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5년 7월 18일(금) ~ 7월 24일(목) A10 서울을떠난지한시간이채안됐을때차창너머로연꽃 밭이눈에들어왔다. 양평은곳곳에크고작은연못을품고 있다. 여름이면연잎과꽃망울이수백송이씩물위로고개 를내민다. 멀리서보면그연밭은작은호수같지만가까이 다가서면연잎사이로물새들이낮은소리로울어댄다. 척박 한땅에도뿌리를내려향을피우는이강변의연꽃은어쩌 면옛양평사람들이품어온기원의꽃같기도하다. 일요일의 양평은 도시와 시골의 경계가 흐려지는 풍경으 로시작된다.창문을열면산내음이스며들고깊게들이쉬는 숨결마다마음이가벼워진다. 양평은서울과가까우면서도 서울답지 않은 드문 땅이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등을 맞대 고흐르며예부터물길따라문인들이들렀고화가들이머물 렀다. 조선시대양수리에는선비들의정자가있었고오늘날 의양평은여전히예술가들의아틀리에가되어간다. 물길은 곧 시간이고 시간은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그물 길끝에닿은곳이바로이함캠퍼스다. 양평의초록언덕위 에 자리한 이곳은 (재)두양문화재단이 문화·교육 사업을 확산하기위해 2022년조성한복합문화공간이다. 약 1만 평부지에 6개 전시관과 공연장을 갖췄고 김개천 국민대학 교교수의설계로완공된건물은노출콘크리트의거친물성 과자연의포근함이어우러져독특한공간미를만든다. 이 함캠퍼스가선보인이번전시는‘침묵, 그고요한외침’이 란 주제로 폴란드 포스터(Poster) 학파의 주요작품 200여 점을 소개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소개하는 이번 전시는냉전시대폴란드가낳은세계적시각예술의흐름을 압축해보여준다. 제2차세계대전이후강력한검열과사회주의리얼리즘의 틀속에서폴란드아티스트들은광고와연극, 영화포스터 에이르기까지시적상징과풍자를담아냈다. 포스터는단 순한선전물이아니라거리의미술관이자, 억압된체제안 에서예술적담론을품은작은해방구임을알수있었다. 1관에들어서자강렬한색채의영화포스터가시선을사 로잡는다. 원색의대비속에표현된철학과다시피어난인 간의존엄이담겨있다. 종이질감위에스민시대의공기가 시선끝에서전해지는듯하다. 1960~1970년대폴란드거 리에서 이 이미지들은 시민들에게 작은 균열을 일으켰을 것이다. 강압적인프로파간다대신비유와상징으로, 때론 해학으로포스터는거리위에숨결을불어넣지않았을까? 전시된포스터들은장식적이기보다삶과죽음,억압과자 유, 절망과풍자가한장의종이안에서치열하게부딪힌다. 어떤것은다채로운색면위에조그만인간의실루엣이흔 들리고 어떤 것은 해골과 꽃이 나란히 놓여 있다. 작품 옆 해설에는 작가들이 바르샤바와 파리, 베를린을 오가며주 고받은편지들이실려있었다. 한장의포스터가한편의시 가되고텍스트는이미지의연장이돼잊힌역사를더듬게 한다. 뜻밖의상상력을안겨준전시는시간가는줄모르게 주말오후를채웠다. 전시장을나와이함캠퍼스의산책로 를따라걷는다. 강을바라보는언덕위로뜨거운햇볕이내 리쬐지만숲사이로스며드는바람은짧은여름의서곡같 았다. 양평은 올 때마다 새롭다. 늘 자연과 예술이 나란히 반긴다. 다음에는또어떤풍경과예술이이물길을건너와 기다리고있을까? 서울로 돌아오는 길 창문 너머로 석양에 물든 북한강이 따라왔다. 사람들은 이를 주말 나들이라 부르겠지만내겐 매번작고긴여행이다. 예술이그렇듯풍경도삶도결국엔 한장의포스터처럼마음에붙는다. 그것이양평이고그것 이이함캠퍼스가전하는예술의방식이었다. ●박윤정(주)민트투어대표 프랑스에서 대학 생활 을하며유럽여행문화 를익혔다. 귀국후스스 로를 위한 여행을 즐기 겠다는 마음으로 2002 년 민트투어 여행사를 차렸다. 20여년동안맞 춤 여행으로 여행객들 의 취향에 맞는 여행을 디자인하고있다. 2021년 4월여행책‘나도한번은트레킹페스티벌크루즈’와이듬 해6월‘나도한번은발트3국발칸반도’를쓰고냈다. 이함캠퍼스전경. 이함캠퍼스전시실. 서울에서동쪽으로차를몰았다.강남의 회색빌딩숲을 벗어나자한강은어느새유순한 물결로몸을풀었다.팔당댐을지나강변도로가 강과바짝붙을무렵콘크리트의잿빛과 물위에흩뿌려진햇빛의은빛이묘하게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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