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5년 8월 12일 (화요일) D3 기획 임정에거금 쾌척한 GS^LG 창업주$독립운동 ‘숨은조연’이었다 “백산상회와 낙은 ( 경성은행 ) 에 대한 우리형의진심어린찬조 는,정말우리형께서아우를깊 이생각해주신것으로마음깊 이감사드립니다.” 일제강점기던 1920년대초 독립운 동가백산안희제선생 ( 1885~1943 ) 은 ‘형’에게이런내용의편지를보냈다.그 가세운백산상회는당시중국상하이 에설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군자 금을공급하고있었다.이‘독립군의은 행’에자금을 댄전주 ( 錢主 ) 에게안 선 생이고마움을표한것이다.이형의정 체는GS그룹의창업주효주허만정선 생 ( 1897~1952 ) 이다. 허선생은 단순한전주가아니었다. 관련연구를진행한 서문석단국대교 수는 “안희제선생과 ‘경주 최부자’로 불리는 최준 선생에이어 3대 주주로 추정된다”고했다. 허선생이백산상회 주식을사들인뒤상당수를안선생과 동생 ( 허만옥 ) 명의로돌려놓은기록이 발견되기때문. 위편지에도안 선생이 “1,000주를저의명의로 하는것은 형 께서부탁하신내용” “주권명의는 막 내아우님이름으로 바꿔쓰라고 하신 건은잘처리하겠습니다”등이나온다. 서교수에따르면 1921년 7월기준 백산상회전체주식 ( 2만주 ) 가운데허 선생이실질보유한 주식은 1,500주에 달한것으로추정된다.전라도대지주 이자제2대부통령을지낸인촌김성수 선생 ( 1891~1955 ) 이보유한 주식이 50 주였던점을 고려하면엄청난 규모다. 이렇게모인백산상회자금은 고스란 히임시정부로 흘러들어갔다. 백범김 구선생은해방후후원자인최준선생 을만나 ‘임시정부재정의6할 ( 60% ) 은 백산이댔다’고말한것으로전해졌다. 이렇듯 독립운동사 ( 史 ) 의 ‘숨은 조 연’이라 할 수있는 허선생은 1897년 경남진주의‘만석꾼 ( 곡식만섬을거두 어드리는 부자를 의미 ) ’ 집둘째아들 로 태어났다. 부잣집도련님이자 대지 주였던 그가 독립운동에뛰어든 계기 는 1919년 3·1 운동으로 추정된다. 당 시22세였던그는경남진주유림을대 표해고종 황제장례식에참여하기위 해경성에올라왔다가 3·1 운동을목격 한다.이후그는백산상회·주일상회등 임시정부자금공급처에사재 ( 私財 ) 를 털어넣었다. 일제에발각되면집안 전 체가풍비박산날수있는위험천만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독립운동 흔 적 은 곳곳 에 서 볼 수있다.1920년상하이임시정부 산하 대한 적십 자사 소속 요 원으로 활 동하다일제에 붙잡힌 최 웅 림과 정 몽 석의공 판 에서 판 사가 ‘임시정부에보 낼 군자금을 허만정에게가서모집하 였 느냐 ’질문했다는기록이있다. 최 웅 림은상하이에서의 열 단원으로 활 동했 다. 당시허선생은여 윳돈 이 없 어자금 을보내지 못 했다고한다.그는당대최 고의부자라 할 수도 없 었다. 서교수 에따르면1940년진주에서500석이상 소작료 를 받 는지주 42명중허만정이 란이름은 없 었다. 허선생의 활 동은 항 일 무 장 투쟁 지 원에국한되지 않았 다. 인재 양 성이중 요 하다고생각한그는진주에서‘사립’ 일신고등보통 학 교 설립을 이 끌 었다. 조선인교원이 없 는 공립 학 교에선민 족 교 육 이불가 능 하다는 판 단에서다. 