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5년 8월 18일 (월요일) 의유망주를 발굴하며지원을아끼지 않았는데, 대표적인인물이1936 베를 린올림픽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 정이다. 1934년 양정고등보통학교에 다니 던까까머리손기정은여운형이대회위 원장으로진두지휘한‘제2회조선풀마 라톤대회’에출전해우승을차지했다. 손기정은이대회이후각종마라톤대 회를 휩쓸며눈에띄었다. 손기정에대 한 지원을아끼지않은여운형은 베를 린올림픽출전을권하며“가슴에일장 기를달고나가는것은원통하지만,나 가서조선민족의우수성을 전 세계에 보여줘야한다”고격려하기도했다. 손기정남승룡 ( 이상 마라톤 ) 이성구 ( 농구 ) 등 7명의조선청년들이베를린 올림픽에출전했다.여운형은이들에게 “제군은비록가슴에는일장기를달고 가지만, 등에는 한반도를짊어지고간 다는것을잊어서는안된다”고강조했 다. 또그는“우리는스포츠정신, 특히 권투정신을굳세게지켜야한다.열번 맞고,열번다운돼도다시일어나상대 방을 단 한 대로 녹다운시킬 수 있는 게권투다”며“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일어나 한 방에일본을녹다운시킬수 있다”고말했다. 베를린에서손기정은마라톤우승자 가 됐지만여운형은언론인자격을 상 실했다. 조선중앙일보는 손기정의가 슴에있는일장기를지운 ‘일장기말소 사건’에휘말리며휴간을거쳐1937년 11월 폐간되고 만다. 당시기사를 작 성했던유해붕기자는 “여운형선생은 필자 보고 ‘붓대가 꺾어질 때까 지 마음껏 민족의식을 주입 할 것이며, 그놈들의 주의 를들을필요는없다’고했 다”고밝혔다. 해방 후에도 스포츠를 향한 열정은 식지않았다. 1945년11월조선체육회회 장에추대된여운형은 2년뒤 ‘K스포츠 정신’ 심은 여운형$ ‘대한민국의힘’ 기틀다졌다 Œඍ὆፵ⶵⲁ <4> ‘국격의자화상’ 스포츠 1988년 9월17일서울잠실서울올 림픽주경기장. 손기정이한 손에성화 를 치켜들고 남문을 통과했다. 52년 전월계관을쓰고도고개를숙여야했 던그는 76세의노인이돼서야소년처 럼펄쩍펄쩍뛰며육상트랙을돌았다. 그리고그는소중히들고있던성화를 임춘애에게넘겼다. 이장면은뼈아픈과거를딛고일어 선한국스포츠역사의축약판이다.한 국스포츠는 36년간의일제식민지배 와곧이어발발한 6·25 전쟁탓에국제 무대에서는 오랜시간 변방에머물러 야했다.그러나급속도로성장한경제 만큼이나한국스포츠도단기간에비 약적인발전을이뤘고,1981년‘ 바덴바 덴 의기적’으로올림픽개 최 권까지 따냈 다.1986년서울아시안게임으로 모 의 고사를치 른 한국은그로 부터 2년후 열린올림픽개회식에서‘베를린의 슬 픈 영웅 ’ 손기정과 ‘아시안게임의 샛별 ’임 춘애를 연결 시 키 며굳건히이어진한국 스포츠의역사를전세계에 알렸 다. 개 최 에만의의를 둔 것도아니었다. 한국은당시로서는사상 최 다인16 0 개 국이 참 가한 대회에서종 합 4위 ( 금12 은1 0 동 11 ) 라는역대 최 고성적표를 받 아들었다. 홈 이 점 을등에 업긴 했지만, 긴 시간스포츠 불모 지 였 던 곳 에형형 색색 의 꽃 이 핀 것만은 분 명했다. 한국스포츠의진정한 결 실은 14년 후열린2 00 2 한·일월드 컵 에서나 왔 다. 거스히 딩크감독 이이 끈 축구대표 팀 은‘거 함 ’포 르 투 갈 ,이 탈 리아,스 페 인을 차 례 로 격 파 하고 월드 컵 4강 신화를 일 궈냈 다.한국이 광복 후단일스포츠 국제대회에서거 둔최 대의수 확 이었다. 국민들은 스포츠강국의일원으로 서 놀 라운단 결력 과 높 은시민의식을 발휘했다. 