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5년 8월 23일 (토요일) 오피니언 A8 어릴적에다니던초등학교는 오리도넘는거리에있었다. 동 네아이들은지각하지않기위 해 늘 바쁜 아침을 맞이했다. 그날따라형은늦잠을자고아 침밥을먹는둥마는둥몇숟 가락을입에넣고책보따리를 등에 메었다. 형은 이미 동네 아이들은 모두 학교로 떠났고 자기가제일늦을것을알았다. 형은울상이되었다.“엄마! 해 를 붙잡아 줘~~~”떼를 쓰듯 이엄마를향해큰소리를지르 고길바닥에펄썩주저앉았다. 나는 형에게 다가가 팔을 잡 고말했다.“형, 일어나달려가 면조금전에마을떠난친구들 을 만날 수 있을 거야…”형은 얼굴에 묻은 눈물을 소매 끝 자락으로 쓱쓱 문지르고 일어 났다. 그리고달리기시작했다. 어깨에멘책보자기가이쪽저 쪽으로왔다갔다하는뒷모습 을물끄러미바라보았다. 이 일이 있고 난 뒤“엄마 해 를 붙잡아 줘~~~”라고 외치 던형의말은문득문득생각났 다.인간의힘으로태양을멈추 게 할 수 있다면 이 세상은 어 떻게 변할까? 겨울이 오기 전 에 태양을 좀 더 긴 시간 동안 우리머리위에머물게할수있 다면추위로고생할필요가없 지 않을까? 중요한 약속 시간 을잡아놓았는데깜빡잊어버 리고시간을놓칠위험이있을 때태양을꽉잡아매어두면얼 마나 좋을까? 의사 선생님이 어머니의 병세를 진단하고 앞 으로 길어야 석 달 정도 연명 할수있다고말한다면그때부 터태양을꼭잡고놓아주지않 으면삼년도넘기고삼십년도 넘기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 기도했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생각났다. 늘 그 자리를 지키는 자연도 세월을 이기지 못한다는 의미이리라. 십년까 지 가지 않더라도 몇 년 만에 세상이 빠르게 바뀌는 요즘이 다.서울에서태어나자란교포 가 오랜만에 고국을 방문하였 다. 그가 살았던 동네를 찾아 갔지만너무나변해있었다. 낯 선곳에서있는자신을발견하 고깜짝놀랐다는이야기를들 려주었다. 시간은 어제의 세상 을밀어내고새세상을그자리 에 채운다. 만일 태양을 꼭 잡 을수있다면우리가살아있는 동안은 세상이 그대로 자리를 지킬 것이 아닐까? 그리운 고 향도그자리를지켜줄것이고 함께놀던친구들의모습도그 대로유지되지않을까? 여호수아가 기브온 전투에서 넘어가는 태양을 붙잡아 두고 승리를이끈기록이구약성경 에나타난다.잠시태양이머물 렀을때전황은완전히바뀌어 졌다. 그러나 그 이후 어떤 역 사의 기록에도 태양을 붙잡아 둔 기록은 찾을 수 없다. 독일 학자몰트만은그의신학해석 에서시간을정적인틀로인식 하지않고미래로나아가는역 동적인 과정으로 파악하였다. 시간은누구도제자리에묶어 둘 수는 없다. 미래를 향해 쉼 없이 나아가는 점에서 인간은 시간에 끌려가는 존재가 아니 라앞서서미래를열어가는존 재임을인식하였다. 어릴적형이집마당에펄썩 주저앉아“엄마! 해를 붙잡아 줘~~~”라고 한 것은 등교 시 간을 놓친 철부지의 생떼이기 도하지만시간과피할수없는 운명적인 싸움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시간과의싸움 “지옥의 문은 모든 희망을 버린 자들에게열려있다.”단테알리기 에리가 저술한 중세 문학의 걸작 ‘신곡’에등장하는문장이다. 지옥은단순히육체적고통의장 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희 망을 잃은 절망의 상태를 상징함 을 상기시키는 문구다. 중세 기독 교적 세계관을 기반으로 죽음 후 인간 영혼의 여정과 구원 과정에 관해 탐구하는 단테의 서사시는 서구 많은 작가들에게 예술적 영 감을제공했다. 특히 19세기낭만주의화가들은 사후 세계에 대한 우의적 여행담 의형식을지닌이작품에크게매 료됐다. 파리루브르박물관에소장돼있 는‘단테의 조각배’는 1822년 프 랑스 낭만주의 화가 외젠 들라크 루아의의해제작됐다. 당시 22세 의 무명 화가였던 들라크루아의 첫 번째 살롱전 출품작이자 그의 명성이 시작되는 작품이기도 하 다. 경제적인 이유로 작품 제작에 필요한 모델을 구할 수 없었던 화 가가 루브르에 전시된 대가들의 그림들을모사하며단세달만에 작품을완성했다는일화가전해진 다. 영원한 지옥에 떨어져 표류하 는 영혼들의 처절한 모습을 담은 이 작품은 주제의 독특함과 아카 데미규범에서벗어난들라크루아 만의 독창적인 기법으로 인해 화 단의 찬사를 받았다. 루벤스풍의 화려한 색채 기법으로 지옥의 모 습을실감나게그려냈다는이유로 ‘벌 받는 루벤스’라는 별칭이 붙 여지기도했다. 새벽기도모임에참여하고는곧바 로우리마을에있는공원을찾는일 이일과의시작이되곤한다.