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전자신문

2025년 8월 29일(금) ~ 9월 4일(목) A10 한여름의 태백은 서늘하다. 서울의 찌든 열기를 벗어나니 창밖 풍경은 점점 고도가 높아지고 공기는 맑아진다. 산은 겹겹이 쌓여 농담 짙은 청록빛 물결을 이루고 바람 속에는 석회암이풍화된흙냄새와풀향이섞인다.“삼엽충을보러 가자”는누군가의말한마디가이여정을시작하게했고, 그 말은마치시간의심연속으로뛰어드는초대장같았다. 강원도의지질은한국의역사서보다훨씬두껍다. 이곳은 한반도의등뼈라불리는태백산맥이중심을이루며석회암 지대와 변성암 지대가 어깨를 맞댄다. 특히 태백을 비롯한 영월, 정선일대는‘고생대지층의보고’라불린다. 지금으 로부터약5억년전,이땅은바다였다.온난한기후의얕은 바다 속에는 삼엽충, 완족류, 필석과 같은 생물들이 살았 고,그퇴적물이차곡차곡쌓여오늘날의지층이됐다. 태백의 흙 속에는 바다가 물러간 뒤에도 남아 있는 석회 암, 규암, 셰일이켜켜이겹쳐있다. 한줄기강물이협곡을 깎아내면, 그속살처럼고생대지층이드러난다. 마치오래 된 서고에서 먼지를 털어낸 책장을 열 듯, 그 속에는 지구 초기생명체들의기록이그대로남아있다. 여행의첫목적지는‘구문소’다. 태백시내에서조금벗어 나면 한강의 발원지 중 하나인 황지천이 기암절벽 사이로 흐르다가갑자기땅속으로빨려들어간다. 그지점이바로 구문소다.‘입구가닫힌문처럼보인다’해붙은이름이지 만, 사실그속은석회암이빗물과강물에녹아뚫린천연 터널이다. 구문소는 단순한 경관지가 아니다. 이곳의 절벽에는 5억 년전바다속퇴적층이고스란히드러나있고삼엽충과필 석화석이발견되는지질학적보고다. 강물위로걸린출렁 다리를건너면옛바다의파도결이바위표면에그대로새 겨져 있다. 바람이 불면 물결 소리가 협곡 안에서 울리고, 그울림은마치고생대의심장박동처럼느껴질것같다. 뜨거운 태양을 머리에 이고 태백과 영월, 정선을 잇는‘강 원고생대 국가 지질공원’으로 향한다. 박물관 입구에 이르 기까지전시된돌덩이들을보며유네스코지질공원인증을 꿈꾸는 대한민국 지질 유산을 훑어본다. 미국 그랜드캐니 언이나 캐나다 버지스 셰일이 웅대한 파노라마로 고생대를 보여준다면, 강원도 지질공원은‘근접 관찰이 가능한 세밀 한화석서고’라할수있다. 특히태백은세계적으로도드문 ‘다양한 삼엽충 화석 산지’다. 체코의 바라트카 지역이나 모로코의 메르주가에서도 삼엽충이 발견되지만 태백처럼 다양한종이한지역에서층위를달리하며연속적으로발견 되는경우는드물다한다. 뒤늦게알게된이곳! 지질학자들 에게는살아있는교과서를어설프게나마들여다본다. 지질공원내‘태백고생대자연사박물관’에들어서면거 대한삼엽충모형이가장먼저눈길을사로잡는다. 유리진 열장안에는손바닥만한것부터손가락길이만한것까지, 각기 다른 종의 삼엽충 화석이 놓여 있다. 일부는 바다 바 닥을기어다니던흔적이선명하고일부는탈피껍질이마 치어제벗겨진것처럼깨끗하다. 삼엽충은약2억7000만년동안바다를지배했으나대멸 종과함께사라졌다고한다. 그오랜세월속에서진화와멸 종을반복하며지구환경변화의산증인이자경계석역할 을했다.화석앞에서있으면생명의역사가얼마나길고인 간의존재가얼마나찰나인지를깨닫게된다. 박물관은 화석 진열을 넘어 최신 기술을 활용한 체험 전 시장을갖추고있었다. 인공지능(AI) 기반인터랙티브스크 린앞에서면카메라가관람객을인식하고다양한프로그 램으로 고생대 바다를 안내한다. 홀로그램 영상관에서는 고생대해양생태계가360도파노라마로펼쳐진다. 거대한 필석이 수면을 유영하고 삼엽충 떼가 바닥을 기어다니며, 그 사이를 원시어류가 지나간다. 이렇게 흥미로운 시설에 도불구하고관람객은놀라울만큼적었다. 휴가기간임에 도박물관복도는고요하고전시실안내음은울릴때마다 빈공간에메아리쳤다. 이보물같은지질유산이, 더많은 사람들에게발견되지못하고있다는사실이아쉽다. 박물관밖으로나오자여름햇살이석회암절벽을환하게 비추고있다.먼산의능선은맑은하늘아래더또렷하게다 가오고계곡물은더맑아보인다. 태백의여름은서울보다 한계절늦게오나보다. 더위속에서도바람은차갑고하늘 은높은고도의구름을담고있다. 삼엽충을찾아떠난여정은지구의나이와생명의역사를 마주하게 했다. 우리는 수천만 년 전 바다 생물과 수억 년 전퇴적층위에서살아가고있다. 그리고그위에덧입혀진 도시와 도로, 여행자의 발길은 언젠가 또 다른 지층이 돼 다음세대에게발견될것이다. 태백은지구의거대한‘기억 저장소’이자, 인간이시간속에서얼마나작은존재인지를 일깨워주는지역이다. 구문소의강물소리와박물관에전 시된삼엽충의눈동자가, 여름의빛속에서천천히, 그러나 오래도록마음에남을것같다. ●박윤정(주)민트투어대표 프랑스에서 대학 생활 을하며유럽여행문화 를익혔다. 귀국후스스 로를 위한 여행을 즐기 겠다는 마음으로 2002 년 민트투어 여행사를 차렸다. 20여년동안맞 춤 여행으로 여행객들 의 취향에 맞는 여행을 디자인하고있다. 2021년 4월여행책‘나도한번은트레킹페스티벌크루즈’와이듬해 6월‘나도한번은발트3국발칸반도’를쓰고냈다. ‘삼엽충찾아떠난여름’ 태백서5억년의시간걷다 태백고생대자연사박물관내전시장시설물. 구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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