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5년 8월 13일 (수요일) 촛불 켜고 “독립” 눌러쓴 외교 선구자들 노력, ‘한국친우회’ 결실 “외교는 국제사회와의관계를 구축 하는 ‘문명적독립운동’이었으며, 독립 이후 대한민국이국제사회일원이될 수있는토대가됐다.” 지난달 2 8일 � 현지시간 � 프랑스 파리 팡테옹 앞 마들렌 드 상리스 � madeleine de senlis � 호텔에서만 난 재불 독립운동사학자 � 파리7대학 박사과정 � 이장규 � 58^ �� � 씨는 “오늘 날우리는외교독립운동을새로운방 식으로조명해야 한다”며이같이말했 다.이호텔은1900년대초파리에서활 동한 독립운동가 서영해가설립한 ‘고 려통신사’가있었던곳이다. 그는“외교는눈에보이는전투나희 생이없기때문에,‘실체가없다’거나 ‘성 과가 부족하다’는 인식이 많았다”며 “무장투쟁이영웅적서사로 구성되기 쉬운반면,외교는오랜시간에걸친설 득과 협상, 기다림의연속이기에드라 마틱한 서사에덜어울렸던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적인외교 강국으로 거듭 난우리정부가그뿌리와활약상을재 조명하는것엔인색한 데대한아쉬움 을전한것이다. 이씨는 “임시정부 가 처했던 현실을 생 각할 때, 외교는 단 순한 수단이아닌 ‘존 재의 조건’이었다”며 “무장 투쟁이대내적 인 투쟁이라면, 외교는 세계에우리나 라의존재를 알리는 대외적전선이었 다”고설명했다.임시정부는자신들의 정당성을 세계열강에인정받는 것을 중요한목표로삼았고,이과정에서외 교는독립운동의핵심전략 중하나였 다는게그의설명이다. 실제드라마 ‘미스터선샤인’의실존 인물인황기환은1920년12월펴낸책자 ‘구주의우리사업’서문에서“세계정치의 중심은여전히유럽인데,조국의광복을 위하여군사가필요한 만큼외교도필 요하다”라고주장했다. 그러나여전히 외교역사의현장을확인하거나이를기 록하는데는관심이부족하다.임시정부 대 � 對 � 유럽외교최고성과가운데하나 로꼽히는유럽내‘한국친우회’설립지 는여전히장소조차확인하지못하고있 거나,현판하나제대로붙어있지않다. 국가보훈부는 영국 한국친우회창 립총회가 열린 런던 웨스트민스턴궁 ‘하원6호실’을해외사적지로소개하면 서도 “현실적으로여러제약이있어자 유로운 조사활동과 사진 촬영이어렵 다”고설명했다.실제로지난달직접찾 은 웨스트민스터사원은안에들어가 도, 어느 곳이우리의사적지인지정확 히확인하기어려웠다. 프랑스 한국친 우회가 설립된파리사회박물관도 상 황은 마찬가지. 건물 밖에현판도 걸 려있지않았다.이런이유 때문에이씨 는 유럽내에서의독립운동사 확인작 업에열을올리고있다.그는파리정보 경찰이1919~1920년작성한베트남독 립운동가 호찌민 � 1890~1969 � 감시보 고서를통해김규식,조소앙,황기환,윤 해등임시정부인사들이호찌민과 교 류한자료를발굴했다.프랑스마른주 문서보관소에서는 1920년소도시스 위프 � Suippes � 의한인명단을발견하 는등사료발굴성과를내기도했다. 이씨는 “프랑스에서의한국학 연구 는한국의경제성장및문화적인영향 력증가로양적이나 질적으로 괄목한 성장을이뤘지만,애석하게도독립운동 사연구분야는기관및연구자들그리 고학생들의관심으로부터멀리있다” 고 했다. 그는 “연구 환경이나아지질 않으니 � 학자를 � 잡기도어렵다”며“해 외독립운동사연구 전반의활성화를 위해재정및학술적지원, 그리고한국 내여러연구자들의관심과적극적인참 여가필요하다”고호소했다. 파리·런던=김형준기자 “무장독립운동이대내적투쟁이었다면외교는대외적전선이었다” 정부, 외교의뿌리재조명에인색 유럽한국친우회설립지도몰라 “독립운동사재정^학술적지원을” ��������������� ��������������������������������������������������� � 巴里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巴里時代 � ������������ 回想 �������� � �� �� �� �� ��� �� �� ��� �� �� �� �� ��� ����� ����� ��� � �� 別別 � � �� ��� �� 糊口策 � � �� 求 � ��� ����� �� ���� �� 海外 � �� �� ��� 十五星霜 � � �� � �� ������� �� ������� ��� ������ ��� ������� ��� �� �� �� �� � � ☞ 1면에서계속 장석흥국민대명예교수는 “당시전 세계외교가, 정치가, 언론인들이이곳 으로 몰려포화 상태였지만, 전쟁 � 제1 차 세계대전 � 이후이곳엔전기가없어 촛불을 켜놓고 외교문서나 보도문을 작성했을정도로 환경이열악했다”며 “독립운동가들은 1인다역을 맡아 만 방으로 뛰어야 했지만 누구도알아주 지않았을설움은감히상상도되지않 는다”고말했다. 