이마을 로 옮겨 오면서부터 찾기 시작한 공 원인데 어느새 13년지기가 되었다. 이웃을 만나게 되고 단골 산책객들 과도반가운인사들을나누게된다. 한동안뵙지못한분들은안부를서 로 묻기도 하고 반가움을 교류하는 기쁨도 누리게 된다. 새벽 산책길은 하루가 열리는 이른 시간이라 만남, 인연의 시작을 떠올리게 되지만, 노 을이비끼는산책길에선살아온날 들이직조해놓은무늬들을한올한 올 풀어내며 생을 반추하는 시간이 되곤한다. 동행하는우리집할배는공원산책 코스를 꾸준히 조깅 해오셨고 필자 는 파비리온 주변을 서성대며 걷는 시늉만 하다가 무릎과 허리 비명을 달래려곧장의자에앉게된다. 새벽 일기를 쓰기도 하고 떠오르는 단상 을기록으로남기기도한다. 푸른새 벽이 열리고 천지가 환해 지고 여름 끝물갈라쇼같은볕살이다사롭기 그지없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인류는 지 구라는기적같은이행성에서꿈꾸 듯 생을 이어간다. 태어나고 성장해 가면서 사랑을 만나게 되고 보금자 리를꾸리고사랑의결실로자녀출 생기쁨을누려가며인류역사는이 어져 오고 있는 터이라서 모든 인류 에게는제각각출생드라마가있게 된다. 생명의 잉태에서부터 한계 없 는엄마의희생이따른다. 상상못할 아픔과 바닥 없는 공포까지 답습해 가면서, 아기를향한목숨거는모성 으로인해세상에태어나고양육받 으며비로소인류의일원이되는것 이다. 임신, 출산. 양육, 성장에이르는모 든과정이순탄하지만은않음이요, 때로는위험천만한고비를넘기기도 한다. 이렇듯감동드라마를만들며 태어나고 성장해 왔기에 우리는 마 땅히행복해야할의무가있다. 해서 세상살이에 지치고 불시의 시련에 영육이흔들릴때면나만의출생드 라마를떠올려보자는것이다. 겪기 힘든 단련이나 고비의 격랑을 넘어 설수있는발상의발돋움에도움이 되는 디딤 틀이 되어주었다는 간언 을드리고싶어서이다. 옛어른들께서살아가는이치와도 리를지혜로지적해준것으로‘삶이 란마치길을재촉하는마부와같다’ 했다. 출발 지점에서 마지막 종착지 까지, 탄생에서죽음까지. 우리네둥 에짐짝을잔뜩지우고는쉴새없이 채찍질하며 길을 가게 만든다는 것 이다. 와중에같은길위에서동행을 만나기도 하고 연인을 만나게도 되 고, 어깨 동무를 하며 멀고 먼 인생 여정을 걸어가게도 된다. 하지만 인 생에서 끝까지 함께 더불어 나란히 갈수있는사람은거의없거나극소 수에불과할뿐이다. 해서사람은혼자서도길을가는법 을배우고익히게된다. 때론삶의대 장정에서 크고 작은 파티가 기다리 고있기도하고, 손수마련하게도된 다. 화려한불꽃과아름다운무대에 활기찬 음악과 춤이 곁들여지는 근 사한 시간을 보내게도 되지만 파티 가끝나면홀로어두운밤길따라집 으로돌아와야한다. 인생이란누구 와 함께하는 시간보다 혼자 외로운 길을걸어야하는시간을훨씬많이 보내게 된다. 모태에서부터 혼자였 고둘이함께하자고사랑을나누고 언약을했다지만살다보면혼자버 려져있을때가많았기에아예혼자 라는설정이이미되어있었던것같 은착각속에서살아가기도한다. 외 롭고고독한길을걸어야한다는사 실을받아들일수밖에없음을시인 하고싶지않을때가많았겠지만.외 로움 동기 제공자를 추궁하기 보다 마음은 이미 홀로서기에 몰두해 있 기에, 필연의아픔은죽는날까지지 워지지 않는 시퍼런 멍자국을 어루 만지며 남은 날을 살아가기로 작정 할수밖에없는인생이되고만다.이 러들, 저러들어떠하리로받아들 이며생을살아가게된다. 주어진끝 날까지. 하루가시작되는새벽시간을첫단 추로 삼으며 곧고 반듯함으로 소박 한하루이기를소망드린다. 새벽첫 시간을기도로올려드리며새벽일 기로 다시금 다짐하는 것으로 소중 한삶의여정앞에겸허하게가다듬 어가려한다. 새벽일기에남겨진소 망이작은자의소명으로심어지기 를간구드린다.새벽빛이은혜로내 리 우는 한 없이 넓은 하늘 품 속에 안기고싶은데발돋움할수없어그 저올려다볼뿐이다. 새벽이열리는신비는어둠을밀어 내고 서서히 밝음을 불러들이는 거 룩한감동이다. 삶속에밀려드는어 떠한 힘든 고난도 깊은 밤의 터널에 서 빠져나오면 새롭게 열리는 새벽 으로하여다시금새로운시작을붙 들수있다는용기를붙들게해준다. 새벽은 인류에게 기회를 베풀어 주 는가능성을품고있기에이룸을예 지해주는 기대요 꿈이요 등불이라 할수있겠다. 지금의현실이수고롭 고어렵고고단한고난속에있더라 도어두운밤을견디다보면여명을 품은 새벽이 기다리고 있음을 기억 해두자. 손에 손을 붙잡으며 새벽을 기다리자. 남빛 푸른 새벽 빛 너머로 빛살 같 은소망이수목사이로수줍게번져 간다. 김정자 시인·수필가 행복한 아침 새벽 일기 미술 다시보기 신상철/ 고려대고고미술사학과교수 단테의조각배 전병두 서북미수필가협회회원 토요단상

RkJQdWJsaXNoZXIy NjIxMj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