월드 컵 경기장을수 놓 은 카 드 섹션 과 수 십 만 명이운 집 한 길 거리 응 원은축구경기의 새 로운문화로 떠 올 랐 고, 자발적으로쓰 레 기를주우며 뒷 정리를하는 모습 은한국의 높 아진 국격을전세계에 알 리는계기가됐다. 국가와국민이 합심 해차 곡 차 곡내 실 을 쌓 은 덕분 에, 2 0 18 평창 동 계올림 픽의성 공 적인개 최 는 더 이상 새 로운 뉴 스가되지 못 했다. 굵직 한 국제대회를 개 최 하면서스 포츠에관 심 이 높 아지자 ‘ 빅 리그’에서 두각을 나 타내 는 선수들도 늘 었다. 박찬호 와 박 세리는신기 루 와 같 았던 미 국메이 저 리그 ( MLB ) 와 미 국여자 프 로 골프 ( LPGA ) 투어를 호령 하며‘우 리도 할 수있다’는 자신 감 을 심 어 줬 다.2 00 2 월드 컵 이후 엔박 지성과이 영 표가 세계축구의중 심 지인유 럽 에서 맹활 약하며차 범근 으로 부터 시작된 빅 리거의명 맥 을이어 갔 다. 선구자들의 활 약은 후배들에게 좋 은본보기가됐다. 박 지성을보고자 란 손 흥 민은전세계를대표하는축구선 수가됐고, 김 하성이정후 김혜 성등수 많 은한국 프 로야구선수들이 MLB 에 진출했다. 동 시에‘ 박 세리 키즈 ’들도수 차 례LPGA 트로 피 를들어올리며한 국의 골프 강국이 미 지를구축했다. 단기간에눈 부 신성장을이 룬 한국 스포츠는이제다음단계로나아 갈채 비를 하고있다. 그간 한국의스포츠 인 프 라는 서울, 부산 ,인 천 등 굵직 한 국제대회를치 른 도시에 몰 려있었다. 그러나전 북 도와전주는2 0 36 하계올 림픽후보지선정경쟁에서 광 주,대구, 충북 청주 등지역도시와의 연 대방안 을제시했다.이구상이 현 실이된다면, 한국스포츠는 저 변 확 대를위한소중 한한 걸 음을 내 딛게된다. 박주희기자 88올림픽^월드컵 4강신화$ 스포츠변방에서강국‘우뚝’ 굵직한국제대회잇단성공개최 박찬호·박지성등월드스타배출도 2036년올림픽통해새도약준비 ೉⼥ᗅܶ ץ ✥ܶ⇥೉さ㍠✥≎᫺⇊ 㜬 、ۍ ἑ℉ ץ ✥Ᾱඍ ץ ✥ܶ⇥೉さ ✥≎᫺⇊ ᫥₁῵ᎅ⼆ ㏖㋈㋐㋏㋏㏗ ≎⼲ 4 ⃍ ㏖ ߑ ㋈㋉℉㋈㋇ජ㋈㋈㏗ ⼥㍠ⅅ₝ລ⢾㏖㋉㋇㋇㋉㏗ 4 ⃍ ⶒ☆ජ ڍ ῵ᎅ⼆ ㏖㋉㋇㋈㋏㏗ ≎⼲ 7 ⃍ ㏖ ߑ ㋌℉㋏ජ㋋㏗ 조선체육의아버지 스포츠로자긍심^민족의식고취 각종체육대회열고유망주지원 손기정베를린올림픽제패이끌어 ‘KOREA’달고국제대회에 해방후엔런던올림픽참여목표 IOC가입‘스포츠외교전’총력 태극기앞세우고한국알려 ‘스포츠는또하나의 독립 운 동 이다.’ 몽 양 ( 夢陽 ) 여운형 ( 1886 ~ 1947 ) 은일 제강 점 기조선의 젊 은이들에게민족의 식을 고 취 시 키 고 자 긍심 을 끌 어올리 기위해 부 단히노 력 했다. 그 밑바탕 에 는체육 활동 을통해조선의체 력 과정 신을 함 양 함 으로 써독립 의기 틀 을 다 지려했고, 광복 이후에도스포츠를 매 개로자주국가건 립 을 꿈꿨 다.그는조 선청년들이가슴에일장기를 달고 올 림픽에나가 길 우려할 때“조선민족의 우수성을전세계에 알 려야”한다고강 조했다. 여운형의 철 학을이어 받 은 K 스포츠 정신은 대한민국에 뿌 리 깊 게자리 잡 고 발전했다. 1936년베를린올림픽에 서손기정의마라톤 금메달은 조선인 들에게 긍 지를 심 어 줬 고, 1947년보스 턴 마라톤대회에서‘ KOREA ( 코 리아 ) ’ 국 호 를처음가슴에달고 뛴 서 윤복 의 우승은 신생 독립 국가로서의시작을 만 천 하에 알 린계기가됐다.“체육의보 급으로전민족의체질과의식을강하 게해야한다”는여운형의 염 원은대한 민국을스포츠강국으로이 끌 었다. 대 한민국은 1988 서울 올림픽, 2 00 2 한· 일 월드 컵 의성 공 신화로 입지를 다 졌 고, 박찬호박 세리 박 지성 김연 아손 흥 민등 ‘월드 클래 스’선수들의출 현 으로 국격을 높였 다. 