그는 1920년대초 반 7만여원에달하 는 토 지와 쌀 500섬 ( 한섬에144 kg ) 등 을기부한것으로전해졌다.당시허선 생이주도한 기부 운동에경남을 중심 으로 163명이 현 금을 내놓 았 다고 한 다. 조선 총 독부 등의 개입 으로 남 학 교 설립은 실 패 했지만 1925년일신여 자고등보통 학 교 ( 현 진주여고 ) 가 문 을연다. 허선생이 살 던진주 승 산마을에는 독립운동을 지원한 선대기업인이한 명 더 있었다. L G그룹의창업주인연 암 구인회선생 ( 1907~1969 ) 이다. 태 평양 전 쟁 이한창이던 1942년 당시진주에 서 포 목점‘구인상회’를운 영 하던구선 생에게일제에수 배 중인안희제선생이 불 쑥찾 아왔다고한다. 충칭 임시정부 의독립운동자금으로1만원을지원해 달라는것. 구인상회자 본 금 ( 2,000원 ) 의다 섯배 이자, 쌀 500가마니 ( 1가마니 당 쌀 80 kg ) 에달하는 거금이었던데 다지원사실이발각되면목숨 까 지내 놓아 야 할 상황이었지만구선생은 큰 돈 을내놓은것으로 알 려졌다. 그가이처럼 큰결 정을 내 릴 수있었 던것은부 친영향 이 컸 던것으로보인 다. 춘 강구재서선생도1930년경남의 령 출 신의독립운동가일정구여순 선 생을 통해당시상하이임시정부의주 석김구선생에게독립운동자금 5,000 만원을보냈다.다만 역 사 학 계일부에 선구재서선생과달리구인회선생 의독립운동 지원 사실은 사 료 가 명 확 하지 않 다는지 적 도있 다. 정대 율 국립경상대교수는 “진주 승 산마을의허 씨 와 구 씨 가문들은만석꾼, 또 는천석꾼으로서 부를 향 유하는데그 치 지 않 고국가가 어려 울 때국난을 극복 하기위해 많 은 노력 을했다”고했다. 구인회선생은 1945년해방과 함 께 구인상회를 접 고그해11월부산에조 선 흥 업사라는 무역 회사를 차렸 다. 사 업은 신통 치않았 다. 이 듬 해 1월 조선 흥 업사사 무 실에고 향손 님이왔다. 허 선생이었다. 그는 거 액 의사업자금을 내놓으 며 일 본 유 학 에서 귀 국한 셋 째 아들허준구 ( 당시24세 ) 의경 영 수업을 부탁했다.공교 롭 게구 씨 ,허 씨 두가문 의동업이시 작 된순 간 이었다. 그렇게 세상에나온제 품 이 첫 국산 화 장 품 ‘동 동구리 무 ( 럭키크 림 ) ’였다. 말 그대로 대박이났다.1947년1월 L G그룹의모 체인 락 희 화학 공업이등장했다. 동업은 ‘1세대구인회·허만정 → 2세대 구자경·허준구 → 3세대구 본무 ·허창수’ 로 잡 음 없 이이어졌다.그러다 2004년 7월 1일GS 홀딩 스 ( 현 ( 주 ) GS ) 가설립 되면서57년의동행은막을내 렸 다.정 교수는“허 씨 와구 씨 가문은어려움을 당한이 웃 들을돌보는데 앞 장 섰 고국 난이일어났을 때국가와 민 족 을위해 홀 연히일어났다” 며 “이러한 근검절약 과 화합 의정신이 오늘 날 대기업을이 루 는원동 력 이 됐 다”고했다. 박준석기자 일제강점기시 절 독 립운동에 자금을 지 원한 GS그룹의창업 주 효주 허만정선생 ( 1897~1952 ) 과 L G 그룹의 창업주인 연 암 구인회선생 ( 1907~1969 ) .두선생을 관통하는정신은 나라를 걱 정하고 국 민을 살피 는 마음인 ‘우국 애 민 ( 憂國愛 民 ) ’이다.이는해방이후산업 화 를거 치 면서기업을일으 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사업보국 ( 事業報國 ) ’정신으로 발전했다. 