다만이들의노력이모두 성과없이 끝났던 것은 아니었다. 파리정계인 사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설치한 파리위원부를 지원하기로 했고, 런던 � 1920년 � 과 파리 � 1921년 � 에선한국을 돕기위한 유럽지식인모임‘한국친우 회’가결성되기도했다. 파리에서결성된 프랑스 한국친우 회의중심엔학자출신프랑스유력정 치인루이마랭 � 1871~1960 � 이있었다. 1901년대한제국의수도 서울을 방문 하기도했던그는우리외교 독립운동 가들을 만난뒤한국의독립을지지하 는목소리를함께내기시작했다.지난 달 28일 � 현지시간 � 파리에서만난 도 미니크 바르조 해외과학 아카데미 � 마 랭이설립에참여한 정부 지원 학술기 관 � 사무총장은 “마랭은 1901년 한 국의수도 � 서울 � 를 찾았을 때, 폭압적 인일본의실상을 목격했다”며“그 시 절 그의고향 ‘로렌 � Lorraine � ’이당 시독일에넘어간모습과비슷한 � 한국 의모습을 � 목격해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바르조 총장은 즉석에서마랭이쓴 ‘여행기’를꺼내보여줬다. 마랭은이책 에 1901년 러시아 � 시베리아 � 몽골 � 만 주 � 중국 � 한국을 탐방했던기록을 담 았고, 당시서울의모습도생생하게묘 사해뒀다. “ � 고종 � 황제의옛영지 � 領 地 � 는 여전히황실 소유지만, 넓은 정 원과정자들은 더이상 관리되지않고 세월의흐름에따라파괴되고있다. 드 넓은연못은연꽃과 수련으로 뒤덮였 다. 사슴, 다람쥐, 꿩이그 자리를지배 했다. � 명성 � 황후가 살해당한 그늘아 래엔 풀이자리를 뒤덮고 있다.” 당시 대한제국은여전히주권을 가진나라 였음에도 경복궁은이미더이상 왕궁 의역할을 하지못하고 방치돼폐허가 되고 있었던 모습을 본 대로 묘사한 것이다. 이런경험덕분에마랭은 1919년파 리강화회의에서대한민국임시정부외 교관들을만나한국독립을지지했고, 본격적으로독립을도왔다. 그는 1921 년결성된프랑스 한국친우회초대회 장도 맡았다. 바르조 총장은 “마랭의 한국 지원은 프랑스에서만 그치지않 았다”며“상하이에있는 프랑스 조계 지 � 외국인통치특별구역 � 에임시정부 를세우는데도마랭의역할이컸다”고 설명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19 년 4월 중국 상하이의프랑스 조계지 에세워졌고,이곳에서13년동안 활동 했다. 프랑스 조계당국은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을 묵인하고 독립운동가 들을보호했다. 불과 100여년전전 세계외교무대 에서최약소국이었던대한민국은이제 가장주목받는나라로거듭났다.특히 임시정부 독립운동가들이“한국을알 아달라”고목놓아외쳤던파리에서한 국의위상은이미완전히달라져있었 다. 유럽인들에게한국을아는지물었 더니가장 먼저이강인 � 24·PSG � 과 손 흥민 � 33·LA FC � 을떠올렸다. 시내곳 곳에서K팝, K푸드, K뷰티가 유행을 선도하고있었다. 파리도심곳곳에선‘조소앙 호텔’처 럼유럽인들이가득한 한식당을 어렵 지않게만날 수있었다. 파리‘프랭탕 백화점’ 한가운데에는 K뷰티팝업행 사장이화려하게열려있었다. 백화점손님들은 이행사장에시선 을 빼앗겼고 뷰티제품을 유심히살피 거나구매하는이들도많았다. 파리시 청옆 BHV백화점에선아예 6층 전체 를 통틀어 ‘한류’라고 적힌 표지판을 세우고 한국 제품들을진열·판매하고 있었다. BHV 백화점행사의담당자인채호 임조아그룹 대표는 “역사 깊은 백화 점의한 층을우리제품으로꾸린다는 건민간외교 성과도 상당히성장했다 는것”이라며“1992년파리에처음 왔 을땐그야말로무시당하던소수민족 이었지만, 지금은어딜가나 존중받고 각광받는게한국인”이라며뿌듯한표 정을지어보였다. 민간외교관역할을 하는 파리교민 들은과거‘외교전쟁’에나섰던독립운 동가들에게부끄럽지않은 길을 걷겠 다고 다짐했다. 이창균 세계한인경제 무역협회 � 월드옥타 � 런던지회장은“아 시아 국가 중에서도 한국인이가장 존 중받는건,열정을가지면서도예의또 한 갖췄기때문”이라며“과거외교 독 립운동가들도 이런 자세로 유럽인들 의마음을움직였을것”이라고했다. 1900년대국제외교중심파리서 독립운동가들 1인다역분투에 유럽지식인들지지^연대이어져 상하이임시정부수립에도역할 독립운동가들외교활동현장서 K산업교민들도“부끄럽지않게” ��� � <7>외면받던과거딛고 K외교로 D5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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