여운형은일제강 점 기에도 체육대회 를열어민족의식을 높 이는 데일조했 다. 1933년 조선중앙일보사 사장으 로 취 임한 뒤조선체육회·조선축구 협 회·조선농구 협 회·서울육상경기 연맹 회 장등각종체육단체수장으로추대돼 조선의스포츠계를선도했다.야구축 구육상등각종체육대회를열어조선 제51회보스 턴 마라톤대회에서서 윤복 이우승을 차지하자 축하대회를열고 “안중 근 의사의 쾌 거때와손기정선수 의베를린올림픽제 패 때는방문을 닫 고 춤 을추며기 뻐 했으나 참 으로가슴 이아 팠 다.그러나이번서선수는가슴 에 태극 기를달고세계의주시아 래 우 리민족의의기를마음껏 뽐낸 것이다” 고 연설 했다. 여운형이스포츠 활동 을 장려한 건 황 성기 독 교청년회 ( YMCA ) 운 동부 장 으로 활동 한경 험 이 컸 다. 당시한국의 최초 야구단인 황 성 YMCA 야구단주 장이었던그는 1912년 11월선수들을 이 끌 고일본 와세다대학야구 부 와 원 정경기를치 렀 다.여운형은 1914년중 국에서 미 국인이운 영 한 남경금 릉 대 학에입학해야구축구등에 매 진했고, 1929년중국상해 복 단대학교수가돼 체육을 지도하면서축구 부 를 이 끌 고 싱 가포 르 필리 핀 원정경기를 다 녔 다. 그사이3·1 운 동 에 참 여하고,대한민국 임시정 부설립초 기임시의정원의원과 외 무 부 차장으로 활동 하는등 독립 운 동 에도 앞 장 섰 다. 해방 직 후 정 부 가 수 립 되기 전 1948 런 던올림픽에관 심 이 집 중됐다. ‘ KOREA ’ 국 호 와 태극 기를 앞 세 워 신 생 독립 국으로서국제사회에 알릴 기 회 였 다. 무 엇 보다 국제올림픽위원회 ( IOC ) 에가입하는게급선무 였 다.조선 체육회는이를위해조선올림픽위원회 ( KOC ) 를 만들고, 여운형유 억겸 전경 무이상 백 등을 KOC 위원으로선출했 다. 193 0~ 4 0 년대 미 국 내 한인 독립 운 동 단체에서 활동 하며 영 어에 능 통한 전경무 ( 19 00~ 47 ) 가 런 던올림픽 참 가 준 비를 맡 았다.그는 1946년11월 IOC 와의교 섭 을위해 미 국올림픽위원회위 원장이자 IOC 부 위원장이었던에이 버 리 브런디 지에게서신을 보 내 는 등 각 고의노 력 을기울 였 다.정 부 가없는상 태 에서스포츠 외 교를 펼친셈 이다. 강은영기자 ᾵⁽⿞℡⼽ᗲ⇍ろ♽⃪〥ජ } 1912 ⼥ܶ℡✥⛑ ὅܵಱ 㐰〲᫺į ) ὅܵಱ㐱⋅Ⅾ } 1929 ⋚ܶ᪊⼽ ᚾಱ೉❞ܵᝉ ຺⎉ඍ⼡ᐹ ⼽⁁ₙ⇞ } 1933 ∹᫩⋚ἢⅅᚽ ᩵Ⅾ➱⅍ろ ׊≎♽⃪ಱ♽ ⅍ₙ❝೉ } 1934 㐰⇥㋉さ∹᫩ ⹉᎑ᅅ⭭೉さ㐱 ץ ✥⼽⁹ᲂ⅙ ᭙߹⇞ᗥܽ } 1936 ᙩፅ፹῵ᎅ⼆ ❥⇍⼡ౝ᭙߹⇞ ຺㋎ᑎ∹᫩⅁ᾙ ٲ ᇭ᩵ } 1946 ∹᫩♽⃪ さⅮ℅ሥ᫥ ܶ⇥῵ᎅ⼆ ⃍ₙさ㏖v±)㏗׉ⅎ ⃍⼽∹᫩῵ᎅ⼆ ⃍ₙさᗥ∺ } 1947 㐰⇥㋌㋈さ ᚽᱭ⫽᎑ᅅ⭭ ೉さ㐱⁹ᲂ⅙ ᫥⃭ᚾᾙ ❞⼡᩵ 1925년 중국 상해에서 여운형(앞줄 맨 오른 쪽)이코치로 있던야구팀이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제공 1936년만주에서 축구대회를 개최한 여운형 (맨오른쪽)이중학부우승팀과기념촬영을하 고있다.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제공 1936년베를린올림픽마라톤시상 대에서 손기정(가운데)이 묘목으로 일장기를가리고있다. 손기정기념재단제공 D3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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