경은 웅장하다. 에트르타는 단지 지리적 공간이 아니라 예술과 전설이 중첩된 풍경이다. 하얀 절벽은 파도와 바람이 수천 년 동안 시간의 흔적을 담 아낸 것이고, 그 위에 얹힌 집들과 거리들은 오랜 시간 에걸쳐예술가와작가, 방랑객들이남긴발자취다. 2025년 5월 29일목요일‘예수승천일’(Ascension) 은 프랑스 공휴일이다. 많은 이들이 이 날을 포함해 금 요일을징검다리연휴로보내며여행을떠난다. 그날의 에트르타는 단순한 해변 마을이 아니었다. 전역에서 몰려든사람들로도로는혼잡했고바다로이어지는작 은 골목은 인파로 넘쳐났다. 자동차는 시내 진입이 거 의 불가능했고 마을 외곽 공영주차장에 겨우 차를 세 웠다. 이미수백대차량이빽빽이들어차있었다. 무릎을 펴고 차문을 닫았을 때 짠바람이 얼굴을 훑 고 지나갔다. 뭔가긴 여정을 떠나온 기분이다. 마을 중 심으로 발걸음을 옮겨 작은 카페에 들어선다. 커피 한 잔이피곤함을덜어주고유리창너머로펼쳐진풍경인 코끼리 바위와 절벽, 햇빛을 머금은 물결이나를 조용 히맞아준다. 에트르타절벽은석회암으로이뤄져있다. 이 해안선은 프랑스 남부‘코트다쥐르’처럼 화려하 지는않지만노르망디특유의질박하고도극적인선을 지녔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아발’(aval)이 라불리는코끼리바위. 해식아치가바다를향해우뚝 솟은 형상이다. 고향이 이곳인 모파상은 이바위를 물 속에 코를 처박은 거대한 코끼리처럼 보인다고 표현했 다.이풍광이예술가들을불러모았다. 클로드 모네는 에트르타 절벽을 수없이 그렸다. 그에 게 이곳은 단순한 바위가 아니라 빛과 바람이 연주하 는 회화적 변주곡이었다. 외젠 부댕, 귀스타브 쿠르베 또한 이곳에서 화폭을 펼쳤고 프랑스 화단은 이 마을 의절경을통해인상주의라는사조에생기를불어넣었 다. 전 망 대 에 오르는 수많은 관 광객들을 뒤 로하고 해안을 따라 천천히 걷는 다. 멈춘 자리마다 바위 가 달리 보인다. 어떤 곳에서는 침묵하는 사제 같고 다른 곳에서는 고개 숙인 거인같다. 태양과 구름 각도, 파도 높낮이, 그리고 그 자리에 머문 시간에 따라 절벽은 다른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에트르타의 진정한 매력은 그 변화속에 있는 듯싶다. 정해진 풍경이 아니라 그날 하루 마주한 다른 경험과 이야기들. 해변은 모래가 아닌 작고 매끄러운 자갈이다. 해안가 를 걷는 감각이 새롭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자갈들 이 서로 부딪히며 소리를 낸다. 신발을 벗고 바닷물에 발을 담그자 차갑고 동글한 자갈들이 발가락 사이를 밀고 들어온다. 그 감촉은 낯설면서도 생생하다. 파도 거품과 함께 바닷물이 어느새 종아리까지 타고 오른 다. 주위가족단위관광객들은돗자리를깔고시간을보 내고 연인들은 서로를 찍어주며 웃음을 나눈다. 아이 들은 조약돌을 집어 바다에 던지고 나이 지긋한 부부 는 조용히 그곳을 바라본다. 다양한 사람들이 같은 바 다를 보며 각자 방식으로 시간을 담는다. 그 다채로움 조차에트르타의일부다. 에트르타는또다른문학적배경지이기도하다. 모리 스 르블랑의‘아르 센 뤼팽’시리즈는 이곳 해안 동굴 을 비밀의 무대로 설정했다. 전설 속 보물이 숨겨졌다 는 절벽 아래 동굴을 찾기 위해 지금도 몇몇 방문객들 은바닷물이빠진틈을타절벽아래로향한다고한다. 어쩌면소설속이야기를따라가는순간우리는모두뤼 팽이되는것인지도모른다. 돌아가는 길, 해변 길목 서점에서‘뤼팽과 바늘 절벽 의비밀’표지를본다. 절벽과전설, 바다와그림. 이작 은 마을에 얽힌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 모두 담고 갈 수 없을 지경이다. 주차장으로 향하는 골목은 여전히 혼 잡하지만 바다에 발을 담근 감각은 오래도록 발끝에 남아있다. 다음번엔구름이더짙은날, 파도가거세게 부서지는 날, 다시 이곳을 찾고 싶다. 그러면 같은 절벽 도다른표정을지을테고, 그건또다른이야기의시작 일것이다. ●박윤정 (주)민트투어대표 프랑스에서 대학 생 활을 하며 유럽 여행 문화를 익혔다. 귀국 후 스스로를 위한 여 행을 즐기겠다는 마 음으로 2002년 민트 투어 여행사를 차렸 다. 20여년동안맞춤 여행으로 여행객들의 취향에 맞는 여행을 디 자인하고 있다. 2021년 4월 여행 책 ‘나도 한번은 트레 킹 페스티벌 크루즈’와 이듬해 6월 ‘나도 한번은 발트 3 국발칸반도’를쓰고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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