정주 영현 대그룹 명 예 회장 은건설·조선·자동 차 등기 간 산업을 글 로 벌 수준으로 끌 어올 렸 고이 병철삼 성창업회장은 반 도체산업을 통해한 국 첨 단산업의기 틀 을마련했다. 정 철 ( 사진 ) 한국경제인 협 회기업가 정신발전 소 소 장 겸 한국경제연구원 장은 11일한국일보와의서면인 터뷰 에서“한국의기업가정신은공동체의 식과 혁 신의 결합 ”이라 며 “단순히경제 적 이 윤 을 추구하기보다 사업보국과 우국 애 민정신이 뿌 리내려고유한기업 가정신 DNA 로자리 잡았 다”고했다. 공동체를 향 한 1, 2세대기업인들의 책 임의식이‘한강의기 적 ’으로 불리는대 한민국 고도 성장의원동 력 이 됐 다는 의미다. 특 히정 소 장은사업보국과 같 은 ‘ K 기업가정신’이과거유산이아니라 현 재와미 래 의 책무 라고강조했다. 그는 “ 오 히려 더절 실하다” 며 “ 오늘 날 기업 은일자리창 출 ,미 래 세대준비, 사회문 제해 결 등과거보다 더많 은 역 할을 요 구 받 고있다”고했다. 그러면서“조국 독립과 산업 화 를 위해과감히 결 단했 던 옛 기업가들처럼지금 기업가도 국 가 적 난제해 결 과 한국 경제재도 약 의 주 역 이 돼야 한다”고했다. 일부에서는재 벌 가3,4세대가창업주 와달리사회 적책 임을다하지 않 고사 적 인이 익 만 추구하고 있다는 지 적 도 나온다.정 소 장은“일 괄적 으로그렇게 보기어 렵 다” 며 “ 많 은 3,4세경 영 인들이 환 경·사회·지 배 구조 ( E SG ) 경 영 , 사회 적 가 치 창 출 ,스 타트 업 협 업등 새 로운방 식으로사회 적책 임을다하고있다”고 선을그었다.최 근 미국과상 호 관세 협 상에서이재용 삼 성전자회장,정의선 현 대 차 그룹회장, 김동관한 화 그룹부회 장등한국주 력 산업을이 끄 는대기업 총 수, 최고경 영 자 ( CEO ) 들이 총출 동해 정부에 힘 을보 탰 다.다만그는“ 새 로운 기업가정신을어 떻 게정립하고실천할 지고민해 야 한다”고했다. 한경 협 은 2월기업가정신의회 복 을 강조하 며 기업가정신발전 소 를만들었 다.이후‘우리모두,모두의일상에기업 가정신’을모 토 로내 걸 고스 타트 업창 업가 토크콘 서 트 ,기업 캠프 등을 펼치 고있다. 정 소 장은 “한국경제는인구 감 소 ,생산성정체, 글 로 벌 불 확 실성등 으로구조 적 저성장에 직 면했다” 며 “기 업인 뿐 만아니라주부, 학 생,공 무 원등 국민의일상에기업가정신이 뿌 리내린 다면 새 로운성장동 력 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박준석기자 “한강의기적일군 1, 2세대기업인들$지금기업가들도경제재도약주역되길” 정철한경협기업가정신발전소장 인터뷰 “한국기업가정신‘사업보국’뿌리 과거유산아닌현재^미래의책무” 1920년5월8일매일신보에 ‘경남진주의독지청년중학설립의대계획’이라는제목의기사가실렸 다. 설립운동을주도했던허만정(사진) 선생을다룬내용이다. GS역사관홈페이지캡처 연암구인회(사진) 선생이경남진주에서운영했던포목점구인상회전경. 한국경제인협회제공 독립군지원한허만정^구인회 허, 군자금공급‘백산상회’에참여 인재양성위해학교설립이끌기도 구,수배중인안희제선생이찾아와 자금지원을요청하자큰돈내놓아 두가문해방후동업‘57년동행’ “어려운이웃들돌보는데앞장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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